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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독립 50인 상세페이지

책 소개

<대한독립 50인>

[책소개]

“인류에게 있어 가장 큰 비극은 지나간 역사에서 아무런 교훈도 얻지 못한데 있다.”
-아널드 조지프 토인비 (1889-1975 영국의 역사학자)

『대한독립 50인』에는 안중근 의사 등 남자 마흔 두 분과 여자 네 분 및 외국인 네 분이 포함된 50명으로 이들의 살신성인의 행동과 고매한 사상을 이룬 발자취가 들어 있다. 그리고 조선왕조에 이어 대한제국의 망국(亡國)과 독립(獨立)이라는 사실과 원인을 또한 제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흥국(興國)의 방향을 지나간 역사에서 교훈을 얻도록 살펴보고자 한다. 아직까지 망국에 대한 원인은 조선왕조와 대한제국의 지도자들이 무능하여 생긴 것으로 크게 오도되고 있는 사실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살펴보고 있다. 한일병합이 된 110년 전 후의 세계가 처한 상황을 살펴보자. 18세기말 영국에서 시작된 1차 산업혁명으로 유럽의 여러 나라가 막강한 국가로 변하자 아시아 및 아프리카 등 전 세계의 후진국에 대하여 비 인륜적으로 식민지 지배정책을 강행하였다. 또한 20세기에 시작된 2차 산업혁명에는 독일과 미국이 선두에 위치하면서 식민지 추세는 전 세계로 더넓게 확산되었다.
1854년에 미국에 의하여 굴욕적으로 개항한 일본은 서구의 산업 근대화를 일찍 받아들이고 단시일 내에 아시아 지역에서 처음으로 열강의 대열에 참여했다. 결국 일본은 서구의 식민지정책을 도입하면서 조선을 포함한 아시아에서 무력 침략을 통하여 강점하여 동양평화를 파괴하고 인류에 비참한 비극을 주기 시작했다. 일본이 조선을 지배하게 된 것은 바로 강대국들의 비밀약정이었다. 아시아에 시선을 돌린 친일성향의 미국 시어도어 루즈벨트 대통령 시기에는 미․일의 <가쓰라-태프드 비밀협상>과 미․일․러의 <포츠머스 조약>이 이루어졌다. 또한 영․일과 러․일의 <군사동맹> 등으로 이미 한국민의 의사와 관계없이 피동적으로 결정되어 버린 것이었다. 그러나 1918년 파리강화회의에 제출된 우드로 윌슨 미국 대통령이 주창한 <민족자결의 원칙>에 의하여 국내에서 1919년 3.1운동이 전개되고 중국 상하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1919년 4월 13일에 수립되어 비로소 대한독립 운동이 전개되기 시작한 것이다. 2차 세계대전 후 전 세계 100여개의 식민지 국가에서 연합국으로부터 독립을 보장받기 위하여 노력했다. 그러나 1943년 전후처리를 논하는 연합국 정상들의 카이로 선언에서 유일하게 대한한국만 독립을 보장한다는 내용을 넣어 공포했다. 이러한 독립운동가의 헌신적인 노력이 모여 독립의 역사가 이루어진 것을 새겨야 할 것이다.

● 1,2차 산업혁명과 열강의 식민지 정책

► 영국의 제1차 산업혁명과 식민지 정책의 확산
식민지(植民地)란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영토를 제국주의(帝國主義 Imperialism)의 나라로부터 군사, 정치, 경제적인 지배를 받는 것을 말한다. 서구열강이 팽창위주의 식민지 정책을 추진한 동인은 250년 전부터 생긴 1, 2차 산업혁명이었다. 18세기에 이미 해상강국이었던 영국은 1차 산업혁명의 3가지 획기적인 발명으로 전 세계에 식민지(植民地)정책을 강력히 추진하게 되었다. 철강(鐵鋼), 증기기관과 증기철도 및 방적기계(紡織機械)는 막대한 부를 축적하며 전 세계로 진출케 했다. 결국 영국은 세계 최대 경제대국이 되었다. 그리고 제국주의 열강이 되어 식민지를 넓혔다. 그러나 1763년 파리조약(Treaty of Paris)으로 민족주의가 확산되어 독립운동이 본격화되자 영국은 미국(1774년)과 아메리카 13개 식민지를 잃었다. 대신 아프리카와 아시아에 식민지를 넓혀 인도를 지배하면서 전 세계 인구의 1/4. 면적의 1/4를 가졌다. 2차 대전이후에 미국 대통령 우드로 윌슨이 제창한 「민족자결의 원칙」으로 영연방이었던 인도, 파카스탄, 아일랜드 및 무려 여타 53개국이 영국의 식민지에서 독립했다.
서구에서 영국 외에도 프랑스, 포르투갈,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네덜란드, 벨지움, 미국 등에서 이러한 획기적인 산업혁명의 과학기술 개발은 전 세계에서 식민지 시장을 확충한 반면에 피식민지 인류에게는 엄청난 재앙을 낳게 했다.
이 당시 조선왕조는 1,2차 산업혁명의 새로운 물결과 식민지 정책으로 열강이 몰려오는데 대응하였으나 실패하였다. 조선왕조는 1636년 병자호란 이후에 청나라를 제외하고는 대외적으로 쇄국정책이었다. 당시 서구와 접촉을 일체 거부하고 문을 닫은 것은 국제상황에 설득력이 없었고 비현실적 노선이었다. 이러한 세계적인 흐름에 등한히 하여 국력이 쇄약되고 결국 망국의 결과를 초래했다. 대한제국의 자주성은 무참히 유린당했다. 더욱이 대한제국은 바람직한 자주적 개화정책을 하지 못한 대신에 열강의 강요로 국권이 침해당하는 비자주적인 개화정책을 당하게 된 것이다. 당시의 국제정치 환경은 약소국가와 민족에게 무력을 앞세운 열강으로 흥망과 존폐라는 엄청난 시련과 변화를 주었다.
따라서 영국의 「1차 산업혁명」과 독일 미국 등의 제2차 산업혁명의 결과가 200년 전후로 시행되었으나 이러한 결과가 한민족의 흥망을 좌우하는 식민지시대로 변화될 것을 아무도 몰랐다.

