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현실주의 시인들은 인간의 의식적인 행위 뒤에 있는 탐사되지 않은 경이로운 영역을 발굴함으로써 현실을 바라보는 새로운 방식을 제시하고자 했다. 그들은 이성과 광기, 합리와 비합리, 일상과 혁명, 문명과 미개 등 제도화되고 분리된 다양한 대립 개념의 모든 경계를 무너뜨림으로써 문명에 의해 억압된 정신적 힘과 욕망을 해방하고자 했다.
이 책은 이러한 초현실주의 시 전반에 대한 거시적 설명과 미시적 분석을 함께 제시하는 연구서이다. 초현실주의에 영감을 주었던 원시 예술들과 초현실주의 시론이 형성되는 과정에 영향을 미친 선배 시인들, 초현실주의 시인들이 개발한 기법들과 다양한 언어 실험들, 그리고 대표적인 초현실주의 시인들의 작품에 대한 분석과 번역까지 총망라한 이 책은 난해하게만 느껴졌던 초현실주의 시를 흥미롭고 입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도록 해준다.
존재, 사물, 예술 사이의 거리를 없애고 삶과 세계를 총체적으로 바라보고자 한 초현실의 비전을 통해, 이 책의 독자들 또한 자신의 삶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 실천할 수 있기를 바란다.
▣ 책 내용
이 책은 3부 10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는 초현실주의에 영향을 미친 흐름과 시인들을 살펴봄으로써, 초현실주의의 근원이 된 정신과 시학을 규명한다. 1부의 1장 ‘원시 예술과 마술적 환기력’에서는 초현실주의 시론의 원형으로 자리한 원시 예술을 다룬다. 초현실주의 시인들은 특히 오세아니아와 아메리카 원시 예술이 지니고 있는 마술적 환기력에 주목했는데, 이를 통해 초현실주의는 개인의 무의식과 닿아 있는 집단 무의식의 힘을 본격적으로 탐색하게 되며, 현실은 초현실 안에, 초현실은 현실 안에 들어 있다는 내재성의 철학을 발전시킨다. 2장 ‘로트레아몽의 시적 유추와 초현실주의적 수용’에서는 초현실주의의 시적 기법과 시론을 발전시키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시인인 로트레아몽의 선구적 면모를 조명한다. ‘악’을 전면화시킴으로써 모드 금기에 저항하고자 하는 초현실주의 혁명의 본보기가 된 그의 시집 『말도로르의 노래』를 집중 분석한다. 1부의 마지막 3장 ‘아폴리네르의 새로운 정신’에서는 ‘초현실주의’라는 용어를 제공한 시인 아폴리네르의 대표 시집 『알코올』과 『칼리그람』을 분석하여 그가 초현실주의 시학에 미친 영향을 밝힌다.
2부에서는 초현실주의의 대표적인 시적 기법들인 자동기술법, 초현실주의 놀이들, 그리고 시적 콜라주 및 시적 아포리즘 기법들을 살펴본다. 4장 ‘자동기술법과 글쓰기의 속도 실험’에서는 브르통과 필립 수포가 함께 작업한 자동기술 글쓰기로 된 첫 작품인 『자장』을 자세히 분석하여 자동기술법의 창작 과정과 의미를 밝히고, 5장 ‘초현실주의 놀이들과 우발성의 미학’에서는 초현실주의자들이 고안한 놀이 및 언어유희를 살펴봄으로써 초현실주의의 고유한 우발성의 미학을 규명한다. 또한 2부의 마지막 6장 ‘언어콜라주 및 시적 아포리즘의 마술적 감각화’에서는 언어콜라주, 시적 아포리즘처럼 기존의 관습화된 언어를 의도적으로 해체하여 새롭게 재구성하는 기법을 다룬다.
3부에서는 초현실주의의 대표적인 시인들인 폴 엘뤼아르, 로베르 데스노스, 앙드레 브르통, 벵자멩 페레의 고유한 시세계를 분석한다. 7장 ‘폴 엘뤼아르: 삶과 시의 혁명, 그리고 매개적 여성’에서는 초현실주의 대표 시인 엘뤼아르의 시를 살펴본다. 여성을 은유의 중심축으로 삼고, 빛나고 아름다운 사랑 시와 치열하고 투쟁적인 실천시를 자신의 시 안에 함께 녹여낸 그의 시적 여정을 살펴본다. 8장 ‘로베르 데스노스: 도시 산책, 의식과 무의식에 이르는 길 찾기’에서는 꿈과 무의식의 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했던 데스노스의 시를 다루며, 9장 ‘앙드레 브르통: 사랑, 삶, 시의 건축술’은 존재에 가해진 온갖 구속들과 금기, 육체와 정신의 이분법적 사유에 의문을 제기했던 초현실주의 수장 앙드레 브르통이 초현실주의 시론을 어떻게 자신의 시로 형상화하여 보여주고 있는지를 살펴본다. 마지막 10장 ‘벵자멩 페레: 경이로움과 넌센스의 시학’에서는 브르통 곁에서 끝까지 초현실주의를 수호했던 시인 페레의 작품을 분석한다. 자동기술법을 연상시키는 매우 빠른 발화 속도와 은유의 연쇄 아래 환상성을 촉발시키고, 이를 통해 관습화된 현실을 뛰어넘는 시적 도약을 성취한 페레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부록에는 본문에 언급된 시들을 중심으로 초현실주의 대표 시들을 필자의 번역으로 수록했다. 초현실주의 시는 길이가 긴 시들도 많고 난해하기로 정평이 나 있어 번역된 시들을 접하기 어려운데, 본문의 분석들을 참조하여 시를 읽음으로써 독자들이 초현실주의 시에 좀 더 친근하고 깊이 있게 다가갈 수 있게 하려는 저자의 배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