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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해서 오늘도 버렸습니다 상세페이지

에세이/시 에세이

불안해서 오늘도 버렸습니다

매일의 기분을 취사선택하는 마음 청소법

구매종이책 정가13,000
전자책 정가9,100(30%)
판매가9,100

책 소개

<불안해서 오늘도 버렸습니다>

나는 과거를 잘 흘려보낼 줄 모르며 과거 때문에 괴로워하고, 과거에서 뽕 뽑아 글을 쓰며, 과거와 권투를 하다가 뻗는 머저리다. 그래서 이제는 잘 버리는 인간이 되고 싶다. 버리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 버리기에 재능이 있는 사람, 과거를 건강하게 배웅할 줄 아는 사람. 그래서 나에게 ‘낙천적’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미래를 긍정적으로 내다본다는 의미보다는 ‘지나간 일들을 너무 자세하고 폭력적으로 돌아보지 않는 것, 지나간 것들이 흐릿해지도록 돕고 묵묵히 앞을 보는 것’에 가깝다. 나는 이제 변하고 싶은 것이다.
--- 「난 네가 고형물이라서 좋아」 중에서

친구를 위해 쓴 편지가 친구의 기분을 조금이라도 밝게 해주었으면 좋겠다. 나는 나의 친구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그렇지만 친구들에게 행복하라고 부추기고 싶진 않다. 우울증을 앓는 사람에게, 그 사람이 삶에 감사해야 할 이유를 나열하고 상기시키는 것은 도움이 안 된다. 행복한 일이 벌어지지 않아서 문제인 게 아니라, 행복한 일이 영향력을 상실했다는 점이 문제이기 때문이다.
--- 「환승 바지」 중에서

삶의 많은 시기를 희망에 의존하지 않고 사는 방법을 알고 싶어서 시를 쓰기 시작한 지도 모르겠다. 결론 없이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싶었다. 주제에 반항하는 인간이 되고 싶었다. 반주제주의자가 되는 것이다. 희망 꼴통으로 살아보는 것이다. 새해를 살면서 뒤로 가보는 것이다. 깔끔한 주제 없이 너저분하게 살아가는 것도 하나의 삶이라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인생에는 주제도 뭣도 없다고 받아들이는 용기를 갖는 것이다.
--- 「희망 꼴통 생존기」 중에서

“행복해애애애!!!!” 나는 오랜만에 괴성을 질렀다. 혜성특급을 함께 탄 낯선 인간들에게 떠벌렸다. 난 지금 행복하다고. 많이 알리는 게 답 같았다. 그래야 나도 내가 행복한지 알기 때문에. 내가 행복하다는 소문을 나도 들을 필요가 있기 때문에. 경박하게 소리를 질러댔다. 행복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모르지만, 행복 앞에서 예의를 차리는 것은 행복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았다. 예의를 차린 것이 결국 행복을 도망가게 했던 것 같아서. 그 순간을 만끽하는 것, 잠시 경박해지는 것이 내가 아는 행복을 다루는 기술이었다.
--- 「왜 불행은 확실하고 행복은 불안할까」 중에서

어떤 것을 잘하려면 그 분야에 대한 실망을 타고 나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끊임없이 실망하고도 계속 좋아해야 전공이 될 수 있기 때문인가. 내가 만든 음식이 아무리 맛이 없어도 슬프지 않았고, 맛이 있다 해도 크게 기쁘지 않을 것 같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남을 신경 쓰지 않고 내 속도대로, 기분 좋게 흥얼거리며 사람이 먹을 수 없는 음식을 만들었다.
--- 「요리사가 될 수 없는 이유」 중에서

버리지 않으면 익숙해질 수 없구나. 나를 아프게 하는 것, 숨을 못 쉬게 하는 것을 왜 버리지 못할까. 나에게 해를 가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끈질기게 갖고 있다. 누군가를 끊어내지 못했던 것처럼, 어떤 기억을 잊지 못했던 것처럼, 어제를 버리지 못하는 것처럼.
--- 「세상의 연약함을 뚫고 자라난 두 개의 다리」 중에서

