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아마도 많은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 것이다”
‘폴리아모리로 점철된 삶’을 살아가는 인디펜던트 워커, 정예인의 삶과 사랑
정예인을 둘러싼 단어들은 대개 낯설다. 그가 자신을 이루는 주요한 요소로 내세우는 폴리아모리polyamory, 오픈릴레이션십 등의 키워드는 오늘날 한국에서 여전히 자극적이거나 도발적인 방식으로만 기능한다. 그의 말을 빌리면 “너무 문란한 것 아니냐고!” 같은 반응도 쉽게 불러일으킨다. 모노가미monogamy, 즉 일대일 연애관계가 지극히 당연한 체제로 여겨지며 여성/남성의 성역할이 명확히 구분된 한국 사회에서, ‘비독점적 다자연애’라거나 ‘비-일부일처제’ 같은 단어는 파문을 일으키고 안정적인 세계의 표면에 금을 내는 듯하다.
그러나 이런 파문 혹은 금에 주목하기 전에, 이 단어들을 정체성으로 끌어안고 살아가는 삶들을 먼저 살펴보겠다. 세계에는 실제로 ‘비독점적인’ 그리고 ‘비배타적인’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때로 자신이 “지구에 불시착한 외계인”처럼 느껴지거나 국가와 사회의 안전망에서 소외된다고 해도, 이들은 자신이 살아가는 방식을 바꾸지 않는다. 그 방식이야말로 그들이 최선을 다해 사랑할 방법이기 때문이다.
다시 정예인을 둘러싼 단어들로 돌아와보자. 여기 출판편집자이자 기획자, 인디펜던트 워커, 그리고 ‘폴리아모리로 점철된 삶’으로 자신을 소개하는 사람이 있다. 그는 그간 퀴어 문화를 비롯해 장애와 몸, 페미니즘과 하위문화 연구 등에 관한 책을 기획·편집하며 동시에 자신의 삶을 이루는 정체성에 관해 부단히 고민해왔다. 누군가를 소유하지 않고 사랑하기 위해, 그리고 내면에 자리한 본연의 외로움을 마주할 방법을 찾기 위해, 그는 다양한 이를 사랑하고 각각의 차이를 끌어안는 방식을 계속해서 탐구해왔다. 그는 오늘도 더 나은 관계를 위해, 새로운 형태의 가족을 위해, 무엇보다 최선의 사랑을 위해 미지의 세계에 발을 내딛고 있다. 이 책은 이러한 걸음들을 비롯해 끊임없는 고민과 싸움, 사랑과 탐구를 담은 저자의 첫 번째 책이다.
“나로 살아가는 일은 위험하다. 기어코 이런 글을 쓰는 것도 그 일환이다”
주류의 바깥 혹은 그 너머의 영역을 향해 발을 내딛는 이의 사랑 이야기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 저자는 자신의 삶을 이렇게 ‘진단’한다.
“2007년 처음 연애한 남자와 2015년 결혼했다. 2020년 그와 오픈릴레이션십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했다. 그해 여름, 나에게 여자친구가 생겼고 2년 반 동안 안정적인 폴리아모리 관계를 유지했다. 2023년 우연히 서정을 만난 첫날 사랑에 빠졌다. 이로 인한 관계의 역동 끝에 큰 변화를 선택하거나 받아들여야 했다.”
저자가 ‘진단’에서 이야기하는 관계는 보편적으로 거의 보이지 않거나, 제대로 말해지지 않는다. 자유연애 및 결혼의 개념은 근대에 와서야 확립되었지만, 오늘날 대부분의 ‘로맨스’와 ‘사랑’은 연애와 결혼의 형상으로 다뤄진다. 이 형상은 다양한 매체 안에서 무수한 콘텐츠로 제공되며, 많은 이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감정의 곡절을 유도한다. 물론 이때 로맨스를 이루는 이들은 주로 두 명이며, 많은 경우 여성과 남성으로 이뤄지고, 대개 시스젠더이며, 일대일 관계를 통해 사랑을 싹 틔운다.
