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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본 조선 상세페이지

그림으로 본 조선작품 소개

<그림으로 본 조선> 글보다 한 발짝 앞서 이미지로 보여주는 역사!
그림은 글로 쓴 역사보다 얼마만한 무게를 더 지닐까?

장면 장면이 보여주는 조선의 속삭임과 외침
구석구석에서 포착한 주제들은 또다른 역사의 창窓을 열어준다

무예도가 보여주는 조선왕조 500년을 지탱시킨 조선의 병법들
글을 읽지 못하는 시골 아낙들까지 교화시키고자 그려진 윤리 교과서
섬세한 그림으로 예禮의 모든 것을 표현한 종묘도
조선 기록 문화의 정수를 보여주는 실록과 『국조보감』
몸을 탐색하고 삶과 성욕을 예술로 승화시킨 춘화

규장각 교양총서 제10권 『그림으로 본 조선』 … 이미지를 통해 조선의 또다른 역사를 읽다

규장각 교양총서는 2009년 제1권 ‘조선 국왕의 일생’을 시작으로 조선 사람의 일생과 여행, 그리고 책과 그림 등으로 본 조선을 재구성하면서 이번에 10권을 간행하게 되었다. 이번 주제는 바로 ‘그림으로 본 조선’으로, 즉 ‘이미지’로 조선을 들여다보려는 시도다. 그림 속에는 쉽게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선과 면, 입힌 색의 틈새에서 유무형의 주체가 만들어내는 움직임과 소리가 있고 생각이 담겨 있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아차려야 그림 속의 실상이 온전하게 다가오고 그림 속의 생각을 온전히 공유하게 된다. 조선은 세계적으로 기록문화의 정수를 보여줬던 나라인 만큼, 그 기록 속에서 ‘이미지’도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문文 위주의 역사 읽기를 해온 한국사는 이미지 읽기에 소홀했던 것이 사실이다. 특히 이 기획이 의의를 지니는 것은 미술사에서 거론되는 회화적 이미지를 우선으로 삼지 않고, 조선이 과학, 군사, 사상, 교육, 문학, 종교 등의 분야에 남긴 모든 이미지를 총동원해 역사를 입체적으로 읽어보려고 시도하기 때문이다. 그림 속의 인물들이 우리에게 직접 말을 걸어오거나 혹은 그림을 제작하거나 의뢰한 인물의 숨어 있는 이야기가 ‘읽는’ 행위보다 좀더 직접적이고 풍부하게 다가와 우리의 시야를 넓히고 감성을 흔들어놓을 것이다.

먼저 과학은 어떤 그림으로 그려졌는가를 살펴, 전통시대 사람들의 과학 인식 구조를 들여다보자. 중국이나 조선에서 가장 흔하고 널리 그려진 것 중 하나가 ‘천지도天地圖’다. 이 그림을 보면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 이른바 ‘천원지방설’로, 전통시대 동아시아 사람들에게 가장 널리 받아들여진 이론이다. 하지만 이런 인식은 해와 달이 뜨고 지는 것, 행성들이 별자리 사이를 움직이는 것 등 수많은 천체 현상을 설명해내기에는 무척 거칠고 투박했다. 이때 좀더 정교하게 다듬어져 제시된 것 중 하나가 ‘혼천설’인데, 즉 ‘하늘은 구球처럼 둥글고 구 안쪽에는 물이 절반 정도 채워져 있으며, 그 물 위에는 모난 땅이 떠 있다고 여겼다. 이런 인식을 조선 선비들도 흔히 그렸던 혼천의나 오늘날 국보로 전하는 혼천시계를 통해 엿볼 수 있다.
좀더 진척된 우주론은 기氣로부터 우주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탐구하는 것인데, 송대 유학자들에게서 비롯된 이 논리를 주돈이가 「태극도」라는 그림으로 해설했고, 이후 주희 역시 우주론에서 ‘기의 운동이라는 일관된 원리’로 우주의 생성론과 구조론을 통합해나간다. 그런데 고대와 중세의 우주구조론을 조선시대에 그려진 도상들을 통해 보면 중국의 우주론에 비해 한참이나 단순하고 수준이 낮아 보이는 것은 왜일까? 그것은 조선 전기의 유학자들이 천원지방설을 핵심으로 삼되 ‘유가적 우주론’을 제시하려 했기 때문이다. 즉 그들이 그림으로 나타내려 했던 것은 우주의 구조 자체보다는 유가의 가르침 속에 담겨 있는 우주였다. 이런 인식을 초기에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권근의 『입학도설』에 나오는 우주의 모습이다. 여기서 둥근 공 모양의 하늘 안에 정육면체의 땅이 위치한 것을 볼 수 있는데, 즉 그는 땅이 기에 의해 중앙에 떠 있으며, 바깥쪽 하늘은 기의 회전 속도에 따라 여러 층으로 나뉘고, 가장 바깥쪽 딱딱한 하늘이 둥근 공 모양을 이룬다고 생각했던 듯하다.
이런 우주 구조는 조선의 유학자들 대개가 수용했으며, 그 가장 명확한 증거로 16세기 정지운의 『천명도설』에 나타난 우주의 모습을 들 수 있다. 이 그림에서는 하늘이 구형일 뿐 아니라 검은색과 흰색의 띠를 태극 모양으로 서로 꼬리를 물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 음양의 기가 하늘에서 순환하는 유가 이론을 구현하고 있다. 이 우주론은 당대에 퇴계 이황에게도 영향을 미쳐 퇴계 문집에도 태극도와 그에 관한 글이 남아 있으며, 이후 조선 후기로 접어들면 이익, 홍대용, 이간 등에 의해 저마다 좀더 정교화되고 과학적인 이론들이 발전되어나간다.

