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억원 고료 2014년 제10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삶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인생은 덮을 수 없는 책
자살이라는 결말은 그가 적은 게 아니다.
그는 누구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적게 한 것일까.
한일월드컵과 16대 대통령 선거가 있었던 2002년, 탄약고 야간 근무를 서고 있던 이필립 상병 앞에 의문의 남자가 나타나 자신의 제안을 받아들이면 남은 군 생활을 편히 지내게 해주겠다고 한다. 그 제안이란 그와 같은 시기에 국군광주통합병원에 입원했던 한 친구의 자살 사건을 조사하라는 것. 이등병 시절 유격 훈련을 받다 오른쪽 무릎을 다친 이필립은 자대와 군 병원을 오가며 생활하느라 진급조차 제때 못 했고, 탄약고 야간 근무를 말뚝으로 서며 얼마 남지 않은 군 생활을 버티고 있었다. 탄약고의 겨울은 끔찍했지만 지난 세월에 비하면 견딜 만했다. 든든한 동기들 덕분에 이젠 건드리는 놈도, 무시하는 놈도 없었다. 조금 더 편히 지내겠다고 수상쩍은 제안을 받아들일 이유는 없었지만 그는 남자의 손을 잡았다. 그는 자대에서는 무능력자에 부적응자지만 군 병원 일이라면 모르는 것이 없었고, 자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자신이 쓸모 있는 인간임을 증명해 보이고 싶었기 때문이다.
전후방 육해공군뿐 아니라 해병대에 특전사, 베일에 싸인 정보부대 출신까지 모여드는 곳, 병원이기 이전에 어디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구성과 시스템을 가진 그곳을 내부 사람들은 광통이라 불렀다. 이필립은 그곳으로 돌아가 살고 싶어 했던 한 친구의 죽음 뒤에 어떤 진실이 숨어 있는지 조사한다. 하지만 사건을 파헤치는 과정에서 뜻하지 않게 연쇄적인 자살 사건이 벌어지고, 그것이 그의 친구가 죽음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원인과 연결되어 있음이 서서히 드러난다. 늘 미지근했던, 그래서 죽은 전우들과 살아남은 전우들 사이에서 웃지도 울지도 못했던 그는 겨울과 봄 사이에 마침내 진실과 마주한다.
추천사]
제목은 직설화법이다. 그러나 내용은 그보다 은유적이고 함축적이다. 작가의 어조는 시종일관 핍진할 뿐만 아니라 현대인의 내적 불안을 예민하게 건들고 지나간다. 군대라는 닫힌 사회에서의 의문사를 추적하는 추리적 기법으로 된 『살고 싶다』의 매력은 무엇보다 차분한 문장으로 그려지는 다양한 인간 군상의 형상일 것이다. 그들은 감추고 싶은 우리들 자신의 모습이다. 선과 악은 현대 사회에서 경계가 모호하기 이를 데 없다. 작가를 따라 그 경계를 탐색해보는 것은 바로 우리들 내면으로 되구부러져 들어가는 단초가 되리라 본다. -박범신(소설가)
이 소설은 진지하지만 무겁지 않다. 눈은 냉정하되 가슴은 뜨겁다. 문장이 차분한 대신 대화는 경쾌하고 실감이 난다. 또한 짜임새 있는 구성은 무리 없이 사건 속으로 빠져들게 만든다. 군대의 병원이라는 폐쇄적 공간, 그 속에서 일어난 의문의 죽음, 살고 싶다는 젊은 외침. 이 묵직한 세 가지 이야기를 흥미롭게 엮어 마지막 질문에 도달한다. 어떻게 살 것인가. 귀 기울일 만한 진심 어린 질문이다. -은희경(소설가)
읽고 나면 ‘고맙다’는 마음이 들게 하는 소설이 있다. 고마워요, 이런 이야기를 이렇게 써줘서. “살고 싶다”라는 간결하면서도 강렬한 문장으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그런 마음이 또 깊어졌다. 집단의 폭력이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날 수 있는 군대를 다루면서도 이 소설은 구조적인 폭력이 아닌 인물 각자의 진실에 초점을 맞춘다. 자주 밑줄 긋게 하는 통찰이며 감칠맛 나는 비유, 냉정한 시선이 작가의 저력을 보여준다.
