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이나 체계는 고정적인 것이 아니라 각 사회의 문화 환경의 변화나 사회 간 교차와 접촉 속에서 변형·재구성된다. 본격적으로 외래의 사상과 문물이 유입되던 근대 초 한국에서도 다른 나라와의 문화적 접촉 및 교류를 통해 새로운 지식이 양산되었다.
이 책에서는 근대 한국에서 인문 지식이 어떻게 형성되고 변화되었는지를 19세기 말 문호 개방 후 새로운 문물과 사상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생겨난 신조어 및 의미가 확장된 어휘, 조혼 등 인식에 변화가 나타난 풍속, 그리고 지식을 형성하고 사유하는 장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당시의 소설을 고찰함으로써 알아본다. 이와 더불어 19세기 프랑스 작가 에밀 졸라의 소설 분석을 통해 서구 근대 지식의 한 여정도 소개하고 있다.
이 책은 특히 새로운 지식이 구성되는 중요한 과정이자 방법으로서 번역과 교섭이라는 문화 현상에 주목하여, 19세기부터 20세기 초 한국과 중국, 일본 및 프랑스의 자료에 나타난 번역과 동서 교섭의 양상 및 구체적인 예를 고찰함으로써 근대 인문 지식의 형성 과정을 짚어간다. 이러한 연구를 토대로 번역은 단지 하나의 언어를 다른 언어로 옮기는 작업이 아니라 다른 나라의 문화와 사상이 매개되는 장이며, 번역을 통해 문화는 단순히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구성되는 것임을 강조한다. 또한 자기중심주의를 넘어 서로의 문화를 존중하고 인정할 때 진정한 동서 교섭이 이루어질 수 있음을 밝히고 있다.
▣ <탈경계인문학 학술총서> 소개
<탈경계인문학 학술총서>는 이화여자대학교 이화인문과학원이 수행하고 있는 한국연구재단 인문한국(HK) 지원사업인 ‘탈경계인문학의 구축과 확산’을 위해 기획된 연구총서이다. 이화인문과학원은 기존의 인문학이 오늘날의 사회문화적 변화를 해석하고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데 한계가 있음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면서, 새로운 인문학의 방향으로 ‘탈경계인문학’이라는 개념을 제안했고, 한국연구재단 2007년 선정 인문한국연구소로서 ‘탈경계인문학’을 구축하고 확산시키는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탈경계인문학’은 오늘날 변화무쌍한 사회 환경 안에서 문화적 경계들이 빠르게 해체되고 재편되는 탈경계 문화 현상 속의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탐구하는 학문으로서, 학문 간 대립과 갈등을 야기하는 ‘경계짓기’를 반성적으로 성찰하고, 인문학과 타학문, 나아가 학문과 일상을 잇는 연구 모델을 개발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탈경계인문학 학술총서>는 ‘지구지역성’, ‘젠더’, ‘다매체’를 주제로 하여 총 9권의 책이 발간되었으며, 총서 10권부터는 ‘문화 교섭과 혼종성’, ‘포스트휴머니즘과 인간’, ‘탈경계적 상상력과 인문 지식의 재구성’이라는 주제를 통해 탈경계인문학을 체계화 · 실용화하기 위한 연구를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