두 커다란 차례의 외침을 겪으면서 왕조 500년을 지탱시킨 근간이 무엇인가를 보려면 조선의 전쟁 기술을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오늘날 조선의 병법을 알려주는 무기들이 실물로도 전하지만, 무예도만큼 병법의 기술과 전략을 세세히 알려주는 기록도 드물다. 조선시대에 국왕의 명으로 신숙주 등이 집필한 『국조오례서례』는 오례五禮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는데 그중 하나가 군례軍禮이며, 이 책에서는 거기 실린 창검, 총통완구, 장군화통, 병사들이 입은 갑옷을 살펴보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특히 세종대에 접어들어 화약 무기가 활발히 제작되고 전술적인 면에서 기병을 전면에 내세워 기창 기술이 발달했는데, 『무예도보통지』의 그림들은 세부적으로 어떤 병법들을 발휘했고 이런 기술을 바탕으로 어떻게 여진족을 물리칠 수 있었는지 엿보게 한다.
이후 16세기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조선은 일본군의 조총 사격 전술에 맞닥뜨려 크게 당황했는데, 조총이 도입되기 전에는 근접전 능력이 전투의 승패를 결정지었던 반면, 조총으로 이런 전술은 무력화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점을 해결하기 위해 조선은 새로운 전술과 무예를 필요로 했는데, 이때 명나라군의 각종 화포 및 화전의 대량 사격과 새로운 전술을 익힌다. 명군의 전술은 명 장수 척계광이 계발한 것으로 절강지역에서 처음 사용해 ‘절강볍법’으로 알려져 있다. 이 기술을 우리는 선조 때 편찬한 『무예제보』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여기에는 당시 시급했던 곤棍·장쟁長?·당파??·낭선狼?·등패?牌·장도長刀 등 6종의 무예에 대해 각각 도圖와 보譜를 함께 수록하고 각 보 뒤에는 총도總圖를 실어 총도를 실어 무예를 종합적으로 익히도록 했다. 이후 정조대에는 기병을 강화함과 동시에 기병에게 필요한 다양한 전술과 무예가 제시되었는데, 18세기 후반 기존의 보병 무예 18종에 6종의 무예를 덧붙여 펴낸 『무예도보통지』는 조선 후기의 기병술을 상세히 보여준다.

