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예술 작품, 값비싼 보석뿐 아니라 뭇 여인들의 마음까지 훔치는 낭만적인 모험가!
그래서 파리 시민들은 그를 이렇게 불렀다. ‘괴도 신사 루팡’.
추리소설의 클래식 <아르센 루팡 시리즈>를 현대적인 번역까지 더해 리디북스에서 만난다!
동생처럼 아끼는 부하 질베르와 어딘가 수상쩍은 부하 보슈레를 데리고 도브레크 하원의원의 집을 털기로 한 루팡. 시작부터 불안했던 빈집털이는 보슈레의 우발적인 살인으로 끝난다. 루팡은 탈출했으나, 두 부하는 체포된 상황!
둘을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루팡은 과거 운하 건설 입찰 비리에 연루된 고위공직자들의 비밀명단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비밀명단를 쥐고 있는 도브레크 하원의원은 루팡의 정체를 간파하고 오히려 공격해 오는데……
아르센 루팡 일생일대의 위기! 두뇌와 무력 모두 한 수 위인 적에게서 루팡은 승리할 수 있을까?
우웅…… 웅……
부엌에 들어서자 소리는 더욱 분명해졌다. 부엌에 들어서자 목에 칼이 꽂힌 끔찍한 시체가 다시 램프의 불빛에 드러났다. 질베르가 신음을 흘리며 고개를 뒤로 돌렸다. 레오나르의 입에서 흘러나온 피는 이미 검붉게 말라가고 있었다. 분명히 그는 죽었다. 하지만 웅웅거리는 소리의 근원지는 바로 그 시체였다.
“으…… 아……”
루팡이 없었다면 질베르는 당장에라도 꽁무니를 뺐을 것이다. 루팡은 침착하게 시체 근처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시체의 머리칼 주변에서 뭔가를 주워들었다.
“제기랄. 괜한 시간을 낭비했군.”
루팡이 찾은 것은 수화기였다. 수화기에서 나온 선은 벽에 고정돼있는 전화기까지 이어져있었다. 시신의 머리카락에 가려져 좀처럼 눈에 띄지 않은 것이었다. 루팡이 수화기를 귀에다 가져다댔다. 여러 사람이 불러대는 소리, 탄식, 아우성이 마구 뒤섞여 들려오기 시작했다.
“거기 아무도 없습니까? 더 이상 대답이 없습니다. 죽은 것 같아요! 여보세요! 말을 하세요! 경찰들은 아직 멀었습니까? 이 사람, 더 이상 말이……”
“윽……!”
큰일이었다. 루팡과 부하들이 물건을 옮기는 동안 레오나르는 몸부림을 쳤고 덕분에 느슨해진 한쪽 팔을 움직여 전화를 걸었던 것이다. 루팡이 첫 번째 배를 보내고 들었던 것은 레오나르가 외부에 도움을 청하던 소리임에 틀림없었다. 낭패였다. 경찰이 오고 있었다.
쾅! 쾅!
질베르가 자리에서 펄쩍 뛰었다. 누군가 별장 뒤쪽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경찰이야!”
“대, 대장. 저, 저도 좀……”
정신이 돌아온 모양인지 보슈레가 간신히 일어서 휘청거리고 있었다.
쾅! 쾅쾅!
다시 한 번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여전히 별장 뒤였다. 현관에는 아직 경찰이 없는 것 같았다. 문을 열고 달리면, 배까지 무사히 갈 수 있을까? 총알 세례를 피할 수 있을까? 루팡은 일단 현관문에 빗장을 걸었다.
“대장! 포위 됐어요…… 아…… 끝장이야……”
질베르가 우는 소리를 했다. 루팡은 천천히 숨을 고르며 생각을 가다듬었다.
“…… 따라오게.”
바깥에서는 이제 욕지거리와 함께 철컹거리는 쇳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문을 강제로 부수는 모양이었다. 셋은 일단 응접실 한복판, 질베르와 보슈레가 싸움을 벌인 장소에서 멈췄다.
“대장. 어쩔 생각이신지……”
보슈레가 총에 맞은 어깨가 아픈지 얼굴을 잔뜩 일그러뜨리며 말했다. 루팡은 대답 없이 응접실 한쪽의 유리창과 덧창을 조용히 밀어 올렸다. 그리고는 입을 열었다.
“사방에 경찰이 깔렸어. 도주는 불가능해. 그러니 시키는 대로 하게.”
“예…… 예?”
질베르가 얼빠진 소리를 냈다.
“여깁니다! 놈들을 잡았소! 이쪽이요!”
열린 창문에 대고 루팡이 있는 힘껏 소리쳤다. 놀란 질베르와 보슈레가 뭐라 말하려 하자 루팡이 입술에 손가락을 가져다댔다.
탕! 탕!
루팡이 창밖의 허공에다가 총을 쏘았다. 사방은 더욱 소란스러워졌다. 루팡은 보슈레의 어깨 총상에서 흐른 피를 자신의 윗옷과 손에 묻혔다. 그리고 질베르를 바닥에 쓰러뜨렸다. 질베르가 눈을 크게 뜨며 다시 일어서려했지만 루팡이 제지했다.
“잘 들어. 두 번 설명할 시간 없네. 자네 둘은 여기서 강도질을 하다가 나한테 들킨 거야. 잠깐 유치장에서 쉬고 있어. 반드시 탈출시킨다.”
“어…… 그, 그렇지만……”
“멍청한 놈. 대장까지 잡히면 끝장이야.”
망설이는 질베르와 달리 보슈레는 바로 루팡의 말에 수긍했다. 어깨의 총상 탓에 어차피 보슈레에게 도주는 무리였다.
“여기요! 도와주시오!”
루팡은 다시 한 번 창밖으로 소리쳤다. 우르르 사람들이 몰려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질베르는 창밖과 루팡을 번갈아 바라보다가 혼란스러운지 두 손으로 머리칼을 마구 헤집었다. 거칠게 한숨을 내쉬던 보슈레는 마침내 결심이 선 모양인지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 루팡의 손에 쥐어주었다.
“나중에 설명 드릴게요. 대장이라면 분명……”
“저기다! 응접실 쪽이야!”
질베르는 말을 끝내지 못했다. 경찰들이 달려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