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죽음의 詩人/是認 奇亨度
2000년 이후, 현대시에 있어 ‘몸’은 중요한 화두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소위 ‘미래파’, ‘뉴웨이브’로 일컬어지는, 2000년대 이후 시에는, 몸의 파열과 죽음이 기괴하고 강렬한 언어로 그려지고 있다.
전후의 시가 생성되고 재건되는 몸을 다루었다면, 현대는 파괴되고 분열되는 죽음의 몸에 주목한다. 이와 같은 죽음과 몸의 상관성을 기형도 시를 통해 고찰하고자 한다.
보이지 않는 것을 하나의 오브제로 재현하려는 충동, 이것이 바로 회화의 충동이다. 마찬가지로 기형도는 생생히 돋아오는 죽음의 얼굴과 형체를 재현하고자 했다. 무엇보다 죽음은 그의 시에서 하나의 실체요, 현실이다.
그의 시는 처음부터 끝까지 죽음을 형상화하는 데 바쳐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죽음을 삶으로 순환하지 못하는 비극적 세계관이, 그를 지배하고 있었던 것이다. 기형도의 시에서, ‘죽음의 몸’은 소통불능의 주제를 드러낸다. 기형도 시에 나타난 죽음과 몸, 오윤정.
지금까지 기형도의 시를 살핀 많은 논의들은, 그의 시에 나타나는 죽음의 심상과 그것을 암시하는 분위기로, 시를 규정하는 경우가 많다.
기형도 시에 대한 여러 평과 논문을 통해서 볼 때, 다양한 형태의 해석이 가해지고 있기는 하나, 크게 보면 기형도 시에 나타난 비극적 삶의 인식 규명이라는 범주로 규정지어 볼 수 있다.
이는, 기형도 시의 가장 큰 특징으로 떠오르는 죽음이라는 부분에 대한 천착이므로, 나름대로 의미있는 해석이라 할 수 있다.
선행연구들이, 기형도 시에 두드러지게 나타난 절망이나 죽음에 대해서 언급하였다면, 기형도가 살았던 현실 속에서의 이러한 절망의 방식을 분석함과 동시에, 이런 모습이 시 속에서 어떻게 드러났으며, 현실의 또 다른 양상인 환상은, 기형도가 겪은 현실의 어떤 측면을 지지하고 있는지를 알아보았다.
또한 기형도 시의 시공간 의식에 대한 측면에서는, 누적된 주관적인 시공간 의식의 다양한 측면과 더불어, 각각의 시공간 속에 드러나는 당위성과 환상, 또는 그 몰입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하였고, 특히 부재한 공간이라는 시적 설정이 지닌 의미도 알아보려 하였다.
또한 시공간과 마찬가지로, 시의 성격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의 하나인 이미지의 활용 측면에서도, 기형도 시의 독특한 이미지 기법들과 그 비유를 통한 현실과의 다양한 소통방식을 살펴보려 하였다. 기형도 시의 죽음의식 연구, 정보규.
‘제망매가’의 모티프가 들어 있는 기형도의 시들에서, 나무와 근친 간의 관계를 살펴봄으로써, 현대시와 전통의 상관관계에 대해 접근하고자 한다.
특히 ‘제망매가’의 핵심을 이루는 ‘나뭇가지’라는 비유적 이미지가, 기형도의 시에 어떠한 모습으로 나타나는지에 주목하기로 한다.
원전 ‘제망매가’는, 누이의 죽음을 애달파하는 한 개인의 정서가 녹아 있는 작품이지만, 그 안에는 생사 길에서 도 닦음의 길로 나아가, 죽은 누이가 서방정토에서 왕생하기를 바라는, 시적화자의 마음이 나무의 생리에 녹아 있는, ‘산나뭇가지’와 ‘죽은 나뭇가지’의 은유를 통해 형상화되고 있다.
기형도의 ‘가을무덤’은, 가을을 배경으로, 죽은 누이의 무덤에서 누이를 추억하는 시이다. 시인은 이 시의 부제를 ‘제망매가’라고 붙였지만, 원텍스트와 유사한 점은, 누이의 죽음을 소재로 하고 있다는 것 뿐이다.
그러나 시인이 부제를 그렇게 붙임으로써, 원텍스트의 ‘둘이지만 하나에게서 갈라져 나온 나뭇가지’ 이미지는, 희미한 ‘얼룩’으로서 원텍스트와 연결될 가능성을 지니게 된다.
