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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질 수 없는 엄마에게 쓰는 편지 상세페이지

만질 수 없는 엄마에게 쓰는 편지작품 소개

<만질 수 없는 엄마에게 쓰는 편지> 아들을 오빠라고 생각하는 어머니가 중증치매 진단 삼 년여 만에 돌아가셨다.
하루 스물네 시간 중 스무 시간 이상을 어머니와 함께 해온 아들은 텅 빈 내면의 상실감을 편지 쓰기로 채워 왔다.
시사 주간지 등에 간간이 써 왔던 편지들 중 일부는 잘라내고 일부는 표현을 고쳐서 묶었다.


출판사 서평

그 시절에 놀이 시설로 말하자면 고인돌만한 것도 아마 없었을 거예요.
거대한 바위를 타고 오를 때의 기분도 그렇지만, 거대한 바위 아래 뚫린 구멍으로 쏙 들어가서
만화책을 읽고 있을 때의 기분은 지금 상상만으로도 오싹하게 짜릿하단 말이거든요.

마치 인생이라는 것이 그렇다는 식으로, 흐린가 하면 맑고, 맑은가 하면 다시 흐리고, 비가 내리는가 하면 그치고,
그쳤는가 하면 다시 뚝뚝 소리를 내며 어깨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이 썬득썬득 차가우면서도 시원하게 느껴지는 그런 하루였지요.

아무튼 그래. 뭔가 얘기를 좀 하고 싶어.
내 손으로 엄마를 만질 수 있던 시절에 다 하지 못한 얘기,
하고 싶었지만 할 수 없었던 얘기,
미처 생각이 안 나서 못했던 얘기,
그런 것들을 쏟아내고 싶은 거야.

이제 비록 만질 수는 없지만,
만져볼 수 없는 엄마라고 해서 엄마가 아닌 것은 아니지 않니?
하고, 내 자신에게 물어보았어요.
그 질문에 대한 나의 답이 뭔 줄 알어?
사진 속의 엄마도 엄마다.
일기장 속의 엄마도 엄마다.
기억에 새겨진 엄마도 당연히 엄마다.
울고 싶냐?
그러면 울어라.
웃고 싶냐? 그러면 웃어라.
다만 하나, 엄마가 죽었다고는 생각하지 말거라.

아줌마들이 내 이야기를 하고 있더라고요.
내가 들어갔는데도 나인 줄을 모르고 계속 내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처음부터 그게 나에 관한 이야기라는 것을 알았던 것은 아니고요.
듣다 보니 어디서 많이 들어본 사람 같고,
계속 귀를 기울이다보니 어라, 저거 난데, 뭐 이렇게 된 거였어요.
그런데 그 이야기가 참, 아아 그것 참, 너무나 신기하고 낯설고 이상해서 차마,
감히 내가 나라는 사실을 밝히지도 못한 채 그냥 듣고만 있다가 나왔지 뭐겠어요.

“야, 너 왜 우냐.”
내가 그랬더니 정이가 이러데요.
“울기는 무슨, 안 울어.”
“지랄헌다, 우는구만 뭐. 왜 울어, 울지 마.”
“아이 씨이. 안 운다니까.”
그렇게 꽥 소리를 지르더라고요. 그리고는 자기가 한 말을 그새 잊어버렸는지 이런 소리를 하는 거예요.
“엄마가-아. 엄마 사진이 내 앞에 있으니까-아.”


김장철에 김장 준비를 하느라 한밤중에 무채를 썰던 엄마의 칼도마 소리를 어느 순간 문득 내가 듣고 있었던 거예요.
내가 초등학생 시절이었을까? 아니면 좀 더 어린 천둥벌거숭이 ‘깨복장이’ 개구쟁이 시절이었을까?
뭔가를 하다 말고 엎드린 채로 잠이 들었다가 깜짝 놀라 눈을 뜨고 사방을 두리번거리면
그림처럼 칼도마에 집중하고 있는 엄마의 구부정한 모습이, 아무런 슬퍼야 할 이유도 없이 슬픈,
슬픔이 가득한 엄마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곤 했었다는 것을, 예전에는 한 번도 추억해보지 못한,
회상해보지 못한 그런 그림을 나는 그 밤에 무채를 썰던 중에 발견하고 있었던 거예요.