책을 덮으며 “살고 싶다”라는 말을 천천히 되뇌어본다. 지금 어디선가 홀로 가슴을 쥐어짜 이 말을 자아낼 사람들이 살아야 할 이유를 찾아주기를, 이 소설이 그 작은 끈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이혜경(소설가)
『살고 싶다』는 군대에서도 뜨겁게 살고 싶었던 군인과, 그의 자살 이유를 추적하는 동기 관심사병이 경험한 삶의 온도에 관한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 모두 ‘너는 뜨겁든지 차갑든지 하라.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이 너를 토해낼 것이다’ 하는 성경의 말을 현실의 실존적 차원에서 체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뜨겁게 살고 싶었으나 차갑게 존재할 수밖에 없었던, 너무도 살고 싶었으나 차라리 죽을 수밖에 없었던 인간들의 고립된 운명이 정보가 아닌 성찰, 독백이 아닌 사건으로 치밀하게 형상화된 소설이다. -김미현(문학평론가, 이화여대 교수)
도스토옙스키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 소설은 군대라는 폐쇄적이고 특수한 상황 속에서 궁극적으로 인간 선악의 실체를 탐구해나간다. 그것은 죽느냐 사느냐의 처절한 문제이기도 한 것이다. _세계문학상 심사위원단(박범신, 구효서, 은희경, 이혜경, 김형경, 방현석, 서영채, 하응백, 김미현)
책 속에서
군대에 오기 전에 나는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강했지만 어떤 집단에서도 문제를 일으킨 적은 없었다. 마음만 먹으면 뭐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하지만 나 자신에 대한 믿음은 군대에 와서 산산이 부서졌다. 나는 간단한 일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실수가 이어지고 모욕이 따라붙었다. 내 가슴은 항상 불안하게 뛰었다. 부적응자에 무능력자. 그게 나였다.
저항하지 못하는 상대를 때리는 것만큼 비열한 짓은 없다. 군대의 온갖 불합리는 힘을 가질 자격이 없는 자들에게 힘이 주어지는 데서 나온다. 하지만 나는 그 이름 모를 고참보다 박걸에게 짜증이 났다. 그렇게 당하고도 가해자를 감싸주는 이 녀석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나는 가끔 궁금했다. 무릎을 다치지 않았다면 나는 멀쩡한 다리로 어떤 길을 걸어갔을까. 그 길의 끝에서 나 역시 나도 모르던 내 안의 괴물과 마주했을까. 한두 마디 말로 쉽게 그들을 욕하고 침을 뱉지 못하는 건 한때는 선해 보였던 그들의 눈빛을 기억하기 때문이었다. 가장 두려웠던 건 기회가 주어진다면 얼마든지 그들처럼 될 수 있는 나 자신이었다.
폭력을 제대로 묘사하면 아무도 그것을 따라 하지 않는다. 맞는 자의 아픔뿐 아니라 때리는 자의 아픔까지도 표현되기 때문이다. 반면 폭력이 멋지게 혹은 우스꽝스럽게 그려질 경우 상처와 고통이 있어야 할 자리를 허세와 웃음이 대신한다. 그런 것을 보며 자란 사람은 폭력을 휘두르며 스스로를 멋지다 생각하고 아파하는 사람을 보며 웃게 된다.
“타살이나 사고사라면 알아내야겠지만 자살 아닙니까? 알아주길 바라는 이유가 있었으면 유서를 쓰지 않았겠습니까? 유서도 없다면 그 죽음의 이유를 파헤칠 필요가 있습니까? 조용히 애도하는 것이 고인의 선택을 존중하는 거 아닙니까?”
“선택? 자살이 선택이 될 수 있나?”
