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내 돈 갖고, 나는 네 몸 갖고.
그의 은밀한 제안은 매력적이었다.
속았다는 말 밖에 할 수 없었다.
소속사 대표의 지시로 참석한 파티는 난교의 현장이었다.
태초의 모습으로 돌아간 열 명의 남녀가 어지럽게 뒤엉켜 있는 그곳에서 도망치자, 훼방이 시작되었다.
일이 끊기고, 돈이 바닥나고, 갈 곳마저 사라졌다.
더는 물러설 수 없을 정도로 내몰린 혜윤에게 그는 은밀한 제안을 보내오는데…….
“너는 내 돈 갖고, 나는 네 몸 갖고.”
이런 조건이라면 응할 여자가……. 아니. 남자라도 응했을텐데, 싫다는 사람에게 굳이 이런 제안을 하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의 제안을 곰곰이 생각하던 혜윤은 하나의 의문에 도달했다.
왜 하필 나일까.
#스폰서, #내 돈, #네 몸, #짐승의 눈빛
[미리보기]
몸을 더듬는 손길이 부드러웠다. 혈관을 따라 가느다란 목선을 어루만지던 손가락이 움푹 팬 쇄골에 손가락을 넣어 깊이를 가늠하는 듯했다. 이내 벌린 다섯 손가락은 둥근 어깨를 가볍게 움켜쥐었고 그가 뱉은 숨이 피부에 끈적하게 달라붙었다.
내내 비누 냄새가 났다.
느릿하게 뜬 혜윤의 눈이 어둠 속에서 빛났다.
“기다리랬잖아.”
그가 가볍게 타박했다. 하지만 그의 손이 멈추는 일은 없었다.
“안 오시는 줄 알고…….”
혜윤이 미간을 찌푸렸지만, 그의 손은 어정쩡하게 걸쳐져 있던 혜윤의 옷을 툭툭 벗기며 말을 이었다.
“벗기는 거 귀찮아. 앞으로는 벗고 자. 언제 와도 할 수 있게.”
푹신한 이불에 맨몸이 닿는 것은 이상한 기분이었다. 그런데 이제부터는 매일 벗고 자야 한다니……. 혜윤은 팔을 굽혀 가슴과 아래를 가리며 꿈틀거렸다.
“치워.”
그의 한마디에, 잃었던 도덕성이 다시 돌아왔었음을 깨달았다. 배부르고 등 따시니, 그와의 계약을 잠시 망각하고 있던 모양이었다.
그의 돈을 받고, 몸을 주는 것. 그것이 계약이었다. 그는 이미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이행했으니, 혜윤 또한 몸에 대한 권리를 포기해야 했다.
느릿하게 손을 치운 혜윤은 자신의 눈을 가렸다. 그것이 수치스러운 감정을 숨길 수 있다는 듯이.
다행히도 그는 그것에 대해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차기우는 그저 완연하게 드러난 나신을 감상할 뿐이었다.
커다란 손바닥이 밋밋한 배를 쓸어 올렸다. 차가운 손길에 흠칫 몸을 떨자, 그는 재미있다는 듯 큭큭 웃었다.
하프를 켜듯, 그의 손가락이 혜윤의 갈비뼈를 쓸었다. 툭툭 걸리는 뼈마디에 차기우는 인상을 찌푸렸다.
“떡 칠 때, 존나 아프겠네.”
화대라는 말이 천박하다고 했던 사람은 어디로 갔는지……. 그는 천박한 말을 잘도 했다.
스으윽. 그의 두꺼운 손바닥이 피부를 쓸어 올리는 소리가 났다. 손이 어찌나 크던지, 혜윤은 그가 힘만 주면 갈비뼈 전체가 부러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이윽고 그의 손이 가슴에 도착하자, 더는 쓸데없는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신기하네. 여기만 살이 있어.”
가슴을 가볍게 어루만지던 손가락이 떨어져 나갔다. 입술이 떨어지는 젖은 소리가 나더니, 그의 숨결이 가슴팍에 달라붙는 것이 느껴지던 순간이었다.
“읏!”
고깃덩이를 씹듯, 그는 혜윤의 가슴을 깨물었다. 놀란 혜윤이 물고기처럼 파닥대자, 그는 혜윤의 어깨를 짓누르며 으르렁거렸다.
“아, 아파서…….”
변명하듯 그를 달래자, 깨문 잇자국을 따라 그의 혀가 스쳐 지나갔다. 개가 상처를 핥듯이 집요한 혀 놀림이었다.
고통은 차츰 사라졌다. 서늘한 공기에 노출된 축축하게 젖은 피부에 이상한 감각이 몰려들었다. 찌릿찌릿하고, 간지러운…….
그의 혀끝이 부풀어 오른 젖꼭지를 톡, 건드렸다.
“으응…….”
저도 모르게 신음 소리를 낸 혜윤은 놀란 듯 입을 꾹 다물자, 픽 웃는 소리가 났다.
“악!”
살점이 씹히는 느낌이 선명했다. 그는 잔뜩 부풀어 오른 젖꼭지를 지근지근 깨물기 시작했다. 하지만 밀어내지도 못한 채, 혜윤은 발만 동동 구를 뿐이었다.
“아, 아파……. 흐으…….”
그사이, 그의 손가락이 혜윤의 몸을 꿰뚫었다.
이질감은 고통 속에 파묻혀, 존재감이 없었다. 기우는 더욱 집요하게 이를 세우며, 손가락을 깊이 밀어 넣었다. 겨우 하나 넣었을 뿐인데 빡빡하기만 했다.
“더럽게 늦게 젖네…….”
그의 말을 듣고 나서야, 혜윤은 그의 손가락을 눈치챘다. 놀란 몸이 그의 손가락을 물어뜯었다.
“순진하게 생겨서, 씹을 줄도 알고.”
그는 큭큭 웃으며 손가락을 빼냈다.
무언가 많이 나온 것은 아니었지만, 손가락은 젖어 있었다. 그것을 내려다보던 기우는 그것을 혜윤의 입가에 가져다 댔다.
“빨아.”
빨라고? 이걸? 지금 몸에 들어갔다 나온 걸 빨라는 거야? 경악한 입이 벌어졌다.
“우웁…….”
벌어진 입술 새로, 손가락이 들어왔다. 느껴 본 적 없는 비릿한 맛에, 혜윤은 몸서리를 치며 밀어냈다.
“더, 더럽잖아요!”
이제껏 여유롭게 혜윤을 달구기 시작했던 그의 얼굴은 한순간에 험악해졌다.
“더러워?”
맹세코, 자신의 체액을 먹는 것이 더럽다고 한 것뿐이었다.
그런데, 왜 저런 반응을 보이는지……. 혜윤은 가슴 한복판이 시리도록 덜덜 떨리는 것을 느끼며 슬금슬금 뒤로 물러났다.
“지금 더럽다고 했어? 그래?”
“그게……. 악!”
커다란 손이 우악스럽게 머리를 잡아 올렸다. 갑자기 들린 머리 아래로, 가느다란 목이 달랑거리는 것 같았다. 한 손은 붙잡힌 머리를, 한 손은 뽑힐 듯한 목을 감싸 쥐었다. 놀란 발이 버둥거리자, 그는 혜윤을 침대 헤드로 밀어 넣고는 움직이지 못하도록 제압했다.
“더러우면 어쩔 건데.”
철커덕. 벨트가 열리고, 지퍼를 내리는 소리가 날카로웠다. 이윽고 혜윤의 눈앞에는 그의 것이 있었다.
“네가 물고 빨아야 할 건데.”
검은 수풀 사이의 것은 반쯤 고개를 들고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