선비의 나라 조선은 문文을 기반으로 했고, 유교의 가치들은 모두 글을 통해 전해졌다. 하지만 나라를 세우는 힘이 되었던 이 이념을 글(한문)을 잘 몰랐던 백성에게 어떻게 가르치고 교화시켰을까. 우리는 조선에서 가장 많이 제작되었던 행실도류의 책이 그림 반 글 반으로 채워진 것을 보면 어떤 방법으로 유교적 가르침이 전해졌는지 알 수 있다. “우매한 백성과 시골 아낙까지 감화시키라”는 국왕의 명이 그림책 제작으로 이어진 것이다.
삼강행실도가 편찬된 계기는 1428년 김화라는 자가 아버지를 살해한 패륜 사건이 조정에 보고되면서 온 나라가 충격에 빠진 데서 비롯되었다. 이때 관료들은 유교 질서와 가치관을 하루빨리 뿌리내리게 할 방안을 마련하는 데 부심했고, 결국 『효행록』과 같이 널리 효행을 알릴 수 있는 책을 제작해 백성이 항상 읽고 외우도록 하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 드디어 1434년) 『삼강행실도』가 간행되었다. 충·효·열을 강조하고자 중국과 우리나라 역대 사적에서 효자, 충신, 열녀를 각각 110명씩 추려내 행실과 그림으로 엮어 3권3책으로 펴낸 것이다. 이것은 먼저 그림이 그려진 뒤, 뒷면에 한문 설명과 시·찬이 덧붙여진 방식으로 편집되었다. 그림이 맨 앞에 들어간 것은 당연히 문맹인 백성을 위해서였다. 특히 눈여겨볼 것은 그림의 구성 방식과 그것이 재현하는 생생함이다. 가령 열녀 이야기 중 ‘동씨’라는 여인은 집에 침입해 자신을 겁탈하려는 군사들에게 저항하다가 왼팔과 오른팔이 차례로 잘린 끝에 낯가죽이 벗겨져 죽임을 당했다는 이야기가 전하는데, 이것은 3단의 그림으로 ‘효부 동씨가 평소 시어머니를 봉양하는 장면’ ‘시어머니를 보호하며 저항하다가 팔이 잘리는 장면’ ‘군사들이 동씨의 낯가죽을 벗기는 장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렇듯 가장 극적인 장면을 백성이 직접 눈으로 접하도록 한 것은 그들의 ‘감성’에 호소함으로써 기억에 뚜렷이 각인되게 했다. 특히 ‘다원적 구성 방식’이라는 독특한 방법으로 그려진 삼강행실도는 많게는 아홉 장면까지 하나의 그림에 담고 있으며 그 주제들은 살이 벗겨지고 톱질을 당하며 처자식이 눈앞에서 죽어가도 절의를 꺾지 않은 충신들, 자신의 손가락을 끊고 허벅지를 베어 부모의 병을 고치려 한 효자, 부모 봉양에 걸림돌이 된다는 이유로 어린 자식을 산 채로 묻어 살해하려 한 곽거, 일찍이 남편을 여의었다가 개가를 권유받자 자신의 머리카락을 자르고 귀와 코를 베면서까지 개가를 거부한 영녀, 굶주린 군사들에게 사로잡혀 솥에 삶겨질 위기에 처한 남편을 대신해 자기 스스로가 삶겨 죽은 취가 등 결연함과 비정함, 나아가 오늘날의 시각에서는 끔찍함과 충격이 묻어나기까지 하는 이야기들이 숱하게 실려 있다.
이것들은 모두 오늘날의 시각에서 보면 열녀를 강요하는 가부장적 남성 우위 체제를 드러낸다거나, 새로운 나라를 건립해 임금에게 충성할 것을 강조하기 위한 국가의 교화 방책을 보여준다는 식으로 분석할 수도 있다. 19세기까지 한글 번역까지 달아가며 언해본으로도 편찬된 삼강행실도류의 책들은 조선왕조 500년을 지탱한 유교의 허와 실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그림들로 가득 차 있고, 이미지의 강렬함이 이성이 아닌 감성으로 어떻게 사람을 움직일 수 있는가를 극명히 드러낸다.

