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불문학 길에 10년을
프루스트「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번역에 바쳤다.
프랑스문화훈장수여 불문학박사 민희식
“프루스트는 최후의 위대한 모험가다.
이 위대한 소설 뒤에 무엇을 더 쓸 수 있겠는가? …
이 책을 손에서 내려놓는 순간, 한숨을 몰아쉴 수밖에 없다!”
버지니아 울프
제임스 조이스 《율리시즈》 마르셀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20세기 최고 2대걸작을 읽지 않고 문학을 논하지 말라!
T. S. 엘리엇
잃어버린 시간? 단지 잊혀져 있었을 뿐인 ‘시간’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파리의 한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난 주인공 ‘나’의 시선을 따라, ‘나’의 목소리로 이어져나간다. ‘말하는 이’는 상류 귀족의 화려한 사교생활, 정열적인 연애의 세계에 강한 동경을 품고서 몽상을 거듭하면서 그 속으로 조금씩 파고들어간다. 그러나 결국에는 그런 세계에 환멸하며 새로운 예술세계에 대한 계시를 얻는다. 여러 가치의 가장 높은 봉우리에 자리한 예술. 그 예술은 바로 인생의 표상이다. 그래서《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인식의 발전을 이루어가는 주인공의 인생이야기’인 동시에 ‘계시를 얻어 소설가가 된 주인공의 예술론’이라는 이중성을 갖게 된다. 어느 겨울날 홍차에 담근 마들렌을 입에 댄 순간, ‘나’는 그 맛의 기억과 함께 어린 시절 콩브레에서 살아온 모든 추억을 떠올린다. 그때부터 ‘나’는 ‘시간’에 싸움을 걸어 시간의 흐름을 거슬러서 참을성 있게 넘실거리는 강물을 더듬어 간다. 잊은 줄로만 알았던 ‘시간’은 생생하게 되살아나 ‘나’는 제1편 〈스완네 집 쪽으로〉에서 출발해, 제2편 〈꽃피는 아가씨들 그늘에〉 제3편 〈게르망트 쪽〉 제4편 〈소돔과 고모라〉 제5편 〈갇힌 여인〉 제6편 〈사라진 알베르틴〉을 지나 제7편〈되찾은 시간〉에 이르렀을 때 영원불멸의 세계가 있음을 깨닫게 되고, 인간존재와 예술가치를 밝혀낸다.
무의지적 기억의 연주 대교향곡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일상적인 소설과 달리 인간의 정열적 행동과는 별개로 전개되면서 어떤 기하학적인 짜임새를 이룬다. 작품의 배경이 되는 장소를 기본 축으로 이야기가 이어져나가고, 그 중심에는 늘 가장 안전하고 깊숙하며 내밀한 ‘방’이라는 공간이 존재한다. 게다가 이야기가 전개되는 직접적인 원인은 ‘산책’이나 ‘호기심’이라는, 지나치게 이야기적이지 않은 요소이다. 이야기는 장소의 이동에 따라 흘러간다. 한편 음악적 요소인 은유는 ‘비교되는 것’과 ‘비교하는 것’을 아름다운 문체로 잇는다. 시간의 우연성에서 감각이 해방되도록 두 감각의 핵심을 끌어내면서, 현실은 은유로 말미암아 여러 색채로 물들어가면서 변형된다. 여기다 문장 전체를 진실과 기억으로 엮고 있는 작가의 내적인 풍경은 아름다운 선율을 더한다. 수많은 등장인물들의 독특한 말씨에서 배어나는 유머는 단조로운 리듬이 아닌, 본디 함께할 수 없는 것들의 공존을 이루어낸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따로 또 같이 결정(結晶)을 이룬 하나의 상징이며 수많은 사물로 지어진 대성당이다. 이 성당 안에서 ‘나’의 삶 전체를 재구성하기 위해 음악ㆍ미술ㆍ문학ㆍ철학 등이 하나의 언어로 모아지는《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인물들이 저마다 풍부한 멜로디를 더하며 때론 불협화음을 일으키고 때론 아름다운 하모니를 들려준다. 그렇게 위대한 교향곡을 완성하는 것이다.
