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리디 접속이 원활하지 않습니다.
강제 새로 고침(Ctrl + F5)이나 브라우저 캐시 삭제를 진행해주세요.
계속해서 문제가 발생한다면 리디 접속 테스트를 통해 원인을 파악하고 대응 방법을 안내드리겠습니다.
테스트 페이지로 이동하기

전설의 대장장이를 지켜 줘! 상세페이지

BL 소설 e북 판타지물

전설의 대장장이를 지켜 줘!

소장단권판매가2,000 ~ 3,600
전권정가20,000
판매가20,000

소장하기
  • 0 0원

  • 전설의 대장장이를 지켜 줘! 외전 1: 야성의 연인
    성인도서
    전설의 대장장이를 지켜 줘! 외전 1: 야성의 연인
    • 등록일 2021.07.09.
    • 글자수 약 5.2만 자
    • 2,000

  • 전설의 대장장이를 지켜 줘! 5권 (완결)
    전설의 대장장이를 지켜 줘! 5권 (완결)
    • 등록일 2021.06.03.
    • 글자수 약 18.9만 자
    • 3,600

  • 전설의 대장장이를 지켜 줘! 4권
    전설의 대장장이를 지켜 줘! 4권
    • 등록일 2021.06.03.
    • 글자수 약 16.9만 자
    • 3,600

  • 전설의 대장장이를 지켜 줘! 3권
    전설의 대장장이를 지켜 줘! 3권
    • 등록일 2021.06.03.
    • 글자수 약 13.7만 자
    • 3,600

  • 전설의 대장장이를 지켜 줘! 2권
    전설의 대장장이를 지켜 줘! 2권
    • 등록일 2021.06.03.
    • 글자수 약 15.8만 자
    • 3,600

  • 전설의 대장장이를 지켜 줘! 1권
    전설의 대장장이를 지켜 줘! 1권
    • 등록일 2021.07.14.
    • 글자수 약 14.5만 자
    • 3,600

시리즈의 신간이 출간되면 설정하신 방법으로 알려드립니다.


리디 info

[구매 안내] 세트 또는 시리즈 전권 소장 시(대여 제외) 이미 소장 중인 중복 작품은 다른 계정에 선물할 수 있는 쿠폰으로 지급됩니다. 자세히 알아보기 >

[도서 안내]
본 도서 「전설의 대장장이를 지켜 줘! 2권~5권」 은 2021년 7월 8일 본문 오탈자를 수정한 파일으로 교체되었습니다.
기존 구매자 분들께서는 앱 내의 '내 서재'에 다운받은 도서를 삭제하신 후, '구매목록'에서 재다운로드 하시면 수정된 도서로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도서 이용에 참고 부탁드립니다.
※ 단, 재다운로드시 기존 도서에 남긴 독서노트(형광펜, 메모, 책갈피)는 초기화되거나 위치가 변경됩니다.


이 책의 키워드


다른 키워드로 검색

전설의 대장장이를 지켜 줘!작품 소개

<전설의 대장장이를 지켜 줘!> #판타지물 #서양풍 #초능력 #오해/착각 #게임물 #신분차이 #수한정다정공 #계략공 #순정공 #미인수 #명랑수 #적극수 #능력수 #얼빠수 #코믹/개그물 #사건물


한적하고 평화로운 시골 영지의 대장간 아들, 엘리엇.
허깨비의 명령에 겨우 만든 검이 이상하다.

[전설] 빛의 기사 장검
모든 능력치 +30%
*강화 조건: 소유주와 10분 이상의 스킨십 (확률 50%)

“허, 허, 허깨비님!”
엘리엇에게만 보이는 이 허깨비는 대체 뭘 원하는 걸까?
“허깨비님, 귀인께 장난을 치시면 안 돼요!”
눈썹 한 올까지 신이 의도한 것처럼 아름답고, 예술적인 검보다 더 예술 같은,
그야말로 끝내주게 잘생기고 예쁘고 조각 같은 귀인께 무슨 짓이람!
“한 번만 더 그런 짓을 하셨다가는…….”
엘리엇은 그 어느 때보다 엄격하게, 허깨비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다시는 공물을 드리지 않을 거예요!”

[재료 인벤토리가 부족합니다. 인벤토리 확장이 필요합니다.]

허깨비님, 그렇다고 토라지시면 어떡해요…….


분량 안내

<전설의 대장장이를 지켜 줘!> 단행본에 해당하는 연재도서 분량은 아래와 같습니다.
(본 연재분량은 리디북스에 서비스 되었던 연재분량이며, 각 단행본의 연재화수와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1권: 1화 ~ 42화
2권: 43화 ~ 84화
3권: 85화 ~ 120화
4권: 121화 ~ 165화
5권: 166화 ~ 217화
6권: 외전 1화 ~ 외전 14화


