“르카레는 우리가 가진 최고의 소설가 중 한 명이다.”―『배니티 페어』
1974년 발표된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는 1963년 그의 첫 번째 히트작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와 비교되며 평자에 따라 그보다 원숙한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역시 그의 많은 소설들이 그러했듯이 발표하자마자 전 세계적으로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영국의 평론가 앤드루 러더퍼드는 이 작품을 <반역과 충성이라는 양극적 현상을 탐구하는 과정에서 스파이 플롯과 보편적 주제의 융합을 이루었다. 이 소설에서 다루어진 음험한 배신, 의무의 파기, 불신의 노정 등 수많은 사례들은 셰익스피어 비극에 나오는 죄악과 무질서를 비유적으로 확대시켜 놓은 듯한 인상을 준다. 사태의 핵심에는 부패를 바라보는 깊은 인식과 통찰이 있다. 악의 근원(이중간첩)을 찾아가는 스마일리의 추적은 진리를 찾아 나선 오이디푸스나 복수를 염원하는 햄릿을 연상시킨다>고 평했다. 소설의 내용은 르카레가 쓴 이 책의 1991년의 후기에서 상세히 볼 수 있듯이, 영국 정보부 내의 소련 이중간첩 킴 필비Kim Philby 사건이 모델이 되었다. 케임브리지 출신의 엘리트로 공산주의자였던 그는 한때 영국 정보부의 반첩보과 과장이었고 영국 정보부의 부장 지위에 오를 뻔하기도 한 인물이다. 이러한 실제 사건을 모델로 하고 있지만 르카레는 사건을 허구적으로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냉전 시대 체제 경쟁 속에서 서구의 <지연된 몰락>이 가져온 정신적 붕괴 과정을 관조하는 데까지 나아가고 있다.
이 작품에서는 행동보다는 두뇌와 기지로 상대를 제압하는, 스파이 같지 않은 스파이이자 르카레가 창조한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 조지 스마일리의 개성을 한껏 느낄 수 있다. 『오너러블 스쿨 보이』, 『스마일리의 사람들』로 이어지는 스마일리와 소련 정보부 우두머리 카를라의 대결을 다룬 <카를라를 찾아서> 3부작의 첫 번째 작품이며, 1979년 알렉 기네스 주연으로 BBC에서 미니시리즈로 제작되어 큰 인기를 끌어 오늘날 가장 유명한 영국의 시리즈물로 기억되고 있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