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들이 기다리는 곳으로 나아가자
주사위는 던져졌다!
고대 세계를 뒤흔든 불멸의 영웅 카이사르
자신을 가로막는 운명에 맞서 과감히 칼을 겨누다!
로마 비극의 영웅 카이사르!
고대 로마를 대표하는 뛰어난 군인이자 정치가, 문필가, 웅변가인 카이사르. 그는 장군으로서는 실전에 뛰어난 능력을 보였으며, 정치가로서는 민심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과감한 사회개혁을 추진한 민중파 정치가였다. 그에 대한 평가는 왕정(王政)을 궁극적인 목표로 삼은 공화정의 파괴자라는 설과, 제정(帝政)의 기틀을 다진 인물이라는 설로 대립된다. 그의 저서 「갈리아전기」, 「내전기」는 간결한 문체, 정확한 현세 파악이라는 점에서 라틴문학의 대표작으로 손꼽힌다. 고대 로마를 뒤흔든 폭풍과도 같은 카이사르의 삶은 풍부한 인간성과 마지막의 비극성 등 전체적인 인간상이 후대에 많은 관심을 끌어, 셰익스피어를 비롯한 여러 문학가?예술가들이 여러 각도에서 그의 삶을 재조명하였다.
패권을 향한 야망, 그 위대한 첫 발을 내딛다!
「갈리아전기」는 카이사르가 기원전 58~51년에 걸쳐 갈리아를 정벌하면서 자신이 이룬 업적에 대해 객관적으로 서술한 책이다. 제7권까지는 카이사르 자신이 쓴 것이고, 제8권은 그가 죽은 후 부하 히르티우스가 집필하였다.
제1권은 기원전 58년의 전쟁(헬베티 족과의 전쟁, 게르마니 인 아리오비스투스와의 전쟁)을, 제2권은 기원전 57년의 전쟁(벨가이 인과의 전쟁)을, 제3권은 기원전 57∼56년의 전쟁(알프스의 여러 부족, 해안의 여러 부족, 아퀴타니 인과의 전쟁)을, 제4권은 기원전 55년의 게르만 여러 부족과의 전쟁을, 제5권은 기원전 54년의 브리타니아 원정, 게르마니 인의 여러 부족, 벨가이 인과의 2차 싸움을, 제6권은 기원전 53년에 이어진 벨가이 인과의 싸움, 갈리아의 당파?계급?신관?신?습속, 게르마니 인의 사회?습속에 대한 설명을, 제7권은 기원전 52년의 갈리 인과의 전면적인 싸움을 기술하였다. 묘사는 간결?웅혼하며, 문학작품으로서도 우수할 뿐만 아니라, 갈리 인?게르마니 인의 역사연구에 귀중한 사료가 된다.
당대의 문장가 키케로는 카이사르의 정적으로서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었다. 그런 그조차도 「갈리아 전기」를 읽고, 그 문장에 압도되어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이것은 이른바 옷을 다 벗어버린 순수한 알몸뚱이 같은 문장이다. 카이사르로서는 역사가를 위해 자료를 준비한 것이지만, 여기에 불필요한 장식을 집어넣고 만족하는 부류라면 몰라도, 온당한 사람이라면 아마 아무도 여기에 손질을 가하려는 생각은 하지 않을 것이다.”
반역자 카이사르, 운명의 주사위를 던지다!
기원전 50년, 갈리아전쟁 끝 무렵 로마의 상황은 카이사르에게 크게 불리했다.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 한때는 동지였던 두 영웅의 대립은 피할 수 없는 일이 되어갔다.
점점 커져가는 내전의 소용돌이 속에서, 원로원은 카이사르파와 폼페이우스파로 극명하게 갈렸다. 카이사르 반대파인 집정관들은 그래도 폼페이우스가 로마를 위해 더 큰 도움이 될 인물이라 판단하고 그의 편을 들었다. 기원전 50년 말 폼페이우스는 집정관 마르켈루스의 청을 승낙하여, 로마공화정을 위협하는 카이사르에게서 로마를 지키는 방패 역할을 자청한다. 원로원 최종권고에 따라 결국 카이사르는 반역자로 몰릴 위기에 처한다.「내전기」는 바로 이 시점에서 시작된다.
카이사르 또한 자부심 강한 진정한 로마 인, 자신의 조국으로 진격하는 것에 대해 한순간 고민한다. 반란의 주역이 될 것이냐, 한 가닥 희망을 갖고 평화적 해결을 도모하느냐. 그러나 시대의 물결은 어쩔 수 없이 단 한 가지 길만을 그에게 열어주고 있었다. 선택의 여지는 없다!
기원전 49년 1월 12일 그는 결국 루비콘 강을 건넌다.
