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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국제사회에서 중국이 主唱하는 것은, 모름지기 中國夢이다.
과연 중국이 꿈꾸는 ‘중국의 꿈’은 실현될 것인가.
그런데 中國夢이 실현되든 실현되지 안든, 대한민국의 입장에서는 죄다 불안스럽고 불편하다는 점을 인식케 된다.
특히 一帶一路 式의 中國夢이 실현되었을 때, 그것은 대한민국에게는 惡夢이 되어버릴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는, 역사적 사례로써 익히 검증된다.
동아시아에서 중국대륙이 강력한 帝國으로서 정립되었을 때, 인접해 있는 만주대륙과 한반도는 늘 정복의 一順位였다.
그래야만 名實相符한 天子의 제국으로서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현대에 이르러서도, 지정학적으로 부득이하여 배척될 수 없는 중국이, 다시 中國夢을 꿈꾸기 시작한다는 일은, 대한민국으로서는 여러 이유로 인해, 당최 불안한 미래에 대해 銳意注視해야만 하는 사안일 수밖에 없다.
현대의 중국이 모색하는 中國夢은, 과거 주변국들을 君臣關係로써 屈從시키던 짓을 꿈꾸는 것일까.
현대적인 自由民主主義 체제문화를 전면적으로 거부하고서, 과거 獨尊儒術하던 儒敎文化의 修身齊家治國平天下 식의 재현을 꿈꾸는 것일까.
궁극적으로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사상적, 종교적인 온갖 것들을 죄다 獨裁하던 天子의 帝國을 부활시키려는 것일까.
그래서 그러한 과정에 걸림돌이라 인식했던 檀君朝鮮, 高句麗, 高麗, 渤海, 統一新羅, 朝鮮 등의 경우처럼, 주변국들이 자기들의 中國夢體制에 순응하고 굴종할 때까지, 침략과 정복을 자행하겠다는 것인가.
이러하니 가장 근접해 있는 국가 중의 하나인 대한민국으로서는, 도무지 불안과 공포를 숨길 수 없다.
그러다보니 중국 자본을 受惠하는 親中主義者들도 多數 발생하는 상황이며, 그러한 자들은 과거 大東亞共營圈을 主唱하던 日本帝國을 좇아, 韓日合邦(庚戌國恥)을 주도했던 親日派들과 유사하게, 中國夢의 실현에 어떻게든 기여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필자도 오랫동안 中國哲學을 전공 삼아 공부를 하였던 탓에, 계속 學界에 남아 대학이나 연구소에 재직했다면, 아마도 親中主義者로서의 혜택에 대해 끊임없는 유혹과 압박을 당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여하튼 분명한 것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공동체를 存續시키는 체제이론이 自由民主主義와 資本主義라는 점이다.
그러니 현재로서는 그것을 견고히 유지할 때, 다소 나아지거나 아니면 적어도 현상유지는 할 수 있다는 사실을 是認해야만 한다.
이는, 좋고 싫고의 문제가 아니다.
다만 ‘生存의 利得’을 위한 不得已다.
만약 이러한 것들을 解體하고서, 보다 나은 사회를 정립할 수 있는 이데올로기가 존재한다면, 응당 그것을 추구함이 마땅하다.
그런데 현재 暗?的 대안으로서 제시되는 人民民主主義, 社會主義, 共産主義, 主體思想 따위가, 과연 그러한 대안이라고 할 수 있는가.
다만 주의할 대목은, 人情的으로나 人道的으로 北韓의 同胞들에게 한 겨레로서의 민족적 共通感을 갖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는 점이다.
國際社會라는 弱肉强食의 현장에서, 그러한 感性的 판단이 시의적절한 대안으로서 작동한 역사적 사례는 거의 不在함을 유념해야 한다.
현실세계의 인간존재로서 국제정치적 관점을 갖게 되면, 적잖은 인생의 의문이 해소된다.
혁명의 상황으로까지 치닫는 근원적인 사회문제들에 대한 나름의 해답을 가질 수 있으며, 그렇게 되면 현실세계의 온갖 不合理와 갖은 不條理에 대해서도 理解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할 때, 인간존재는 외부의 바람에 煽動당하지 않으며, 오롯한 자기의 삶에 충실할 수도 있게 된다.
世間의 인간존재들이 그토록 갈구하는 행복도 실현할 수 있게 된다.
지금 이 순간, 자기에게 찾아든 苦難의 원인을 명확히 알게 된다면, 그것에 대해서 나름의 대안을 도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近代 이전에는 국제정치적 관점을 제공하는 것이, 위대한 先知者로서 숭앙되는 인물들의 텍스트였다.
예컨대, 老子, 論語, 大藏經, Bible, Quran, 그리스哲學書 등이 그러하다.
그런 先覺者들의 텍스트를 공부하면, 현실세계라는 ‘우물 안 개구리’ 상태를 극복하고서, 天地自然이라는 거대한 그림을 살필 수 있게 된다.
곧 天地自然의 ‘그레이트 게임’을 인식하게 되는 탓이다.
그래서 그들의 著作이 현재까지도 인류의 古典으로서 숭앙받는 것이다.
그런데 현대사회는 직접적으로 天地自然의 상황을 살피는 시대이다.
예컨대, NASA에서 운영하는 인공위성 화면은 실시간으로 地球라는 行星의 모습을 비춰주고 있다.
이러한 시대에 지구촌 전체를 살필 수 있는 관점을 지니지 못한다면, 각 개인의 삶의 문제 역시 마땅한 해답을 갖지 못하게 된다.
아무리 미세한 상황일지라도 그 결정적인 원인은, 결국 거대한 ‘그레이트 게임’에 의한 逆나비효과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국제정치적 관점의 培養과 思慮는 실로 중요한 삶의 태도라고 할 것이다.
제아무리 小乘的 깨달음을 얻어 解脫한다고 해도, 결국 현실세계에서 생존하는 한, 거대한 ‘그레이트 게임’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음은 실로 不得已다.
이러한 본래적 사실을 是認하지 않는다면, 결코 삶의 現象은 죽음의 순간까지 나아지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