꽃다발만큼 시끄러운 선물도 없다. 지하철을 타고 오는데 꽃다발을 들고 있는 것만으로 나의 존재감이 부각되었다. 어쩌면 타인에게 포장지를 선물하고 싶은데 그건 좀 미안하니까 꽃을 덤으로 주는 게 아닐까? 사실은 포장지를 꽃으로 포장하는 게 아닐까? 모든 선물의 본질은 포장이 아닐까? 포장하는 마음을 주고 싶은 게 아닐까? 마음을 포장한 게 선물이니까. 마음을 풀 때 들리는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선물이니까. 포장이 마음이고 마음이 포장이고 세상이 근사한 포장이라서.
--- 「포장지를 버리지 못하는 마음」 중에서

피를 뽑기 전, 간호사들은 주사 부위를 찰싹찰싹 때려 밑밥으로 통증을 깔아놓은 다음, 그 위에 뾰족한 통증을 체리처럼 얹는 것으로, 그것이 체리인지 고통인지 통증인지 장식인지 헷갈리게 하는 전법을 구사한다. 그런데 이번 간호사는 고개를 숙여 혈관을 유심히 찾은 뒤, 검지로 아주 살짝 톡톡 두드린다. 마치 엄마의 팔에 작은 문이 있고 그 안에 작은 동물이 사는 것처럼. 그 동물이 놀라지 않게 조심스럽게, 동시에 주저하며 톡톡 두드렸다.
--- 「긴 복도 엄마」 중에서

“엄마다!” 아빠가 소리쳤다. 침대에 실린 엄마는 소음 천지인 병실 복도에 아무렇게나 방치되어 있었다. 나는 엄마에게 달려갔다. 각본에 따라 “편안한 비행되셨습니까? 행복한 여행 에어라인, 기장 문보영이었습니다” 하고 말하려 했는데, 물 묻은 거즈를 입에 물고, 코에는 커다란 붕대를 하고, 호스를 단 엄마를 보자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끊임없이 물이 떨어지는 폭포를 재현한 석조 장식물처럼 나는 선 채 울었다. 손가락으로 눈물을 훔치다가 손등으로 닦다가 팔뚝으로 눈물을 닦았다.
--- 「팔뚝으로 닦는 눈물」 중에서

재활은 치료의 지루함에 대한 만반의 준비와 각오를 연상케 한다. 내 머릿속에 그려지는 재활의 이미지는 아주 아주 아주 아주 아주 아주 아주 아주 아주 아주 아주 아주 아주 아주 아주 아주 아주 아주 아주 서서히 회복되어서, 기적이라고 부르기 뭣한 것. 민망할 정도로 느리게 낫는 것이다. 그런데 절대 나을 수 없는 사람이 치유되었을 때, 그것을 기적이라고 부르기 전에 재활이라고 부르면 더 좋을 것이다. 기적보다 더 좋은 말이 재활 같았다. 견딘 사람의 몫을 쳐주는 것 같아서. 기적보다는 재활이 더 성실한 것 같아서. 재활은 거저 얻은 게 아니라서 거저 잃을 것 같지도 않아서.

--- 「재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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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왜 불행은 확실하고 행복은 불안할까?”
불안이라는 오랜 지병과 잘 헤어지는 방법

전염병이 창궐했습니다. 모두가 우울해했습니다. 전문가들은 한번 몸에 새겨진 불안과 불안의 기억은 언제고 다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낼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전염병이 있기 전에도 우리는 불안이라는 친숙한 바이러스 안에서 웃고 울고 뒹굴며 살았습니다. 우리의 생에 한번 각인된 불안은 쉽게 떠나지 않고 지병처럼 평생 마음 안에 기생할 뿐입니다. 불안에 관해 둘째가라면 서러운 시인이 있습니다. 그녀는 감정에 이름을 붙이고, 불안이 자기 안에서 마음껏 날뛸 수 있도록 공공연하게 선언하는 사람입니다. 그녀는 시도 때도 없이 불안에 떱니다. 시험과 마감, 인간관계에 불안을 느끼고, 글을 쓸 때 옆에 쓰레기통이 없다는 이유로 불안을 느끼며, 잠이 달아서 불안하고, 놀이기구를 타며 너무나 행복한 나머지 불안해합니다.

