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디킨스, 허먼 멜빌, 도스토예프스키
대문호들에게 심대한 영향을 주었고,
카프카, 버지니아 울프,보르헤스, 마르케스 등
20세기 현대 소설가들에게 절대적 영향을 끼쳐 온 거작.
연극, 오페라, 발레 등 수많은 매체의 예술가들에게
탁월한 영감의 원천이 되어 온 소설!
고유명사가 된 문학작품 속의 캐릭터
세르반테스는 당시 스페인에서 유행하던 통속적인 기사소설을 응징하기 위해 이 [돈끼호떼]를 썼다. 반종교개혁운동과 합스부르크 절대왕조의 통치하에 있던 스페인에서는 자유롭게 작품을 쓸 수 없었기 때문에, 그는 기사소설이라는 틀 속에 돈끼호떼의 광기를 이용하는 형태로 교묘하게 당시 사회를 비판하면서 유토피아를 꿈꾸었다. 종교와 연애의 자유, 계층간의 평등, 정의로운 재판 등을 꿈꾸었던 세르반테스는 이를 달성하기 위해 [돈끼호떼]를 통해 끊임없는 모험을 받았는데, 당시는 유쾌한 돈끼호떼와 산초 판사의 캐릭터와 흥미로운 스토리라인이 주효했다. 그 후 18세기에는 그 진가가 인정되면서 언어예술의 본보기로 꼽히게 되었고, 19세기 낭만주의 시대가 되자 [돈끼호떼]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불붙기 시작했다.
철학자, 역사가, 사상가, 비평가 그리고 정치가 등이 이 소설의 복합적인 메시지를 탐구하기 위한 시도를 거듭하면서 돈끼호떼와 산초 판사는 인간의 내면에 공존하는 이상주의와 현실주의의 화신으로 묘사되었다.
행동형 인간 돈끼호떼
세계 소설사상 최초로 문학속의 ‘인간’을 창조해냈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돈끼호떼는 인간의 본질을 가장 완전하고 날카롭게 표현한 인물이다. 러시아 소설가 이반 투르게네프는 〈햄릿과 돈끼호떼〉라는 에세이에서, 사색과 회의에 몰두하는 우유부단한 ‘사색형 인간 햄릿’과, 자신의 이상을 향해 무모하지만 용기있게 나아가는 ‘행동형 인간 돈끼호떼’로 인간의 대표적 성향을 이분했고, 영문학자 이언 와트는 [근대 개인주의 사회]라는 책에서 서양 근대문학사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캐릭터로 파우스트, 돈 후안, 로빈슨 크루소와 함께 돈끼호떼를 꼽기도 했다.
이 [돈끼호떼]에서는 이상주의적 인물 돈끼호떼와 현실주의적 인물 산초 판사를 통해, 이상과 현실의 간극에서 고뇌하는 인간의 내면을 냉철하고 심도있게 묘사했다. 21세기의 먼 타국에서조차 고유명사처럼 쓰이고 있는 돈끼호떼는 독자들 나름대로의 잣대로 인해 현실감각 없는 인물로 인용되기도 하지만, 시대가 바뀌면서 주위의 시선과 반복되는 실패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이상을 향해 뜻을 굽히지 않고 다가서는 인물로 재탄생되고 있다.
소설속의 소설, 메타소설
[돈끼호떼]는 그 당시까지의 문학을 총결산하고 더 나아가서 탈(脫)구축하여 이룩된 소설속의 소설, 즉 메타소설이다. 표상된 허구세계와 현실의 세계를 구별하지 못하고 외골수로 살며 의문을 품을 줄 몰랐던 근대인의 캐리캐처가 바로 돈끼호떼이다. 이 작품의 완전한 제목은 「기상천외한 기사 돈끼호떼 데 라만차」이다.
퇴역기사라면 으레 창일랑 시렁위에 얹어 두고 낡아빠진 방패에 비루먹은 망아지, 그리고 재빠른 사냥개를 가지게 마련이다. 이러한 기사를 그리는 어느 지주 영감이 기사 이야기만 읽는 중에 정신 이상을 일으키게 된다. 그는 자신도 기사가 되어 모험길에 올라 공명을 세우겠다고 마음먹게 되는 것이다. 그는 끝내 조상들이 쓰던 낡은 갑옷을 입고 말라빠진 말에 로시난테라고 이름을 붙이고, 자기 자신도 돈끼호떼라 이름을 짓는다. 그리고 그는 어느 날 새벽에 로시난테를 타고 무사 수업의 길에 오른다.