그러자 이 남자, 느닷없이 소리를 꽥 지르더라고요.
“아 이 사람아 그만 좀 해에.”
남편의 고함 소리에 그 아내는 까르르 한 번 웃더군요.
그리고는 다시 자기들끼리 뭐라고 속삭이며 계속 머위를 뜯고 있는 거예요.
남편의 얼굴은 뭐랄까, 길을 걷다가 개똥이라도 밟은 표정이랄까.
“에이 씨, 앞으로 한 달간은 밥상이 완전 풀밭 되겠네. 머위대 나물에, 머위대 국에, 머위대 무침에, 머위대 볶음에, 자알 되겠다.”

지금 생각하면 그녀의 출현이 내게는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몰라요.
날마다 집에서 병원으로, 병원에서 다시 집으로 그렇게 출퇴근을 하게 되어버린 그 막막한 시기에 그녀와의 대화는 뭐랄까,
내 몸에서 점점 빠져나가는 어떤 에너지를 붙잡아주고 있었다고도 볼 수 있을 거예요.

외할머니의 말씀대로 산다는 것이 예술이라고 한다면,
돈이 많은 곳에서는 절대로 예술 같은 삶이 가능하지 않다는,
가능할 수가 없다는 그런 생각을 했던 하루였으니 아주 유익한 여행이었다고,
그런 말을 엄마에게 하고 싶어서 이 글을 시작했던 거예요,
잘 했지요, 나?

아무튼 말이에요. 엄마 살아계실 때 이 년 가까이나 열심히 알을 낳아준 그 고마운 오리들이 말이에요.
엄마가 돌아가신 뒤에도 변함없이 열심히 알을 낳고 있었어요. 이게 또 괜히 얄밉더라고요.
귀찮기도 하더라고요. 너희는 대체 뭣 땜에 아직도 계속 알을 처낳고 있냐?
그렇게 혼자 중얼거리기를 얼마나 했는지 몰라요.
먹어줄 사람도 없는데, 그것을 삶는 순간의 즐거움도 이젠 바닥이 나 버렸는데,
그런데 너희는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냐고 이 망할 녀석들아,
어쩌고 그렇게 투덜대며 울타리를 발로 툭툭 걷어차기를 얼마나 했는지 몰라요.

그 수다가 어찌나 재미있었던지 말이에요.
어찌나 가슴이 설레고 어찌나 마음이 하늘에 붕 떠 있었던 것인지 말이에요.
세상에, 할머니와 헤어지고 집에 와서 생각해 보니 아무것도 기록해놓은 것이 없는 거예요.
어디에 사시는지, 누구인지, 그런 아주 기본적인 인적사항은 하나도 여쭤보지 않은 채로
다음에 다시 만나자는 약속이나 바보처럼 하고, 그리고는 그대로 헤어졌던 거예요.
그래서 다시 한 번 절묘한 우연이나 바래볼 뿐 내가 임의로 그 할머니를 찾아갈 수는 없는 그런 꼴이 되고 만 거예요.
나 원 참, 이게 무슨 정말로 바보 같은 정신머리였던 것인지,
엄마는 알까? 알거든 그 할머니에게 가는 길을 내게 좀 알려줘봐, 응?

처음에는 참 많이 황당했어요. 굶어죽는다는 말도 그렇고,
나는 죽으면 안 된다는 말도 그렇고, 뭔가 울컥울컥 눈물이 나려 하면서도 황당했어요.
그런데 그게 또 그렇더라고요. 선배의 말을 듣다 보니 내 마음에서 뭔가 변화가 일어나더라고요. 그럴까. 취직이라는 것을 한 번 해볼까.

귀가 얇아서 누가 무엇을 함께 하자 하면 “응 그러세”하고 따라가서 함께 망하고,
누가 돈을 빌려달라면 “응 그러세.”하고 빌려주고,
당신의 주머니에 돈이 없을 때는 아예 다른 사람에게 빌려다가 빌려주는,
그렇지 않으면 해야 할 일을 못한 것 같아서 며칠씩이나 고민을 하고,
나중에는 끝내, 보증을 서 달라는 사람마다 보증을 서주고 땅뙈기 몇 마지 있던 것마저 죄다 빼앗겨 버렸던 아버지,
돌아가신 지도 벌써 한참인 아버지의 얼굴을 지배인에게서 보고 있었던 거예요.
아아, 그래요. 사람이 말이에요. 자본주의 사회를 산다는 것은 정말로 어려운 일 같아요.