“왜 불행은 확실하고 행복은 불안할까?” 그녀는 불안이 자신의 행복을 숙주삼아 확장하는 모습을 보며 결단을 내립니다. 일상을 지배하는 불안과 타협하기 위해 매일 한 가지 물건에 쓸모없는 감정을 붙이고, 그것을 버린 다음, 관찰 일기를 쓰는 것. 버리기와 기록하기, 두 가지 방법을 통해 ‘잘 헤어지는 방법’을 탐구합니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쓰레기는 엄마의 오줌이다. (···) 화장실에서 오줌 컵에 담긴 엄마의 오줌을 50번쯤 버리자, 엄마의 오줌은 내가 버려본 쓰레기 중에 가장 사랑에 가까운 쓰레기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 엄마는 평생 나의 공포와 나의 꿈과 나의 불행을 관찰한 사람이다. 엄마는 내가 기쁘든 슬프든 옆에서 나의 삶을 기꺼이 관찰했다. 반대로 엄마의 공포는 나에게도, 엄마에게도 관찰의 대상이 아니었다. 이제는 엄마의 슬픔과 인생, 엄마가 품고 있을 내면의 어떤 공포와 이야기를 관찰하고 싶었다. (_내가 사랑하는 쓰레기 중에서)

그녀가 버린 것은 단지 간병 중인 엄마의 오줌이지만, 그 안에 함께 묻어 버린 것은 그동안 돌보지 못했던 엄마의 슬픔과 우울 그리고 고통에 무관심했던 지난날의 자신입니다. 그녀는 몇 번이고 엄마의 오줌을 버리며 엄마의 슬픔에 기꺼이 발 담그려합니다. 그러고는 쑥스러운 듯 이렇게 말할 뿐입니다. ‘갚아야 할 관찰의 빛이 너무 많아서 그래요.‘

“바지 환승을 위해 오래된 바지를 버렸다”
문보영이라는 이름의 성장기를 목격하다

등단 후 1년 만에 ‘김수영 문학상’을 수상한 시인은 여느 시인과는 다른 행보를 보여 왔습니다. 틈날 때마다 힙합을 추고, 손수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려 독자에게 배달하는 자발적인 연재 시스템을 구축했으며, 영상 언어인 브이로그를 통해 소통했습니다. 매년 한 권의 책을 내며 누구보다 부지런히 창작 활동에 매진한 그녀는 패기 넘치는 청춘의 아이콘을 넘어, 이 시대의 보편적 슬픔을 보듬는 영향력 있는 작가로 성장했습니다.

“사람들은 손잡이가 없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을 문으로 생각하지 않는데 시를 쓸 때만큼은 사람의 무릎이나 겨드랑이 아니면 허벅지에 난 점 따위에 달린 작은 손잡이가 보이며, 열릴 리 없지만 왠지 열고 싶다는 느낌을 받는다.”

