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만화의 거장 박순찬,
현실의 삶을 무너뜨리는 허황된 관념을 꼬집다
무협지 속 인물의 행동에 현실의 잣대를 들이대면 모든 것이 우스워진다. 공격하기 전 큰 목소리로 기술의 이름을 외치고, 불필요하게 하늘을 날고, 기세만으로 상대를 압박해 싸움에서 승리한다. 비현실적인 이런 설정을 즐기기 위해서는 사건이 벌어지는 장소가 특수한 허구의 세계라는 합의가 있어야 하며, 캐릭터들은 그 세계관 내에서만 한정적으로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 이런 허구의 관념들이 현실에서도 실제로 위력을 발휘할 때, 우리의 현실 감각에는 균열이 생긴다.
다양한 채널을 통해 정보를 접할 수 있게 된 요즘은 많은 시민이 정치인의 발화에서 숨은 의도를 빠르게 파악하고 그 텅 빈 수사에 비판적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되었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권력 기관은 일상생활에서는 사용되지 않는 초현실적인 관념어로 권위를 스스로 만들어내고, 레거시 언론들은 판에 박힌 어휘와 표현을 반복하며 허황된 관념을 강화한다. 이런 일련의 전략들은 은밀하지도, 암시적이지도 않다. 그 얄팍한 포장이 뻔히 보임에도 불구하고 휘둘릴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밀려오는 무력감은 개인이 견디기 어렵다.
이렇듯 허구의 관념이 실제로 위력을 갖는 사회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약 30년 동안 쉼 없이 작품 활동을 이어오며 수많은 사건 사고를 기록했던 시사만화의 거장, 박순찬이 나름의 답을 안고 『도리도리』에 이어 『용산대형』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