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카 골목 탐험기』는 대로의 그림자 아래 숨어 있는 도시의 진짜 얼굴을 찾아 떠나는 인문지리 산책서다. 이 책은 오사카라는 미로 같은 도시의 골목길을 따라가며, 지도에는 표시되지 않은 기억과 삶의 흔적, 말 없는 이야기들을 들추어낸다. 겉으로 보이는 화려함과는 달리, 오사카의 골목에는 시대의 상처와 인간의 온기, 낡음 속의 생명력이 공존한다.
프롤로그에서는 왜 우리가 골목을 걸어야 하는지, 그리고 그 안에서 무엇을 발견하게 되는지를 사유의 언어로 풀어낸다. ‘오사카라는 미로’, ‘지도엔 없는 길’, ‘걷고 또 걷는 이유’를 통해, 이 책의 여행은 단순한 공간 이동이 아니라 사유의 여정이자 인간 이해의 시도임을 선언한다.
1장 신세카이에서는 낡은 시간 속에서 미래를 꿈꾸는 공간들을 다룬다. 쓰루하시 골목의 코리안 디아스포라에서 시작해, 쿠시카츠의 기름 냄새와 쇼와 감성, 게임센터에 남은 아이들의 기억, 그리고 스미요시 신사의 숨은 골목까지, 과거와 현재가 맞물린 현장을 기록한다.
2장 난바는 상인의 도시이자 연극의 무대다. 도톤보리의 이면, 후구 요리집 골목, 쿠로몬 시장의 생생한 언어들, 거리 예술과 우연한 대화 속에서 도시의 리듬과 상업적 감수성이 어떻게 사람의 삶을 연기하게 만드는지를 포착한다.
3장 우에혼마치는 사라지는 유흥의 흔적을 담고 있다. 캬바쿠라 뒤편의 여성, 철거를 앞둔 여관 골목, 야쿠자의 뒷모습, 그리고 한밤 다방에 울려 퍼진 오래된 노래들은 오사카라는 도시의 그림자를 드러낸다.
4장 덴마는 책과 술이 공존하는 마을이다. 고서점 주인의 커피 향, 작가들의 혼술, 바텐더가 전해주는 현대사, 그리고 골목극장에서 만난 연극인까지, 예술과 생활이 섞여 있는 삶의 장면들이 펼쳐진다.
5장 교바시는 철도 아래 일상의 예술을 담는다. 기차 소리와 삶이 뒤섞이고, 주차장 옆 노포의 카레 냄새, 아스팔트 위의 춤, 맥주박스 위 철학자들이 말하는 오사카는 도시가 가진 즉흥성과 생생함을 보여준다.
6장 이쿠노구는 경계의 감수성을 품은 공간이다. 제3세 조선인의 베이커리, 김치가 익는 풍경, 편의점 공연장, 이중언어로 오가는 대화 속에서 '경계'는 상처이자 창조의 공간으로 나타난다.
7장 다이코쿠초는 종교와 골목이 교차하는 곳이다. 사찰 옆 선술집, 현대인의 불안을 달래는 텐구 이야기, 뒷담화가 울려 퍼지는 신사에서 우리는 도시 속 신성성과 인간성을 동시에 마주하게 된다.
8장 기타하마는 근대와 현재가 나란히 걷는 동네다. 벽돌 건물 뒤 커피 향, 강을 따라 걷는 금융맨의 고독, 클래식 음반 가게에서의 재회, 기타하마 서점에서의 첫 만남은 도시의 층위를 걷는 행위로 바꿔 놓는다.
9장 텐노지는 죽음과 삶이 교차하는 장소다. 오래된 묘지, 노숙자의 거리, 절밥으로 이어지는 인간관계, 골목 장례식과 무연고 무덤의 이야기들은 우리가 외면해온 삶의 마지막 장면들을 정직하게 바라보게 만든다.
에필로그에서는 '걷는다'는 행위의 의미를 다시 묻는다. 골목이 가르쳐준 삶의 방식, 여행의 끝에 맞이한 또 다른 삶의 시작. 이 책은 골목을 걸으며 나를 발견하는, 동시에 세상을 다시 이해하게 되는 ‘길 위의 철학서’다.
참고문헌과 부록에는 오사카 도시사 자료, 일본 내 민속학과 식문화에 대한 탐구, 현장 조사 기록, 오사카 골목 탐험 지도와 맛집 리스트, 일본어 회화집까지 풍성하게 담겨 있어 독자의 실제 탐험을 도울 수 있도록 구성되었다. 이 책은 단순한 여행기가 아니라, 골목이라는 렌즈로 들여다본 한 도시의 인문학적 초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