元曉의 哲學思想이 지향하는 바는 圓融會通이다. 원융회통이란 ‘원만히 융합하여, 모두 통한다’는 의미다. 그러므로 원융회통을 실현한다면, 원융회통의 과정에 있는 모든 대립과 갈등은 해소되고 해결된다. 그러한 해방의 시공간이, 원효에게는 淨土이며 極樂으로서, 자연스레 無碍行을 실현하여, 스스로/저절로 無碍舞를 추게 되는 美學的 場이다.
이러한 會通主義的 思惟方式은, 老子 이후, 원효의 시대로부터 현대에 이르도록, 여전히 유효하며 많은 지지를 받고 있다. 반면에, 아주 재미나게도 근대사회에서 현대사회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西歐世界에서는 원효의 원융회통이론과 對蹠的인 지점에 배치될 만한 이론이 등장하여, 전 세계적인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게다가 그 반향의 慣性은, 다양한 모습으로 변모하며, 현재까지도 유지되어 진행되고 있다.
그러므로 이는, 2천여 년의 시공간적 간극을 넘어서는, 아주 재미난 비교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요새 膾炙되는 표현을 빌리자면, ‘보수와 진보’, ‘좌파와 우파’, ‘친미와 친중’, ‘반미와 반중’, ‘친중과 친일’, ‘반공과 종북’ 등, 아주 다양한 세력 대립의 樣相에 비견될 수 있기 때문이다.
원효의 원융회통이론과 대척적으로 배치될 수 있는 것은 바로, 흔히 위대한 거부를 목적하는 사유방식으로서 지칭되는 批判理論이다. 비판이론의 대표적 사상가로서, ‘도구적 이성으로의 전락’을 주장하는 ‘호르크하이머’, ‘부정적 사유’를 주장하는 ‘아도르노’, ‘마르크스’와 ‘마오쩌둥’과 더불어 3M으로 불리는 ‘마르쿠제’, 학생 집단에 주목하는 ‘하버마스’ 등을 거론할 수 있다.
그렇다면 비판이론의 주제는 무엇일까? 그것은 현대의 산업자본주의 아래에서, 民主主義라는 미명으로 교묘하게 숨어 있는, 全體主義的 요소를 벗겨내어 고발하고, 인간과 理性을 회복하자는 것이다. 그 어원은, 칸트의 ‘순수이성비판’과 마르크스의 ‘이데올로기 비판’에서 따온 것이다. 흔히 비판이론가들은, ‘비판이 마비된 사회, 반대가 없는 사회는, 파쇼(fascio)的 權威主義의 정치 지배가 파놓은, 현대 문명의 함정’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끊임없는 체제에 대한 도전, 이른바 ‘프랑크푸르트학파’가 말한 ‘위대한 거부’는, 인간 회복 선언이자, 현재의 권위주의적 지배에 대한 학문적 저항이라 할 수 있다. 비판이론의 온상이 된 ‘프랑크푸르트학파’는, 독일 프랑크푸르트대학의 ‘사회연구소’를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이 연구소는 1923년에 창설되어, 나치 정권이 수립된 이듬해인 1934년에, 스위스와 프랑스를 거쳐 미국 뉴욕으로 옮겨 갔다.
그리고 미국 콜롬비아대학의 부설기관으로 있다가, 전쟁이 끝난 다음, 다시 프랑크푸르트로 옮겨 왔다. 여기에서 비판이론이 나오게 된 데에는, 다음과 같은 역사적 배경이 있다. 먼저 1920년대 말, 유럽은 어떤 상태였는가? 자유기업 경제체제가 무너지고, 자유민주주의는 아무런 힘도 발휘하지 못했으며, 사회민주주의 역시 그 허약성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새롭게 공산주의와 국가사회주의가 등장했지만, 독일의 정치적, 경제적 상황은, 어느 때보다도 긴박한 위기에 몰려 있었다.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는, 철학에 사회학, 정치학, 경제학, 심리학 등 여러 분야를 받아들여, 일종의 종합적인 접근을 시도했다. 말하자면, 인간을 그 전체적인 모습으로 파악하려고 했던 것이다.