출판사 서평

<본문 발췌>

EPISODE 1. 대장장이 엘리엇


엘리엇은 입을 헤벌리고 제 손 위의 보물을 내려다보았다.
늘씬한 검신은 반사광조차 내비치지 않는 흑색이었다. 우아하고 고급스러운 룬 문자엔 분명 그로선 짐작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마법이 걸려 있을 것이다. 어떤 재질로 만들었는지조차 알 수 없는 호수와 검병은 귀해 보이는 금색으로, 무려 황가의 문양이 세공된 상태였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단아한 마름모꼴로 마무리된 검수 끝에는 붉은색 비단실로 만든 도톰한 술이 살랑거렸다. 엘리엇의 조심스러운 손길에 아무렇게나 흔들리는 모습조차 훌륭해 보였다.
그렇게 거의 예술에 가까운 자태로 고이 들린 검이 두 쪽으로 동강 난 상태가 아니라면 더 좋았을 것이다…….
“그, 그게…….”
지스노프의 새파란 눈이 엘리엇의 얼굴에 꽂혔다. 슬금슬금 눈치를 보던 엘리엇은 그 눈과 마주치고 상황도 잊은 채 넋을 놓아 버렸다. 세상에, 검보다도 그 주인이 더 예술이야. 저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에 지스노프의 눈매가 살짝 일그러졌다. 그 모습도 잘생겼던지라, 엘리엇은 마치 빛을 처음 본 사람처럼 멍하니 그를 쳐다보았다.
“수리가 불가능합니까?”
자신의 검이 댕강 부러진 채 남의 손아귀에 자리하고 있음에도 그는 별 감흥이 없는 사람처럼 아무렇지 않게 물었다. 수리는 고사하고 이렇게 대단한 작품은 처음 보는지라, 엘리엇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한 채 지스노프의 얼굴만 멀뚱멀뚱 감상했다.
“그럼 그냥 버려 주십시오.”
무심한 말을 끝으로 지스노프가 휙 돌아섰다. 정말 기사가 맞나 싶을 만큼 검에 대해 한 방울의 미련도 없어 보였다. 그제야 현실로 돌아온 엘리엇은 다급하게 그의 옷자락을 잡았다.
“제가 다시 만들어 드릴게요!”
지스노프가 고개를 돌렸다. 엘리엇은 자신이 방금 무슨 말을 했는지 상기하고는 바로 핼쑥하게 질려 버렸다. 이 정신 나간 주둥이! 저런 명검과 대적할 검을 무슨 수로 만든단 말이야!
그러나 이미 뱉어진 말은 주워 담을 수 없었고, 무엇보다 지스노프의 입술이 수려한 호선을 그리는 것에 엘리엇은 제 오장육부를 빼다가 담금질을 한대도 괜찮을 것 같았다…….
“얼마 뒤에 찾으러 오면 되겠습니까?”
반듯하고 정중한 목소리에 엘리엇은 주먹을 꾹 쥐고 맹렬하게 대답했다.
“한 달!”
그렇게, 산자락 어귀의 작은 시골 마을. 그곳의 대장간집 아들, 엘리엇은 세계 4대 명검과 대적할 검을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누군가가 어쩌다 이런 사태가 벌어졌는지 물어본다면 엘리엇은 이 억울한 사연을 6박 7일 동안 구구절절 토해 낼 자신이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정말 아무 짓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론 세계에서 손꼽는 명검이 엘리엇의 손에 조신하게 부러진 채 자리하고 있다만, 하여튼 엘리엇은 억울했다.
“엉엉, 어쩌면 좋아요, 아부지.”
부러진 검을 들고 한달음에 작업실로 들어간 엘리엇이 아버지를 보자마자 울음을 터트렸다. 갑자기 울며불며 달려온 아들을 본 아버지는 잠시 어리둥절하게 서 있다가, 엘리엇이 들고 있는 보물의 처참한 모습을 보고 돌처럼 굳어 버렸다.
그는 담금질하던 집게를 집어 던지고 허둥지둥 작업대에 비단부터 깔았다. 영주성에 납품할 때만 쓰이는 포장용 비단 위에 명검이 시체처럼 늘어졌다. 그것을 사이에 두고 아버지와 엘리엇은 마치 응급 환자를 앞에 둔 시민처럼 벌벌 떨었다.
“이, 이게 뭐시다냐. 무신 일이여, 이게. 엘리엇아, 이, 이, 이것은 황제 폐하께서 내려 주시는 하사품이 아니더냐. 으응?”
“흐어엉!”
“이것이 왜 우리 집에……. 이걸 우짠다냐. 이걸 우짜. 아, 그래. 수리해 달라고 귀인께서 맡기신 게지? 설마하니 네가 깨 먹은 것은 아닐 것이여. 그쟈? 울지 말고 얼른 가서 못 하겠다 혀. 우리 집에는 이런 귀품을 수리할 재료가 없다고 하믄 다 이해해 줄겨. 자, 여기 비단 보자기에 그대로 싸서, 으응?”
“아부지…….”
엘리엇이 고개를 푹 숙이고 코를 훌쩍였다. 그 모습을 본 아버지는 잡고 있던 비단 보자기 끄트머리를 툭 떨궜다. 그는 핼쑥해진 얼굴로 오랫동안 아들을 바라보다가, 다시 달달 떨리는 손으로 부러진 검을 포장했다. 그리고는 다급히 안쪽 문을 열고 들어가더니 우당탕탕 요란한 소리와 함께 큼직한 주머니를 들고나왔다.
“일단, 일단은 이걸로 사죄해 불자. 그리고 나머지 대금은 평생 동안 열심히 일해서 갚겠다고, 싹싹 빌면 용서해 줄지도 몰러야. 응? 아부지가 같이 가 줄랑께, 같이 가서 사죄를 드리믄…….”
“아니에요, 아부지. 그게, 검을 새로 만들어 드리기로 했어요.”
“뭐시여?”
“소, 손님께서 검을 관리해 달라고 저한테 줬는데요, 제가 받자마자 검이 동강 나 버렸다는 거 아니에요. 검날이나 좀 갈고 비단으로 꼼꼼하게 닦아서 돌려주려고 했는데, 아니, 그 전에 그냥 건네받기만 했는데 검이 이렇게 동강이 나 버린 것을요…….”
아버지의 입이 떡 벌어졌다. 그는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불행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엘리엇을 쳐다보다가 더듬더듬 말했다.
“귀, 귀인께선 뭐라시디? 새 검을 맹글어 주면 받아 주겠다 하시든?”
“네에. 한 달 뒤에 찾으러 오시겠다 하셨어요. 화내시지도 않았고, 별다른 엄명도 없었어요.”
“그, 그것 참 다행이로구나.”
아니, 다행은 아니지. 아버지가 황급하게 덧붙였다. 잠시 곰곰이 생각하던 아버지는 기나긴 침묵 후에야 다시 물었다.
“그라믄 왜 그리 운 것이여?”
“이렇게 대단한 검을 쓰는 사람의 검을 만들 자신이 없어서요.”
“그라믄 뭐다러 새 검을 맹글겠다 한 것이여?”
“귀인이 너무 잘생겨서…….”
아버지가 다시 침묵했다. 그는 올해 성년이 된 제 아들이 얼마나 천진난만한 뇌를 지녔는지 상기하며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엘리엇은 울상을 지은 채 비단 보자기를 꼭 끌어안았다. 대책 없이 사고치고 눈치 보는 모양새가 비 맞은 강아지처럼 처연했다.
그는 나름대로 변명거리를 웅얼거렸다. 귀인이 너무 예뻤고, 귀인이 너무 멋있었고, 귀인이 너무 근사했고……. 가만히 그 변명을 듣던 아버지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한마디로 처음 보는 손님한테 홀딱 넘어가서 그랬다는 말이 아닌가. 그가 잔소리하려던 찰나, 엘리엇이 시무룩하게 덧붙였다.
“귀인을 꼭 다시 뵙고 싶었는걸요. 보는 순간 세상에 그와 저만 남은 것 같았단 말이에요. 귀인이 너무 아름다웠어요, 아부지.”
그렇게 말하는 아들의 눈이 참으로 애달팠다. 아버지는 엘리엇을 빤히 바라보다가 이내 뭔가 결심한 얼굴로 가방을 꾸리기 시작했다. 바쁘게 집 안을 누비는 모양새가 꼭 어디 나가려는 사람처럼 보여서, 엘리엇은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아버지를 붙잡았다.
“아부지?”
“이거시 어쩌면 기회일지도 몰러.”
“예에?”
“인생이라는 게 때로는 도박인 것이어라.”
무슨 헛소리세요. 엘리엇은 툭 튀어나갈 뻔한 말을 겨우 참았다. 아버지는 머리에 쓰고 있던 두건도 벗어 던진 채 일생일대의 시험을 받는 사람처럼 비장하게 말했다.
“나는 도시에 가서 미스릴을 사 올 텡께, 넌 용광로 불을 최대한 지펴 두고 도안이라도 좀 그리고 있어라. 알긋냐?”
“미스릴이요? 그런 귀한 것을 저희가 어떻게 다뤄요?”
“아, 못 헐 게 뭐 있다냐! 우리 대장간 기술이 뭐가 어떤디! 재료만 있으면 사람 뼉다구도 만들 수 있어야!”
그렇게 말하면서 아버지는 호쾌하게 돈주머니를 탁 쳤다. 눈치껏 그 안에 든 것이 집안의 전 재산이라는 걸 깨달은 엘리엇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아버지는 엘리엇이 더 붙잡을 새도 없이 후다닥 나가 버렸다. 그는 나가면서 앞집 포목점 댁 아저씨에게 크게 소리쳤다.
“야야! 우리 아덜한테도 봄이 왔당께!”
동네 사람들이 다 들을 수 있도록, 아주 크게.
엘리엇은 손바닥에 얼굴을 묻었다.