춘화春?는 조선을 들여다보는 예외적이지만 꼭 필요한 창의 하나다. 글에서는 춘화의 제작 배경과 작자, 기본 구성의 특징을 서술하면서 구체적인 장면 분석에 돌입한다. 점잖은 산수화류에 그림을 그리는 사람의 정신세계가 표현되어 있다면, 춘화에는 그와 반대로 그림을 볼 사람의 정신세계가 표현되어 있다. 가령 과장된 남녀 성기의 묘사가 그렇다. 남자 성기뿐만 아니라 여성의 성기도 남성의 성기 못지않게 적나라하다. 이런 과장된 표현은 가장 은밀한 곳에 깊이 가려져 있었던 것에 대한 반작용이다. 성기의 확장으로 보는 사람의 동공 확장을 염두에 둔 필치는 필시 눌렸던 것의 반동일 공산이 크다.
그에 반하여 표정들은 하나같이 점잖거나 무표정하거나 일상생활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잘 빗겨져 쪽진 머리이거나 갓만 벗었을 뿐이다. 밋밋한 얼굴 표현은 동양화의 대다수가 그러하지만, 어쨌든 노골적인 짓거리와 무심한 표정의 대비는 그로테스크한 충격을 안겨주는 게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신윤복의 그림, 마님과 여종으로 보이는 두 여자가 교미하는 개를 쳐다보며 부끄러운 웃음을 짓고 있는 그림은 독특한 예외다.
간접적인 표현의 춘화들이 보여주는 성적 판타지도 무시할 수 없다. 무거운 가체加?를 올린 두 기생이 나란히 앉고 누워 춘화를 들여다보는 그림을 보자. 채색도 두드러지지 않고 연한 황토빛으로 흘러가는 이 그림은 그 검은 ‘가체’만 유달리 눈에 확연하게 들어온다. 한 여성이 주도적으로 책장을 넘기고, 부끄러워 뒤에 숨은 듯한 또 다른 여인은 치마의 넓은 폭을 이불처럼 깔고 누운 모습이다. 주도적으로 책장을 넘기는 여인은 그러든 말든 신경 쓰지 않고 장면에 열중한다. 치마에 가려져 있지만 앉은 모습이 매우 개방적이다. 이 그림을 감상하는 가장 핵심 포인트는 무심하게 타오르는 촛불이다. 방에 촛불이 켜져 있다는 건 지금이 밤 시간대라는 걸 말해준다. 두 여인은 촛불을 가까이 끌어당겨 한 품의 시야를 열어서 춘화를 보는 중이다. 고작 촛불 하나가 얼마나 밝겠는가. 겨우 그 밑 몇 뼘이나 비출 정도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일까. 불이 춘화를 향해 누워 있다. 바람도 불지 않는 실내에서 왜 촛불이 기우뚱했을까? 옆의 여인이 “나도 좀 보자”며 갑자기 달려들어서 그 바람에 누웠을 수도 있지만 그런 일시적인 장면을 나타내는 것 같지는 않다. 이 촛불은 오히려 춘화에 빠져든 두 여인의 ‘갈급증’을 대변하는 매개물일 가능성이 크다.

조선시대 그림 가운데 눈여겨볼 것 중 하나가 도圖, 도설圖說, 도식圖式, 도해圖解 등의 자료다. 도설은 특히 글과 그림이 서로를 밀어내지 않고 어우러져 사물이나 개념을 설명해냈는데, 형상을 묘사한 것뿐 아니라 설계 도안이나 순서도 같은 것도 있었다. 이것들은 글과 그림의 장점을 동시에 살렸으며, 작성자의 감정을 드러내기보다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는 데 그림을 활용했다. 이런 도설을 쉽게 볼 수 있는 책이 국가에서 편찬한 전례서인 『오례』 『국조오례서례』 『국조속오례의』 『국조상례보편』 『춘관통고』 등이다.
이 책에서는 특히 ‘종묘’의 도설들을 한자리에 모아서 살펴보고 있다. 더구나 조선 후기에 이르면 국가 전례를 행하는 과정에서 병풍이 여러모로 쓸모가 있다며 제례 관련 도설을 병풍으로 기록했는데, 대표적인 것으로 「종묘친제규제도설병풍」을 꼽을 수 있다. 이 병풍은 총 8폭으로 짜여 있으며, 각 폭은 그림을 먼저 그리고 하단에 글을 싣는 식이다. 좀더 자세히 살펴보면 종묘와 영녕전 등의 공간을 먼저 그려 설명한 뒤 주요 의례의 의주를 제시하고, 그다음으로 그와 관련된 기물·악기·복식을 설명하고, 마지막으로 비정기적인 의식이면서 조선 후기로 갈수록 자주 행해졌던 ‘상책보의上冊寶儀’를 기록했다. 이런 병풍을 제작한 목적은 “향소에 두어 각자 늘 보고 준행하게 할 것”이라는 정조의 지시를 보면 파악할 수 있다. 즉 종묘 제향을 담당하는 관원들이 제례 관련 역할들을 잘 수행하도록 늘 곁에 두고 익히도록 했던 것이다. 이 그림을 보면 228명의 관원이 등장해 진행하는 종묘 제향의 모습, 45종의 제기와 그것이 놓이는 방법, 희생으로 쓰였던 고기와 그것을 바치는 관원들의 모습 등 제사의 생생한 풍경을 그대로 접할 수 있다.

