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방암 진단에서 마지막 치료, 그 이후까지
슬픔을 유머로, 두려움을 희망으로 바꾼 날들의 기록
환자다움의 틀을 깨고 진정한 회복의 의미를 전하는
따뜻하고 든든한 친구 같은 책
환자다움을 강요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기대하는 환자다운 모습이란 연약하고 유약하고 나약하다. 그래서 건강하고 밝게, 일상을 누리는 환자들을 마주하면 의아해한다. 병상에 누워만 있지도, 눈에 띄게 골골대지도 않는 모습에 진짜 환자가 맞는지, 자신들을 속이는 건 아닌지 의심하기도 한다. 저자 강현성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안 아파 보이는데? 나도 (일하느라 힘든데) 병가나 낼까?”
『아파만 하기에는 날씨가 너무 좋아서』는 이런 시선에 유쾌하게 저항한다. “암에 걸렸다고 만날 울면서 지내지는 않는다”는 저자는 눈물보다 웃음이 많은 경험담을 공유하며 새로운 환자의 유형을 제시한다.
40대 여성이자 20여 년을 회사원으로 살아온 강현성은 2022년 가을, 마흔하나라는 이른 나이에 유방암 2기 진단을 받았다. ‘사람과 술과 경험’을 좋아하던 저자에게 유방암 선고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을 터, 하지만 절망에 빠지지도 울부짖지도 부정하지도 않았다. 그저 평소에는 비싸서 엄두를 못 냈던 한식당으로 가 홀로 술잔을 기울이며 마지막 만찬을 즐겼을 뿐이었다. 그저 멍하고 왠지 담담했다는 저자는 부정과 고립-분노-타협-우울-수용이라는 다섯 단계를 가볍게 뛰어넘어 암에 걸린 상태를 곧바로 수용하고, 한 달 후 본격적인 항암 치료에 돌입한다. 이 책은 항암-수술-방사선 치료, 이후 회사로 복귀하기까지, 그 어느 때보다 ‘강현성’답게 살아낸 438일의 기록이다.
여성 100명 중 1명은 유방암 유병자
그렇다면 지금 필요한 것은?
유쾌하고 솔직하고 친절한 경험자의 이야기
저자는 “나의 기록들이 누군가에게 가치 있게” 쓰이길, 특히 유방암을 경험했거나 경험하는 중인 분들과 그 가족들에게 조그마한 힘이라도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이 책을 썼다. 그는 유방암 환자가 어떤 치료 과정을 맞닥뜨리게 되는지, 어떤 부작용을 겪는지,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 병원 풍경 등을 구체적으로 담아낸다. 또한 유방암 환자라면 반드시 알아야 할 것들을 친절하고 상세하게, 담담하거나 유머러스하게 풀어낸다.
그 첫 번째가 항암 치료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따를 수밖에 없는 부작용에 관한 서술이다. “딱 죽지 않을 만큼의 고통을 선사한다”는 항암 치료는 극단의 부작용과 그에 따른 고통을 수반한다. 온몸의 털이 빠지고 부종과 수족증후군, 근육통, 불면증, 발진, 시력 저하 등 크고 작은 부작용을 겪으며 그 부작용에 대처하는 노하우 역시 공유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암 멀티버스’에 진입한 사람이라면 피할 수 없는 것이 또 있다. 암 프리미엄 상품들이다. ‘암 환자를 위한’ 또는 ‘암 예방을 위한’이라는 문구가 추가됨과 동시에 서비스나 물품 가격이 훌쩍 뛰기 때문에 내게 꼭 필요한 것인지, 상품의 장단점은 무엇인지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저자는 요양병원과 영양제, 음식과 화장품, 가발, 옷 등 암 환자를 위해 준비된 물품과 서비스를 솔직한 후기와 함께 소개한다. 암 환자에게 이보다 더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것이 또 있을까. 실용성과 더불어 ‘당신’의 심리적 안정을 돕기 위한 저자의 배려가 돋보이는 대목이다.
아파만 하기에는 날씨가 너무 좋잖아?
