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악마의 환희 1873(The Fiend's Delight by Ambrose Bierce)은 인간 본성에 대한 냉소적인 태도로 쓰라린 비어스(Bitter Bierce)라고 불린 19세기 미국 작가 앰브로즈 비어스(Ambrose Bierce, 1842~1914?)의 짤막한 소설(Some Fiction), 수다(Tall Talk), 저널(Current Journalings), 부고(Obituary Notices), 철학적이고 신학적인 사색(Musings, Philosophical And Theological), 유머(Laughorisms), 시(Poesy) 등 다양한 장르를 포괄하는 작품 60여 편을 묶은 잡문집(Collection Of Miscellaneous Works)입니다. 비어스는 1872년부터 1875년까지 영국 런던에 거주하면서, 자신의 글을 펀 매거진(Fun Magazine)을 비롯한 다양한 매체에 기고하였습니다.
▶ 이를 영국의 출판업자 존 캠든 호튼(John Camden Hotten, 1832~1873)이 단행본으로 묶어 1873년 출간한 작품이 악마의 환희 1873(The Fiend's Delight by Ambrose Bierce)입니다. 호튼은 영국의 희귀하고 특이한 책을 수집하는 도서 애호가(an English bibliophile)이자 외설적인 시리즈물을 몰래 출판(clandestine publisher of erotica)한 출판업자로써, 유머와 풍자가 담긴 작품을 유독 좋아하였습니다. 본인이 직접 현대 속어, 캔트, 저속한 단어 사전(A Dictionary of Modern Slang, Cant, and Vulgar Words, 1859)란 속어 사전을 편집할 정도로 말이죠! 그의 특이한 취향 덕분에 호튼 출판사는 미국의 젊고 실험적인 작가들을 영국에 최초로 소개하는 업적(Hotten was the first publisher to introduce into England the humorous and other works of American writers)을 쌓을 수 있었습니다. 몇몇 작가만 꼽아보더라도 미국 ‘자유시의 아버지’ 월트 휘트먼(Walt Whitman, 1819~1892))의 시(1868), 마크 트웨인(Mark Twain, 1835~1910)의 마크 트웨인 여행기(The Innocents Abroad, 1870), 앰브로즈 비어스의 너겟과 먼지: 캘리포니아에서 패닝(Nuggets and Dust: Panned Out in California, 1872)…….
▶ 비어스의 초기 작품 중에서도 초기작으로 꼽히는 악마의 환희 1873은 출간 당시 본명이 아닌 도드 그릴(Dod Grile)이란 가명으로 출간되었습니다. 비어스 특유의 갑작스러운 전개(An Abrupt Beginning), 어두컴컴한 이미지(Dark Imagery), 시간에 대한 모호성(Vague References To Time), 독자에게 불친절한 설명(Limited Descriptions),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사건(Impossible Events), 그리고 참전용사로써 반복적으로 소재로 삼은 전쟁(The Theme Of War) 등의 특징을 초기작에서 재확인하고 싶은 독자에게 일독을 권합니다. 테마여행신문 TTN Korea 영어고전(English Classics) 1,999선과 함께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멋진 문학여행을!
▶ 1873. TO THE IMMUTABLE AND INFALLIBLE GODDESS, GOOD TASTE, IN GRATITUDE FOR HER CONDEMNATION OF ALL SUPERIOR AUTHORS, AND IN THE HOPE OF PROPITIATING HER CREATORS AND EXPOUNDERS, This Volume is reverentially Dedicated BY HER DEVOUT WORSHIPPER, THE AUTHOR. ▷ 1873. 모든 상위 작가들을 비난한 것에 대한 감사와 그녀의 창조자와 해설자들의 화해를 바라는 마음으로, 불변하고 오류가 없는 여신에게 이 책을 그녀의 독실한 숭배자인 저자가 경건하게 헌정했습니다.
▶ PREFACE. The atrocities constituting this “cold collation” of diabolisms are taken mainly from various Californian journals. They are cast in the American language, and liberally enriched with unintelligibility. If they shall prove incomprehensible on this side of the Atlantic, the reader can pass to the other side at a moderately extortionate charge. In the pursuit of my design I think I have killed a good many people in one way and another; ▷ 머리말. 이러한 악마주의의 “차가운 대조”를 구성하는 잔학 행위는 주로 다양한 캘리포니아 저널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그들은 미국 언어로 캐스팅되었으며,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이 풍부하게 포함되어 있습니다. 대서양 이쪽에서 이해할 수 없는 것으로 판명되면 독자는 적당한 강탈 혐의로 반대편으로 넘어갈 수 있습니다. 내 디자인을 추구하면서 나는 이런 저런 방식으로 많은 사람을 죽였다고 생각합니다.
▶ “One More Unfortunate.” In a cosy, vine-embowered cottage near the sounding sea, lives and suffers a blighted female. Nothing being known of her past history, she is treated by her neighbours with marked respect. She never speaks of the past, but it has been remarked that whenever the stalwart form of a certain policeman passes her door, her clean, delicate face assumes an expression which can only be described as frozen profanity. ▷ “한 번 더 불행하다.” 파도치는 바다 근처의 아늑하고 덩굴로 둘러싸인 오두막에는 역병에 걸린 암컷이 살고 있으며 고통 받고 있습니다. 그녀의 과거 이력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으며, 그녀는 이웃들로부터 뚜렷한 존경심을 가지고 대우받습니다. 그녀는 결코 과거에 대해 말하지 않지만, 어떤 경찰관의 건장한 모습이 그녀의 문을 지나갈 때마다 그녀의 깨끗하고 섬세한 얼굴은 얼어붙은 욕설이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표정을 짓는다고 합니다.
▶ A Call to Dinner. We verily believe that Shakspeare writ down Fat Jack at his last gasp, as babbling, not o’ green fields, but o’ green turtle, and that that starvling Colley Cibber altered the text from sheer envy at a good man’s death. To die well we must live well, is a familiar platitude. Morality is, of course, best promoted by the good quality of our fare, but quantitative excellence is by no means to be despised. Cæteris paribus, the man who eats much is a better Christian than the man who eats little, and he who eats little will pursue a more uninterrupted course of benevolence than he who eats nothing. ▷ 저녁 식사에 대한 전화. 우리는 셰익스피어가 마지막 숨이 막힐 때 팻 잭(Fat Jack)이 녹색 들판이 아니라 녹색 거북을 옹알이로 썼다고 믿고 있으며, 그 굶주린 콜리 시버(Colley Cibber)는 선한 사람의 죽음에 대한 순전한 부러움에서 그 텍스트를 바꾸었다고 믿습니다. 잘 죽으려면 잘 살아야 한다는 것은 익숙한 진부한 표현이죠. 물론 도덕성은 우리 음식의 좋은 품질에 의해 가장 잘 촉진되지만, 양적 우수성은 결코 경멸될 수 없습니다. 캐테리스 파리부스, 많이 먹는 사람은 적게 먹는 사람보다 더 나은 그리스도인이며, 적게 먹는 사람은 아무것도 먹지 않는 사람보다 더 중단 없는 자비의 길을 추구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