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서서 더 먼 곳을 바라보는 즐거움
현대적 시각으로 재탄생한 피터 드러커 경영학의 정수 제3탄!
“지식생산성 향상은 피를 흘리는 혁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피터 드러커(peter F. Drucker, 1909-2005)
지식은 어떻게 역사발전의 원동력이 되었는가?
피터 드러커는 1946년 최초의 경영서 [기업의 개념]을 출판한 이래, [경영의 실제](1954), [창조하는 경영자](1964)를 발표했고, 그리고 [매니지먼트: 경영의 과업, 책임, 실제](1973)를 통해 현대 경영학의 체계를 완성했다. 그 후로도 많은 경영 저술들을 출간했고 [HBR(Harvard Business Review)] 등을 통해 경영 논문을 발표했다. 90세가 되는 1999년에는 지식근로자의 생산성 향상방법을 제시한 [21세기 지식경영]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러한 저술작업으로 인해 일반 사람들은 드러커가 경영에만 관심을 가졌던 것으로 알고 있지만 이것은 중대한 오해다.
드러커가 발표한 최초의 논문은 1924년 15세의 나이에 빈의 한 살롱에서 발표한 〈파나마 운하가 세계무역에 미친 영향〉으로서, 비록 출판되지는 않았지만 드러커는 이 논문을 손질하여 1927년 함부르크 대학교 입학자격 논문으로 제출했다. 활자로 인쇄된 드러커의 최초의 저서는 1933년 독일의 튀빙겐출판사가 [독일의 법과 정치] 시리즈 100호 기념으로 출간한 소책자 [프리드리히 율리우스 스탈: 보수주의적 국가이론과 역사발전]이었다. 이 소책자는 2002년 7월 [소사이어티]에 영어로 번역 수록되었다. 그리고 독일에서는 드러커의 스탈에 관한 논문 발간 70주년 기념으로 2004년 헤르만 지몬(Hermann Simon) 외 7인의 교수들이 [피터 드러커, 효율적 경영의 주요 미덕]이라는 제목의 논문집을 출판했다.
드러커는 1927년 함부르크 대학교를 다니면서 주로 대학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냈는데, 법 아래서의 자유를 주장한 법철학자 프리드리히 율리우스 스탈을 비롯하여 덴마크의 종교 사상가이자 실존주의 철학의 창시자 세렌 키르케고르(Soren Kierkegaard, 1813~1855), 1809년 세계 최초의 근대 대학인 베를린대학(지금의 훔볼트대학교)을 창설한 빌헬름 폰 훔볼트(Wilhelm Von Humbolt, 1767~1835), 프로이센 주도로 독일을 통일하려고 노력했던 최초의 정치가 요제프 라도비츠(Joseph Von Radowitz, 1787~1853) 등 독일의 사상가들에게 관심을 기울였다.
드러커는 또한 보수주의 철학에 심취했는데, 특히 근대적 체계를 갖춘 보수주의 이념의 기초를 확립한 영국의 의회주의자 에드먼드 버크(Edmund Burke, 1729~1797), 반(反)혁명 국제적 동맹체제를 구축한 오스트리아 재상 메테르니히(Metternich, 1773~1859), [미국의 민주주의]의 저자 알렉시스 드 토크빌(Alexis de Tocqueville, 1805~1859), [영국의 헌법]을 펴낸 보수적 자유주의자 월터 배젓(Walter Bagehot, 1826~1877) 등을 깊이 연구했다. 드러커가 함부르크 대학교에서 법률을 공부하면서 수강한 해사법(海事法, admiralty law) 강좌는 서구역사, 사회, 기술, 법사상, 경제학 등을 포괄하고 있었는데, 이는 나중에 드러커가 경영학의 원칙을 가르칠 때 학습법의 원형이 되었다고 한다.
드러커는 그 후 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영국에서는 케인스에게 경제학을 배웠고, 미국에서는 사라 로렌스 대학과 베닝턴 대학에서 경제학, 통계학, 철학, 역사를 강의했다. 드러커는 차츰 경영학에 관심을 기울였지만, 많은 경영 저술과 논문에서 논리 전개에 필요한 역사적 해설을 곁들였다. 예컨대 [경제인의 종말](1939)에서는 ‘전체주의의 기원’을 역사와 경제학의 관점에서 서술했고, [산업인의 미래](1942)에서 ‘1776년의 보수주의적 반혁명’, ‘루소에서 히틀러까지 전체주의 사상가들’을 포함시켰다. [기술, 경영, 사회](1958)에서 ‘기술혁명의 역사적 교훈’을 제시했으며, [단절의 시대](1968)에서는 역사와 사회의 ‘연속과 단절’ 현상을 설명했다. [격변기의 경영](1980)에서는 ‘주권의 종말’을, [새로운 현실](1989)에서는 ‘사회에 의한 구제의 종언’과 ‘러시아 제국의 붕괴’를 역사적인 필연성의 결과로 분석하고 예측했다.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1993)에서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지식사회로’ 변하는 과정을 설명했다.
달리 말해, 역사철학자 딜타이(Wilhelm Dilthey, 1833~1911)가 역사를 문화적 관점에서 해석하고 콜링우드(Robin G. Collingwood, 1889~1943)가 역사와 철학을 한데 묶으려고 시도한 것처럼, 드러커는 역사의 변화 또는 원동력을 ‘지식의 의미와 역할의 변화과정’으로 설명하는 학문적 업적을 남겼다.
요컨대 이 책은 피터 드러커의 역사철학을 ‘지식역사관’이라는 관점에서 정리한 것이다. 이 책은 동서양의 역사를 포괄적으로 다루는 것이 아니라, 역사 발전 또는 역사 변화의 원동력은 ‘지식의 의미와 기능의 변화’에 있었다는 피터 드러커의 역사 변동관에 입각하여 해설한 것이다. 물론 대부분의 서술과 논리전개는 필자가 드러커의 저술들을 번역하고 연구하면서 터득한 드러커의 역사적·사회적·경제적·철학적 통찰을 ‘역사의 원동력은 지식’이라는 관점에서 종합한 것이지만, 필자 나름의 기여가 없는 것은 아니다. 굳이 덧붙이자면, 딜타이는 많은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채 남겨두었지만 그가 죽은 뒤 제자들이 편찬서와 해설서를 출간함으로써 비로소 그의 역사철학이 가치를 얻게 된 것처럼, 이 책은 드러커의 역사관을 최초로 정리하고 종합하는 데 기여했다고 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