위의 글은 시인의 문학상 수상 소감의 일부입니다. 늘 번뜩이는 표현과 미처 생각지 못했던 다른 차원의 감각에 천착하던 시인은 『불안해서 오늘도 버렸습니다』를 통해 타인의 우울과 타인의 행복을 염원해주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친구를 위해 쓴 편지가 친구의 기분을 조금이라도 밝게 해주었으면 좋겠다. 나는 나의 친구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그렇지만 친구들에게 행복하라고 부추기고 싶진 않다. 우울증을 앓는 사람에게, 그 사람이 삶에 감사해야 할 이유를 나열하고 상기시키는 것은 도움이 안 된다.” (_환승 바지 중에서)

단순한 흥미로 물건을 버리기 시작한 그녀는 마침내, 가장 아끼던 물건을 버리게 됩니다. 천식을 일으키는 낡은 곰 베개를 버리고 새 베개를 들이게 된 것이지요. 고통스럽지만 익숙하다는 이유로 감내해야 했던, 아픈 인연과 낡은 어제의 기억을 과감히 끊어냅니다.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는 걸 스스로 깨닫는 순간입니다.

“버리지 않으면 익숙해질 수 없구나. 나를 아프게 하는 것, 숨을 못 쉬게 하는 것을 왜 버리지 못할까. 나에게 해를 가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끈질기게 갖고 있다. 누군가를 끊어내지 못했던 것처럼, 어떤 기억을 잊지 못했던 것처럼, 어제를 버리지 못하는 것처럼.” (_세상의 연약함을 뚫고 자라난 두 개의 다리 중에서)

그녀의 글은 여전히 감각적이며 또한 젊은 작가에게 거는 사람들의 기대를 한껏 충족시킵니다. 거기에 타인을 향한 사려 깊은 메시지를 더해, 불안의 시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공감과 위로를 보냅니다. 때로는 감당하기 힘든 불안 앞에서 크게 비명을 지르고, 돌아서서 혼자 울기도 하지만, 결국 용기 내어 불안과 마주합니다. 그 모습을 통해 독자는 자신의 일상을 돌아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녀가 버린 서른일곱 개의 사소하지만 의미가 담긴 물건들. 당신이 버리게 될 물건에는 어떤 사연이 담길지, 비워낸 불안의 자리에 어떤 행복이 깃들게 될지 궁금해집니다.


출판사 서평

책 속으로



나는 과거를 잘 흘려보낼 줄 모르며 과거 때문에 괴로워하고, 과거에서 뽕 뽑아 글을 쓰며, 과거와 권투를 하다가 뻗는 머저리다. 그래서 이제는 잘 버리는 인간이 되고 싶다. 버리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 버리기에 재능이 있는 사람, 과거를 건강하게 배웅할 줄 아는 사람. 그래서 나에게 ‘낙천적’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미래를 긍정적으로 내다본다는 의미보다는 ‘지나간 일들을 너무 자세하고 폭력적으로 돌아보지 않는 것, 지나간 것들이 흐릿해지도록 돕고 묵묵히 앞을 보는 것’에 가깝다. 나는 이제 변하고 싶은 것이다.
--- 「난 네가 고형물이라서 좋아」 중에서

친구를 위해 쓴 편지가 친구의 기분을 조금이라도 밝게 해주었으면 좋겠다. 나는 나의 친구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그렇지만 친구들에게 행복하라고 부추기고 싶진 않다. 우울증을 앓는 사람에게, 그 사람이 삶에 감사해야 할 이유를 나열하고 상기시키는 것은 도움이 안 된다. 행복한 일이 벌어지지 않아서 문제인 게 아니라, 행복한 일이 영향력을 상실했다는 점이 문제이기 때문이다.
--- 「환승 바지」 중에서

삶의 많은 시기를 희망에 의존하지 않고 사는 방법을 알고 싶어서 시를 쓰기 시작한 지도 모르겠다. 결론 없이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싶었다. 주제에 반항하는 인간이 되고 싶었다. 반주제주의자가 되는 것이다. 희망 꼴통으로 살아보는 것이다. 새해를 살면서 뒤로 가보는 것이다. 깔끔한 주제 없이 너저분하게 살아가는 것도 하나의 삶이라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인생에는 주제도 뭣도 없다고 받아들이는 용기를 갖는 것이다.
--- 「희망 꼴통 생존기」 중에서