인생이란 책은 늘 독자의 예상을 뛰어넘는다. 지금까지 읽어온 내 인생을 돌이켜보면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내 생각대로 삶이 흘러간 적은 없었다. 어떤 부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다른 책을 집어 들 수도 없는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은 작가를 바꾸는 것이었지만 그 후로도 내 인생이 읽기 편해지진 않았다. 그럼 다음에 할 수 있는 선택은 무엇일까. 이지용이 말한 대로 책을 덮어버리는 것이 선택이 될 수 있을까. 아니면 언제나 내 생각과는 달랐던, 알 수 없는 다음 페이지를 펼쳐야 할까.
군대에 잘 적응한 사람들은 시간이 갈수록 모든 것에 익숙해지며 집에서처럼 생활하게 되지만 나에게 군대는 늘 떠나야 할 곳이었다. 누구나 제대 날짜를 기다리며 살겠지만 나는 한순간조차 이곳을 내 집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군 생활 전체가 나에겐 길고 긴 행군이었다. 자대의 침상에 있건, 훈련 중의 텐트 속이건, 광통의 베드에 있건 그곳은 나에게 길바닥이었다.
“네가 없으면 죽겠다는 사람과는 만나지 마라. 사람은 사람을 채워줄 수 없다. 날 채워줄 수 없는 사람에게 나를 채워주길 기대하고 요구하니까 결국은 바닥을 드러내고 메말라 갈라져버린다. 자신이 없으면 살 수 없도록 만드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남겨진 사람의 삶을 파괴하는 사랑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누구보다 너와 엄마를 사랑하지만 너와 엄마가 없어도 살 수 있다. 너도 그래야 한다.”
“자기가 바보란 걸 아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야. 책 좀 읽었다고 그럴싸한 말만 늘어놓을 줄 알더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몰라도 너한테 나쁜 일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나는 허리를 다친 일은 이야기했지만 내가 어떻게 다시 입원했는지는 말하지 않았다. 그걸 말해주지 않는 한 그는 이해할 수 없는 문제였다. 어쩌면 세상의 불통이란 이런 식인지도 모른다. 누구에게나 말 못 할 각자의 사정이 있는 법이니까.
아버지는 천국이란 모든 길과 벽이 금으로 만들어진 도시가 아니라 예수와 함께 사는 곳이라 했다. 같은 환경이라도 누구와 함께 있느냐에 따라 천국도, 지옥도 될 수 있다. 그리고 아마 이 이야기의 배경은 지옥일 것이다. 천국은 좀처럼 이야깃거리가 되지 못한다.
돈을 잃으면 조금 잃은 것이고, 명예를 잃으면 많이 잃은 것이고, 건강을 잃으면 전부 잃은 것이란 말이 있다. 나는 군대에 와서 명예와 건강을 잃었다. 돈은 원래부터 없었다. 그 말대로라면 나야말로 살 이유가 없다. 하지만 난 살아 있다.
사람은 원래 혼자야. 혼자 왔다 혼자 가는 거야. 저들을 봐. 아무도 너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해. 앞으로도 마찬가지야.
고통 끝에야 얻게 되는 진리 같았다. 저 옆에서 웃으며 소리를 지르는 이들은 백 년이 지나도 알 수 없는 깨달음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렇게 그럴싸한 거짓말에 넘어갔다. 나는 고통을 끝내기로 결심했다.
그 친구에게도 견뎌내기 힘든 고통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그게 뭔지 모르지만 그래도 살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끝없이 계속되는 고통은 없기 때문입니다. 살아 있었다면, 피투성이라도 살아만 있었다면 언젠가는 거울을 보면서 웃게 되는 날이 왔을 겁니다.
“넌 다리가 아니라 마음이 부서졌구나.”
“착한 척하지 마, 재수 없어. 사람이 자기 위해 살지, 누구 위해 살아? 넌 너 위해서 안 살아? 쉽고 편안하고 좋은 길이 있는데 왜 마다해? 갈 수 있으면 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