엘리엇 네마락트는 아장아장 걸어 다닐 시기부터 한 손에 망치를 들고 다녔다. 그 고사리 같은 손에 망치를 들려 준 장본인인 아버지는 엘리엇에게 대장장이의 기질이 보인다면서 집중적인 조기 교육을 시작했다. 같은 마을에 살던 친구들이 진로에 대해 고민을 할 무렵, 엘리엇은 아버지에게 진지하게 질문했다.
“아부지는 왜 제게 공부를 강요하지 않으세요?”
“우리 집안은 죄다 돌대가리라 글자 수업만 제대로 따라가도 잘했다고 현수막을 걸어야 혀.”
기초적인 글자와 숫자를 배우는 데 몇 년이나 걸렸던 엘리엇은 바로 납득하고 대장간에 뼈를 묻기로 했다. 엘리엇이 성년이 될 때쯤엔 학술원이니 유학이니 떠났던 친구들도 타지에 자리를 잡은 탓에 연락이 뜸해졌다. 결국, 고향에 허수아비처럼 못 박힌 엘리엇에게 있어 놀 거리는 대장간의 일로 좁혀졌다.
엘리엇은 심심할 때마다 망치를 들고 용광로 앞에 섰다. 자투리로 남은 철광석을 뚝딱거리다가 재미가 없어지면 조각칼로 나무토막을 긁었고, 그것도 지루해졌다 싶으면 가마에 구워 만든 접시에 그림을 그렸다.
학문적인 공부를 잘하지 못했어도 그에겐 아버지가 가르친 기술이 여러 개 있었다. 말이 대장간이지, 사실상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만드는 제작 공방에 가까웠던 네마락트 대장간엔 마을 사람들이 의뢰한 농기구며 큼직한 가구, 심지어 도자기까지 즐비했다. 마을에 손재주 좋은 사람이 없다 보니 대장간에 부탁하던 게 점점 업무적으로 굳어진 것이다.
그런 환경 속에서 엘리엇은 아침에 칼을 갈고, 점심에 나무 의자를 조립하고, 저녁에 그릇을 만드는 걸 당연한 일과로 알았다. 그 와중에 가끔 찾아오는 상단과 영주 대리인에게 납품할 무기까지 꼬박꼬박 제작해야 하니 엘리엇의 손은 쉴 새가 없었다.
그렇게 평소였다면 바빴을 대장간 일도 전부 다 보류해 둔 지금, 엘리엇은 도시에 미스릴을 사러 나간 아버지를 기다리며 검의 도안을 그리고 있었다. 시계를 보니 아버지가 떠난 지 어언 8시간이 지났다. 엘리엇은 졸린 눈을 비비며 도안에 상세한 선을 덧그렸다.
그런데 이게 웬걸. 너무 피로한 정신이라 그런지 헛것이 다 보였다.
띵동!
엘리엇은 눈앞에 뜬 헛것을 멀뚱멀뚱 바라보다가 손을 휘적휘적 흔들었다. 희뿌옇게 흐려서 당최 정체도 짐작 가지 않는 허깨비는 엘리엇의 손짓에 쓱싹 사라졌다가, 엘리엇이 도안을 반쯤 완성하자 또 띵동거리며 나타났다. 처음엔 몸과 정신이 피곤하여 그런 줄 알았던 엘리엇도 허깨비의 알림이 계속 보이자 흑연을 내려놓고 느리게 눈을 끔벅였다.
‘눈에 병이 났나?’
자고 일어나면 괜찮아지지 않을까 싶어서 엘리엇은 후다닥 침실로 들어갔다. 의사도 없는 시골 마을에서 병에 걸리면 해결책이 없었다. 조금이라도 아플 조짐이 있으면 일단 쉬는 게 최선이다. 그는 수면 모자까지 꼼꼼하게 챙겨 입고 자리에 누웠다. 지금쯤이면 아버지도 옆 동네에 도착해서 여관을 잡았을 것이다. 도시까진 또 얼마나 걸리더라…….
‘심각한 병이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그는 자신이 감기만 걸려도 세상이 무너진 것처럼 좌절하는 아버지를 떠올렸다. 엘리엇이 한창 기어 다닐 무렵에 어머니가 병을 얻어 세상을 떠난 이후로 아버지는 건강과 관련된 일에 부쩍 신경을 곤두세우고는 했다.
갑자기 허깨비가 마구 보였다고 하면 아버지는 집안의 모든 돈을 끌어모아서라도 의사를 데려오려고 할 것이다. 아, 지금은 그 돈으로 미스릴을 사 오신다 했지.
아버지가 얼른 돌아오길 바라며, 엘리엇은 이불을 목 끝까지 올려 덮고는 눈을 감았다. 부디 아무 일이 아니기를.