► 미국과 독일 등 제2차 산업혁명으로 제국주의가 대두
19세기 후반 제2차 산업혁명을 주도한 미국과 독일 등이 20세기 전반에 철강, 자동차, 전기, 화학 등의 분야에서 영국을 앞질렀다. 따라서 영국의 세계 시장에서의 우위를 위협했다. 이로써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에 걸쳐 미국과 독일이 영국을 제치고 선진 산업 국가로서 자리 잡았다.
제2차 산업혁명은 침략 주의적 경향인 제국주의(帝國主義)의 대두 및 전개와 깊은 관련이 있었다. 내연 기관과 화학 산업에 꼭 필요한 석유와 고무, 새로운 전기 산업과 원동기의 제조에 필요한 구리 등에 대한 수요는 증대되었다. 따라서 이들 원료의 공급지에 대한 각국 간의 치열한 쟁탈 전쟁이 벌어졌다.

● 조선왕조와 대한제국의 운명

► 일본은 미국, 러시아, 영국의 동의하에 한국을 식민지화
일본이 1905년 이후 대한제국의 패망을 강요할 수 있는 힘이란 것은 ▪ 미․일의 1905년 가쓰라-태프트 비밀협약과 ▪ 1905년 미․일․러의 포츠머스 조약 및 훨씬 이전인 ▪ 1902년 영․일의 동맹으로부터 나온 것이었다.
쇄국이란 용어는 일본에서 처음 유래되었으며 조선과 마찬가지로 서구열강의 개항 억압에 대하여 일본은 쇄국정책을 200년간 이어 왔다. 동양에서는 유일하게 일본은 1854년 미국으로부터 굴욕적인 개항을 당했고 미일화친조약을 체결한 후에 전통적 사고에 집착하지 않고 메이지 유신을 통해서 서구의 제1,2차 산업혁명의 변화를 급속히 받아들여 근대화에 성공하였다. 일본은 불과 22년 후인 1876년에 조선에 대하여 미일수호 조약과 똑같은 굴욕적인 강화도 조약 즉 한일수호조약을 강요하게 된다. 쇄국정책으로 인하여 망국의 길로 이어지는 실패의 가장 중요한 요인 중에 하나는 역시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치의 변화에 대하여 정확한 파악과 적응하지 못한데 있었다. 505년 동안 이어진 조선왕조(1392-1897)의 말기와 13년의 대한제국(大韓帝國 1897-1910) 및 36년의 일제식민지(1910-1945) 시대까지 1,2차 산업혁명으로 앞장선 서구열강이 활개를 치고 전 세계에 걸쳐 약소국을 식민지로 지배하려던 시대였다.
일본의 지배한 식민지는 1895년에 청일 전쟁에서 승리하면서 타이완을, 1905년에 러일 전쟁에서 승리했고 1910년 8월 29일에 대한제국을 강제 병합했다. 1930년대 만주와 중국을 침략하였으며 중국을 반식민지로 만들었다. 1941년에 제2차 세계 대전에 참전하여 미국령 오세아니아 섬들, 필리핀, 인도네시아(네덜란드령 동인도), 베트남, 미얀마, 캄보디아, 인도 동부까지 지배했다.

► 1905년 7월, 미․일의 가쓰라- 태프트 비밀협정으로 국권 상실
시어도어 루즈벨트는 1901~1909년까지 26대 미국 대통령이었다. 당시 고종황제의 집권시기이었고 미국의 동 아시아 정책상 일본의 야욕에 맞추어 대한제국의 국권을 일본이 지배하도록 승인한 비극적인 시기였다. 이 시기에 한일의정서. 을사늑약, 조선통감부 설치, 헤이그 밀사파견, 고종의 퇴위, 안중근 의사 의거, 합일병합 등 대한제국의 존망이 걸린 큰 사건이 연이어 진행되었다.

