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원코스 남미(1 Course South America) 독자 여러분! 오늘은 남미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중 복합유산(UNESCO World Mixed Heritage Sites)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드넓은 남미 대륙 곳곳에 산재한 수많은 유네스코 세계유산 중에서도 복합유산은 단 4곳 뿐! 깊은 아마존 정글 속에는 2만 년 전부터 그려진 재규어 숭배의 벽화가 침묵을 지키고 있고, 브라질 해안의 식민지 도시에서는 아프리카 노예들과 토착민들의 문화가 숨쉬고 있습니다. 페루 안데스 산맥에서는 잉카 문명의 최고 걸작이 구름숲에 둘러싸여 신비를 간직한 채 서 있고, 또 다른 페루의 국립공원에서는 멸종된 줄 알았던 원숭이가 고대 문명의 유적과 함께 보호받고 있습니다. ▷ 치리비케테에서는 인류 최초의 예술적 표현과 원시 자연의 조화를, 파라티와 일랴그란데에서는 식민지 문화와 대서양 삼림의 공존을, 마추픽추에서는 잉카 문명의 걸작과 안데스-아마존 생태계의 만남을, 리오 아비세오에서는 고대 문명의 비밀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테마여행신문 Theme Travel News TTN Korea ⓒ 원코스 남미(1 Course South America) 시리즈와 함께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멋진 여행을!
▶ 치리비케테 국립공원 “재규어의 말로카”(Chiribiquete National Park “The Maloca of the Jaguar”) : ▷ 아마존의 심장에 숨겨진 2만 년의 시간, 재규어의 집, 치리비케테 : 끝없이 펼쳐진 녹색의 바다 위를 비행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콜롬비아 아마존의 심장부이자,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은 지구상 마지막 미개척지 중 하나로 불리는 이곳의 하늘은 지평선까지 오직 울창한 숲으로만 채워져 있습니다. 그러나 이 단조로운 풍경은 경외감을 불러일으키는 장엄한 광경 앞에서 갑자기 깨어집니다. 마치 고대의 마천루처럼, 수직으로 솟아오른 평평한 정상의 산들이 정글 바닥에서 솟구쳐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치리비케테의 ‘테푸이(tepui)’입니다. ▷ 이곳은 바로 치리비케테 국립공원 – “재규어의 말로카”(Parque Nacional Natural Serranía de Chiribiquete – “The Maloca of the Jaguar”)입니다. 이곳은 콜롬비아 최대의 보호구역일 뿐만 아니라, 약 430만 헥타르(43,000 km²)에 달하는 세계에서 가장 큰 열대우림 국립공원입니다. 그 면적은 덴마크의 국토 면적과 맞먹습니다. 2018년, 유네스코는 이곳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인정하여 세계유산으로 등재했습니다.
▶ 카를로스 카스타뇨 우리베와 신성한 영토의 발견 : ▷ 치리비케테에 대한 현대적 이해는 콜롬비아 인류학자 카를로스 카스타뇨 우리베(Carlos Castaño-Uribe)의 업적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습니다. 그는 콜롬비아 국립공원 관리청장 재임 시절인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에 탐사를 통해 암각화를 기록하고 1989년 공원 설립을 주도한 핵심 인물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그를 악명 높은 준군사조직 지도자였던 카를로스 카스타뇨 힐(Carlos Castaño Gil, 1965-2004)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카스타뇨 우리베는 30년 이상을 치리비케테 연구와 보호에 헌신했으며, 그의 역작인 『치리비케테: 재규어-인간의 우주적 말로카』(Chiribiquete: La maloka cósmica de los hombres jaguar)를 통해 그 결실을 보았습니다. ▷ 카리호나(Karijona), 우이토토(Uitoto), 투카노(Tukano) 등 인근의 접촉 원주민 부족들에게도 치리비케테는 여전히 심오한 신성성을 지닌 공간입니다. 그들의 창조 신화에 등장하며, ‘동물들의 위대한 집(Casa Grande de los Animales)’으로 불립니다. 이들은 이 영토가 결코 방해받아서는 안 될 영적인 중심지라고 믿습니다.
▶ 바닷물이 쓸고 간 시간의 거리, 파라티에 서다(Standing on the Streets of Time, Washed by the Tides of Paraty) : ▷ 브라질 남동부의 해안가, 하얀 벽과 형형색색의 창틀을 가진 식민지 시대의 건물들이 빼곡히 들어선 작은 마을이 있습니다. 발밑에는 수 세기의 시간이 닳고 닳아 불규칙하게 솟아오른 돌길이 펼쳐집니다. 이곳 파라티(Paraty)에서는 하루에 두 번, 만조가 되면 바닷물이 천천히 거리로 밀려와 발목을 적십니다. 이는 도시 설계의 결함이 아니라, 18세기에 고안된 독창적인 자연 정화 시스템입니다. 매일같이 반복되는 이 잔잔한 침수는 인간이 만든 도시와 예측 불가능한 자연의 바다가 어떻게 서로의 경계를 넘나들며 공존하는지를 보여주는 강력하고 시적인 상징입니다. ▷ 이 독특한 풍경은 2019년 유네스코(UNESCO)가 브라질 최초의 ‘복합유산(Mixed Heritage Site)’으로 지정한 ‘파라티와 일랴그란데 - 문화와 생물다양성(Paraty and Ilha Grande - Culture and Biodiversity)’의 핵심 가치를 압축적으로 보여줍니다. 복합유산이란 한 장소에 인류의 역사와 문화가 깃든 ‘문화유산’의 가치(기준 v)와 대체 불가능한 자연 생태계를 품은 ‘자연유산’의 가치(기준 x)가 불가분하게 얽혀 ‘탁월한 보편적 가치(Outstanding Universal Value)’를 지니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이곳은 단순히 아름다운 옛 도시와 울창한 숲의 조합이 아닙니다. 인간의 역사가 장엄한 자연환경에 의해 끊임없이 영향을 받고 형성되어 온 하나의 거대한 ‘문화 경관(Cultural Landscape)’인 것입니다.
