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0만 원으로 시작해 9시간 만에 70억 원을 따고, 온가족의 목숨을 건 ‘죽음의 바카라’에서 살아남은 승부사! 천국과 지옥 넘나든 카지노 여행 10년을 자살로 마감한 ‘마카오 도신’이 온몸으로 쓴 도박 정글의 미친 인간 기행!
마약보다 백 배 지독한 카지노 중독
지난 10년 동안 나는 무엇을 위해 동남아를 떠돌면서, 쫓기고 도망가며 살아왔을까?
스물넷의 나이에 우연히 들어가 본 마카오 카지노에서 70억 원이라는 거금을 따고, 비자 문제로 잠시 넘어간 말레이시아 겐팅 하이랜드에서 10일 동안 10억 원을 따고, 그러고도 수십 번을 몇 억 원씩 땄으면서도 지금 내게는 왜 돈이 한 푼도 없는 걸까?
왜 네 명의 불쌍한 여자들 인생을 망치고 말았을까? 나를 낳아준 어머니와 길러준 외할머니, 언제나 함께 살아온 누나와 누구보다 나를 사랑한 여인의 눈에 왜 피눈물을 흘리게 했을까?
모든 것이 카지노 때문이었다. 카지노 환상 여행에 미쳐서 다른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카지노 중독 탓이었다.
어쩌면 그렇게 황홀할 수 있었을까? 카지노의 ‘카’자만 떠올려도 내 모든 정신과 마음이 불을 켜고 일어나며 영혼이 송두리째 빠져드는 것이었다. 그럴 때면 세상의 어떤 것도 나를 붙잡지 못했다.
혈혈단신 홍콩에 들어와 식당 주방 일부터 시작해 단체관광 팀 가이드가 되고, 오뚝이처럼 일어서서 홍콩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드는 유명 여행사를 키워낸 어머니의 사업이 흔들리는 것도, 절룩거리는 무릎에 피멍이 들도록 교회에 찾아가 꿇어 엎드리시던 할머니의 처절한 기도도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피를 나누고 남매가 된, 11개월 먼저 태어난 누나가 어머니와 함께 가이드 일을 하고, 어머니와 함께 발이 붓도록 뛰어다녀 번 돈을 하루저녁에 카지노 귀신에게 전부 갖다 바쳤다.
눈을 감으면 오로지 화려한 성 안에서 펼쳐지는 성대하고도 황홀한 파티뿐이었다. 눈부신 원색 드레스를 입은 카드들이 춤을 추고, 슬롯머신들이 풀 오케스트라의 웅장하면서도 아름다운 교향곡을 연주했다. 그곳은 피가 끓고 가슴이 뛰는 천국이었다. 그러다 모든 것을 잃고, 파멸이 찾아왔다.
이 글은 한 젊은 탕아의 참회록이다.
지금도 마카오와 필리핀, 말레이시아 등의 동남아는 물론 미국 라스베이거스나 애틀랜타 시티 그리고 세계 곳곳에 널린 카지노에서 한국의 수많은 탕아들이 ‘카지노 천국’의 환영에 사로잡혀 있다.
나라 밖뿐만 아니다. 나라 안에서도 내국인 출입 카지노가 있어 수많은 탕아들을 배출하고 있다. 지금까지 숱한 사람들이 카지노에 빠져 재산을 잃고, 일과 가정까지 잃어 패망의 길로 들어섰다는 말을 들었다.
이제 앞으로 더 많은 카지노들이 영업을 시작한다니 얼마나 더 많은 이들이 카지노 때문에 인생을 망칠 것인가? 그들과 한국 사회에 조그만 경종이라도 울렸으면 좋겠다.
<책 속으로>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했던가, 5만 홍콩달러를 가지고 시작했는데 신들린 놈처럼 한 게임을 끝내고 보니 70만 홍콩달러가 넘어 있었다. 한국 돈으로 무려 7000만 원이었다.
보통 새 카드를 가지고 와서 셔플을 하면 20분 정도 시간이 걸린다. 셔플을 하는 동안 뱃속에서 밥 달라는 신호도 오고해서 지하 1층에 가서 볶음밥에 새우요리를 시켜먹고 다시 카지노에 들어갔는데, 좀처럼 빈자리를 찾을 수가 없었다.
이리저리 찾아다니다 밖으로 나오자 에스컬레이터가 보였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지금까지 카지노에 들어와 지상 1층과 지하 1층만 돌아다녔을 뿐, 2층을 올라가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2층부터 4층까지 각 층을 돌아보았다.
1, 2, 3층에 비해 4층은 조용하고 사람들도 적었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VIP룸’이라는 팻말이 붙어있었다. 최소 베팅 금액을 보니 한 판에 2000홍콩달러에서 2만 홍콩달러이고, 최고 베팅은 50만에서 120만까지 쓰여 있었다.
