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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구회 추억 상세페이지

리디 info

* 본 도서는 본문이 일부 외국어(영어)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도서 이용에 참고 부탁드립니다.



작품 소개

<청구회 추억> 신영복 교수의 아프고 아름다운 추억.
절망의 끝에서 써내려간 아름답고 슬픈 이야기.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의 글 중 한 편인 「청구회 추억」이 김세현 작가의 그림과 성공회대 영어학과 조병은 교수의 영역 원고가 어우러져 새롭게 출간되었다. 1966년 어느 봄날 서오릉 소풍길에서 우연히 만난 여섯 소년들과의 순수하고도 소박했던 만남과 우정을 다룬 수필로, 가난하지만 훈훈했던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동시에 당시의 암울했던 상황을 보여준다.

이야기는 1966년 이른 봄철 서오릉 소풍길에서 시작된다. 문학회 회원들과 함께 서오릉으로 봄소풍을 간 신영복 선생은 같은 방향으로 걷고 있는 꼬마 여섯 명을 발견하게 된다. 안쓰런 춘궁의 느낌이 드는 그 꼬마들과 함께 소풍을 즐기고 싶었던 저자는 그들에게 다가가 말을 건넨다.
“이 길이 서오릉 가는 길이 틀림없지?”

이렇게 시작된 '청구회' 꼬마들과의 우정은 선생이 구속되기 전까지 이어졌다. 1969년 사형언도를 받게 되자 선생은 청구회 꼬마들을 떠올린다. 그리고 휴지조각에 이 글을 썼다. 절망 속에서 떠올린 진달래빛 봄날의 추억. 아름답지만 가슴 아픈 ‘추억의 생환’이다.


출판사 서평

‘청구회 추억’Memories of Chung-Gu Hoe 단행본 출간

‘청구회 추억’은 신영복 선생의 글과 김세현 작가의 일러스트, 조병은 교수(성공회대 영어학과)의 영역 원고가 어우러진, 세대의 구분 없이 함께 읽을 수 있는 이야기책이다. 이 책의 발간으로 외국 독자들에게도 신영복 선생을 알리고 또한 이 글의 높은 문학적 가치를 알릴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절망의 끝에서 써내려간 아름답고 슬픈 이야기

‘청구회 추억’은 정교한 플롯으로 구성된 한 편의 단편소설과 같은 작품이다. 이야기는 1966년 이른 봄철 서오릉으로의 소풍에서 시작된다. 문학회 회원들과 함께 서오릉으로 봄소풍을 간 필자는 같은 방향으로 걷고 있는 꼬마 여섯 명을 발견하게 된다. 안쓰런 춘궁春窮의 느낌이 드는 그 꼬마들과 함께 소풍을 즐기고 싶었던 필자는 그들에게 다가가 말을 건넨다. “이 길이 서오릉 가는 길이 틀림없지?” 이렇게 시작된 꼬마들과 필자의 대화는 서오릉 소풍길 내내 이어졌고, 서오릉에서도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헤어질 때 꼬마들이 건넨 진달래꽃 한 다발은 필자를 어쩔 수 없이 ‘선생님’으로서 그들 앞에 서게 했다.

진달래 한 묶음을 수줍은 듯 머뭇거리면서 건네주던 그 작은 손, 그리고 일제히 머리 숙여 인사를 하는 그 작은 어깨와 머리 앞에서 나는 어쩔 수 없이 ‘선생님’이 아닐 수 없었으며, 선생으로서의 ‘진실’을 외면할 수는 도저히 없었던 것이다.

그날 이후 필자는 꼬마들과 함께 정식으로 청구회靑丘會라는 명칭을 만들고 독서토론 등을 하며 정기적인 모임을 가졌다. 독서 이외에도 동네 골목 청소, 겨울철 미끄러운 비탈길 고치기, 그리고 남산 약수터까지 마라톤 등을 하였다. 이 모임은 필자가 통혁당 사건에 연루되어 구속되기 직전까지 이어졌다.
이들의 소박하고 순수한 만남은 당시의 정치적, 사회적 상황 속에서 굴절되고 왜곡되었다. 필자는 구속된 후 중앙정보부에서 심문을 받게 되었는데, 그 자리에서 ‘청구회’의 정체와 회원 명단을 대라는 추궁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서울지방법원의 한 검사는 필자에게 청구회 노래 가사 중 “우리는 주먹 쥐고 힘차게 자란다”에서 ‘주먹 쥐고’가 “국가 변란을 노리는 폭력과 파괴를 의미”하는 것 아니냐는 다소 희극적이기까지 한 추궁을 하였다. 억지와 견강부회로 점철된 수사과정은 단순히 필자 개인의 불행과 곤혹...‘청구회 추억’Memories of Chung-Gu Hoe 단행본 출간