날이 밝자마자 엘리엇은 벌떡 일어나 온몸을 더듬었다. 어젯밤에 본 헛것이 사실은 꿈이었다는 듯 모든 게 평온했다. 띵동거리는 요란한 소리도 안 들리고, 시야를 방해하던 희뿌연 허깨비도 없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쉰 엘리엇은 방실방실 웃으며 부지런히 아침을 준비했다. 말끔하게 씻고, 밥도 먹고, 대장간 문도 활짝 열었다. 아침부터 제작 의뢰를 하려고 대장간에 들렀던 손님들은 엘리엇이 난처한 표정으로 당분간 기사님의 검에만 집중해야 한다고 말하자 크게 기뻐하며 응원의 말을 남기고 갔다. 이런 시골에 신분이 높은 사람이 고객으로서 방문한다는 건 정말 드문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 뒤, 대장간에 귀인이 왔다갔다는 소문이 퍼지는 데에는 1시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소문을 들은 모니카가 득달같이 대장간을 방문했다.
모니카는 마을에서 가장 예쁜 소녀였다. 엘리엇은 동네 밖으로 나가 본 적도 없는 촌뜨기였지만, 모니카가 수도의 귀공녀들만큼 예쁘다는 것만큼은 확신할 수 있었다.
엘리엇과 친남매처럼 자란 그녀는 종종 머리에 화관을 쓰고 다녔는데, 그건 누군가가 그녀에게 고백했다가 차였다는 뜻이었다. 고백할 때 받았던 꽃다발로 만들어진 화관은 그녀의 트레이드 마크이기도 했다. 그런 화관을 대장간에 들어오자마자 대충 벗어 던진 모니카가 아주아주 반짝이는 눈으로 엘리엇을 쳐다보았다.
엘리엇은 기존에 주문받았던 연장들을 포장하는 중이었다. 분기마다 한 번씩 마을에 오는 상단에 넘길 물건들은 상자에 차곡차곡 넣어 두었고, 사냥꾼 제이든 씨가 주문한 화살도 꼼꼼하게 개수를 세어 가며 화살통에 채웠다. 모니카는 답답하다는 듯 테이블을 탕탕 치며 자신이 왔음을 알렸다.
“기사님이 오셨었어?”
“헉. 모니카, 언제 왔어?”
“내가 언제 왔는지는 중요한 게 아니야. 어제 오빠네 대장간에 기사님이 오셨다며?”
엘리엇은 천천히 눈을 끔벅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세상이 다 환해질 만큼 예쁜 미소를 지은 모니카가 잔뜩 기대하는 얼굴로 턱을 괬다. 엘리엇이 그 뜻을 알아채지 못하고 고개를 갸웃거리자, 그녀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어때? 잘생겼어? 어디 기사단이래? 나이는?”
“으응?”
“기사님 말이야!”
어쩐지 한 박자씩 늦게 반응하는 엘리엇을 보고 답답해진 모니카가 손끝으로 탁탁탁 테이블을 쳤다. 그제야 엘리엇은 그녀가 궁금해하는 점을 알아채고 천천히 어제 자신이 보았던 기사님 얘기를 꺼냈다. 그의 얼굴, 체형, 목소리, 입고 있던 제복과 숨소리까지. 그런 귀인의 검이 부러졌다는 건 추신처럼 덧붙였다.
세밀한 묘사에 오묘한 얼굴이 된 모니카가 미간을 좁혔다.
“오빠가 기사님의 검을 부러뜨렸는데도 아무렇지 않게 새 검에 대한 의뢰를 맡기고 가셨단 말이야?”
“내가 부러뜨린 거 아니야!”
“어찌 됐든 기사님이 화내지 않았다는 거잖아. 기사의 명예를 상징하는 게 바로 검인데도.”
모니카가 엘리엇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귀인의 반응이 어땠던가 떠올리던 엘리엇은 머릿속에 남은 게 그의 얼굴밖에 없다는 걸 깨닫고 좌절했다. 그래, 끝내주게 잘생기고 예쁘고 조각 같은, 하여튼 세상 모든 아름다운 수식어를 갖다 붙여도 납득이 되는 얼굴이긴 했다…….
모니카는 엘리엇의 반응을 요모조모 뜯어보다가 중얼거렸다.
“서로 반한 건가?”
“뭐가?”
“소설에도 나오잖아. 차갑고 인정 없는 귀족이 지나가던 평민한테 한눈에 반해서 ‘네가 내 전부다’, ‘너만 있으면 아무것도 필요 없다’ 하잖아. 그런 거 아니야? 신분을 넘은 사랑, 얼마나 재밌어.”
잠시 침묵하던 엘리엇은 조심스럽게 모니카에게 연애 소설을 그만 읽으라고 조언했다. 흥이 깨졌다는 듯 불퉁한 표정으로 일어난 모니카가 던져 뒀던 화관을 주워 썼다.
“결국, 기사님에 대한 정보는 얼굴이 잘난 것 말고는 없다는 거네.”
“난 그 사람이 내 뼈를 뽑아서 검을 만들라고 해도 알겠다고 할 것 같아…….”