당시 미국의 군사력은 일본의 조선 식민지화에 반대할 수 있는 유일한 국가이었다. 고종을 비롯한 조선의 관료들은 조선의 독립을 위해 미국에 대해 상당한 기대를 갖고 있었다. 1898년 스페인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미국은 1899~1902년 동안에 총독으로 필리핀을 지배하였다. 1905.7.29에‘가쓰라-태프트 비밀협약을 통해 ‘일본이 필리핀을 침략하지 않는 대가로 일본의 한국 지배를 인정하게 되는’국권상실의 비극을 당했고 한미 양국관계와 한국의 운명에 큰 충격을 주었다. 이는 1882년에 미국과 체결한 한미수호조약에 명시된 ‘우호적 중재’라는 체약국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결정이었다. 이는 1905년 11월 을사조약이 맺어지자 미국은 당장 한국과 외교적 관계를 단절한 최초의 국가가 되었음에 여실히 드러났다.

► 1905. 9월 포츠머스 조약(미․일․러․독)으로 사실상 일본의 속국으로 재확인
먼저 일본은 군사를 앞세워 조선에 <한일의정서>(1904.2)를 체결하면서 장차 조선영토 내에서 러일전쟁에 대비하여 조선이 일본편을 들도록 유도하였다. 일본은 <러일전쟁>(1904.2~1905.9)에서 육전과 해전에서 모두 이겼다. 그러나 양국에 60만 명의 사상자가 생기고 각각 국내사정으로 더 이상 전쟁을 할 수 없게 되자 일본의 외상 고무라 주타로(小村壽太郞 1855-1911)는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에게 강화화담을 알선해 주도록 요청하게 된다. 1905년 9월 루즈벨트 대통령은 러일전쟁이 끝난 후 <포츠머스 조약>을 주선하여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였다. 이때부터 조선의 운명은 포츠머스 조약이라는 열강의 외세에 의하여 결정되어 버렸다. 즉 회담 결과는 조선의 식민지화였다.
1905.8.4. 이승만은 고종의 밀사로 미국을 찾아가 루즈벨트 대통령을 만났으나 닷새 전에 가쓰라-태프트 밀약이 조인되어 헛걸음이 되었다.
주타로는 미국에 유학하여 1877년에 하버드대학교 법학부를 나왔고 미국 대통령 시어도어 루즈벨트(1858-1919)도 1880년 하버드 대학 출신으로 서로 동창이었다. 또한 그는 러일협약을 체결하여 한국을 병합하는데 에도 관여하여 일관된 일본의 대륙정책을 진행시켰던 인물이었다.

► 을사늑약 체결후 미국공사관을 철수시켜 외교를 단절시킨 루즈벨트 미국대통령
루즈벨트는 러일 전쟁이 일어나기 전부터 미국은 일본을 적극 지지했다. 루즈벨트가 1900년 부통령 재직 시 당시 워싱턴의 주재 독일대사인 슈테른베르크에게 보낸 서한에서 “나는 일본이 조선을 차지하기를 바란다. 그러면 일본은 러시아를 저지하게 될 것이고, 이제까지 해온 것으로 보아 일본은 충분히 그럴 능력이 있다”라는 말까지 한 적이 있었다.
일본은 1905년 11월 17일에 을사늑약을 조선에 강요하여 외교권을 박탈했다. 루즈벨트는 을사늑약이 체결되기도 전인 11월 8일에 다카히라 일본 공사가 방문한 자리에서 ‘일본이 주한미국 공사관의 철수를 원하는지?’ 물었다. 그리고 미국은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11월 24일 열강 중 제일먼저 미국공사관을 조선에서 철수하고 외교를 단절하므로서 일본 외상에게 우의(友誼)의 증거를 확실히 보여주었다. 이와 달리 1907년에도 러일간에 다시 비밀협약을 체결하여 ‘대한제국 강제속국화에 대한 권익’을 일본은 재차 러시아로부터 확약을 받았다. 나아가 미국은 일본의 조선침략에 적극 찬성했다.

► 우드로 윌슨 대통령은 1917년에 1차 세계대전에 참전, 고립주의에서 세계주의로 전환
미서전쟁(美西戰爭)은 1898년 4월부터 8월까지 필리핀에서 미국과 스페인과의 전쟁이었다. 미국이 이기자 1919년 파리강화조약에 의거 필리핀을 1899년부터 인수하여 지배하기 시작했다. 미국의 26대 시어도어 루즈벨트 대통령의 후임으로 윌리엄 H.태프트가 27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1915.5.7. 당시 세계 최대의 영국 여객선 루시태니어호가 미국 뉴욕항을 떠나 영국으로 항해하던 중에 아일랜드 해안에서 독일 잠수함의 어뢰공격으로 침몰하여 1,191명중 미국인은 128명이 사망했다. 우드로 윌슨 미국 대통령은 1917.12.6일에 독일에 선전포고를 하여 고립주의를 버리고 1차 대전에 참가하여 전쟁을 승리로 끝냈다