‘청구회 추억’은 신영복 선생의 글과 김세현 작가의 일러스트, 조병은 교수(성공회대 영어학과)의 영역 원고가 어우러진, 세대의 구분 없이 함께 읽을 수 있는 이야기책이다. 이 책의 발간으로 외국 독자들에게도 신영복 선생을 알리고 또한 이 글의 높은 문학적 가치를 알릴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절망의 끝에서 써내려간 아름답고 슬픈 이야기

‘청구회 추억’은 정교한 플롯으로 구성된 한 편의 단편소설과 같은 작품이다. 이야기는 1966년 이른 봄철 서오릉으로의 소풍에서 시작된다. 문학회 회원들과 함께 서오릉으로 봄소풍을 간 필자는 같은 방향으로 걷고 있는 꼬마 여섯 명을 발견하게 된다. 안쓰런 춘궁春窮의 느낌이 드는 그 꼬마들과 함께 소풍을 즐기고 싶었던 필자는 그들에게 다가가 말을 건넨다. “이 길이 서오릉 가는 길이 틀림없지?” 이렇게 시작된 꼬마들과 필자의 대화는 서오릉 소풍길 내내 이어졌고, 서오릉에서도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헤어질 때 꼬마들이 건넨 진달래꽃 한 다발은 필자를 어쩔 수 없이 ‘선생님’으로서 그들 앞에 서게 했다.

진달래 한 묶음을 수줍은 듯 머뭇거리면서 건네주던 그 작은 손, 그리고 일제히 머리 숙여 인사를 하는 그 작은 어깨와 머리 앞에서 나는 어쩔 수 없이 ‘선생님’이 아닐 수 없었으며, 선생으로서의 ‘진실’을 외면할 수는 도저히 없었던 것이다.

그날 이후 필자는 꼬마들과 함께 정식으로 청구회靑丘會라는 명칭을 만들고 독서토론 등을 하며 정기적인 모임을 가졌다. 독서 이외에도 동네 골목 청소, 겨울철 미끄러운 비탈길 고치기, 그리고 남산 약수터까지 마라톤 등을 하였다. 이 모임은 필자가 통혁당 사건에 연루되어 구속되기 직전까지 이어졌다.
이들의 소박하고 순수한 만남은 당시의 정치적, 사회적 상황 속에서 굴절되고 왜곡되었다. 필자는 구속된 후 중앙정보부에서 심문을 받게 되었는데, 그 자리에서 ‘청구회’의 정체와 회원 명단을 대라는 추궁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서울지방법원의 한 검사는 필자에게 청구회 노래 가사 중 “우리는 주먹 쥐고 힘차게 자란다”에서 ‘주먹 쥐고’가 “국가 변란을 노리는 폭력과 파괴를 의미”하는 것 아니냐는 다소 희극적이기까지 한 추궁을 하였다. 억지와 견강부회로 점철된 수사과정은 단순히 필자 개인의 불행과 곤혹에 그치는 사소한 문제가 아니라는 점에서 심각한 사회성이 복재伏在하고 있다고 말한다.

언젠가 먼 훗날 나는 서오릉으로 봄철의 외로운 산책을 하고 싶다. 맑은 진달래 한 송이 가슴에 붙이고 천천히 걸어갔다가 천천히 걸어오고 싶다.

이 글의 마지막 문장이다. 필자는 ‘언젠가 먼 훗날’을 기약하면서 이 문장을 썼을까. 아닐 것이다. 영원히 오지 않을지 모를 불안한 먼 미래를 생각하며 필자는 깊은 슬픔과 절망 속에서 이 글을 썼을 것이다.