“다음에 만나면 이름이나 어디 소속인지라도 좀 물어봐. 어떻게 주문받으면서 이름 물어볼 생각도 못 했어? 혹시라도 그 사람이 사기꾼이면 어쩌려고.”
엘리엇은 고개를 푹 숙이고 손가락을 꼬물댔다. 그렇지 않아도 성함을 여쭤볼 걸, 하는 후회를 삼백 번쯤 했었다.
모니카는 요령 없는 엘리엇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더니, 힘내라는 듯 몇 번 토닥이고 총총 떠났다. 혼자 남은 엘리엇의 시선이 버릇처럼 비단 보자기로 향했다. 부러졌더래도 그 분위기와 자태만큼은 충분히 뛰어나고 귀해 보였다.
마치 귀인처럼.
“휴…….”
이보다 더 귀인과 잘 어울리는 검을 만들 수나 있을까. 엘리엇은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타박타박 작업실로 들어갔다. 어제 그리다 만 도안이 덩그러니 남아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엘리엇은 그 앞에 앉아 귀인에게 잘 어울릴 법한 검의 모양을 쓱쓱 그렸다. 부러진 보검처럼 화려한 것도 물론 좋을 테지만, 그보다는 좀 더 실용성 있고 단아하게. 귀인이 검을 들었을 때 그와 한 몸처럼 느껴지도록…….
몇 시간쯤 구상했을까, 상세하게 덧그려진 도안에 대고 실제적인 크기를 가늠할 때였다. 눈앞에 또 띵동 하는 소리와 함께 허깨비가 떴다.
“헉.”
엘리엇은 눈을 마구 비볐다. 띵동거리는 알림음과 함께 나타난 허깨비는 그가 눈을 비비든 말든 그 자리에 둥둥 떠 있었다.
‘왜 아부지가 안 계실 때 자꾸 이런 게…….’
엘리엇이 잔뜩 울상이 되어 허둥지둥 제 방으로 달려가 곧장 침대에 누웠다. 태어나서 한 번도 의사에게 진료받아 본 적이 없었던 엘리엇에게 있어서 모든 병의 치료법은 수면이었다. 그가 알고 있는 사람들 모두가 아플 땐 잠을 자라며 누누이 강조했고, 매일같이 붙어산 아버지 또한 몸이 안 좋으면 항상 침대에 누워 푹 쉬고는 했다.
엘리엇은 그들에게 배운 대로 침대에 기어들어 갔다가, 이내 불안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손을 벌벌 떨었다.
“어, 어떡하지. 잠이 안 오는데.”
베개를 한 아름 끌어안고 그 위에 얼굴을 박아도 이미 간밤에 아주 잘 잔 덕에 잠이 오질 않았다. 숨이 차서 고개를 치켜드니 다시 허깨비가 일렁거렸다. 그것은 반투명한 편지지 같은 모양새로 계속 엘리엇의 시선을 따라다녔다.
엘리엇은 누군가가 자신에게 마법이나 저주를 건 것은 아닐까 걱정하며 눈물을 그렁그렁 매달았다.
‘고뿔이랑은 다른데. 이런 병은 들어 본 적 없는데…….’
조용한 대장간에 자신과 허깨비만 있다고 하니 끔찍했다. 그렇다고 해서 이대로 허깨비에게 집어삼켜져 농락당할 수는 없었다. 엘리엇은 혼자서 이겨 낼 수밖에 없는 상황 속에서 나름대로 용감하게 대처해 보기로 했다. 마법이나 저주에 대해선 아는 게 전혀 없지만, 일단은 굴복하지 않아야…….
“안, 안녕하세요, 허깨비님. 저는 엘리엇 네마락트라고 해요. 그, 아무래도 허깨비님이 주소를 잘못 찾아오신 것 같은데요……. 저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어요. 도, 돈도 아부지가 도시 갈 때 다 들고 가셨구우, 남작님 영지 끝자락에 있는 시골 출신이라 아무것도, 정말 아무것도 몰라요. 아부지가 대, 대장장이라 어깨너머로 그거 배운 것밖에 없어요. 매일 똑같은 음식만 먹은 몸이라 저, 맛도 없을 거예요. 흐어엉, 제발 그만 돌아가 주세요!”
애써 용기를 냈으나, 거의 기어들어 가다시피 튀어나온 말은 비굴한 부탁이었다. 엘리엇의 간절한 진심이 들렸는지 허깨비가 와락 발광하며 시야를 새하얀 빛으로 확 덮어 버렸다. 눈을 질끈 감고 이불을 뒤집어쓴 엘리엇이 억눌린 비명을 내질렀다.
그리고 몇 초 뒤엔 정적만 남았다.
몸에 아무 이상도 없다는 걸 깨달은 엘리엇은 슬그머니 이불 밖으로 고개를 뺐다. 요리조리 돌아보니 허깨비는 사라지고 없었다. 긴장이 한 번에 풀려 침대에 바로 엎어진 엘리엇이 코를 훌쩍였다. 아아, 정말 무서웠어……. 아부지가 돌아오면 집터를 옮기자고 졸라 볼까 하는 사이, 웬 팡파르가 울렸다.
빠바바밤!