이외에 반차도와 각종 지도를 통해 조선왕조실록과 『국조보감』이 사고史庫와 종묘에 봉안되는 과정을 살펴봄으로써 일국의 사초가 갖는 역사의 준엄한 평가를 조선이 얼마나 중요하게 인식했었던가를 살펴보는 것, 국토마저 기氣와 혈穴이 살아 있는 하나의 유기체로 인식하고 영토에 대한 애정과 집념을 드러냈던 각종 지도들을 싣고 있다. 또한 짜글짜글한 주름과 눈매, 시선의 방향, 입 모양, 안색의 미묘한 차이들에 이르기까지 선조의 품성과 인격이 고스란히 드러나게 함으로써 자신이 존재할 수 있게 한 선조에게 보답하고 숭모하고자 제작했던 우리 초상화들, 소설을 활자로만 읽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소설의 스토리와 감흥을 더불어 드러내는 방식으로 그림을 택했던 「구운몽도」 등은 조선의 문화예술을 한 자락 엿보게 한다


저자 프로필


저자 소개

편자 -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규장각은 조선의 22대왕 정조가 즉위한 해(1776)에 처음으로 도서관이자 왕립학술기관으로 만들어져 135년간 기록문화와 지식의 보고寶庫로서 그 역할을 다해왔다. 그러나 1910년 왕조의 멸망으로 폐지된 이후 그저 고문헌 도서관으로서만 수십여 년을 지탱해왔다. 이후 1990년대부터 서울대학교 부속기관인 규장각으로서 자료 정리와 연구 사업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게 되었고, 창설 230년이 되는 지난 2006년에 규장각은 한국문화연구소와의 통합을 통해 학술 연구기관으로서의 기능을 되살려 규장각한국학연구원으로 다시 태어났다.
규장각은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한 국보 지정 고서적, 의궤와 같은 유네스코 지정 세계기록문화 유산, 그 외에도 고문서·고지도 등 다양한 기록물을 보유하고 있어서 아카이브 전체가 하나의 국가문화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문헌에 담긴 방대한 지식과 정보를 토대로 그동안 한국학 전문가들이 모여 최고 수준의 학술연구에 매진해왔다. 최근에는 지역학으로서의 한계를 넘어서 한국학의 세계화, 그리고 전문 연구자에 국한되지 않는 시민과 함께하는 한국학으로 변신을 꾀하고 있다.
학술지 『한국문화』『규장각』『Seoul Journal of Korean Studies』 등을 펴내고 있으며 <한국학 자료총서>(총3권) <한국학 연구총서>(총18권) <한국학 모노그래프>(총40권) 등을 펴냈다.

기획 - 이영경

목차

규장각 교양총서를 발간하며
머리글|인생의 궤적軌跡, 일상의 기록-조선시대 일기와 소통하다

1장"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
_그림으로 보는 우주론 전용훈·한국학중앙연구원 인문학부 교수

2장 왕조 500년을 지탱시킨 조선의 병법들
_무예도로 본 전쟁의 기술 노영구·국방대 군사전략학부 교수

3장"우매한 백성과 시골 아낙까지 깊이 감화시켜라"
_『삼강행실도』에 그려진 충·효·열 이영경·규장각한국학연구원 HK연구교수

4장 이야기, 소설 그리고 그림
_「구운몽도」가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들 정병설·서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5장 그림이 삶의 행복을 가져다줄 수 있을까?
_조선 사람들의 바람을 담은 민화 정병모·경주대 문화재학부 교수

6장 털 올 하나 놓치지 않는 사실정신을 구현하다
_사대부 초상화의 전개 조선미·성균관대 예술대학 명예교수

7장 섬세한 그림으로 예禮의 모든 것을 표현하다
_그림으로 보는 종묘 이욱·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연구원

8장 조선 기록문화의 정수를 보여주다
_그림으로 본 실록과 『국조보감』의 봉안 조계영·규장각한국학연구원 HK연구교수

9장 옛 지도에 담긴 옛사람들의 생각
_지도로 본 조선시대 영토와 국경 인식 윤대원·규장각한국학연구원 HK연구교수

10장 삶과 성욕의 예술, 춘화의 운명
_한국의 춘화 엿보기 김헌선·경기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11장 조선 민초를 닮은 신들의 세계
_무속신의 형상과 본풀이 박종성·한국방송통신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참고문헌 및 더 읽어볼 책들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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