이런 식의 사랑 이야기에 공감하기란 쉽다. 오늘날의 사회에서 가장 많은 이가 사랑하는 방식과 닮았기 때문이다. 소위 ‘정상’적인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러나 실제 세상은 정상의 이야기로만 작동되지 않는다. 세상의 어귀, 변두리, 근방…… 즉‘주류’를 일컫지 않는 단어 속에서도 사랑은 싹트며 기운차게 움직인다. 조금만 눈길을 돌린다면 그 운동을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퀴어’로 호명되는 이들의 움직임, 그리고 주류의 생각보다 훨씬 더 넓고 방대한 관계와 사랑의 면면이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오픈릴레이션십은 성적․낭만적 관계에서 “한 명 이상의 당사자가 관계 외부의 사람과도 성적․낭만적으로 연결될 가능성을 열어두기로 함의한 관계를 뜻”한다. 이는 1970년대부터 인식된 개념이며, 그로부터 여러 사람의 시도와 경험을 거쳐온 방식이기도 하다. 그중에서도 특히 유명한 사례인 보부아르와 사르트르의 계약결혼의 1항(‘서로 사랑하고 관계를 지키는 동시에 다른 사람과 사랑에 빠지는 것을 허락한다’)을 보자. 도발적으로만 읽혀왔던 이들의 계약은 관계를 맺는 두 사람이 서로를 독점하거나 소유하는 대신, 상대를 더 포괄적으로 사랑하기 위한 시도였다. 그들이 기존에 확립된 사랑의 틀을 깨고자 했던 이유는 결국 한결 나은 방식으로 서로를 대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정상’에서 한참 벗어난 존재로 자기 자신을 정의하는 정예인의 이야기 또한 마찬가지다. 그가 기존의 안정적인 구조, 즉 회사원이나 ‘정상가족’의 일원이라는 신분을 포기하며 선택한 것은 불안정하며 앞날을 예측할 수 없는 미지의 영역이다. 그가 이러한 선택을 하는 것은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는 삶을 간절히 바라기 때문이다. “내가 더 내가 되어갈수록 살갗을 스치는 공기는 사포처럼 따갑게 느껴”지지만, 그는 자신의 ‘최선’을 포기하지 않는다. 저자의 사랑은 이처럼 ‘최선’을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싸우는 과정으로 가득하다.
온몸으로 사랑하는 이의 일상과 창작, 그리고 싸움과 대화의 과정
“매일 무언가를 알게 된다. 알고 싶지 않아도 어쩔 수 없다. 이 길로 와버렸다”
오랜 기간 만나온 남편과 오픈릴레이션십에 관해 논의하고 본인의 정체성과 상황 모두 긍정하는 여자친구와의 만남을 시작한 이후, 저자는 어머니에게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털어놓기로 마음먹는다. 본문에서 그 방식은 더할 나위 없이 담백하게 이뤄진다.
“사실 사람이 평생 한 사람만 사랑하긴 어렵잖아. 그리고 동시에 여럿을 사랑할 수도 있잖아. 근데 이걸 하려면 사랑하는 사이에서도 상대를 소유하거나 모두 통제하지 않으려고 노력해야 되는 거지. 규칙도 필요하고.”
“와, 그거 되게 좋은 거네? 앞으로 점점 그런 쪽으로 세상이 바뀔 수도 있겠다.”
“그치? 그 좋은 걸 내가 하고 있어.”
여전히 ‘커밍아웃’하면 심각하거나 비장한 분위기를 떠올리는 한국 사회에서, 본인의 삶과 사랑을 얘기하는 저자의 태도는 산뜻하고 분명하다. 그는 자신이 추구하는 관계의 형태를 “좋은 것”이라고 분명히 말하며, 그 관계 속 자신의 모습도 거침없이 드러낸다.
그렇다고 해서 저자가 겪는 삶과 사랑의 형태가 언제나 깔끔하거나 단순한 것은 아니다. 실은 그 반대라고 해야 옳을 테다. 저자는 “사랑만 붙잡고서 겨우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순간을 종종 통과하며, 기존에 쌓아 올린 안정적인 관계와 상황을 무너뜨리는 상황에서 “여러 양가감정 사이에 짓눌려 있다”. 그 와중에 자신이 겪는 상실을 덥석 끌어안아 이별의 모양을 낱낱이 살핀다. 저자에게 있어 사랑은 한순간의 행복과 풍요만을 뜻하지 않는다. 그는 사랑이 가져다주는 불안과 슬픔 또한 목록으로 기록하며, 그로써 벌어지는 비극을 들여다보길 멈추지 않는다.