[전직을 축하드립니다!]
이름: 엘리엇 네마락트
직업: 초보 대장장이
칭호: 맛없는 (요리-1)
(칭호 미리 보기: 『맛없는』 엘리엇 네마락트)
(더 보기)

“……허깨비님?”
엘리엇이 풀썩 쓰러졌다. 완벽한 기절이었다.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땐 태양이 서서히 지고 있었다. 엎어진 채 그대로 기절했던 엘리엇은 노을빛이 창문 틈으로 비치는 걸 보고 벌떡 일어났다. 조용히 눈알만 굴려 옆을 보니, 허깨비가 여전히 존재하고 있었다…….
“허, 허, 허깨비님!”
엘리엇은 같은 자리에 둥둥 떠 있는 허깨비를 보고 놀라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뒤로 슬금슬금 물러나 무릎을 꿇고 앉은 그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이불을 끌어와 제 몸에 둘렀다.
그렇게 한참 동안 눈치 보던 엘리엇은 의외로 허깨비가 아무런 짓도 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기절해 있던 시간을 포함하여 지금까지도.
‘혹시 내게 전할 말이라도 있는 건 아닐까?’
침을 꿀꺽 삼킨 엘리엇은 전보다 확연히 선명해진 허깨비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허깨비는 얼마나 영민한지 그의 이름과 직업도 알고 있었다. 반투명한 면에 상세하게도 적힌 신상 정보를 읽으면서 엘리엇은 자기도 모르게 감탄하며 멍하니 입을 벌렸다.
그로부터 몇 분이 지났을 때, 허깨비가 다시 띵동거렸다.
띵동!

[메인] 지스노프 오딘을 위한 검 제작 (D-20)
제국에서 가장 강한 기사, 지스노프 오딘을 위한 검을 만들어 보자!
*성공 시: 명성, 금화
*실패 시: 손해 배상 청구 –15,000G

[서브] 맛있는 엘리엇 네마락트 (D-50)
20번의 요리 성공으로 칭호 ‘맛없는’에서 벗어나자!
*성공 시: 칭호 ‘맛있는’ (요리+5)
*실패 시: 칭호 ‘부엌 파괴자’ (요리-5)

엘리엇은 후다닥 뒤로 물러나 다시 이불을 뒤집어썼다. 수십 초를 기다려도 허깨비는 그에게 엄청난 저주를 내리거나, 마법을 쓰거나, 노성을 내지 않았다. 빼꼼 눈만 내민 엘리엇이 엉금엉금 기어가 다시 허깨비의 띵동글을 꼼꼼히 읽었다.
“제, 제가 이걸 하면 되나요?”
엘리엇은 성공했을 때의 보상과 실패했을 때의 후폭풍을 읽고 울상이 됐다. 지스노프 오딘이 대체 누구길래 자신이 그를 위해 검을 만들어 줘야 하며, 어째서 실패하면 일만 오천 골드나 되는 돈을 배상해야 하는가. 자급자족이 가능한 시골에선 금화 스무 개만 있어도 한 달 동안 먹고살 수 있는데, 일만 오천 골드는 상상도 되지 않는 액수였다.
엘리엇은 발을 동동 굴렀다. 허깨비님이 시킨 일인 만큼 거부했다가는 어마무시한 사달이 날까 봐서 감히 거절도 못 하겠다.
“이것만 하면…… 되는 거지요?”
얌전하게 둥둥 떠 있던 허깨비가 그렇다는 듯 옅은 후광을 비쳤다. 참으로 요란하고 뜬금없는 부탁이었다.
가만히 생각을 이어 가던 엘리엇은 허깨비가 검과 요리가 필요해서 자신을 찾아온 게 아닐까 추리하기에 이르렀다. 이렇듯 무시무시하고 신통한 존재라 사람들이 다 도망치거나 꺼려 했고, 그런 사람들을 피해 부탁을 들어줄 존재를 찾다 보니 자신에게 온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허깨비가 조금 안쓰러우면서 친근한 것도 같고…….
“어, 어떤 검을 만들어 드릴까요?”
엘리엇이 쭈뼛거리며 질문하자, 허깨비는 알아서 하라는 것처럼 스르륵 사라졌다. 안 그래도 귀인의 명검을 대신할 만한 검도 만들어야 하는데, 허깨비의 부탁까지 들어주려니 참으로 시간이 부족했다.
작은 단검이라도 괜찮을까? 이미 만들어 둔 건 안 되나? 지스노프 오딘이라는 사람에게 직접 전달해 줘야 하나? 수많은 고민에 빠진 엘리엇은 어느덧 캄캄해진 창밖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보름달?”
엘리엇이 눈을 빠르게 깜박였다.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반달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어떻게 하루 사이에 보름달이 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눈을 비비고 다시 봐도 둥그렇게 빛나는 달은 바뀌지 않았다. 엘리엇은 달빛 아래에서 어둑하니 빛나는 언덕 사이로 누군가가 오고 있는 것도 발견했다. 눈을 찌푸려 자세히 보니 저 실루엣은 아버지가 틀림없다.
“아부지?”
아버지는 멀리서 집에 불이 켜져 있는 걸 봤는지 손을 크게 흔들었다. 엘리엇은 대문 밖으로 나가 아버지를 마중했다. 등에 짐을 잔뜩 짊어진 아버지가 환한 얼굴로 말했다.
“아이고, 이 밤에 잠도 안 자고 뭐 했다냐. 일단 들어가자.”
“아부지, 어떻게 이렇게 빨리 오셨어요?”
“어떻게는 뭔 어떻게여. 어떻게든 빨리 댕겨 올라고 계속 마차를 빌려 타고 왔으니 열흘밖에 안 걸린 거지. 어디 보자, 용광로랑은 달궈 놨쟈?”
엘리엇은 눈을 토끼처럼 뜨고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기억상 도시로 가는 아버지를 배웅한 게 이틀 전이다. 근데 열흘이나 걸렸다고?
시간여행을 한 사람처럼 어리둥절하게 눈만 끔벅이는 아들을 보며 아버지가 눈을 가늘게 떴다. 영 미덥지 않은 아들을 뒤로한 채 작업실에 들어가 보니 아니나 다를까, 용광로를 달구기는커녕 도안도 그리다가 말았다. 아버지는 서둘러 용광로에 땔감을 던져 넣었다.
“또 동산에 가서 팔랑팔랑 뛰댕기기만 했어야! 아이고, 인석아. 아부지 없다고 그래, 아주 니 세상이여?”
“아니, 그런 게 아니라요…….”
“안 그래도 시간 없는데 우짤라 그려. 응? 안 되것네. 당장 시작해야 쓰것다. 나는 가서 짐 좀 정리하고 올 텡께, 니는 강철 좀 맹글고 있어라. 알긋냐?”
엘리엇이 대답하기도 전에 아버지는 배낭에서 당장 필요한 물건들만 빼놓고 집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질 좋은 철괴와 아기 주먹만 한 미스릴, 가공되지 않은 마력석, 미스릴을 녹일 때 필요한 용해제 같은 것들이 테이블에 널브러진 채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엘리엇은 이렇게나 좋은 재료들을 살 돈이 집안에 있었다는 것에 놀라고, 자고 일어나니 시간이 쑥 지나가 버렸다는 점에 놀라고, 그 시간 동안 당연히 장사도 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또 놀라며 어벙하게 서 있었다. 빠르게 정리를 마친 아버지가 작업실로 돌아와 엘리엇을 혼냈다.
“이늠아! 뭐 하는겨? 어여 시작해야 늦지 않게 맹글지!”
“아, 아부지, 아무래도 제가…….”
일주일 동안 기절했었나 봐요.
엘리엇은 말을 흐리며 입을 우물거렸다. 차마 아버지가 걱정할까 말은 못 하겠는데 변명은 하고 싶고, 혼나기는 싫은데 걱정 끼치는 것보단 나을 것 같고……. 혼란스러운 마음으로 발만 동동 구르던 그는 아버지가 손에 망치를 들려 주자 어영부영 자리를 잡고 섰다.
“잘 봐 둬야. 미스릴은 이러코롬 용해제에 통으로다가 담가야 녹는 것이여. 다 녹으면 허옇게 될 때까지 기다려야 혀. 그동안 쇠를 접자꾸나.”
용해제에 담긴 신의 금속, 미스릴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더니 점점 서리가 끼듯 끄트머리부터 하얗게 흐물거렸다. 엘리엇은 난생처음 보는 고급 재료에 넋을 놓고 있다가, 아버지가 용광로에서 집게로 철을 꺼내자 본능처럼 망치로 내려쳤다.
그렇게 새벽이 될 때까지 그들은 쇠를 내려치고, 접고, 녹이길 반복했다.