나는 빈자리를 찾아 앉았다. 최소 베팅 1만 홍콩달러, 최고 베팅 50만 홍콩달러. 그림을 보니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다.
나는 70만 홍콩달러를 테이블 위에 두고 베팅을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도 도저히 나 자신이 이해가 안 되는 것은, 그 때 무슨 배짱으로 처음부터 10만 홍콩달러 이상씩 베팅을 했느냐 하는 것이다. 무엇에 홀린 듯 주제도 모르고 간이 배 밖으로 나왔던 모양이다.
“도산, 도산!”
뒤에서 구경하던 중국인들이 소리를 내며 술렁거렸다. 나를 보고 도신(賭神), 즉 ‘도박의 신’이라는 것이었다.
같은 테이블에 앉아서 게임을 하던 중국인들도 내 눈치를 살폈다. 내가 먼저 뱅커나 플레이어 중 하나를 골라 베팅을 하면 앞 다투어 따라왔다. 마카오가 속한 지역인 광둥 말로 플레이어는 ‘한’이라 하고 뱅커는 ‘쫑’이라 했다.
게임 중간쯤에 플레이어가 한 번 이기고 열두 번을 계속해서 뱅커가 이기고 있었다. 그 때는 어차피 열 번 이상 이겼으니 한 번 죽는다는 중국 사람들의 게임 방식에 따라 모두들 플레이어에 베팅을 하는데, 갑자기 머릿속이 싸해지는 느낌이 들더니 플레이어에 가기가 싫어졌다. 주위에 있던 중국인들이 왜 안 가느냐는 듯이 나를 쳐다보았다.
순간 나는 50만 홍콩달러를 뱅커에 베팅했다, 진짜 도신이라도 된 것 같았다. 그러자 주위에 있는 수십 개의 시선이 내게로 향하며 테이블이 조용해졌다. 나는 뱅커에 가지 말라는 중국인에게 오른손의 검지를 펴서 머리를 쿡쿡 찔러 보이며 고집을 꺾지 않았다.
중국인들은 슬슬 눈치를 보더니 플레이어에 조금씩 더 베팅하는 것이었다. 나는 뱅커에 50만 홍콩달러를 먼저 베팅해 놓았으므로 그들은 100만 홍콩달러까지 갈 수 있었다.
“얼마든지 맞춰줄 테니까 가고 싶은 대로 가세요.”
나는 큰소리를 치며 300만을 베팅하고, 반대로 간 중국인들은 열댓 명이 모두 합쳐 350만을 베팅했다. 딜러가 뱅커와 플레이어에 베팅한 돈의 액수를 확인하고 정확히 50만 홍콩달러의 차이가 나자, 왼손으로 땡땡 종을 두드리고는 카드 통에서 한 장, 한 장 카드를 꺼내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꺼낸 카드는 손님에게 한 번 보여주고 카드 통에 버린다. 이것을 밸리 카드라고 하는데 다이아몬드 K였다. 그 다음 플레이어에 먼저 한 장 주고 다음에 뱅커에 한 장 주고, 플레이어 주고 뱅커 주고, 그렇게 카드를 나눠주었다.
나는 카드 두 장을 포개어 가로로 눕히고 조심스럽게 양손 손가락으로 조금씩 파들어 가보니 한 장은 클로버 Q, 한 장은 다이아몬드 A, 합쳐서 한 끗이었다. 순간 고개를 들어 반대편 중국인들을 쳐다보니 모두 시선을 나에게 고정시키고 있었다.
바카라는 무조건 플레이어가 먼저 잡은 점수를 보여줘야 한다. 그렇지만 나는 얼굴에 미소를 띠며 먼저 카드를 오픈했다.
“오 쫑 얏 딤(나, 뱅커 한 끗이오)!”
내가 먼저 카드를 오픈하자 그 때까지 나를 쳐다보고 있던 중국인들은 거의 동시에 외쳐댔다.
“둬제, 둬제(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둬제, 사이야(감사합니다, 당신).”
“로반, 둬제(사장님, 감사합니다).”
그 모습이 마치 양계장에서 사료를 줄 때 일제히 모가지를 밖으로 내놓고 먹이를 쪼아대는 닭들을 연상케 했다.
바카라는 판마다 돈을 가장 많이 베팅한 사람에게 카드를 볼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진다. 플레이어 쪽을 간 사람들 중 대표로 50대 초반의 앙증맞게 수염을 기른 중국인이 카드를 보기 시작했다. 그 주위에 있는 중국인들은 목청을 돋우어가며 큰 소리로 응원을 했다. 대표적인 중국인 스타일이었다.
“초이, 초이(이겨라, 이겨라)!”
“용종 까우딤아(9자 두 개 나와라)!”
“까우딤아, 까우딤아(아홉, 아홉)!”
“얏지통 빳지(1자에 8자)!”