► 일본을 4개국(미․영․중․화)이 봉쇄 및 일본을 고립시켜 결국 일본제국은 멸망
1900년대 초반에 미국의 상황은 자력으로 중국 대륙에 진출할 수 없는 조건이었다. 그래서 먼저 태평양의 제해권을 장악하려고 할 때 즉 일본을 이용하면서 러시아를 견제하였다. 미국은 드디어 태평양 제해권을 장악하였고 군사력이 강성해지기 시작했다. 또한 미국이 볼 때 일본은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서 승리하여 아시아에서 맹주로 군림하려는 우려가 보였다. 또한 중국이 반식민 상태지만 일본이 중국전체를 장악하려는 것에 우려하고 있었다. 따라서 미국은 아시아 태평양에서 수수방관을 할 수가 없어 새 전략을 개발했다. 즉 A(America 미국) B(Briton 영국) C(China 중국) D(Dutch 네덜란드) 4개국의 ‘ABCD 봉쇄망(ABCD Line)’으로 일본 제국주의를 막고자 했다. 이는 전쟁물자인 석유, 고무, 철광석, 식량 등 수출금지라는 경제제재와 함께 일본의 고립 전략이었다. 드디어 미국은 일본의 뒤를 봐주던 관계와 결별하고 일본에 대한 경제제재로 인해 전쟁체제가 되기 시작했다.
일본은 미국으로부터 차츰 격리 당하자 드디어 미국을 향해 공격 없이는 아시아 태평양 국가의 식민지 장악이 불가능 하다고 보았다. 드디어 일본은 1941년에 진주만을 기습 공격하여 미국을 향하여 전쟁을 감행했다.
그러나 미국과의 태평양 전쟁에서 전세가 바뀌어 결국 1945년 8월 초, 히로시마, 나가사키 두 곳에 원자폭탄이 투하되고 소비에트 연방이 만주를 침공하자 8월 14일 포츠담 선언 수락을 선언했다. 8월 15일 연합국에 공식적인 항복 선언을 했고 9월 2일 포츠담 선언을 체결했다. 연합군으로서 일본을 점령한 미군이 연합군 최고사령부를 설립한 뒤 군정을 실시함으로써 일본 제국은 사실상 패망하였다.
결과적으로 보면 1900년대 있었던 미국의 일본에 대한 지원과 친일정책은 아시아에서 미국의 이보 전진(二步 前進)을 위한 일보 후퇴(一步 後退)로 분석되고 있다.

● 3.1운동을 기점으로 대한독립 운동

► 안중근 의사 순국 100주년과 대한독립 50인
안중근 의사는 20세기가 낳은 동양평화의 위인이었고 국민계몽운동을 펼치고 의병활동까지 하셨던 애국선열이다. 독실한 신앙인으로서 교육자이며 평화사상가로 그리고 군인으로서 당시대가 요구하는 민족적 과제 앞에 홀연히 온몸을 던졌던 민족정기의 화신이었다. 그는 1909년 10월 26일에 조선침략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를 하얼빈 역에서 처단하고 1910년 3월 26일 32세로 순국하였다. 이는 마치 14세기 이후 프랑스와 영국의 100년 전쟁에서 화형을 당한 잔 다르크(1412-1431)가 사후에 세계적인 존경을 받았고 전 세계 화가들이 초상화를 그렸으며 프랑스에서 성인으로 추대되었다. 이와 같이 안중근 의사도 일본과 중국 및 러시아 등에서 그의 숭고한 사상과 정신은 존경을 받고 있으며 한국 천주교로부터 로마교황청을 통하여 성인으로 추대하려는 움직임이 시작되고 있다.
이번에 『대한독립 50인』이라는 책의 발간은 2010년에 <안중근 의사 순국 100주년 기념>을 위한 [대한독립전(大韓獨立展)]이라는 초상화 전시에서부터 차츰 계획되어 왔다. 저자는 초상화를 제작하는 서양화가로서 2010년에 [안중근 의사의 순국 100주년]이라는 뜻깊은 행사에 맞추어 예술가의 한 사람으로 사회참여인 앙가주망(Engagement)을 기획하였다. 당시 이름난 대한독립 운동가를 환기시키기 위해 흑백사진을 가지고 42명의 초상화(肖像畵)의 유화작품을 2년간에 걸쳐 자비로 제작하였다.
그 후 2010년 말에는 남산에 새로 신축된 [안중근 의사 기념관]과 안양의 [평촌아트홀]에서 특별 기획전시회를 개최하였고 전시 도록을 발간하면서 독립운동가 42명의 초상화와 같이 약력을 짧게 설명한 적이 있었다. 당시 일본인을 포함하여 많은 국내외 관람객과 지인들이 임들의 뜻과 생애를 자세히 포함하여 한 권의 책으로 발간하도록 하는 권유를 받았고 자료수집등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늦어졌다.

