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이후 세계 최빈국이었던 대한민국은 이제 세계를 선도하는 나라로 변모했다.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빠른 성장을 거둔 우리는, 최근 강대국들의 리그(League)였던 방위산업 분야에서도 자신감 있게 도전하고 있다. 분단이라는 지정학적 어려움은 역설적으로 우리에게 강력한 군사력을 축적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유럽에 이어 호주까지 진출한 K9 자주포는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로서 뛰어난 성능과 합리적인 가격으로 우리나라 무기의 명성을 높이고 있다. 차세대 전투기인 KF-21 역시 우리나라의 자랑스러운 성과다. 자체 역량으로 차세대 전투기를 개발한 나라는 세계에 단 8개국 밖에 없다.
돌이켜보면 우리의 방산수출은 도전의 연속이었다. UAE에 훈련기 T-50 수출을 눈앞에 두고 실패했다. 천문학적인 예산이 필요하고, 정부의 지원이 필수적인 방산거래에서는 무기 자체의 성능도 중요하지만, 거래를 성사시키기 위한 체계적인 행정 서비스가 필요했다.
미국은 과거부터 FMS(Foreign Military Sales; 대외군사판매)와 같이 정부 차원에서 무기 수출을 진행하는 프로그램을 체계적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후발주자인 우리나라는 정부 간 거래에 있어서 미국과 캐나다 등 선진국의 사례를 벤치마킹 할 수밖에 없었고, 이를 위해 2013년 KODITS(방산물자교역지원센터)를 KOTRA(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에 설립했다. 산업부, 국방부, 방위사업청 등의 관련 부처는 다년간의 노력 끝에, ‘정부간 계약’이라는 우리나라만의 정부 간 거래체계를 마련할 수 있었으며, 필리핀, 페루를 포함한 신흥국뿐만 아니라 핀란드, 에스토니아와 같은 선진국과도 정부간 계약을 통해 수출 성과를 거두었다.
방산물자는 다른 물자와 달리 더 많이 수출할수록 세계의 안보 환경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처럼 정부간 거래는 방산물자나 에너지, 식량과 같이 재화 자체가 가지는 비대칭적 성격을 효과적으로 통제하고 관리하기 위한 제도이다. 어떤 나라에, 어떤 제품을, 어떤 방식으로 판매하는지와 같은 국제거래의 일반적인 사안조차 정부간 거래에 있어서는 고도의 정책적 판단을 요구한다. 우리나라가 방산수출의 효과를 다양한 방면으로 활용하기 위해서 안보뿐만 아니라 외교와 통상을 포함한 국익의 관점에서 정부간 거래에 대한 지속적인 연구가 필요한 이유이다.
한편, 새로운 통상 질서의 등장과 함께 정부간 거래의 영역은 방산 분야를 넘어 인프라, IT, 전자정부 등 다양한 분야로 확대되고 있다. 냉전이 끝나고 비약적으로 성장한 자유무역질서는 최근 빠르게 위축되고 있으며, 국가 간 수많은 보호무역 조치와 무역보복 정책과 조치가 등장하고 있다. 2022년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은 세계적인 공급망 위기를 더욱 심화시키며 각국의 경제안보에 대한 경고음을 울렸다. 이러한 근본적인 변화 속에서 경제논리보다는 정치논리에 따른 ‘Friend shoring’이 새로운 무역질서로 등장하고 있으며, 각국의 대규모 재정 사업 역시 정부간 거래 형태로 진행될 가능성이 더욱 증가할 전망이다.
우리 정부도 이러한 변화에 대응하여 성공사례를 만들어오고 있다. 2019년 우리나라가 정부간 거래를 통해 수주한 페루 친체로 공항 건설 PMO 사업이 대표적인 예이다. 원자재 부국이면서 정부간 거래를 선호하는 페루는 우리나라와 다양한 정부간 거래를 통해서 양국 간 신뢰의 수준을 한층 더 높이고 있다.
글로벌 환경의 불안정성이 높아질수록 결국 각국 정부에게는 더 많은 역할이 요구된다. 정부간 거래에 관한 연구 역시 결국 정부의 역할이 어디까지이며, 그 목적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수출입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우리나라의 상황을 감안하면 정부간 거래를 창의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은 불안한 국제정세 속에서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향후 본서의 본문에서 자세히 살피게 될 정부간 거래제도는 WTO 국제규범상 허용된 지원제도이며, 우리 국내법인 대외무역법 등에 제도적 기반을 마련한 것이어서 그 지원과 활용의 토대가 충분하다. 수출기업을 실질적으로 지원하고 대형 국제 거래 프로젝트 기회를 창출하고 활용하는 측면에서도 G2G 거래는 그 실질적 가치가 높다. G2G 거래 방식을 대형 방산수출거래나 공공 인프라 수출에 활용하면 미국, 프랑스, 중국, 러시아 등 정부의 지원하에 공격적인 수주활동을 함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게 된다. 우리 수출기업에게 필요한 정부의 외교적, 통상적, 안보협력적 지원과우리 정부가 구매국 앞으로 계약의 이행과 관리를 보장하는 적극적ㆍ합법적 지원을 할 수 있다. 점점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 군사경제 우방국과의 정부간 협력관계를 강화하고 발전시키고 또한 그러한 협력관계에 기하여 대형 수출프로젝트 기회가 창출되는 순환적이고 발전적인 거래 싸이클이 만들어질 수 있는 장점이 크다.
본서가 다루는 G2G 거래는 학문적으로나 이론적으로 볼 때 국제거래 분야에서 가장 국가전략과 안보협력 등 국제통상적인 고려가 혼합되어야 하는 분야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G2G 거래를 파악하고 적용하는 경우에도 장기적이고 전략적이며, 수출 거래 자체의 사업성 뿐만 아니라 구매국과의 장기적인 안보경제협력도 고려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본서는 해외 거래 현장에서 경쟁하는 수출기업 뿐만 아니라 정부 담당자들, 통상이나 외교, 안보부분 등 국가의 다양한 정책과 실행 부분에서도 참고되기를 바란다.
본 서는 정부간 거래 실무를 경험한 집필진들이 그간의 경험과 조사내용을 바탕으로 민간에 최초로 출판한 소개와 연구를 겸한 간행물이다. 부디 본서의 내용이 다양한 분야에서 우리나라에 도움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