그가 들 복판에 있는 여관집에 도착하자 그 여관을 성으로 알고, 우물에 물을 길러 온 말꾼을 무법자라고 생각하고 베어버리는 실수를 범한다. 출발부터 실수를 저지른 그는 다시 준비를 갖추고 이웃에 사는 뚱보 산초 판사를 구슬러 모험이 성공하면 성주로 삼겠다고 약속하고 다시 무사의 수업에 오른다. 그러나 풍차를 보고도 ‘거인의 변신’이라고 여겨 돌격을 하다가 회전하는 풍차에 말려 내동댕이쳐지기도 하는 등 거듭되는 실수에 집으로 강제 연행된다. 그리고 또다시 수업길에 나서는 돈끼호떼.
그는 산초에게 말한다. “산쵸여, 자유라는 것은 하늘이 인간에게 준 가장 귀한 선물중의 하나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가령 대지 속에 묻혀 있는 보물이라도 이것과는 비교할 수 없게 마련이다.”
이 작품에서는 자기 이상에 충실하려는 돈끼호떼와 오감으로 확인되는 것만 믿으려고 하는 우직한 판사의 대조적인 인물설정을 보여주고 있다. 이와 같이 인물의 창조나 성격변화에 중점을 두고 있는 점에서, 이 소설은 근대소설의 효시로 일컬어지고 있다.
돈끼호떼의 인기와 위작본
작자의 이름은 몰라도, 그리고 그것이 어느 때 어느 나라에서 창작되었다는 예비지식이 없어도 [돈끼호떼]라고 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실제로 [돈끼호떼]전문을 다 읽어 본 사람은 한국뿐만 아니라 본국인 스페인에서도 그야말로 극소수에 불과할 것이다. 그럼에도 어린 시절 그림책이나 동화로 읽었던 돈끼호떼 이야기에 대한 희미한 기억만으로, 저마다 가슴속의 돈끼호떼에 대해 여러 가지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이것이 [돈끼호떼]처럼 시대나 국경을 초월해 인류의 서(書)라고도 부를 수 있는 작품의 숙명이다.
[돈끼호떼]는 1604년 9월에 출판허가를 얻어 1605년 2월에 출판되었다. 그러나 세르반테스가 언제부터 쓰기 시작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리고 [돈끼호떼 I]은 출판 전에 이미 일부 사람들 사이에서는 원고상태에서 읽힌 것 같다고 알려지고 있다. 당시 극단의 원로는 이 작품을 몹시 악평했다. 그러나 책이 출판되자마자 그런 악의에도 불구하고 단번에 세상의 인기를 독차지하여 그 해만도 7종이 출판되고, 세르반테스가 생존한 11년 동안에 13종의 판을 거듭했다. 그리고 1612년에는 토마스 셀톤의 영어 번역이, 1614년에는 세자로 우당의 프랑스 어 역이 나타날 정도로, 그야말로 대 성공을 거두었던 것이다.
[돈끼호떼 II]는 [돈끼호떼 I]이 출판되고 나서 11년 째 되는 해로 세르반테스가 죽기 반년 전인 1616년에 출판되었다. 세르반테스가 이 ‘후편’의 제 59장을 쓰고 있던 1614년에 살라고사 시에서 알론소 페르난데스 데 아베야네다라는 필명으로, 가짜의 [재치넘치는 시골 귀족 돈끼호떼 데 라만차 II]가 출판되었다. 이 이름이 누구의 익명이었는지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알수 없다. 하지만, 16, 17세기에는 작품의 후편을 제멋대로 쓰는 일은 그다지 비난받을 만한 행위가 아니었기에, 그런 일이 종종 벌어지곤 하였다.
그러나 세르반테스는 위작본이 출판된 것을 알게 되자 주인공 돈끼호떼의 행방을 갑자기 바꾼다든가 59장 이하의 완결을 서두른다거나, 이따금 작품속에서 그 울분을 토해버리곤 했다. 가짜 [돈끼호떼 II]의 악의에 찬 야유에 대한 그의 불만의 표현이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이 위작이 나오지 않았더라면 죽음을 앞둔 세르반테스가 [돈끼호떼 II]를 완성하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돈끼호떼는 오늘날 고전중의 고전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작품으로 인정받으면서 많은 독자들을 즐겁게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