“행복해애애애!!!!” 나는 오랜만에 괴성을 질렀다. 혜성특급을 함께 탄 낯선 인간들에게 떠벌렸다. 난 지금 행복하다고. 많이 알리는 게 답 같았다. 그래야 나도 내가 행복한지 알기 때문에. 내가 행복하다는 소문을 나도 들을 필요가 있기 때문에. 경박하게 소리를 질러댔다. 행복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모르지만, 행복 앞에서 예의를 차리는 것은 행복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았다. 예의를 차린 것이 결국 행복을 도망가게 했던 것 같아서. 그 순간을 만끽하는 것, 잠시 경박해지는 것이 내가 아는 행복을 다루는 기술이었다.
--- 「왜 불행은 확실하고 행복은 불안할까」 중에서

어떤 것을 잘하려면 그 분야에 대한 실망을 타고 나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끊임없이 실망하고도 계속 좋아해야 전공이 될 수 있기 때문인가. 내가 만든 음식이 아무리 맛이 없어도 슬프지 않았고, 맛이 있다 해도 크게 기쁘지 않을 것 같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남을 신경 쓰지 않고 내 속도대로, 기분 좋게 흥얼거리며 사람이 먹을 수 없는 음식을 만들었다.
--- 「요리사가 될 수 없는 이유」 중에서

버리지 않으면 익숙해질 수 없구나. 나를 아프게 하는 것, 숨을 못 쉬게 하는 것을 왜 버리지 못할까. 나에게 해를 가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끈질기게 갖고 있다. 누군가를 끊어내지 못했던 것처럼, 어떤 기억을 잊지 못했던 것처럼, 어제를 버리지 못하는 것처럼.
--- 「세상의 연약함을 뚫고 자라난 두 개의 다리」 중에서

꽃다발만큼 시끄러운 선물도 없다. 지하철을 타고 오는데 꽃다발을 들고 있는 것만으로 나의 존재감이 부각되었다. 어쩌면 타인에게 포장지를 선물하고 싶은데 그건 좀 미안하니까 꽃을 덤으로 주는 게 아닐까? 사실은 포장지를 꽃으로 포장하는 게 아닐까? 모든 선물의 본질은 포장이 아닐까? 포장하는 마음을 주고 싶은 게 아닐까? 마음을 포장한 게 선물이니까. 마음을 풀 때 들리는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선물이니까. 포장이 마음이고 마음이 포장이고 세상이 근사한 포장이라서.
--- 「포장지를 버리지 못하는 마음」 중에서

피를 뽑기 전, 간호사들은 주사 부위를 찰싹찰싹 때려 밑밥으로 통증을 깔아놓은 다음, 그 위에 뾰족한 통증을 체리처럼 얹는 것으로, 그것이 체리인지 고통인지 통증인지 장식인지 헷갈리게 하는 전법을 구사한다. 그런데 이번 간호사는 고개를 숙여 혈관을 유심히 찾은 뒤, 검지로 아주 살짝 톡톡 두드린다. 마치 엄마의 팔에 작은 문이 있고 그 안에 작은 동물이 사는 것처럼. 그 동물이 놀라지 않게 조심스럽게, 동시에 주저하며 톡톡 두드렸다.
--- 「긴 복도 엄마」 중에서

“엄마다!” 아빠가 소리쳤다. 침대에 실린 엄마는 소음 천지인 병실 복도에 아무렇게나 방치되어 있었다. 나는 엄마에게 달려갔다. 각본에 따라 “편안한 비행되셨습니까? 행복한 여행 에어라인, 기장 문보영이었습니다” 하고 말하려 했는데, 물 묻은 거즈를 입에 물고, 코에는 커다란 붕대를 하고, 호스를 단 엄마를 보자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끊임없이 물이 떨어지는 폭포를 재현한 석조 장식물처럼 나는 선 채 울었다. 손가락으로 눈물을 훔치다가 손등으로 닦다가 팔뚝으로 눈물을 닦았다.
--- 「팔뚝으로 닦는 눈물」 중에서