또한 나목의 죽은 가지를 소재로 하고 있는 기형도의 ‘노인들’, ‘겨울ㆍ[雪]ㆍ나무ㆍ숲’ 등의 시에서도, 한 나무라는 가족 곁에서, 한 몸에서 나온 두 가지로 헤어졌지만, ‘不在’라는 “청결한 죽음”에 이르는 오누이 이미지가 나타난다.
인간의 상상력의 역할은, 자신에게 주어진 문화나 전통의 굳어진 틀을 극복함으로써, 문화 자체에 새로운 역동성을 불어넣는 데 있다.
이것이 향가 ‘제망매가’의 나뭇가지 이미지가, 현대시의 기형도 작품에 흔적으로 남아 있다는 것을 분석하면서, 비록 기형도의 작품에 등장하는 나무가 파편화된 이미지일지라도, 전통과 자연을 통한 상상력의 힘으로써 총체성을 꿈꾸어나가는 것을 살펴보고자 한 이유이다. 「제망매가」에 형상화된 "나뭇가지" 이미지의 현대적 변용 -기형도 시를 중심으로, 박형준.
기형도는 1989년 그의 유고시집인 ‘입속의 검은 잎’이 출간된 이후, 오히려 당시 젊은이들로부터 선풍적인 관심을 받기 시작했던 요절 시인으로, 그의 작품은 지금도 변함없이 사람들의 미학적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다.
李賀 역시, 27세의 나이로 삶을 마감한, 중국문학에서 鬼才로 불리는 唐 中期 唯美主義 시인이다.
두 시인은 모두 초현실주의 시풍을 지니고 있었으며, 기상천외한 상상과 시어로 자신만의 독특한 시세계를 전개하였는데, 특히 죽음이미지의 형상화에 특별한 재주를 지니고 있었다.
이하와 기형도의 작품에 보이는 죽음의 이미지는, 그 관점과 묘사에 있어서 사뭇 서로 다른 특성을 보인다.
기형도의 시가 철저하게 어둠과 공포로 점철된 현실 속에서의 죽음의 세계를 표현하고 있다면, 이하가 묘사하는 죽음의 이미지는 사치스러울 정도로 아름답고 찬란한 사후세계를 지향하고 있다.
기형도가 지극히 건조하고 딱딱한 無情의 시어를 사용하는 반면, 이하의 시어는 습윤하고 화려하며 有情하다.
하지만 두 시인 모두 검은 색을 주조로 사용하고, 기괴하면서도 절묘한 奇句를 애용하며, 묘지 등 스산한 분위기를 자주 시의 배경으로 삼고 있다는 점 등은, 서로의 공통점이기도 하다. 李賀와 기형도, 그 죽음의 미학, 장준영.
한국 현대시에 나타난 죽음의식의 양상을, 윤동주, 박인환, 기형도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이들은 모두 요절로, 짧고 비극적인 생애를 살다간 시인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활동한 시대의 시단에서 중요한 시적 영역을 구축하였다.
우리 삶은 언제나 죽음과 결부되어 있지만, 그것을 회피하고 싶은 게 인간 본연의 마음이다. 그러나 이들 시인들은 죽음의 문제에 천착하며, 시 속에서 다양한 형태의 죽음 의식을 표출하였다.
문학작품이 인간의 삶에 총체적으로 기반을 둔 작가의 무·의식적 활동의 산물이라고 보고, 그것이 작가의 체험과 의식으로 창작되었다는 전제 하에, 세 시인의 생애와 작품을 분석하였다.
작품에 내재된 의식 중 죽음의식의 고찰을 통해, 시인의 삶에 대한 인식과 의미를 파악하였다. 그 결과 윤동주, 박인환, 기형도의 시세계는, 전체적으로 죽음의식이 밑바탕이 되어 이루어져 있다는 결론을 도출해 내었다.
먼저 일제의 억압이 가장 심했던 1930~40년대에 작품 활동을 했던 윤동주는, 시대적 문제와 개인적 문제를 통합적으로 고뇌하고 성찰한 시세계를 지닌 시인이었다.
그의 시에 나타나는 입체적인 죽음의식은, 절망과 희망을 넘나들면서, 모태 신앙인 기독교에 대한 신념의 양상을 보여준다. 윤동주의 시세계는, 관념적 죽음의식을 보인 초기시와 재생을 통한 자기 초월로 나아간 후기시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기독교 신앙에 관련된 초기시의 죽음의식은, 죽음에 대한 관념적 사유를 드러내며, 이 세상으로부터 격리된 고립감을 나타내었으며, 후기시에 나타난 죽음의식은, 기독교적 희생정신과 내세와 관련된 희망을 통한 자기 초월이었다.
