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하는 노년의 여인과 기록하는 여인,
그들이 동행한 젊음과 상처와 죽음 속으로 사라진 사람들로의 여행
2002년 『매일신문』 신춘문예에 「은빛 지렁이」로 등단하고 2009년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 「이별 다섯 번」으로 당선된 작가 김설원이 신작 장편 『나의 요리사 마은숙』을 내놓았다. 작가는 해체의 위기에 봉착한 가족 안에서 힘들게 살아가면서도 삶을 포기하지 않고 버텨야 하는 여성들과 현실에 뿌리내리고 사는 사람들의 삶 속에서 자기 관찰, 존재감에 대한 고민을 담아 이야기를 그려왔다. 그러한 삶에 천착해온 작가는 이번에도 여성을 중심인물로 다뤘으되 40여 년의 나이 차를 뛰어넘어 맺은 두 여성간의 특별하고 색다른 우정, 혹은 사랑을 그렸다는 점에서 깊은 공명을 남긴다.
●책 속에서
내 우중충한 목소리가 이승에 혼자 남아 꿈틀거린다고 생각하면 진저리가 쳐져요. 옷이든 사진이든 뭐든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고 저승사자를 따라가려 했던 내 다짐에 찬물을 끼얹었어요, 그 녹음기가.
“녹음은 집어치울 수 없남”
집은 예전 그대로인데 내 곁에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 신기할 지경입니다. 부엌의 아궁이처럼 붙박이로 눌러앉아 흘려보낸 칠십여 년의 세월을 누군가가 땅 깊숙이 묻어버린 것만 같아요. 홀로 질긴 시간을 견디고 있으면 이 원당리 집이 생생한 소리로 팽팽했던 시절이 무척 그리워집니다. 만약 조물주가 어디로 가고 싶으냐고 물으신다면, 나는 서슴없이 뱃사람들의 밥을 챙겨주던 시절이라고 말할 겁니다.
우리 집에는 온갖 소리가 살아 있습니다. 과거의 소리 말입니다. 나는 지금도 그 옛날 우리 집에 떠돌던 웃음소리, 말소리, 울음소리, 호통 소리를 듣습니다. 그런 기분 좋은 환청에 젖어 있으면 혼자 살고 있는 것 같지 않아요. 큰방, 작은방, 골방, 마루, 광, 부엌, 마당, 지붕, 텃밭이 옛날 그대로 있는데 내가 이 집을 버리고 어디로 간단 말입니까. 이가 입술 없이 살 수 있어요?
그 외로움은 비단 혼자 살기 때문에 우러나오는 감정이 아닙니다. 요즘에는 집에 식구가 바글바글할 때도, 경로당 친구들과 시시껄렁한 대화를 나눌 적에도 곧잘 쓸쓸한 기분에 젖어 드니까요. 태생적으로 늙음은 고독과 한 쌍인가 봅니다. 바늘과 실처럼 말이에요.
기억은 뽑아내면 어느새 돋아나 있는 무덤의 잡초 같아요.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파래지는.
마음속으로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고 있을 상주에게 저녁밥을 먹여야 하나 어쩌나 망설이고 있는데 어디선가 비둘기 울음소리가 들려요. 가만히 귀 기울여보니 그건 작은방 쪽에서 들리는 소리였습니다. 이게 무슨 소린가 싶어 작은방으로 가만가만 걸어갔습니다. 작은방이 가까워질수록 명치께가 시렸습니다. 그 비둘기 울음소리의 정체를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건 비둘기가 아니라 마은숙이 내는 소리였습니다.
시어머니를 깍듯이 모시면서도 나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살았어요. 이 ‘거리 두기’는 비단 시어머니한테만 향한 게 아니었습니다. 시댁 식구 모두에게 그런 경계선이 자연스레 그어졌기에 나는 최씨 집안의 큰며느리면서도 타인 같은 기분으로 매일 아침을 맞았습니다. 시댁에서 꾸준히 앓은 그 향수병 비슷한 지병은 말할 것도 없이 남편의 무관심이 싹틔운 겁니다.
나는 글을 쓸 때 젊음을 만끽했습니다. 머리를 염색하거나 화사한 옷을 걸치거나 화장으로 검버섯을 감출 때가 아니라, 반듯한 문장들이 내 손에서 흘러나오는 순간에 나이를 까맣게 잊곤 했지요.
대청마루를 닦고 또 닦아도 지워지지 않는 남편의 그림자. 부부라는 끈으로 묶여 있기 때문에 보이고 느끼는, 어느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을 미더운 환영이었습니다. 남편의 그림자는 자나 깨나 내 머릿속에서 둥둥 떠다녔습니다.
“(…) 그 무렵 매고 씨 얘기를 자주 했어요. 이승에서 부녀지간으로 맺어진 사인데 한 번도 같이 산에 오르지 못해서 한스럽다고요. 산에 죄를 짓고 가는 기분이래요.”
“먹이고 가르치지 못해서 한스러운 게 아니라 같이 산에 오르지 못해서 한스럽대요?”
몸을 옆으로 틀면서 마은숙이 발끈했어요.
망자의 옷가지와 함께 이 물건도 불태워달라는 분노가 얼굴에 가득했는데도, 마은숙의 손은 어느새 원고 뭉치를 챙기고 있었어요. 그게 애물단지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볕 좋은 아침, 텃밭에 쭈그리고 앉아 달래를 캐는데 ‘첫사랑의 감정이 이럴까’라는 생각이 삐쭉 돋아납디다. 나는 부모한테 떠밀려 족두리를 썼기 때문에 첫사랑이랄지 연애의 감정을 잘 몰라요. 게다가 남편이 바깥으로 나돌아서 그런 달달한 감정이 움트지 않았습니다. 어쨌거나 나는 저승을 눈앞에 둔 나이에 마은숙을 만나 첫사랑, 그 밤하늘의 불꽃놀이 같은 귀한 감정을 경험했습니다. 행운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