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명의 체스꾼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승부>는 삶의 축소판과 같은 이야기다. 늙은 고수이자 체스 챔피언인 ’장‘과 예기치 못한 포석과 공격으로 챔피언의 허를 찌르는 젊은 도전자의 한판 승부가 장자크 상페의 그림과 어우러져 더욱 흥미롭게 다가온다.
뤽상부르 공원 일대의 체스계를 주름잡던 장은 체스의 기본도 제대로 모르는 완전 초보와 어느 날 저녁에 체스 한 판을 두게 된다. 소설은 이렇게 낯선 젊은이가 동네 챔피언에게 도전장을 내미는 것으로 시작한다.
게임이나 문제해결이 필요한 상황에서 도무지 상식적이지 않는 행동을 하는 사람이 과감하고 용기있게 보이고, 어쩐지 뭔가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특별한 방책을 가지고 있을거라는 근거없는 믿음을 갖게되는 경우가 있다. 그런 사람과 적으로 만나게 되면 어쩐지 두려워지고 심리적으로 밀리는 감정을 느끼게 된다. 흔히 말하는 멘탈싸움에서 밀리는 상황. 사실 상대가 전문적인 지식이 있어서가 아니라 오직 초보의 대담함으로 감행한 비합리적인 상황안데도 한 번 멘탈이 흔들리면 뭔가 상대의 선택이 그럴듯해보이고 위협적으로 느껴지게 되는 것이다.
더군다나 내가 타인들의 부러움과 질시를 사는 만년 챔피온의 위치에 있는 상황이라면, 어느 날 홀연히 나타난 누군가가 챔피온을 누루고 새로운 강자가 되기를 바라는 군중들이 많아질 것은 인지상정일 듯 하기도 하고. 이런 상황에서 누가 뭐래도 독특하고 과감하게 한 수 한 수 자기의 선택에 따라 행동하는 용기를 보이는 이방인이 등장한다면, 단번에 모든 이들의 시선을 끌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나와는 다른 선택을 하는 사람‘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이중적인 잣대가 있는 것은 아닐까 싶었다. 사람들은 나와 다른 누군가를 보면 이질감과 거부감을 느끼기도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이들의 행동을 용기와 멋짐으로 인식하고 추종하려는 마음도 갖게 되는 듯.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나와 다른 행동’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사람이 그런 행동을 하기까지 그 사람 안에서 일어난 과정을 이해하는 것이 아닐까. 그래야 행동의 진위와 실체를 제대로 평가할 수 있을 테니까. 또한, 이런 이성적인 판단을 하기위해서 무작정 ‘나를 이긴 저 사람이 지는 꼴을 보고싶다’는 감정적인 마음에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 먼저일 수도 있겠다. 마음에 넉넉한 여유가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중요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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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은 머뭇거리면서 생각에 잠긴다. 자신이 이길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다는 건 본인도 느껴진다. 그런데 그 이유를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다들 체스를 꽤 둔다는 인간들이 어떻게 이 상황에서 그의 우세를 모를 수 있는지 이해가 안 된다. 말의 전반적 배치도 그렇지만 자신에게는 퀸 하나와 폰 세 개가 더 많지 않은가? 이런데도 저들은 어떻게 자신이 진다고 생각하는 걸까? 이런 형세라면 질 수가 없다. 아닌가? 자신이 착각하는 것일까? 혹시 남들 눈에는 다 보이는데 자기 눈에만 안 보이는 것일까? 그는 불안해진다. 어쩌면 다음 수에서 벌써 자신을 완전히 옭아맬 치명적 덫이 준비되어 있을지 모른다. 대체 그 덫은 어디에 있을까? 무조건 피해야 한다. 이 난국에서 벗어나야 한다. 어떤 수를 써서라도 막아야 한다.
승부 | 파트리크 쥐스킨트, 장 자크 상페, 박종대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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