끝나지 않은 이야기, ‘청구회 추억’의 추억

‘청구회 추억’을 읽어본 독자라면 누구나 후일담을 궁금해 할 것이다. 필자는 이 글이 쓰인 경위, 그리고 청구회 아이들과의 재회 등 궁금해 하던 것들을 「‘청구회 추억’의 추억」이라는 제목으로 후기에 담았다.
‘청구회 추억’은 1969년 남한산성 육군교도소에서 쓴 글이다. 1968년 7월, 필자는 통혁당 사건으로 구속된 후 1심법원인 육군보통군법회의에서 사형언도를 받고 남한산성 육군교도소로 이송되었다. 이때가 1969년 1월이다. 이 글은 남한산성 육군교도소로 이송된 후 1969년 11월 대법원에서 원심이 파기되기까지 사형수로 있을 때 쓴 글이다.
사형언도를 받았을 때의 느낌을 필자는 ‘공허’空虛라는 단어로 표현했다. 총살형에 처해질지 모른다는 극도의 공포 속에서 저자는 지나온 일들을 되짚어보고, 그 속에서 청구회 아이들을 생각해냈다.
어쩌면 매달 마지막 주 토요일이면 어김없이 장충체육관 앞에서 자신을 기다릴지 모를 청구회 아이들을 생각하며 안타까워했다. 그리고 그들과의 만남을 처음부터 끝까지 떠올리며, 항소이유서를 쓰기 위해 빌린 볼펜으로 마룻바닥에 엎드려 한 자 한 자 쓰기 시작했다.
필자는 남한산성 육군교도소 재소 당시에 ‘청구회 추억’과 그 외의 여러 메모를 휴지에 남겼는데, 이것은 교도소에서 허용되지 않는 것이라 공책처럼 묶어 몰래 감추어 두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이송 통보를 받은 필자는, 평소 우호적이던 근무 헌병에게 휴지묶음을 부탁하며 집에 전달해주거나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당신이 가져도 좋다는 말을 남겼다. 그리고 20년 20일의 기나긴 무기징역은 시작되었고, 휴지묶음은 그 소재를 알 길이 없었다. 필자가 출소하기 전에 만들어진 초판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는 이 글이 실릴 수가 없었다. 출소 이듬해 집에서 휴지묶음이 발견되었고, 1998년 증보판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 이 글이 비로소 수록되었다.
이 후기에는 필자가 고등학생 시절 보았던 〈전장의 아이들〉이라는 그림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필자는 출소 후 고등학교 때 미술선생님인 김영덕 화백 댁을 방문하여 그분이 그린 작품 〈전장의 아이들〉을 보고 놀라움을 느꼈다고 술회한다.

나는 출소 후 선생님의 벽제 화실에서 다시 그 그림을 만났다. 오랜 세월의 격리 때문이었을까. 놀랍게도 서오릉 길에서 만난 어린이들이 바로 그 그림 속의 어린이들이란 것을 깨달았다. 진실의 해후 같은 감동이었다.

〈전장의 아이들〉은 전쟁의 비극과 공포를 아이들의 모습만으로 압축적으로 표현한, 강력한 호소력이 있는 작품이다. 서오릉 길에서 만났던 아이들이 바로 그 그림 속의 아이들, 즉 전쟁의 공포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던 아이들의 모습과 흡사했던 것이다. 이러한 놀라움을 필자는 ‘진실의 해후 같은 감동’이라고 표현한다.

우리의 삶은 수많은 추억으로 이루어져 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모든 추억을 다시 만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과거를 만나는 곳은 언제나 현재의 길목이기 때문이며, 과거의 현재에 대한 위력은 현재가 재구성하는 과거의 의미에 의하여 제한되기 때문이다. 더구나 추억은 옛 친구의 변한 얼굴처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그것이 추억의 생환生還이란 사실을 나중에 깨닫기도 한다.

필자는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젊은 날의 청구회와 그의 기나긴 징역살이를 이야기하지만, 이 추억은 단순히 아름답게만 볼 수 없는 한국사회의 아픈 단면이 고스란히 담겨 있음에, 이 ‘청구회 추억’은 거듭 곱씹어 보아야 할 작품인 것이다.

▶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출간 20주년 기념 오디오북 제작
이 책에는 부록으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오디오북이 들어 있다. 이 오디오북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출간 20주년을 기념하여 것으로, 16편의 작품을 선정하여 저자인 신영복 선생과 성우 임진응 씨가 낭송한 것이다.


저자 프로필

신영복

  • 국적 대한민국
  • 출생-사망 1941년 8월 23일 - 2016년 1월 15일
  • 학력 1965년 서울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석사
    1963년 서울대학교 경제학 학사
  • 경력 성공회대학교 석좌교수
    성공회대학교 대학원 원장
    2006년 성공회대학교 사회과학부 교수
  • 링크 공식 사이트

2014.12.29. 업데이트 작가 프로필 수정 요청


저자 소개

저자 - 신영복(Shin Young-Bok,申榮福)
우리 시대 대표적인 진보 지식인. 1941년 경상남도 밀양에서 출생했다. 서울대 경제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한 후 숙명여대와 육군사관학교에서 경제학을 가르쳤다. 육사에서 교관으로 있던 엘리트 지식인이었던 신영복 교수는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무기징역형을 받고 대전 · 전주 교도소에서 20년간 복역하다가 1988년 8 ·15 특별 가석방으로 출소했다.