► 고종의 독살, 유관순의 타살 등 새로 밝혀지는 독립운동사
즉 한국의 근대사에서 가장 자주 거론되는 사람은 고종황제와 주위의 충신과 역적들이다. 특히 고종의 평가까지도 일제 강점기에 일본 측이 허위로 만든 식민사관이라는 역사왜곡으로 교묘한 책략에 휩싸여 있었다. 아직도 대한제국이 고종황제의 무능 탓으로만 국권을 상실하였다고 주장하는 친일성향의 학자가 있다. 그러나 최근 1907년 고종의 강제 퇴위뿐 아니라 죽음까지도 뜻있는 역사학자들의 꾸준한 탐구로 1919.2.1.에 일본이 독살(毒殺)의 만행을 자행한 사실이 드디어 판명되었다.
일제는 결국 대한제국의 황제와 황후를 시기는 다르지만 다 같이 독살하고 시해한 것으로 세계의 근대사를 살필 때 이러한 야만적인 행위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호머 헐버트(Homer Bezaleel Hulbert, 1863~1949)와 같은 고종의 자문역할(1895-1907)을 담당했던 미국인도 '한국의 역사'와 '대한제국멸망사(The Passing of Korea)'의 저서를 통하여 고종의 높은 정치능력과 독립정신 및 고매한 인격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미국, 일본, 러시아, 영국 등의 열강끼리의 비밀협상으로 대한제국을 망국이라는 비극으로 끝나게 한 사실도 차츰 진실이 밝혀지고 있다. 모름지기 역사해석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차츰 새로운 각도와 증거로서 진실한 역사를 다시 인식해야 하는 필요성이 대두된다. 따라서 과거 독립운동가에 대한 국민적 관심과 공부는 토인비가 말하는 것처럼 ‘과거의 역사에서 새로운 교훈을 얻어 나가야’ 비로소 가치가 있고 다시 반복하는 일이 생기지 않을 것이다.
국가의 독립은 좌우하는 엄연한 진실은 오로지 경제력과 국방력이라는 국력의 신장에 달려 있다. 이러한 사명을 달성하기 위해서 비극적인 과거 역사를 냉정히 파악함으로서 가능한 일이다.

► 망국과 흥국의 근현대사에 독립운동의 역사는 귀중한 미래의 교훈
우리 민족은 망국(亡國)과 흥국(興國)이라는 상반된 교훈을 뼈저리게 경험했다. 1910.8.22에 조인된 한일병합조약(韓日倂合條約)부터 1945년에 해방되어 독립을 이루기까지 36년간 온 국민은 독립운동과 국권회복에 갖은 고난을 겪었다. 그러나 1945년 해방을 이루고 대한민국으로 출발한 후에‘한강의 기적’을 통해 정치. 경제. 문화 및 사회의 전 분야에서 눈부신 역사를 이룩하여 세계 역사상 가장 짧은 기간에 뛰어난 경제발전을 이루어 국제무대에 다시 우뚝 선 것이다.
일제 식민지 과정에서 제일 먼저 전 국민이 합심하여 치른 항일독립운동(抗日獨立運動)은 우리 민족의 단결을 정신적으로 더욱 공고히 하였다. 이는 해방 후 경제력과 군사력의 획기적인 발전을 도모하는데 있어 정신적인 결집을 이루는 원동력이 되었다. 재삼 국제적 환경변화에 우리의 생존과 발전을 위해 적응해 나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절실한 교훈을 얻게 된다.
우리는 모름지기 세계 환경변화에 슬기롭게 대처하여 앞으로 주변국에 휘둘리는 전철이 결코 없어야 한다. 즉 국제정치 무대에서 엑스트라로 전락하지 않도록 모든 노력을 경주해야 할 것이다.

● 현재상황

► 과거 110년 전 1905년 을사조약 전후의 국제환경
오늘날 한반도 주위정세는 조선왕조와 대한제국이 겪은 시대의 국제환경과 매우 유사한 상황이다. 110년 전 당시 미국은 아시아에서의 비중을 높여 나가되 러시아의 세력이 내려오는 것을 막기 위해 일본과 비밀협상을 통하여 ‘일본의 한국 점령’을 인정했다. 당시 청나라는 청일전쟁으로 일본에게 항복하였으며 러시아도 러일전쟁으로 패할 시기였다. 또한 영국도 자국의 국익을 위해 일본의 조선 지배를 영일동맹의 비밀협상으로 인정했다. 러시아도 포츠머스 조약으로 대한제국을 일제가 식민지로 속국화하는 데에 대한 동의했다.

►. 오늘날 한반도 주위의 국제환경
오늘날 한국의 주위정세는 또다시 미국과 일본, 중국과 북한 및 러시아가 관여되어 있다.
미국은 110년 전 시기는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일본과 동맹을 맺었으나 이제는 강대국으로 변화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일본, 한국, 필리핀 등과의 유대강화 문제가 더욱 중요해 졌다. 또한 북한의 핵무장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실험으로 유엔의 제재가 국제적으로 실행되고 있으나 특히 미․일의 유대는 더한층 공고히 되고 있다. 그러나 한미 간의 방위협력과 유대강화는 무역량이 늘어난 중국과의 외교문제 및 해당 지역주민과 야당의 반대로 쉽지 않은 실정이다.
일본은 2차 대전 후 1946년에 평화헌법을 제정한 이래 70년 만에 ‘먼저 공격받지 않는 한 무력행사를 않는다.’는 전수방위(專守防衛)원칙을 깨고 있다. 드디어 국제평화지원법안을 추진하여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가 되었다. 동북아가 한국․미국․일본 대(對) 북한․중국․러시아의 과거 냉전체제로 환원될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중국도 한.중간에 증대된 무역거래 비중을 의식하여 종전에 없던 심한 발언을 일삼고 있다. 중국은 한미동맹으로 북한의 무력침공에 대비하기 위해 최신 무력설비로 증강하는 데에 대하여 반대의사를 노골적으로 주장하고 있다. 특히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에 대비한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인 사드배치라는 군사문제에 중국은 내정간섭에 가까운 압박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미국은 외교·군사 정책의 중심축을 지난 10년여 동안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전쟁 등 중동 지역에 외교 군사 역량을 집중해 왔다. 그러나 아시아로 이동시키겠다는 오바마 정부의 정책이다. ‘미국의 아시아 회귀 정책(Pivot to Aisa)”은 미국 백악관에서는 “재균형(Revalancing)”이라고도 불린다. 이는 “아시아 중시정책”이다. 이는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2011년 외교 잡지 포린 폴리시에 ‘미국의 태평양 시대’라는 기고를 통해 처음 사용했다. 중국의 부상을 염두에 두고 이를 견제하겠다는 의도가 숨어 있다.