▶ 안데스 산맥 구름 위, 잃어버린 시간을 만나다 마추픽추 역사 보호구역(Historic Sanctuary of Machu Picchu) : ▷ 가파른 산길을 따라 구불구불 오르다 보면, 세상은 이내 자욱한 안개에 잠깁니다. 페루 안데스 산맥의 심장부, 숨이 가빠올 무렵 문득 안개가 걷히고 구름이 흩어지는 순간, 눈앞에는 현실이라고 믿기 힘든 풍경이 펼쳐집니다. 하늘을 찌를 듯한 두 개의 봉우리 사이, 아찔한 산등성이에 자리 잡은 돌의 도시. 바로 마추픽추(Machu Picchu)입니다. ▷ '공중 도시', '잃어버린 도시'라는 별명처럼, 이곳은 수백 년간 세상의 기억 속에서 사라졌던 잉카 제국의 위대한 유산입니다. 철기나 바퀴 없이, 오직 사람의 손과 정교한 기술만으로 어떻게 이 험준한 산 정상에 거대한 도시를 건설할 수 있었을까요? 왜 이토록 화려하고 신비로운 도시는 건설된 지 채 100년도 되지 않아 아무도 살지 않는 유령 도시가 되어야만 했을까요? 수많은 의문과 경이로움이 교차하는 이곳, 마추픽추의 비밀을 파헤치는 여정은 잉카 문명의 가장 깊숙한 영혼을 만나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 "잉카의 잃어버린 도시" 서사의 탄생 : ▷ 마추픽추가 세상에 널리 알려진 계기는 1911년 7월 24일, 미국 예일대학교의 역사학자 하이럼 빙엄 3세(Hiram Bingham III, 1875-1956)의 탐험이었습니다. 예일대학교와 내셔널 지오그래픽 협회의 후원을 받은 빙엄의 탐사대는 본래 스페인에 맞서 마지막까지 저항했던 잉카의 최후 수도, 빌카밤바(Vilcabamba)를 찾는 것을 목표로 했습니다. 우루밤바 계곡 깊숙한 곳을 탐사하던 중, 그는 한 현지 농부로부터 근처 산 정상에 거대한 유적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궂은 날씨 속 험난한 산행 끝에 마침내 유적에 다다른 빙엄은 정글에 뒤덮인 채 잠들어 있던 거대한 석조 도시에 압도되었습니다. ▷ 빙엄은 자신의 탐험기를 "잉카의 잃어버린 도시(The Lost City of the Incas)"라는 책으로 출간했고, 이는 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이 책을 통해 마추픽추는 '수백 년간 아무에게도 발견되지 않은 채 정글 속에 숨겨져 있던 비밀의 도시'라는 신비로운 이미지를 얻게 되었고, 전 세계 탐험가와 관광객들의 발길을 페루로 이끄는 기폭제가 되었습니다.
▶ 안데스의 구름 속에 잠든 왕국, 리오 아비세오 국립공원(Rio Abiseo National Park) : ▷ 페루 북부 안데스산맥의 동쪽 경사면, 아마존 분지로 흘러드는 거대한 물줄기 사이에는 세상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신비로운 영토가 펼쳐져 있습니다. 연중 자욱한 안개와 구름에 감싸여 속살을 드러내지 않는 이곳은 유네스코가 인류 전체를 위해 보존해야 할 가장 중요한 장소 중 하나로 선정한 세계유산입니다. 그러나 이곳은 인류의 찬사를 받으면서도, 동시에 인류로부터 철저히 격리되어 있습니다. 이곳이 바로 리오 아비세오 국립공원(Parque Nacional del Río Abiseo, Río Abiseo National Park), 우리가 볼 수 없는 세계유산입니다. ▷ 이 금단의 땅은 두 개의 시간을 동시에 품고 있습니다. 하나는 빙하기의 혹독한 환경을 견디고 살아남아 독자적인 진화의 길을 걸어온 고대 생물들의 시간입니다. 한때 멸종되었다고 믿어졌던 영장류가 다시 발견된 곳이자, 수천 종의 식물과 동물이 자신들만의 세계를 구축한 살아있는 생물학적 도서관입니다. 다른 하나는 ‘구름의 전사들’이라 불리며 안개 낀 고산 지대에 돌의 도시를 건설했던 한 고대 문명이 남긴 시간입니다. 잉카 제국의 정복에 끈질기게 저항했던 이들의 유적은 수백 년간 밀림에 잠들어 있다가, 이제 막 첨단 기술의 힘을 빌려 그 거대한 실체를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