1976년부터 1988년까지 감옥에서 휴지와 봉함엽서 등에 깨알같이 쓴 가족에게 보냈던 편지들을 묶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큰 고통 속에 있는 인간이 가슴 가장 깊은 곳에서 길어올린 진솔함으로 가득한 산문집이다. 1989년부터 성공회대학교에서 정치경제학, 한국사상사, 중국고전강독 등을 가르쳤고, 1998년 3월, 출소 10년만에 사면복권되었다. 1998년 5월 1일 성공회대학교 교수로 정식 임용되어 2007년 정년퇴임을 하고 석좌교수로 재직했다. 2014년 암 진단을 받고 투병하다 2016년 1월 15일, 향년 7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1968년 통혁당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받은 저자가 20년 20일이라는 긴 수형 생활 속에서 제수, 형수, 부모님에게 보낸 서간을 엮은 책으로, 그... 우리 시대 대표적인 진보 지식인. 1941년 경상남도 밀양에서 출생했다. 서울대 경제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한 후 숙명여대와 육군사관학교에서 경제학을 가르쳤다. 육사에서 교관으로 있던 엘리트 지식인이었던 신영복 교수는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무기징역형을 받고 대전 · 전주 교도소에서 20년간 복역하다가 1988년 8 ·15 특별 가석방으로 출소했다.

1976년부터 1988년까지 감옥에서 휴지와 봉함엽서 등에 깨알같이 쓴 가족에게 보냈던 편지들을 묶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큰 고통 속에 있는 인간이 가슴 가장 깊은 곳에서 길어올린 진솔함으로 가득한 산문집이다. 1989년부터 성공회대학교에서 정치경제학, 한국사상사, 중국고전강독 등을 가르쳤고, 1998년 3월, 출소 10년만에 사면복권되었다. 1998년 5월 1일 성공회대학교 교수로 정식 임용되어 2007년 정년퇴임을 하고 석좌교수로 재직했다. 2014년 암 진단을 받고 투병하다 2016년 1월 15일, 향년 7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1968년 통혁당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받은 저자가 20년 20일이라는 긴 수형 생활 속에서 제수, 형수, 부모님에게 보낸 서간을 엮은 책으로, 그 한편 한편이 유명한 명상록을 읽는 만큼이나 깊이가 있다. 그의 글 안에는 작은 것에 대한 소중함, 수형 생활 안에서 만난 크고 작은 일들과 단상, 가족에의 소중함 등이 정감어린 필치로 그려져 있다.

'일요일 오후, 담요 털러 나가서 양지바른 곳의 모래 흙을 가만히 쓸어 보았더니 그 속에 벌써 눈록색의 풀싹이 솟아오르고 있었습니다. 봄은 무거운 옷을 벗을 수 있어서 행복하다던 소시민의 감상이 어쩌다 작은 풀싹에 맞는 이야기가 되었나 봅니다.'슬픔이 사람을 맑게 만드는 것인지 그가 바라보는 세상은 울타리 밖에 사는 우리보다 넓고 아름답다. 시인 김용택의 "아름다운 역사의 죄를 지은 이들이 내어놓은 감옥에서의 사색은 사람들을 해방시킨다"는 글귀가 공감되는 부분이다.

'없는 사람이 살기는 겨울보다 여름이 낫다고 하지만 교도소의 우리들은 없이 살기는 더합니다만, 차라리 겨울을 택합니다. 왜냐하면...... 여름 징역은 자기의 바로 옆사람을 증오하게 한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모로 누워 칼잠을 자야 하는 좁은 잠자리는 옆사람을 단지 37도의 열덩어리로만 느끼게 합니다. 이것은 옆사람의 체온으로 추위를 이겨 나가는 겨울철의 원시적인 우정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형벌 중의 형벌입니다. 자기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을 미워한다는 사실, 자기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으로부터 미움받는다는 사실은 매우 불행한 일입니다.' 이렇듯, 수형 생활 중 자신이 직접 겪으면서 털어놓는 진솔한 이야기와 사색들은 경이로움을 자아낸다.