북한의 김정은은 경제건설과 핵무력 건설을 병진시키며 자위적 노선을 항구적으로 가지려 한다.“만일 국제사회가 북한의 핵보유를 인정하게 되면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에서 핵 도미노(연쇄반응) 현상이 일어날 가능성이 매우 크기 때문에, 동북아 안보위기를 중시하는 미국과 중국 등 안전보장이사회 이사국들이 절대로 용인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북한에 대하여 유엔역사상 가장 강력한 제재라고 할 수 있는 것에 중국과 러시아까지도 합의가 이루어져 통과가 되어 이제 이것이 효과를 발휘해야 하는 시점에 왔기 때문에 북한은 여러 가지 기만전술을 펴고 있다

러시아 또한 국제사회에서 독립적인 위치를 고수한다 할지라도 한 가지 중요한 사안, 즉 북한의 핵보유에 대해 러시아는 강경한 반대 입장을 표명하였다. 그러나 미국의 사드배치 문제에 대하여는 중국과 같이 반대 입장을 표하고 있다.
이와 같이 한반도를 둘러싼 나라들의 국방 및 경제 분야의 경쟁은 과거와 다름없으며 다자간 상호 협상이나 비밀협상의 우려에 대하여 서로 간에 불신의 시선을 지니고 있게 되었다.

● 4차 산업혁명과 새로운 한국의 흥국

► 2020년까지 4차 산업혁명(Industry 4.0)이 도래하는 여건에 대한 과제
앞에서 대한제국은 크게 본다면 18~19세기에 걸친 서구의 1,2차 산업혁명이라는 대변화를 적절한 시기와 방법으로 우리가 근대화를 통하여 수용하고 튼튼하게 적응하지 못한데 있다고 보았다. 오늘날 시대는 다시 변하여 3,4차 산업혁명의 변화가 더욱 가세되고 있다.
3차 산업혁명은 인터넷 기술과 재생 에너지가 융합하여 가져올 협업시대를 의미한다. 1차 산업혁명의 키워드는 증기기관, 인쇄술, 석탄이었다. 2차 산업혁명은 자동차, 전기, 석유 그리고 근래의 3차 산업혁명은 인터넷, 재생 에너지를 말한다. 한국은 1990년대에 제3차 산업혁명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여 경제를 크게 살리고 선진국 대열에 진입했다.
오늘날 대한민국은 1945년 해방이후 자유선거에 의하여 1948년 8월 15일에 대한민국 정부가 탄생되었다. 1950년의 한국전쟁(Korean War)으로 비참한 상황에서 출발하였지만 '한강의 기적'이라는 눈부신 경제 발전을 이룩하고 1990년대부터 세계적인 경제 강국으로 발전하였다. 그동안 많은 고난을 이겨내어 이제는 명실 공히 세계적으로 지도적인 위치에 서 있게 된 것이다. 2015년 1인당 구매력 기준으로 국민총소득(GDP)은 36,601달러이며 세계은행에서 고소득 국가로 분류되었다. 2015년 명목 국내총생산(GDP)은 1조 4,350억 달러로 세계 11위 규모이다
앞으로 인류에는 한발 더 나아가「제4의 산업혁명」이 도사리고 있다. 따라서 제4의 산업혁명은 구체적으로 정보통신기술(ICT)을 기반으로 실제와 가상을 통합한 사물을 지능기술로 자동 제어하는 산업혁신이다. 21세기의 신기술 즉 인공지능(AI), 모바일, 사물인터넷(IoT), 드론, 무인자동차, 3차원(3D) 프린터 등 세계 경제의 신성장 동력이 차츰 국가의 흥망을 좌우하는 요인이 될 것이다. 과거처럼 무기를 가지고 침략을 하는 것이 아니라 시공을 넘나들면서 현대의 인류에게 필수적으로 필요한 이러한 신기술이 지배하는 형국이 된 것이다.
IT와 관련된 정보시대(情報時代)라는 2~3차 산업혁명의 속도가 선형적(線型的)인데 반하여 4차 산업혁명은 기하급수적(幾何級數的)인 속도에서 빠르게 전개된다. 또한 이는 디지털혁명을 기반으로 다양한 과학기술을 융합(融合)하면서 개인과 기업 및 사회전반에 걸쳐 인식의 체계인 패러다임(Paradigm)의 변환(變換)을 초래한다. 또한 국가 간, 기업 간, 산업 간 그리고 사회 전체 시스템(System)의 변화(變化)를 낳는다. 앞으로 우리는 제4의 산업혁명에 뒤쳐 질 때에도 국권(國權)을 상실(喪失)하는 것처럼 정보기술력에 뛰어난 나라에 지배(支配)를 받거나 예속(隸屬)될 수밖에 없는 결론에 도달한다.
이 책을 통하여 뼈아픈 역사를 오늘의 시각에서 되새기는 계기가 되고 모두 새로운 각오로 제2의 흥국을 이루었으면 기대한다. 장차 한국의 비약적인 발전에 대한 기대는 ICT기반기술을 통한 제4차 산업혁명의 새로운 흥국(興國)과 장차 남북통일(南北統一)이라는 두가지 요소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번에 828쪽에 달하는 전자책(e-Book) 발간은 종이책 출판에 앞서 먼저 국내에서 많은 사람들이 보도록 가격을 낮추어 보급가로 발간하였다. 더불어 외국에 거주하는 한국의 교포들과 후세들이 볼 수 있도록 아마존(Amazon)등에서 한글판으로 출판 예정이다.