“이 강을 건너면 세상에 불행이 닥쳐오고, 건너지 않으면 내가 파멸한다. 신들이 기다리는 곳으로 나아가자. 주사위는 던져졌다!”
「내전기」는 기원전 49년 1월 12일 카이사르가 루비콘 강을 건너 원로원과 폼페이우스에게 싸움을 선언한 데서부터, 기원전 48년 아프리카 알렉산드리아전쟁까지의 내전을 기술한 것이다. 왜 조국에 칼을 겨눠야 했는지, 그리고 어떤 경과로 로마의 패권을 잡게 되는지를 차분한 문체로 서술한다.
「내전기」는 모두 3권으로 되어 있는데, 카이사르가 암살되는 바람에 미완성으로 남았다. 이 책의 자료는 카이사르군대 사령부 기록에 바탕을 둔 것이며, 전체적으로 신뢰성이 높아 공화정 말기의 역사 연구에 중요한 사서이다.
카이사르는 왜 이 책을 남겼나!
카이사르가 「갈리아전기」를 쓴 까닭은 다음과 같다. 먼저, 자신이 이룩한 갈리아 원정이라는 로마 역사상 최대의 업적이 역사가에 의해 후세에 정확히 전해지도록, 그 기초자료를 남기고자 했다. 그런 의도에서 자기 업적을 객관적으로 기술했다. 또 로마 인들에게 새삼 자신의 빛나는 업적을 널리 알려 민심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고, 그럼으로써 귀국 뒤 정쟁을 유리하게 이끌려는 의도도 있었다. 원로원의 허가 없이 갈리아 전쟁을 시작한 나름의 까닭을 드러내거나, 기원전 49년 집정관 선거에 출마하기 위한 자기선전의 의도가 엿보이기도 한다. 말하자면 당시 로마 인들을 의식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기록집’이라는 제명을 붙인 「내전기」에도, 자기가 왜 폼페이우스와 원로원에 칼을 겨누게 되었는지에 대해 변명과 선전을 하려는 의도가 명백 절실하고 진실하게 드러난다.
카이사르는 동족끼리 칼을 겨누는 내전만큼은 어떻게든 막으려고 마지막까지 평화협상을 추진하며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폼페이우스와 원로원이 원한 것은 단 하나, 카이사르의 파멸뿐이었다. 소수 귀족에 의한 로마 지배의 꿈을 버리지 않는 원로원, 그 고집과 이기주의는 극에 달하여, 카이사르의 빛나는 공적과 그의 인기를 시기하며 그를 높은 자리에서 끌어내리려고만 했다. 카이사르는 이 모든 것을 밝혀, 내전의 원인이 모두 그들에게 있다고 고대 로마 세계에 널리 강하게 호소하고 싶었던 것이다. 이것이 그가 「내전기」를 쓰게 된 까닭이다.
문무 겸한 불세출 명장의 빛나는 유산!
역사상 가장 위대한 군인이자 정치가로 꼽히는 카이사르, 그의 「갈리아전기」와 「내전기」는 매우 높은 문학적 평가를 받는 전쟁서술기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장군으로 꼽히는 인물이 자신의 군사적 업적을 가감 없이 들려주는 책으로는 이 두 권이 유일하다 해도 무방하다. 두 책 모두 전쟁문학의 으뜸가는 고전으로 2천 년이 지난 지금도 전 세계에서 널리 읽히고 있다.
카이사르의 문체는, 자신의 입장을 설명하면서도 놀라울 정도로 차분하고 감정이 절제되어 있다.「내전기」에서 루비콘 강을 건너는 그 역사적 순간의 묘사도, 다른 고대역사서술가의 흥미로운 묘사와는 달리 무척이나 차분하고 담담하다. 그러면서도 따분하거나 단조롭지 않고 읽는 이의 흥미를 끌어당기는 면에서는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자신을 “카이사르는……”하며 객관성을 유지하려 한 점은 눈여겨 볼만하다.
전쟁터에서도 틈나는 대로 펜을 든 뛰어난 문필가였던 카이사라는 많은 저서와 글을 남긴 것으로 전해지지만, 격동의 세월이 지나며 대부분 사라지고 말았다. 이 두 책 「갈리아 전기」, 「내전기」만이 그의 뛰어난 문장을 느낄 수 있는 명 저서로서 전해 내려온다. 뛰어난 군인이면서 동시에 탁월한 실력을 갖춘 문인이었던 카이사르의 저술은, 후세에 운명과 과감히 맞선 위대한 영웅의 삶, 그리고 어지러운 현대사회의 모습과도 닮은 로마의 격동기를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역사적 자료로서 영원히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