남탕은 사우나실 문을 열면 지린내가 훅 풍기는데 여탕의 사우나실은 그런 냄새가 없다는 것.
뭐 겨우 그런 정도가 다를 뿐이더라고요.
아아 참, 또 하나 있었다.
남탕의 냉탕 벽에는 르누와르의 <목욕>이라는 작품에 등장하는 다섯 여자의 나신이 거대하게 모자이크되어 있거든요.
그런데 여탕의 냉탕에는 뭐가 있는가 하면, 세상에,
백설이 훨훨 날리는 하늘을 배경으로 소나무 다섯 그루가 오들오들 떠는 모양으로 새겨져 있는 거예요.
그 다른 점을 보고 있는데 참 별별 생각이 다 들데요.
남탕에 그려진 여자의 나신과 여탕에 그려진 소나무 그림은 무슨 철학에 근거한 것일까 하는 뭐 그런 등등 오만 잡동사니 생각들 말이에요.


자기 돈 자기가 쓰면서도 남몰래 해야 하는데 이게 또 머릿골 터지게 어렵다네요.
그래서 그 방면으로 집중적인 연구도 해야 하고,
전문가도 둬야 하고 등등 이중 삼중으로 돈이 들어간다네요
. 한 마디로 말해서 정책 개발이니 공약 개발이니 그런 것들은 이제 아무 중요할 이유가 없어진다는 거예요.
돈을 어떻게 하면 소문나지 않게, 수사선상에 오를 수 있지 않게 유권자의 손에 전달하느냐 하는 뭐 그런 것들만 연구하게 된다는 거예요.

아무튼 11사단의 전공은 혁혁했어요.
저 유명한 거창 양민학살에서부터 고창의 해리, 공음, 심원의 양민학살에 이르기까지
아주 굉장한 무공을 세우고 마침내 더 이상 할 일이 없게 되자 부대원들이 이제 사회로 돌아가야 할 상황이 되었는데요.
당시만 해도 정부가 가난해서 현물로 보상은 못 하고 땅을 주었다네요.
어디어디에 쓸 만한 국유지가 얼마큼 있는데 이 땅을 부대원들이 향후 30년간 어떤 방식으로든 이용해 먹어라.
이런 식으로 말하자면 연금이랄까, 퇴직금이랄까, 하여튼 보상을 했었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 땅에 밤나무를 심었는데 밤이 열리기를 기다리다가 지쳐서
그만 다들 귀향을 해 버리는 바람에 주인 없는 밤나무가 돼 버렸다는 거예요, 글쎄.

그날 몇 가지 사실을 알았지요.
큰 개미는 차라리 큰 지렁이에 별 관심이 없어요.
몇 번 더듬이를 들이대 보다가는 그냥 가 버리지요.
그러나 작은 개미는,
작은 개미 중에서도 아주 작은 좁쌀 크기 정도의 작은 개미들은 지렁이 앞에서 자기네 동족의 미래를 보는 거예요.
오늘의 양식이 아니라 미래의 양식, 새끼들의 양식, 그래서 즉각 동료들에게 알리고,
전갈을 받고 달려온 동료들과 더불어 지렁이의 여기저기 도처를 물어뜯어서 수명을 단축시키고,
그리고 주변의 흙을 끌어다가 지렁이를 덮어서 숙성을 시킴과 아울러 새끼들의 집을 삼는 거예요.

멀리서 대충 바라보면 완전히 ’개판오분전‘이란 말이거든요.
그런데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질서가 아주 정교하게 잡혀 있는 놀이판이 되는 거예요.
그들이 떠나고 난 뒤에 혼자서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게 뭔가 대단하다 싶어지더군요.
노래를 부르지 않아도, 춤을 추지 않아도,
시끄러운 확성기를 동원해서 옆에 사람을 괴롭히지 않아도 이렇게 즐거운 유흥을 누릴 수도 있는 것이로구나,
뭐 그런 생각이 들면서 내 입에서 한 소리가 흘러나오는 거예요.
“야 이거 진짜 재미있구나.”