도시에 다녀오겠다고 열흘 동안 고생했던 아버지가 피곤한지 눈을 느리게 끔벅였다. 엘리엇은 의자에 걸쳐져 있는 수건을 가져다주었다.
“아부지, 들어가 한숨 주무시고 오세요.”
“그려. 아이고, 나도 이제 늙었는갑다. 옛날엔 한 달 동안 담금질해도 말짱했는디…….”
“자고 일어나서 다시 하면 되죠.”
“진정한 장인은 검 하나를 맹글어도 일 년 동안 맹그는 법이다. 그 정도는 안 되더라도 귀인에게 부끄럼 없는 물건을 줘야 쓰지 않것냐. 아부지 없다고 막 놀지 말고, 인석아!”
주름진 눈가에 흘러내린 땀을 닦아 낸 아버지가 천천히 일어나 작업실을 나갔다. 엘리엇은 놀지 않았다고 꿍얼거리다가 아버지가 나가자 서둘러 대장간 계산대 앞으로 뛰어갔다. 일주일 동안 장사를 안 했다는 걸 아버지가 알게 되면 불호령을 넘어서서 망치로 제 머리를 내려칠지도 모른다.
다행히 기절했던 날에 일찌감치 납품해야 할 물건들을 진열대 앞에 정리해 놔서, 사람들이 양심적으로 자신의 물건을 찾아가고 계산대에 비용도 올려 두었다. 상단에선 영수증과 함께 다음 의뢰품을 적은 종이를 두고 갔는데, 엘리엇은 작업실 입구와 집 안으로 가는 통로를 슬금슬금 살피면서 재빨리 돈을 정리했다. 의뢰서도 확인을 끝낸 것처럼 벽에 붙여 두고, 영수증도 상자에 잘 넣어 두었다.
“완벽해.”
엘리엇은 배시시 웃으며 팔랑팔랑 작업실로 돌아와 다시 망치를 쥐었다. 얼른 이것을 만들고, 허깨비가 부탁한 검도 준비해야 했다. 깡깡 철을 내려치던 엘리엇은 잠시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뭔가 예전보다 훨씬 더 찰진 느낌이 어색했다. 좋은 철괴를 써서 그런가?
다시 깡깡깡 내려치자, 못생긴 철 덩어리에서 뭉게뭉게 구름 같은 것이 피어나더니 한순간 싹 걷히며 단단한 금속성 빛을 내는 덩어리가 되어 버렸다. 화들짝 놀란 엘리엇이 크게 숨을 삼키며 한 발자국 물러섰다. 양손에 꼭 쥔 망치가 파들파들 떨렸다.
“허, 허깨비님…….”
이런 현상은 허깨비 말고 설명할 길이 없다. 엘리엇은 긴장으로 움츠러든 목을 가까스로 돌려 테이블 위에 있는 재료를 쳐다보았다. 화살표가 둥실거리며 허옇게 물러진 미스릴을 가리키고 있었다. 가격이 무척 비싼 금속이라 양이 적은데도 허깨비는 그것을 원했다.
“허깨비님, 이건 안 돼요. 이건 귀인께 드릴 검의 재료로 쓰려고 아부지가 도시까지 가서 사 온 거란 말이에요.”
엘리엇이 애걸복걸하며 안 된다고 사정해도 허깨비의 화살표는 고집스럽게 미스릴을 가리켰다. 엘리엇은 발을 동동거리며 허깨비를 말리다가, 30분이 넘는 (혼자만의) 논쟁 끝에 작은 조각칼을 들고 왔다.
“그럼 이만큼만 써요. 다 쓰면 아부지한테 정말 크게 혼날 거예요.”
허깨비의 화살표가 이번엔 용광로로 향했다. 엘리엇은 작은 미스릴 조각을 용광로에 넣어 녹이고, 섬세하게 잡아 꺼낸 후 아까 만들어진 덩어리와 함께 섞어 녹이고 때리기를 반복했다.
어느새 밖으로는 동이 트고 있었다. 엘리엇은 땀을 닦으며 창밖을 내다보았다. 아버지가 자는 사이에 온갖 오지랖을 다 부린 허깨비는 이제 금이 들어 있는 상자를 가리키고 있었다. 엘리엇은 서글프게 웃으며 상자를 열었다. 이건 가끔 영주성이나 상단에 납품할 때 쓰는 재료였다.
“금은 너무 물러서 검신에 쓰면 안 좋아요. 칼자루 만들 때나 써서 좀 더 예쁜 색을 내고…… 허깨비님?”
엘리엇이 금을 꺼냈을 때부터 이미 허깨비의 화살표는 또 다른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엘리엇은 거의 체념하여 허깨비가 시키는 모든 물건을 다 때려박아 녹였다. 칼자루를 이걸로 만들라는 뜻인지, 허깨비는 혼자 또 팡파르를 울리며 자축했다.
허깨비 특유의 뭉게뭉게한 구름 마법 같은 게 용광로를 감돌고 나자 또다시 단단하게 압축된 금속 덩어리가 뚝 떨어졌다.
빠바바밤!