50대 초반의 중국인은 혼신을 다하여 카드를 보는 것 같았다. 한 장을 먼저 오픈했다. 클로버 2였다. 다음 한 장은 가로로 먼저 보더니 천천히 세로로 돌렸다. 주위에 있던 중국인들이 일제히 소리쳤다.
“록지, 찻지(6자, 7자)!”
한참 신중하게 지켜보던 중국인들은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클로버 10이었다. 플레이어 두 끗, 뱅커 한 끗! 어느 쪽도 여덟 끗 이상을 잡지 못했다. 룰에 따라 딜러는 카드 통에 손을 갖다 대더니 신중하게 카드를 빼내어 플레이어 먼저 주고, 다음 카드를 조심스럽게 뱅커에게 주었다.
나는 속으로 그림만 잡지 말라고 빌었다. 한 끗이니 9자 위는 모두 지는 숫자였다. 그림도 모두 0으로 치므로 40퍼센트 이상이 지는 카드였다.
카드를 받아 애벌레가 사과 속살을 파먹듯이 조심조심 파들어 가보니 그림이 보였다. 하트 J였다.
처음처럼 중국인들은 나에게 시선을 집중하고 결과를 주시했다. 나는 잠시 생각했다. 상대는 두 끗, 나는 한 끗이니 어차피 95퍼센트 이상 진 게임이었다. 그래, 이럴 때는 매너나 좋게 하자 하는 심정으로 말했다.
“도이음찌, 워 하이 빳지야(죄송합니다, 나 8자입니다).”
그 소리에 중국인들은 실망하는 눈초리에 웅성웅성 원망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웃으며 카드를 오픈했다. 8자가 아닌 하트 J, 한 끗 그대로였다.
“이디 메레가(이거 뭐야)!”
“레이 하이 꿍자이마(당신 0자 아냐)!”
내가 중국인들을 보면서 8자 잡았다는 건 농담이었다고 하자 일제히 얼굴을 활짝 펴며 외쳤다.
“모먼타이, 모먼타이(괜찮아요, 괜찮아요)!”
50대 초반의 중국인은 카드를 신중히 파들어 갔다. 양손 엄지와 검지로 카드를 움직이지 못하게 고정시키고 두 손가락을 이용해 부드럽게 여인의 속살 쓰다듬듯 카드를 조금씩 밀었다.
기가 살아난 중국인들은 한목소리로 외쳤다.
“꿍자이, 꿍자이, 꿍자이라(그림, 그림, 그림아)!”
플레이어는 현재 두 끗이고 뱅커는 세 장 전부 합쳐 한 끗이니 8자만 안 잡으면 1부터 그림까지 어떤 숫자를 잡아도 이긴 게임이었다. 9자를 잡으면 무승부.
콧수염 중국인은 혼신을 다하여 이마의 땀까지 닦아가면서 신중에 신중을 거듭했다. 가로로 보던 카드를 세로로 돌렸다. 그것을 보니 일단 1, 2, 3, J, Q, K는 아니었다. 그것은 가로로 보아도 금방 알 수 있는 숫자다. 천천히 카드를 열던 그는 다시 세로로 돌렸다. 이제 4, 5, 9, 10자도 아니다. 그렇다면 6, 7, 8이다.
뒤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중국인들은 일제히 외쳤다.
“록지, 록지, 초이, 초이(6자, 6자, 이겨라, 이겨라)!”
신중하게 카드를 까던 콧수염은 이번에는 반대편으로 다시 카드를 돌렸다. 6자는 아니다. 7자 아니면 8자다. 정말 죽느냐 사느냐 하는 상황까지 온 것이다. 8자가 나오면 내가 이기는 것이다.
6자이길 바랐던 중국인들은 다소 실망하는 표정이 역력했지만 다시 한목소리가 되어 응원을 했다.
“촛찻지 촛찻지, 음꺼이 촛잣지라(7자 7자 나와라, 제발 7자 나와라)!”
혼신의 힘을 다해 카드를 보던 콧수염의 입에서 욕이 터져 나왔다.
“띠우레이로모, 까우초아(제기랄, 이게 뭐야)!”
중국 표준어인 베이징 말은 4성(四聲)이지만 광둥 말은 9성(九聲)이다. 즉 광둥 말은 높고 낮음에 따라 수시로 뜻이 변한다. 사방에서 욕하는 소리가 들렸다.
“까우초아(이게 뭐야)!”
“푸가이(나가 뒈져라)!”
플레이어에 350만 홍콩달러, 당시 환율로 한국 돈 4억2천만 원을 베팅했던 중국인 열댓 명은 95퍼센트 이긴 게임에서 지고 나자 치를 떨었다. 상황을 지켜보던 딜러는 내가 딴 300만 홍콩달러에서 커미션 5퍼센트를 제하고 285만 홍콩달러를 내게 밀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