그러니 뭐 어쩌겠어요. 달라는 것을 주지 않으면 나를 계속 보채며 쫓아다닐 텐데 어쩔 것인가 말이에요.
별로 잘 입지도 않는 팬티 한 장에 러닝 한 장을 제수씨 손에 들려주었지요.
그것을 받아든 제수씨가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라는 표정으로 묻더군요.
“정말 안 가셔도 괜찮으시겠어요?”
얄밉기도 하지요. 무슨 그런 질문이 다 있답니까.
그것은 결국 안 가면 당신에게 큰 손해가 있을 텐도 손해를 감수하겠느냐,
뭐 그런 일종의 경고문이잖아요. 그러면서 배실배실 웃는데 그것 참, 신분이 제수씨만 아니라면 한 대 칵 쥐어박고 싶더군요.

사람이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표가 많이 난다는 말이 그렇게도 실감나게 와 닿을 수가 없어요.
사람이 사람과 헤어진다는 거,
다음에 만날 약속도 없이,
미래에 관한 아무런 그림도 없이 헤어진다는 게 이런 것이로구나,
하는 뭐 그런 깨달음을 얻고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나 할까?
아무래도 그래야겠지요?
더불어 한 가지 맹세를 해도 괜찮다면 이런 건 어떨까.
헤어진 뒤에 후회할 일 만들지 말고 지금 옆에 있는 사람에게 최선을 다하자.

며칠 전에 우연히, 정말로 아주 우연히 어느 젊은 시인을 알게 됐어요.
그가 자신의 작품에서 이런 말을 했더라고요.
사랑은 만지는 것이라고.
만진다,
만지는 것,
그 한 구절을 읽고 눈을 번쩍 떴어요.
다시는 감을 수 없을 것 같았어요.
내가 이렇게도 외로운, 외로워하는 이유가 말이에요.
이게 대체 뭘까, 뭘까, 왜 이럴까, 참 많이도 갈증을 느꼈더랬는데 그게 바로 거기에 있었구나 싶더라고요.
만지는 거,
그 오묘한 느낌의 시간을 내가 더 이상은 가질 수가 없게 되었다는 것 말이에요.

그때의 그 웃음, 지금 생각하면 그래요.
세상에 태어나서 그렇게도 큰소리로, 그렇게도 원없이 지속적으로,
그 누구의 눈치도 안 보고 웃어본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엄마,
아들을 알아보지도 못하는 엄마와 함께 했던 그 삼 년여의 눈물 나는 세월이
내게는 결국 가장 행복했던 시기였다고, 그렇게 말해야 하는 이상한 시간 속으로 나는 지금 들어와 있는 거예요.

살면서 이런 말을 해야 할 날도 있으리라는 생각을 해본 사람도 있을까?
아 진짜, 이런 말을 해야 하다니. 이런 말을 해야 하는 날도 있을 수 있었다니
이걸 대체 뭐라고 해야 할까, 응? 엄마, 아이 씨이, 엄마, 엄마아. 오늘이 엄마 제삿날이라고요, 제삿날. 알어?



저자 소개

완전한 자유를 열두 살 무렵부터 갈망해 온 남자.
열두 살에 무단가출한 이후 룸살롱 보이와 공사장 막노동,
사법고시 수험생, 흥신소 운영 등등 삼십여 종류에 달하는
인간 삶의 다양한 방식을 경험 내지 체험한 지적 자산을 바탕으로 도시생활 연구소를 설립,
운영난으로 연구소 폐쇄한 것을 계기로 도시생활에 마침표를 찍고 귀향.
중편소설 ‘한줌의 도덕’으로 광남문학상,
산문집 ‘아들을 오빠라 부르는 울 엄마 참 예쁘다’(어바웃어북) 출간

목차

13인의 고모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들려요 내 말?
내가 마누라에게 쫓겨난 남자라네요
이십 년 연하남을 데려왔던 누이
자다가 일어나서 무채를 썰었지요
내가 그만 부부싸움을 붙이고 말았어요
모르는 여인의 편지
굴비가 돗자리처럼 펄럭이는 법성포를 다녀와서
개가 오리를 물어죽이더니 새끼를 낳았어요
사노라니 이런 우연도
벼락처럼 취직을 했었는데요
옥탑 방에서 지하 감옥을
여자 목욕탕, 하나도 안 신비하더군요
자연의 역습이 시작된 걸까?
농협장 선거 한 번에 이억사천?
뜻밖에도 철학을
생명의 신비는 정말 신비로워요
이런 놀이라면 하루 열 번도 참석하겠다
제수씨가 내 팬티를 달라고 왔는데요
외로움도 우울함도 없이
나 결혼할까? 배드민턴 치고 싶어
엄마도 엄마의 제삿날을 알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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