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자의 눈으로
차별의 막대한 비용을 분석하다!
성소수자 인권을 옹호하는 새로운 논리
- 사회는 얼마나 많은 성소수자 인재를 놓치고 있는가?
- 성소수자를 배척하는 기업은 얼마나 큰 손해를 보고 있는가?
- 국가가 성소수자 혐오로 인해 감당하는 비용은 얼마나 될까?
2020년 6월 차별금지법이 발의된 후 계류된 지 꼭 4년이 지났다. 차별금지법 권고법안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2003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20년 넘게 반대에 부딪히고 있다. 한국 바깥에서는 아직 39개국이 동성애를 범죄로 규정하며 11개국은 동성 성관계를 사형에 처한다고 한다. 각국의 정책 결정권자들, 기업의 의사 결정자들을 더욱 효과적으로 설득할 길은 없을까? 인권이라는 가치와 평등이라는 사상에 반하지 않고서도 강력한 지지의 근거가 되어줄 무언가가 없을까?
이 책은 그런 아쉬움을 덜어줄 직접적인 대안이다. 30년 이상 LGBT와 경제학을 엮어 탐구한 저자는 ‘성소수자를 포용하면 실질적인 이득이 뒤따른다’고 주장한다. 일견 이해타산적이기만 한 접근으로 비칠 수 있지만, 저자가 제시하는 방대한 양의 통계와 당사자들이 직접 겪은 경험을 접한다면 그렇지 않음을 알게 될 것이다. 성소수자를 위한 ‘경제적 논리’는 오히려 정치와 경제 분야의 결정권자들에게 인권이라는 이상을 제시할 견고하고 새로운 사고 틀이다. 저자가 다년간 축적한 자료는 차별의 비용이 우리 생각보다 훨씬 막심했음을 보여준다. 차별을 멈추지 못한다면 우리는 ‘영구적인 경기 침체’를 겪는 것이나 매한가지다. 결정권자들에게 그 계산서를 제시함으로써 우리는 성소수자 지지를 위한 새로운 길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차별은 공짜가 아니다
저자는 먼저 성소수자가 교육, 고용, 건강에서 어떤 차별에 직면하고 있는지, 그 사회적 비용이 얼마나 되는지를 통계적으로 보여준다. 미국에서 수행된 어떤 조사에 따르면 13~21세 LGBT 학생 가운데 85퍼센트가 언어적 괴롭힘을 경험했다. 심지어 진보적인 국가라고 알려진 핀란드에서도 LGBT 학생의 36퍼센트가 성적 지향을 이유로 괴롭힘에 직면했다. 경제학계에서는 교육과 경제성장 간의 연관성이 밝혀진 지 오래다. 국가의 경제를 견인하는 ‘인적 자본’은 교육을 통해 축적된다. LGBT가 단지 LGBT라는 이유만으로 교육에 방해를 받는다면 이들의 학력과 장래 임금이 저하되고, 결국 보이지 않는 사회적 손실이 계속 누적된다.
고용 시장에서도 차별의 비용은 막대하다. 일례로, 미군에서는 성소수자를 방출하느라 1993~2010년에만 최대 5억 달러를 지출했다. 고숙련 전투기 조종사나 아랍어 전문가처럼, 매우 희소한 병력이 성소수자라는 이유만으로 강제 제대하면서 인력을 새로 조달하고 훈련하는 비용이 급증했던 것이다. 이렇게 드러나는 비용 외에도, 직장에서 정체성을 숨기기 위해 불필요한 노력을 들이느라 생기는 암묵적인 비용도 있다. 동료에게 정체성을 들키지 않기 위해 업무에 투자했어야 할 자원을 소모하는 것이다. 이렇게 소수자를 차별하는 기업 문화가 비용을 발생시킨다는 사실은 이미 수십 년 전에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게리 베커에 의해 논증된 바이기도 하다.
건강 또한 인적 자본의 일부다. 만약 LGBT가 LGBT라는 이유만으로 건강 문제를 더 많이 겪고 있다면 또 하나의 비용이 발생하는 셈이다. 2000년부터 수없이 많은 연구가 LGBT와 비LGBT의 건강을 비교했는데, 자살, 우울, 불안, 약물 사용, HIV, 암 등 여러 부문에서 LGBT의 건강 문제가 유독 심각하다는 것이 드러났다. 일차적으로는 성소수자로 살아가면서 발생하는 ‘소수자 스트레스’가 건강 상태의 격차를 발생시키지만, 직원의 동성 동거동반자를 근로 보험 대상에서 배제하고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병원 진료를 거부하는 등 구조적인 문제 또한 여기에 결부된다. 건강이 나쁘면 교육받고 노동하기가 어려워지고, 이로 인해 소득이 감소하면 건강이 더욱 취약해지는 굴레 또한 끝없는 비용을 발생시키고 있다.