윤동주 초기 시세계의 구조는, 용기와 희망의 과정이라기보다는 좌절과 절망의 과정이었다.
그의 시는 신앙의 힘이 세상을 구원해 주리라는 맹목적인 믿음에서 출발했지만, 시대와 역사의 실체를 경험하면서 믿음의 방법도 변화하였다. 그는 세상을 알아가면서, 자신의 소망과는 전혀 다른 불행이,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점을 깨달아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끝내 기독교적 신앙을 놓지 않았다. 그리하여 자신을 나약하고 감상적인 인간이라고 인식하기도 했던 시인은, 절대자가 걸어갔던 숭고한 삶을 비장하게 약속하고 다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박인환은, 한국전쟁이라는 죽음의 현장을 거치면서, 죽음의 문제에 대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진 시인이었다. 그의 죽음의식은 유한한 인간 존재에 대한 자각에서 출발한다.
우리는 죽음을 직접 경험할 수 없다. ‘나’는 죽음을 직접 경험할 수 없기 때문에, 유일한 죽음의 경험인 타자의 ‘낯선 죽음’ 앞에서 인간의 유한성에 대한 공포를 느끼는 것이다.
타자의 낯선 죽음 앞에서 박인환이 느낀 것은, 현실과 미래의 단절이었다. 직접 경험할 수 없기 때문에 유일한 죽음의 경험인 타자의 낯선 죽음 앞에서, 인간의 유한성에 대한 공포를 느끼는 것이다.
특히 전쟁은 사람들을 준비되지 않은 죽음에 내몰고, 사람들은 전쟁에 던져짐으로써, 도처에서 도사리고 있는 죽음 앞에 무방비 상태로 서게 되는 것이다.
언제 죽을지 알 수 없는 것, 이것이 박인환에게 엄습한 공포였던 것이다. 그로 인해, 박인환은 통합된 시간의식을 갖지 못하고, 분열된 시간의식을 갖게 되었다.
이것은 전쟁에서의 죽음의 체험이 주는 고통을 극복하지 못하고, 타자의식을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보여지는 나를 보고 있는 또 다른 주체를 알지 못했을 때, 죽음으로써 세상과 단절된다는 종말의식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에게는 연속된 미래가 존재하지 않았고, 과거 또한 현재와 단절된 단순한 과거로 머물게 된다. 미래에 대한 전망의 부재,는 다시 필연적으로 신의 부정에 이르게 된다.
때문에 그의 신은, 창부나 검은 신, 불행한 신 등의 부정적 이미지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기형도는, 삶 속에서 죽음을 직시하고, 죽음의 심연 속으로 뛰어 들었던 시인이었다. 기형도의 내적 상처를 들여다봄으로써, 그의 심리의 자리 잡게 된 권태와 고독, 그리고 뿌리 깊은 죽음의식을 파악하고, 그가 죽음에 이를 수밖에 없었던 근간을 밝혔다.
기형도의 죽음의식은, 유년시절의 가난과 가족들의 죽음이라는 결핍의 기억에서 비롯된 것이라 보았다.
가난과 가족들의 죽음은, 시인으로 하여금 유년에 대하여 그리움과 함께 절망과 허무를 낳게 하였으며, 지울 수 없는 심리적 상흔이 되어, 시 곳곳에 죽음의식으로 표출된 것이다.
아버지가 쓰러지고, 가난으로 인해 어머니와 누이들이 생계를 위해 밖으로 나가게 되자, 홀로 보낸 유년시절은 상실감과 결핍의 기억들로 가득하다.
게다가 누이와 삼촌의 죽음은, 기형도에게 죽음에 대한 체험을 하게 했고, 허무감과 절망감을 심어 주어, 그의 시세계에 죽음의식이 굳건히 자리 잡게 되는 계기가 된다.
이러한 어린 시절의 절망과 외로움은, 성장 후에 또 다른 모습의 우울과 좌절로 다가오는데, 도시 공간을 폐쇄적 공간이고 죽음을 향할 수밖에 없는 절망의 공간으로 인식케 한다. 한국 현대시에 나타난 죽음의식 연구 : 윤동주, 박인환, 기형도 시를 중심으로, 이지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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