이러한 끈기는 그가 일하는 태도에서도 드러난다. 편집자인 저자는 출판업이 점차 영세사업으로 여겨지는 시기에 책을 만들면서, 여전히 책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노라고 생각한다. 그런 생각에 민망한 웃음을 흘린다 해도 일을 대하는 태도 자체는 변치 않는다. 저자에게 책을 만들고 글을 쓰는 일은 사랑의 형태를 만들어가는 일과 마찬가지로 ‘나로 살기 위해 분투하는 일’이다. 그렇기에 언제든 두렵고 어색하면서도 “매일 실패하는 기분을 견디”게 만들어주는 과정이기도 하다. 업무로 인한 번아웃 증후군 때문에 집 바깥에 나가는 것이 두려워지는 순간도, 무엇도 하지 못하고 자괴감에 빠지는 나날도 생기지만, 그는 그 시간 역시 기록하며 끈질기게 바라본다. 가장 바닥을 들여다보는 일에서부터 어떤 변화가 생길 수 있노라고 믿는 사람처럼.
최선을 다해 사랑한다는 것은 어쩌면 삶의 순간순간에 집중한다는 뜻이다. 혹은 자기 자신이 되기 위해 계속해서 세계를 응시한다는 의미다. 그렇기에 저자의 분투에는 여러모로 불편한 구석이 있다. 그는 꾸준히 공격적이며 본인의 못난 면을 숨기지 않는다. 기존의 사회와 제도에 대한 비판과 설움을 펼치는 동시에 타협하지 않는 방식의 삶을 계속해서 발명해나간다. 때로는 불편하고 간혹 당황스러운 이 발명 속에, 자기 삶을 스스로 만들어나가는 이 특유의 뜨거움이 도사리고 있다.
그리하여 다시, 최선을 다해 사랑한다는 것
낯선 관계의 이름 사이를 걸어 발견한 또 다른 사랑과 관계
낯선 것은 주로 흥미롭다. 멀리서 바라볼 때라면 특히 그렇다. 그러나 기존 사회의 통념과 다른 존재 혹은 개념이 세상에 변혁을 요구하는 순간, 이들은 거센 질타를 받는다. 세상이 그들의 낯섦을 경계하는 이유는 결국 그들이 불러오는 균열 때문이다. 일견 안정적으로 보여왔던 세계에서 그간 ‘없던 것’, 즉 그동안 ‘보이지 않던 것’의 등장은 필연적으로 제도나 인식 등의 변화를 요구한다. 그리고 많은 경우 변화는 기존의 안정을 누리던 이들의 평화를 깨트린다.
이 책에서 저자는 안정적으로 보이는 지금의 사회가 실은 다양한 소수자의 목소리를 억압함으로써 유지되는 체계임을 지적한다. 그는 친족관계나 이성애 중심적으로 구성된 가족의 개념에 반기를 든다. 기존에 없는 가족의 명칭을 만드느라 종종 “골이 아프고 진이 빠지기도” 한다. 저자는 회사와 가족 제도에서 벗어난 자신이 계급적으로나 경제적으로 하강하는 과정부터, 기존 관계와 분열하는 방식 등을 세세히 그려낸다. 또한 자신을 구성하는 관계가 국가 및 사회의 안전망 바깥에 있기에 느끼는 “불안과 소외감”을 끈덕지게 드러내 보인다. 더불어 자신이 고른 ‘선택가족’이 어떻게 삶을 충족하며 나를 ‘나’로 만드는지 이야기한다.
그러므로 저자가 말하는 ‘최선의 사랑’은 관계에 투사하는 감정만이 아니다. 그의 최선의 사랑은 관계를 맺는 이들이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기 위한 싸움이며, 세상의 변화를 촉구하는 여정이기도 하다. 저자는 지금껏 가본 적 없는 길, 안 해본 방식, 누구도 아닌 애매함을 단단히 끌어안고 자신만의 길을 가고자 한다. 이 책은 기존과는 조금 다른 관계 맺음의 방식을 통해 새로운 지평선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이의 여정이자, 지금의 세계에 균열을 일으켜 더 다양한 색채를 불러오고자 하는 몸짓이다. 그의 첫 책을 통해 정예인의 말하는 다양한 사랑에 다다를 수 있길, 또 그가 확장하는 사랑의 세계에 한 걸음 들어서길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