성소수자를 배제하면 경기가 침체된다
저자는 성별 정체성만을 이유로 불합리하게 소득이 감소한다면 그만큼 생산과 소비가 줄어든다는 데 착안한다. 한 국가에서 성소수자 인구가 얼마나 될지 조사하고, 그들의 평균 임금을 파악하고, 전체 평균과의 격차를 추정한다. 이 격차와 성소수자 인구의 곱은 국가가 차별로 인해 경험하고 있는 암묵적 손실에 해당한다. 건강 부문에 대해서도 비슷한 접근법을 취해, ‘죽지 않아도 되었을’ 성소수자 사망자가 얼마나 되는지를 고려하여 이들이 총생산에 얼마나 기여할 수 있었을지를 계산한다. 그렇게 연구한 바에 따르면 인도의 경우 성소수자 혐오로 인해 GDP의 약 1퍼센트만큼 손실을 겪고 있었다. 케냐의 경우 1.6퍼센트,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경우 최대 5.7퍼센트의 손실이 추정되었다.
국가 경제에서 GDP가 이만큼 감소한다면 정부와 학계는 경기 침체라 판단하고 즉각 조치를 취할 것이다. 그러나 각국 정부는 이 차별 비용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측정하기 어려워 미지로 남아 있는 비용도 많다. 교육 기회의 상실이 인적 자본 규모를 얼마나 감소시키는지, 성소수자의 가족이 얼마나 큰 비용을 지출하고 얼마나 많은 투자 기회를 잃어버리고 있는지, 성소수자 혐오로 인해 인재가 얼마나 유출되고 있는지 등은 숫자로 표현하기도 어렵다.
기업들은 성소수자 차별에 조금 더 기민하게 반응해오고 있다. 일례로, 2016년 노스캐롤라이나에서 트랜스젠더가 화장실을 자유롭게 이용하지 못하도록 규제하는 일명 ‘화장실 법안’이 발의되었을 때 기업들이 앞장서 반대에 나섰다. 주에서 일자리 투자 계획을 철회하고, 설비나 사무실을 철수시키고, 행사 개최지를 옮긴 것이다. 그 결과 노스캐롤라이나주는 12년 동안 37억6000만 달러 규모의 손실을 입을 것으로 추산됐다. 이 기업들은 성소수자를 포용하는 데서 발생하는 이익을 잘 알았다. 차별에 반대하면 게이 소비자라는 틈새시장에 진출하고, 포용적인 분위기를 조성해 인재를 잡아둘 수 있다. 수많은 통계적 연구도 이를 뒷받침한다. LGBT에게 친화적인 정책을 도입한 기업은 주가가 급등했고, 중요한 특허를 출원하는 횟수가 늘어났다. 또한 소비자들이 차별적인 기업에 보이콧을 선언하는 일도 빈번해지면서, 성소수자에 대한 포용력이 기업의 브랜드 가치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반대로 말하자면, 성소수자를 차별하는 기업은 이런 막대한 이익을 놓치고 있는 것이다.
인권과 경제의 상생을 위해
성소수자를 경제적 논리로 옹호할 때 어떤 인권운동가들은 우려를 표하기도 한다. 인권은 ‘상품’이 아니며, 이러한 접근법은 권리에 가격표를 붙이고 경제적 기여도가 낮은 소수자는 배제하게 될 것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 내세우는 LGBT 경제학은 인권의 대체재라기보다 보완재다. 경제적 논리는 인권이라는 기반 위에서 펼쳐지고, 인권 담론은 경제를 고려하면서 단단해진다.
이미 세계은행과 유엔 등 국제 조직과 여러 국가의 인권 단체는 인권운동에 경제적 논리를 결합시키고 있다. 예를 들어, 우간다에서 반동성애법이 통과됐을 때 활동가 집단은 인권에만 호소하는 대신 우간다에 진출해 있는 국제 기업들을 호명했다. 자사의 브랜드 가치와 성소수자 직원의 안전을 고려해 법안에 우려를 표해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또한 호주의 태즈메이니아에서는 혼인 평등이 결혼산업과 관광 부문에서 커다란 사업 이익을 창출하리라는 전망에 힘입어 평등 법안의 지지 여론이 형성되었다.
그런 예에서 알 수 있듯, 이 책의 논리는 인권운동가들이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도록 돕는 강력한 도구다. 결국 우리 삶에 물리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정책과 법을 제정하기 위해서는 관료와 기업들을 압박해야 하고, 그러려면 인권이라는 가치와 함께 인권이 어떤 이익을 가져다줄 수 있는지를 제시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소수자를 포용하는 것이 손실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를 이들에게, LGBT 경제학은 포용에 함축된 실질적 이득까지 알려줌으로써 변화를 위한 전환의 계기를 마련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