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80년대. 돌이켜 보면 그 때에는 박봉이었고, 휴일도 없이 근무할 때가 많았지만 그래도 공무원을 선택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뿌리 깊은 도시, 대구시의 공무원으로 시민에게 봉사할 수 있었다는 점과 맡은 바 업무가 숲을 보호하고 나무를 심는 산림공무원이었다는 것에 대해서도 큰 자부심을 느낀다.
특히, 대구를 세계적인 숲의 도시로 만들고자 했던 문희갑 시장을 보좌하여 나무 심기에 열정을 펼쳤던 일과 수목원을 조성하는 일에 참여할 수 있었던 행운은 잊을 수 없다. 그러나 도시 한 모퉁이나 마을 어귀를 지키고 있는 크고 오래된 나무 즉 노거수(老巨樹)가 도로건설이나 택지개발 등으로 하루아침에 베어 없어지는 것이 무척 안타까웠다. 온갖 병해충의 위협이나 태풍 등 재난에도 불구하고 굳건히 살아남은 오래된 나무는 그 자체가 귀중한 유전자원이기도 하지만 그가 살아온 세월만큼이나 많은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는 생명문화재이다.
그러나 시가지는 산림관련법이 제한적으로 적용되어 법적(法的)으로 보호할 수 있는 장치가 미흡했다. 이런 고민을 안고 있던 중 우연히 본 한 신문의 해외 토픽이 나를 흥분시켰다.
태국의 열대우림이 일부 주민들의 무분별한 도벌로 망가지자 골치를 앓고 있던 정부가 각 나무마다 스님의 이름을 붙였더니 베는 사람이 없어져 보존할 수 있었다는 기사였다. 불교국가인 만큼 아무리 돈에 눈이 먼 사람이라도 스님의 명예를 더럽혀가면서까지 도벌을 감행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국교가 없는 우리가 취할 방법이었다. 고민을 거듭한 끝에 떠오른 생각이 노거수와 관련이 있는 특정 인물을 찾아 나무에 그 사람의 이름을 붙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어 대구가 낳은 천재화가 이인성의 그림에 등장하는 계산성당의 감나무를 ‘이인성 나무’라고 하여 그가 우리나라 미술계에서 우뚝한 인물이라는 것을 팻말에 새기고, 달성공원의 큰 회화나무를 ‘서침 나무’라고 하여 사유지(私有地)였던 달성을 나라가 필요로 하자 기꺼이 헌납한 사실을 알리면 애향심이 두터워지고 나무를 보는 태도도 달라져 대구라는 공동체가 훨씬 풍요로운 사회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2003년 전국에서 처음 시도된 이 작업은 당시 ㅇㅇ일보가 1면 기사로 보도할 만큼 반응이 좋았다.
그러나 필자가 퇴직한 이후 더 이상 확대되지 않다가 2010년 아동문학가 심후섭 씨에 의해 기존의 24그루에 21그루를 더해 총 45그루의 나무를 ‘대구의 인물과 나무’라는 제목으로 보강하는데 그쳤다.
최근 스토리텔링이 보편화되고, 각 지방자치단체가 골목투어, 올레길, 자락길 등을 경쟁적으로 조성하면서 문화관광해설사나 숲해설가를 요소요소에 배치하여 문화재에 대한 해설 이외에 나무이야기까지 곁들이니 내용이 더욱 풍성해지면서 시민들의 반응도 좋아졌다.
그러나 이런 의미 있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빠진 나무가 있었다. 기왕이면 한 그루라도 더 발굴하여 우리 모두가 사표로 삼을 만한 관련 인물과 주변에 얽힌 이야기를 추가하여 지역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 생명문화재인 노거수도 보존하고자 다시 시도하게 된 것이 이 책이다.
마을 어귀나 골목의 끝자락 또는 한 모퉁이에 서 있는 늙은 나무는 비록 말은 못하지만 대구의 역사와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많은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다.
이 책에 소개하는 인물의 면면도 다양하다. 16~17세기 대구의 문풍을 진작시킨 한강 정구와 계동 전경창을 비롯해 낙재 서산원, 모당 손처눌 등 대구에 성리학을 보급한 1세대 인물은 물론 조선의 마지막 황제 순종과 박정희 전 대통령 내외분과 3.1독립운동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인 이갑성 등 여러 분이고. 이외에도 ‘뽕도 따고 임도 보고’의 발상지가 우리 대구의 뽕나무골목이라는 사실과 낙동강 제일의 경승지 화원동산이 배성(盃城)이 아니고 상화대(賞花臺)이며, 대구의 향반인 인천 이씨와 능성 구씨, 중화 양씨 등이 언제 대구에 뿌리를 내렸는지 등 다채로운 이야깃거리를 발굴하려고 노력했다.
또한 독립운동가 서재필 박사는 비록 태어난 곳은 전라도이나 윗대가 대구사람이며,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몸소 실천한 지리산 운조루의 주인 류이주는 대구에서 태어나 그곳으로 이주한 분이고, 나주의 배진은 500여 년 전 대구에서 그곳으로 거처를 옮겨 많은 인물을 배출한 달성 배씨의 후손이라는 것을 알려 이 시대의 난제인 지역감정 해소에 이바지하고자 하는 뜻도 담아보았다.
특히, 동부교육지원청 전정해님으로부터 우리나라 최초의 여류 비행사 박경원 여사의 학적부를 확보하여 그녀가 1901년생<대구의 향기, 1982, 대구직할시>이 아니고 1897년생이라는 것을 새로 알아냈다.
소개된 인물은 모두 50명으로 그 중에는 미국인 2명, 일본인 1명도 포함되었으며, 수종은 느티나무 등 모두 24종이다.
비록 전문성이 떨어지고 내용이 소략(疏略)하지만 이 책을 통해 대구를 조금이라도 더 알고 대구 시민임을 자랑스럽게 여기게 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또한 무심한 듯 서 있는 나무이지만 많은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는 노거수가 잘 보전되었으면 한다.
대구는 인재의 보고라고 할 만큼 훌륭한 인물이 많이 배출된 곳이다. 그러나 연관지을만한 나무가 없어 소개 못한 분이 많아 아쉽다. 훗날 기회가 되면 다른 방법으로 소개해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