특히 비판이론은, 현대 資本主義社會의 경제생활과 각 개인들의 심리적 발달, 문화적 산물이 서로 연관되어 있음을 드러내고자 한다. 즉, 학문, 종교, 예술, 법률, 관습, 여론, 오락, 스포츠와 같은 문화적 산물이, 자본주의 경제구조로 하여금, 인간의 심리를 조종해서, 기존의 질서에 순응하게 하고, 이에 상응하는 현실 긍정의 문화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비판이론의 대표적인 사상가들을 누구인가.
먼저, ‘Max Horkheimer(1895~1973)’는, 독일 슈투트가르트 근교의 주펜하우젠에서, 유대계로서 태어난다. 호르크하이머는 그의 저서 ‘도구적 이성 비판’에서,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며, 철저히 시대적 상황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정치적, 경제적 수단을 중앙집권화하고, 자동화하는 기술이, 인간 생활을 조직하고 조작하는 데 주역을 담당하고 있다.
예컨대, 이 시대의 기술은, 인간에게 인간답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동적인 기술에 봉사하도록 만든다. 기계가 인간의 노동을 대신하면서, 인간은 사회나 자연에 대해 한층 힘이 없어지고 말았다. 인간은 그의 개성, 인격, 명예로써 평가되지 않고, 상품성과 자동화된 기능으로 측정되는 것이다.
현대의 대중문화는 문화의 특수성을 잃어버린 문화이며, 대중사회 역시 ‘나’라고 하는 인간성이 빠져버린 조작적 사회다. 말하자면, 현대사회 전체가 방향을 잃어버린 셈이다. 본래 근대 유럽사회는, 개인의 자유와 행복을 도모하기 위해서, 합리적인 시민사회와 자유주의 경제체제를 마련했으며, 더욱이 과학과 기술의 발달은, 인류의 미래를 한층 더 밝게 보이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거대한 생산구조는 인간을 장악했고, 어느새 각 개인은, 자신의 안락한 생활을 위해, 자본주의의 질서에 순응하고 말았다. 그 결과, 개인의 자유는 오히려 위축되고, 이제 자유경쟁 대신에, 능률적인 통치 기구로서 국가가 바람직하게 여겨지게 되고 말았다.
고도의 생산성은 국가의 관리가 필요했고, 이에 따라 ‘국가 자본주의’가 탄생했던 것이다. 그래서 개인은 국가의 통치 대상, 자본주의 질서의 예속자, 생산 기계의 부품으로 전락해 버렸다. 비판이론은, 바로 이러한 개인의 예속 상태를 거부하며, 또한 “경제사회적 존재가 의식을 결정한다”라는, 마르크스주의의 주장도 거절한다.
비판이론은, 개개인이 자신의 삶을 회복할 때, 비로소 인간의 어두운 운명이 밝게 변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호르크하이머는, 아도르노와 공동으로 저술한 ‘계몽의 변증법’에서, 17~18세기에 나타난 ‘계몽적 이성’이 인간을 자유스럽게 했으나, 오늘날에는 반대로 인간을 부자유스럽게 억압한다고 주장한다. 그 이유는, 한때 주체적이고 자주적이었던 이성이, 어느새 인간의 자기보존이라는 이기적인 관심의 도구, 즉 ‘도구적 이성’으로 전락해 버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계몽적 이성의 자본주의는, 그 합리화를 통해, 계속해서 인간을 체제에 종속시킨다고 한다. 이렇게 볼 때, 이성은 비록 과학을 발달시키기는 했으나, 인간의 삶에 진정한 자유와 행복을 가져다주지는 못했다. 또 ‘계몽적 이성’이 ‘도구적 이성’으로 전락하면서, 비판이론가들은 합리주의에 등을 돌리고 말았다. 그들은 합리주의가 도리어 나치즘과 같은 전체주의를 키웠다고 주장했다. 결국 아도르노는, 이성의 부정적 본질을 강조하면서, 전체주의적 성격의 자본주의를 극복하고자 한다.
-하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