출판사 서평

[출판사 서평]

이번에 아트월드 출판사를 통하여 서양화가 조영규는 [대한독립 50인]의 전자책을 출판하였다. 저자는 2010년에 안중근 의사 순국 100주년을 기념하여 자비로 42명의 독립운동가에 대하여 유화 초상화를 제작하여 남산에 새로 신축된 <안중근의사 기념관>과 안양의 <평촌아트홀>에서 특별기획전을 개최하여 많은 관람객을 맞이했다. 안중근의사 기념관에 방문하는 국내인은 물론이고 특히 일본인은 평소에도 방문객의 약 80%를 차지한다고 하는데 이들로부터도 뜨거운 관심과 환호를 받았다. 당시 전시도록을 제작하여 독립운동가의 약력만 소개하였는데 그동안 많은 자료를 수집하여 828쪽에 달하는 책으로 발간하면서 이들의 숭고한 정신과 국가헌신의 활동을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또한 저자는 한일병합 시기인 110년 전후의 조선왕조와 이어서 대한제국의 세계적인 시대상황 추세를 분석하여 망국의 비극을 당한 원인을 분석하고 있다. 즉 18세기 영국에서 출발한 제1차 산업혁명으로 전 세계의 후진국에 대하여 비 인륜적으로 식민지 지배정책을 강행하였다. 또한 20세기에 시작된 2차 산업혁명에는 독일과 미국이 선두에 위치하면서 식민지 추세는 전 세계로 더 넓게 확산되었다.

아시아에서는 1854년에 미국의 개항압박으로 일본이 쇄국의 문을 열고 서구의 1,2차 산업혁명을 받아들이자 열강의 대열에 들어서면서 아시아의 평화는 무질서하게 되고 전쟁터로 변해 버렸다. 근대화에 늦어진 조선과 대한제국의 운명은 국력의 차이로 열강의 도마 위에 결정되고 말았다. 즉 미․일의 <가쓰라-태프드 비밀협상>과 미․일․러의 <포츠머스 조약>이 이루어졌다. 또한 영․일과 러․일의 <군사동맹> 등으로 이미 한국민의 의사와 관계없이 피동적으로 결정되어 버린 것이었다.
그러나 1918년 파리강화회의에서 발표된 미국의 우드로 윌슨 대통령이 주창한 <민족자결의 원칙>은 희망의 서곡으로 국내에서 1919년 3.1운동이 전개되었다. 또한 중국 상하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1919년 4월 13일에 수립되어 비로소 대한독립 운동이 전개되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 민족은 망국(亡國)과 흥국(興國)이라는 상반된 교훈을 뼈저리게 경험했다. 1910.8.22에 조인된 한일병합조약(韓日倂合條約)부터 1945년에 해방되어 독립을 이루기까지 36년간 온 국민은 독립운동과 국권회복에 갖은 고난을 겪었다.

1950년의 한국전쟁(Korean War)으로 비참한 상황에서 출발하였지만 '한강의 기적'이라는 눈부신 경제 발전을 이룩하고 특히 1990년대부터 인터넷 등 제3차 산업혁명의 물결을 급속히 받아들여 세계적인 경제 강국으로 발전하였다. 그동안 많은 고난을 이겨내어 이제는 명실 공히 세계적으로 지도적인 위치에 서 있게 된 것이다. 2015년 1인당 구매력 기준으로 국민총소득(GDP)은 36,601달러이며 세계은행에서 고소득 국가로 분류되었다. 2015년 명목 국내총생산(GDP)은 1조 4,350억 달러로 세계 11위 규모이다.