[튜토리얼 – 재료 합성]을 완료하였습니다.

그리고 다시 사라진 허깨비에 엘리엇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새벽부터 동이 틀 때까지 계속 허깨비와 붙어 있었더니 이젠 겁도 나지 않았다. 어차피 허깨비는 자신의 말을 듣는 척도 하지 않는다…….
“만들어 드리면 되잖아요…….”
엘리엇은 외로이 망치질을 이어 갔다. 아버지는 아마 정오쯤 일어나실 것 같으니 그때까지만 하다가 대충 숨겨 둬야겠다. 엘리엇은 아침밥도 굶어 가며 검의 형태를 만들다가 용광로에 다시 철을 녹이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만든 건 허깨비가 가져갈 테니, 귀인에게 줄 검은 또 다시 만들어야 했던 탓이다.
이렇게 억울할 수가. 엘리엇은 불똥이 튀는 용광로 사이로 우울하게 집게를 들쑤셨다.

아버지는 엘리엇이 거의 피곤에 절어 망치를 휘두르고 있을 때쯤 일어났다. 바구니에 보리빵을 한 아름 챙겨 우유와 함께 들고 온 그는 엘리엇이 비몽사몽이라는 걸 깨닫고 혀를 찼다.
“그만하면 단단하것네. 형태는 잡아 놨어야?”
“네에.”
“근디 금 상자는 왜 여따 갖다 놓은겨?”
엘리엇이 번쩍 고개를 들었다. 잠이 확 달아나 버린 그는 애써 침착하게 말했다.
“색깔을 좀 내 볼까 하고…….”
아버지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그는 아들의 미숙한 준비를 보며 인상을 쓰고 말했다.
“이래선 번잡해서 집중도 안 되잖여. 아직 쓰지도 않을 물건을 왜 이리 꺼내 놨다냐. 아침 먹고 혀. 난 잠시 대장간 가서 일 좀 보고 올랑께.”
엘리엇이 힘없이 네에, 하고 대답했다. 아버지는 영 기운이 없는 아들의 입에 빵을 물려 주곤 대장간으로 가 손님을 맞았다. 엘리엇은 보리빵을 우물거리다가 우유를 한입에 털어 넣었다. 허깨비가 뭉뚱그린 금속을 옷 안에 숨긴 그는 한숨 자고 오겠다며 아버지에게 통보한 후, 비척비척 방으로 올라가 드러누웠다.
“허깨비님, 이제 그만 승천해 주세요…….”
그렇게 말하며 잠든 그날에, 엘리엇은 허깨비의 붉은 화살표가 집 안의 모든 물건을 다 가리켜 빼앗다 못해 자신의 옷과 신발까지도 털어 가는 꿈을 꿨다. 마지막엔 뭉게구름과 띵동 하는 소리가 요란하게 나타나 엘리엇을 비웃어서, 그는 이날의 꿈을 ‘인생에서 가장 끔찍한 악몽’으로 명명했다.


저자 프로필

여울여울

2020.01.23. 업데이트 작가 프로필 수정 요청


저자 소개

여울여울

목차

<1권>
EPISODE 1. 대장장이 엘리엇
EPISODE 2. 네마락트 대장간 2호점

<2권>
EPISODE 3. 황궁의 대장장이
EPISODE 4. 황도의 등불

<3권>
EPISODE 5. 가짜 대장장이
EPISODE 6. 불야성의 연인

<4권>
EPISODE 7. 허깨비와 꿈동산
EPISODE 8. 네마락트 남작

<5권>
EPISODE 9. 허깨비의 주인
EPISODE 10. 전설의 대장장이를 지켜 줘
EPILOGUE

<외전 1>
야성의 연인


리뷰

구매자 별점

4.6

점수비율
  • 5
  • 4
  • 3
  • 2
  • 1

1,105명이 평가함

리뷰 작성 영역

이 책을 평가해주세요!

내가 남긴 별점 0.0

별로예요

그저 그래요

보통이에요

좋아요

최고예요

별점 취소

구매자 표시 기준은 무엇인가요?

'구매자' 표시는 리디에서 유료도서 결제 후 다운로드 하시거나 리디셀렉트 도서를 다운로드하신 경우에만 표시됩니다.

무료 도서 (프로모션 등으로 무료로 전환된 도서 포함)
'구매자'로 표시되지 않습니다.
시리즈 도서 내 무료 도서
'구매자’로 표시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같은 시리즈의 유료 도서를 결제한 뒤 리뷰를 수정하거나 재등록하면 '구매자'로 표시됩니다.
영구 삭제
도서를 영구 삭제해도 ‘구매자’ 표시는 남아있습니다.
결제 취소
‘구매자’ 표시가 자동으로 사라집니다.

이 책과 함께 구매한 책


이 책과 함께 둘러본 책



본문 끝 최상단으로 돌아가기

spinner
모바일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