현실 사회주의가 무너져내린 뒤 자본의 전일적 지배가 강화되고 포스트모더니즘과 정보화의 물결이 넘실대는 이 세기말의 상황 속에서 그가 찾아낸 희망은 여전히 인간에 대한 애정과 믿음이다. 『나무야 나무야』에서 그는 '신발 한 켤레의 토지'에 서서도 푸르고 굳건하게 뻗어가고 있는 '남산의 소나무들'처럼 '메마른 땅을 지키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연민을 보낸다. '인간'의 입장에서 바라본 오늘의 자본주의문화에 대한 그의 시각은 냉엄하다. 사람들 사이의 관계는 사상한 채 상품미학에 매몰된 껍데기의 문화를 그는 통렬히 비판한다. 그리고 '정보'와 '가상공간'에 매달리는 오늘의 신세대 문화에 대해서도 그것이 지배구조의 말단에 하나의 칩(chip)으로 종속되는 소외의 극치일 수 있음을 우려하면서, '진정한 지식과 정보는 오직 사랑과 봉사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으며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서서히 성장하는 것'임을 갈파한다. 또한 단순히 비판에서 멈추지 않고 오늘의 문명에 대한 근본적 성찰로 이어진다. 그는 소나무보다 훨씬 많은 것을 소비하면서도 무엇 하나 변변히 이루어내지 못하고 있는 우리의 삶을 반성하면서 자연을 오로지 생산의 요소로 규정하는 현대 문명의 폭력성을 질타한다. 이러한 근본적 성찰의 밑바닥에 가로놓여 있는 것은 사람들 사이의 관계와 연대에 대한 옹호이다. 그는, 화사한 언어의 요설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의 삶으로써 깨닫고 가르칠 수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20년 수형 생활을 통해 얻은 가르침과 동양고전을 통해 유연한 세계 인식의 틀을 설명한 『담론』은 부제 그대로 그의 마지막 강의록이다. 공부는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하는 것이고, 가슴에서 끝나지 않고 발까지 이어질 때 비로소 세계와 자기 자신을 변화시키는 공부가 된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사람은 다른 가치의 하위 개념이 아니며, 사람을 키우는 일이야말로 그 사회를 인간적인 사회로 만든다고 역설한다. 책 속 곳곳에 세계와 인간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과 가르침이 그득 담겨 있다.

그 밖에 다른 저서로는 『손잡고 더불어』『나무가 나무에게』 『강의: 나의 동양 고전 독법』『청구회 추억』, 『다른 것이 아름답다』(공저), 『여럿이 함께』, 『한국의 명강의』(공저), 『느티아래 강의실』(공저) 등이 있다. 역서로는 『외국무역과 국민경제』, 『사람아 아! 사람아』, 『노신전』(공역), 『중국역대시가선집』(기세춘 공역, 4권)이 있다. '더불어숲' (http://www.shinyoungbok.pe.kr) 홈페이지에서 저자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볼 수 있다.

그림 - 김세현
삽화가이자 동화작가. 1963년 충남 연기에서 태어나 경희대학교 미술교육학과에서 동양화를 전공했다. 무엇보다 따뜻한 필치와 뛰어난 데생은 글만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감정과 시대상을 잘 나타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만년싸쓰』 『외딴 마을 외딴 집에』같은 그림책을 펴냈고, 삽화를 그린 책으로『저 하늘에도 슬픔이』『부숭이는 힘이 세다』『아름다운 수탉』『모랫말 아이들』『준치 가시』, 『엄마 까투리』『통도유사』등이 있다. 2004년 제4회 한국출판미술상을 받았으며, 2009년 볼로냐아동도서전 주빈국관 원화 전시 작가로 선정되기도 했다.

영역 - 조병은(Cho Byung-Eun)
1958년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나 강원대학교와 서울대학교, 미국 북텍사스 대학에서 영어영문학을 전공하고 영문학 박사학위를 취득, 1995년부터 성공회대학교 영어학과에서 영미문학과 영미시를 가르치고 있다. 2002~2003년 영국 윈체스터 대학교에서 1년간 초빙교수를 역임하였다. 19세기 영국시인 로버트 브라우닝의 극적 독백에 관한 박사학위 논문을 비롯하여 영국 19세기 낭만주의 및 빅토리아조 시인들과 현대 영미 시인들에 대한 연구 논문, 영어교육에 관한 논문 및 『내 마음의 열두 친구』(공역), 『어린이 공화국이 있다면』 등 영역서가 있다. 현재 영문으로 된 저서『19세기 시인들의 소통에 대한 욕구』를 출간 중에 있다.

목차

청구회 추억
‘청구회 추억’의 추억
‘청구회 추억’을 옮기고 나서

수록작품 목록

1 니토泥土 위에 쓰는 글
2 고성古城 밑에서 띄우는 글(부분)
3 떠남과 보냄
4 교巧와 고固
5 어둠이 일깨우는 소리
6 서도와 필재筆才
7 저마다의 진실
8 비슷한 얼굴
9 겨울 새벽의 기상나팔
10 한 포기 키 작은 풀로 서서
11 함께 맞는 비
12 민중의 창조
13 잡초를 뽑으며
14 여름 징역살이
15 죄수의 이빨
16 나는 걷고 싶다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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