저자는 앞으로 인류에는 한발 더 나아가「제4의 산업혁명」이 도사리고 있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한국은 이제 제2의 도약기회를 맞이하고 있다. 첫째는 제4차 산업혁명에서 선두를 차지하는 사명과 남북통일후의 시너지 효과를 거양하는 일이다.
따라서 제4의 산업혁명의 승패는 불과 2020년까지 결승점이 쳐져 있는 과업이다. 구체적으로 정보통신기술(ICT)을 기반으로 실제와 가상을 통합한 사물을 지능기술로 자동 제어하는 산업혁신이다. 21세기의 신기술 즉 인공지능(AI), 모바일, 사물인터넷(IoT), 드론, 무인자동차, 3차원(3D) 프린터 등 세계 경제의 신성장 동력이 차츰 국가의 흥망을 좌우하는 요인이 될 것이다.

장차의 식민지는 과거처럼 무기를 가지고 침략을 하는 것이 아니라 시공을 넘나들면서 현대의 인류에게 필수적으로 필요한 이러한 신기술이 지배하는 형국이 된 것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하여 뼈아픈 역사를 오늘의 시각에서 되새기는 계기가 되고 모두 새로운 각오로 제2의 흥국을 이루었으면 기대한다. 장차 한국의 비약적인 발전에 대한 기대는 위와 같이 ICT기반기술을 통한 제4차 산업혁명의 새로운 흥국(興國)과 장차 남북통일(南北統一)이라는 두 가지 요소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번에 828쪽에 달하는 전자책(e-Book) 발간은 종이책 출판에 앞서 먼저 국내에서 많은 사람들이 보도록 가격을 낮추어 보급가로 발간하고 있다. 저자는 외국에 거주하는 한국의 교포들과 후세들이 볼 수 있도록 아마존(Amazon)등에서 한글판으로 출판을 예정하고 있다.


저자 프로필

조영규

  • 국적 대한민국
  • 학력 서울대학교 경영대학 경영자과정
  • 경력 한국미술협회 회원
    한국전업미술가협회 회원
    안양미술협회 회원
    가톨릭미술가회 회원
    관악현대미술대전 초대작가
  • 링크 공식 사이트블로그

2015.01.20. 업데이트 작가 프로필 수정 요청


저자 소개

[저자소개]
저자는 서양화가로 대학에서 영어영문학과를 졸업, 홍익대 미술디자인 교육원 서양화 실기과정 및 서울대 경영대학 고급경영자과정 수료, 서양화 개인전 (초.풍전) 10회 및 연합전 190회 개최, 뉴욕 국제인물화 공모전 입상 등, 현재 개인 스튜디오에서 전업화가로 활동 중.
<저서 20권>
『모네와 지베르니아이츠 (전2권, 체험판 2권)』, 『The Ten-미국 인상주의 거장들 (전2권, 체험판 2권)』, 『모네와 가이 로즈』, 『미국의 인상주의 걸작선 [①풍경화, ②바다풍경화, ③인물화, ④초상화 및 누드화> ⑤꽃과 정물화] (전5권)』, 『15c-20c 거장화가 100명, 마음의 우주,어머니』『15c-20c 거장화가 100명, 생각의 우주,독서』『모네와 114명의 지베르니아이츠, 합권』『The Ten-미국 인상주의 거장들, 합권』『서양화가 조영규, 화집과 미술도서』 『대한독립 50인』
-2014년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우수콘텐츠 전자책》 3권 선정
<논문 5편>
[지방자치제 본격실시에 따른 전원확보 전략과 해결방안-서울대학교 경영대학, 1995년] 등
<현재> 한국미술협회, 한국전업미술가협회, 한국초상회화협회, 가톨릭미술가회, 경기미술협회, 안양미술협회 회원, 관악현대미술대전 초대작가, 아트월드 편집자

목차

[목차]
1 표지
2 속표지
3 판권
4 저자
5 Contents
7 Prologue
44 2010년 대한독립전
45 전시회 축사
46 작가노트
48 안중근의사 기념관 전시
49 평촌아트홀 전시
51 조선일보 보도
52 대한독립 50인
58 <임정, 임시의정원 요원>
59 박은식
73 서재필
90 이시영
106 이동영
118 양기탁
129 이승만
172 김구
192 안창호
215 김창숙
228 신채호
242 김규식
259 조만식
267 여운형
274 조용은
294 안재홍
309 신익희
322 <독립군, 의병, 의사, 열사>
324 최익현
334 이강연
346 강우규
359 이회영
369 홍범도
384 남자현
391 김동삼
405 안중근
434 이재명
449 김좌진
465 오동진
471 박재혁
485 백정기
497 이봉창
506 이범석
516 유관순
538 윤봉길
549 박차정
566 <대한제국의 독립운동가>
568 (고종황제)
589 이상재
600 이준
616 만영환
631 <종교계의 독립운동가>
632 손병희
642 오세창
656 한용운
668 김마리아
681 함석헌
687 이승훈
703 <독립정신을 일깨운 문인>
705 심훈
717 이원록
726 윤동주
741 <대한독립을 도운 외국인>
743 호머 헐버트
756 손문(쑨원)
768 장개석(장째스)
776 프랭크 스코필드
795 <Epilogue>
804 참고문헌
808 한국근대외교사 일람
811 대한제국 사건 및 단체
827 아트월드 출판사 책방
828 뒤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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