재활은 치료의 지루함에 대한 만반의 준비와 각오를 연상케 한다. 내 머릿속에 그려지는 재활의 이미지는 아주 아주 아주 아주 아주 아주 아주 아주 아주 아주 아주 아주 아주 아주 아주 아주 아주 아주 아주 서서히 회복되어서, 기적이라고 부르기 뭣한 것. 민망할 정도로 느리게 낫는 것이다. 그런데 절대 나을 수 없는 사람이 치유되었을 때, 그것을 기적이라고 부르기 전에 재활이라고 부르면 더 좋을 것이다. 기적보다 더 좋은 말이 재활 같았다. 견딘 사람의 몫을 쳐주는 것 같아서. 기적보다는 재활이 더 성실한 것 같아서. 재활은 거저 얻은 게 아니라서 거저 잃을 것 같지도 않아서.

--- 「재활」 중에서


저자 프로필

문보영

  • 국적 대한민국
  • 출생 1992년
  • 학력 고려대학교 교육학과 학사
  • 수상 제36회 김수영 문학상
    2016년 중앙신인문학상

2018.01.24. 업데이트 작가 프로필 수정 요청


저자 소개

시인. 매니큐어가 마를 때까지 잘 기다리지 못하는 인간이다. 1992년 제주도에서 태어났다. 고려대학교 교육학과를 졸업했다. 바람이 많이 부는 제주도에선 모자 위에 납작한 돌을 얹고 다녔다. 2016년 [중앙일보]로 등단했다. 2017년 시집 『책기둥』으로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했고 상금으로 친구와 피자를 사먹었다. 일상을 사는 법을 연습하기 위해 유튜브 채널 ‘어느 시인의 브이로그’를 시작했으며, 시와 소설, 일기를 일반 우편으로 배송하는 1인 문예지 ‘오만가지 문보영’을 발행한다. 시보다 피자를 좋아하고, 피자보다 일기를 좋아하며, 일기보다 친구를 더 사랑한다. 시집으로 『책기둥』 『배틀그라운드』, 산문집으로 『사람을 미워하는 가장 다정한 방식』이 있다.

목차

목차


프롤로그_불안을 할부하세요

1부_사라지지 않는 것들과의 싸움

사라지지 않는 것들과의 싸움
난 네가 고형물이라서 좋아
환승 바지
희망 꼴통 생존기
왜 불행은 확실하고 행복은 불안할까
본질 대화
시작도 전에 끝나버린 관계들
사랑과 발화의 양에 관한 이론 1화
사랑과 발화의 양에 관한 이론 2화

2부_나를 쪼개서 두 명인 척해야 했어

번아웃 증후군
삶이 내 쪽으로 선을 넘지 않도록
나를 쪼개서 두 명인 척해야 했어
팬티 처리
요리사가 될 수 없는 이유
재활
내면이 칼의 나라인 사람
내가 한 마리의 개를 보고 있을 때
실망하는 능력을 돌려줘

3부_포장지를 버리지 못하는 마음

포기 예찬
포장지를 버리지 못하는 마음
인싸와 아싸
말비빔 언어 샐러드
나는 나의 학교이며 학원입니다
바나나 사람
긴 복도 엄마
팔뚝으로 닦는 눈물
내가 사랑하는 쓰레기

4부_라면 2인분 끓이기 훈련

콧구멍 눈물
견적 내기
가방 원하기 가방 경외하기
적극적인 착각
라면 2인분 끓이기 훈련 1화
라면 2인분 끓이기 훈련 2화
라면 2인분 끓이기 훈련 3화
라면 2인분 끓이기 훈련 4화
포옹한 다음 버려지다
세상의 연약함을 뚫고 자라난 두 개의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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