삶에 지친 인생이여 모두 오라!
프루스트의 인생에는 늘 고뇌가 따라다녔다. 심한 천식환자, 공상에 사로잡히는 신경증환자, 상류사회 살롱의 단골손님. 어머니의 죽음으로 충격을 받은 프루스트는 어둠 속에 틀어박혀 외톨이로 지내다가 문득 어린 시절의 낙원이 그리워져 자신의 지난날에 싸움을 걸고 초인적인 전투를 시작한다. 1908년에 작품을 쓰기 시작해 1918년 정서한 원고에 ‘끝’이라 써넣기까지 10년 남짓한 시간이 걸렸다. 그 뒤에도 타이프 원고와 교정쇄를 대대적으로 손보던 사이, 그는 완성을 보지 못한 채 1922년 세상을 떠난다. 이처럼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작품 안에 고스란히 담겨진 프루스트의 삶 자체만으로도 매우 흥미로운 역사를 가진다. 작가가 쓰면 쓸수록 미완이 되어가는 소설(기억이란 끝이 없으니까), 읽는 사람에 따라 변하고 영원히 생성되는(마찬가지로 독자의 시간의 길이와 깊이도 다르므로) 이 소설은, 영웅이 아닌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 속에 감춰진 진실을, 그 의미를 밝혀내려고 노력한다.
마르셀 프루스트-부재 동경 고뇌의 심미학!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오늘날 모든 소설의 진정한 ‘원작’으로 우뚝 서 있다. 무의식과 의식의 중간영역, 회상과 기억이라는 현상의 극한적인 추구, 자기반성에 관한 문학, 소설에 관한 소설, 역사가 깃든 자연의 매력, 미묘하고도 깊은 내적 풍경의 인상, 기하학적으로 고안한 소설구조 등은 오늘날 문학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다. 프루스트는 그야말로 ‘부재와 동경의 심미학’을 완성한 작가이다. 예술은 인생 안에서 가장 좋은 것을 겉으로 끄집어내는 도구라는 그의 관념은,《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통해 삶에 지친 독자들에게 커다란 위안을 줄 것이고, 인간 존재의 새로운 희망을 찾게 해줄 터이며, 또한 문학을 공부하는 이들에게 훌륭한 지침서가 될 것이다.
행복의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크로키-그 감동과 매력을 찾아서
프루스트가 그리는 소묘에는 한가로우나 시각을 어기는 법 없는 꼼꼼한 사람, 무심하면서도 준비성 있는 사람, 빈둥거리는 듯 하면서도 견실한 사람의 냄새가, 빨랫감의 냄새가, 아침 일찍 하루를 시작하는 이의 활기찬 냄새가 감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인간심리학 전체를 담고 있으며, 하나의 공간은 온갖 장소에 공통되고 인생의 갖가지 시기는 겹쳐진다. : “지금 다시 가로지르게 된 장소와 나 사이엔 비밀이 사라지고 없었다. 그 친밀함에서 나오는 모든 추억은 내가 알아채기도 전에 직접적으로, 유쾌하게, 터지듯이 되살아난다.” 그리고 말하는 이나 말해지는 이 모두 어떠한 비범함이나 격렬함을 지니고 있지 않으며, 어제와 별로 다르지 않은 오늘을 살고 있고, 마찬가지로 기대될 것 없는 내일을 기다리고 있다. : “사람은 보통 아버지의 성격, 어머니의 성격이라는 식으로 서로 다른 면을 갖고 있으며, 그것들은 비슷하기도 하고, 또 전혀 다르기도 하다. 하나의 측면을 지나면 다른 측면이 나타나는데, 이튿날이 되면 그 겹침의 방식이 반대가 된다.” “내 흥미를 끄는 것은 남들이 말하는 내용이 아니라, 그들의 성격이나 우스꽝스러움이 드러나는 말투였다. 내 탐구의 목적이 되어온 대상, 곧 이 존재와 저 존재 사이의 공통점이었다.” 우리는 이제껏 제대로 평가하지 못했던 ‘나’와 ‘내 삶’의 가치가 얼마나 대단한지를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통해 비로소 완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