항암 치료 중에도 배달 일을 하고 살사 댄스를 배우고
봉사활동을 하는 등 살아가는 법을 멈추지 않았다
이 책을 추천한 이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 “천편일률적인 투병기가 아니”(양선아)고 “단순한 투병기가 아니”(신윤정)라는 것이다. 저자는 서문에서 이 책은 평범한 일상의 기록이라며 “유방암 환자로서 맞닥뜨린 순간과 감정들이 많이 담겼지만 이마저도 살아가면서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순간들일 뿐이”라고 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저자는 치료를 시작하며 회사의 배려로 1년의 휴직 기간을 얻었다. 온전히 ‘나’만을 위한 시간이 생긴 것이다. 그 귀한 시간을 드러누운 채 보낼 수만은 없었다. 몸을 일으켜 움직였다. 도보 배달을 하고 살사 춤을 추고 악기를 연주하고 봉사활동을 하며 재미와 쓸모를 찾았다. 미루어두었던 공부를 마쳐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취득하기도 했다. 살 만해서 할 수 있었던 건 아니다. 이렇게나 잘 살아냈다고 잘난 척하려던 것도 아니다. 그저 자신을 불행에 가두지 않겠다고 다짐했을 뿐이며, 다른 일에 집중함으로써 고통을 잊어야 했다.
항암 치료가 시작되니 온몸이 무너져 내렸다. 끔찍한 고통에 마약성 진통제를 달고 살아도 그때뿐이다. 몸이 힘드니 마음까지 힘들다. 그러나 가만 누워서 할 수 있는 거라곤 없다. 지나간 날의 후회와 오지 않을 것 같은 완치의 그날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것뿐.
나가야 했다. 어떻게든 밖으로 나가 체력을 키우고 머릿속을 환기시켜야 했다. (149쪽)
그는 비가 오거나 눈이 오는 날에도, 영하의 추위에도 아랑곳없이 아픈 몸을 이끌고 배달 일을 나갔다. 날이 좋아서 좋았고, 날이 안 좋아서 또 좋았다. 날이 좋으면 도보로 배달하기 좋았고, 날이 안 좋으면 보너스 배달료가 많이 붙어서 또 좋았다. 이런 긍정적인 마음이 그에겐 평범한 일상이고 다른 사람들에겐 특별한 투병기로 읽히는 이 책을 쓰게 한 원동력이 되었을 것이다.
주위 사람들의 오해와 우려의 시선을 받으면서도 이러한 ‘환자답지 못한’ 일상을 밝히는 이유를 그는 이렇게 말한다.
억측과 오해가 생길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경험들을 부러 펼쳐놓고 싶은 이유가 있다. 울지 않고 웃으면서 이야기하고 싶었다. (중략) 나는 환자 당사자에게, 그 가족에게, 그 주변인들에게, 그리고 아플 수 있는 누구나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암에 걸렸다고 만날 울면서 지내진 않는다고. 환자의 모습은 다양하다고. 두려움에 잠식당하지 말고 그냥 일상을 살라고. (146~147쪽)
세상에 수많은 병이 존재하듯 환자의 모습 또한 다양하다. 단단한 내면으로 ‘살아가는 법’을 멈추지 않은 저자는 그 다양한 모습, 또 다른 일상의 가능성을 직접 경험한 뒤 들려준다. 이를 통해 전하고 싶은 마음은 하나다. 암에 걸렸다고 해서 내 삶이, 내 세상이 끝난 게 아니라는 것. “이 시간은 지나갈 것이고, 당신은 분명히 나을 거라는 것.”
암 투병 그 후, 바뀐 것과 바뀌지 않은 것
1년 만에 돌아온 직장, 일을 통한 성장은 계속된다
저자는 고민 끝에 직장으로 복귀한 뒤 마음껏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찾아 다시 한번 이직한다. 치료 후 많은 것이 바뀌었지만 그렇다고 암을 통해 큰 깨달음을 얻은 양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지도 않는다. 일상에서도 큰 변화를 꾀하지 않을 뿐 아니라 과자 하나 집어 먹고 죄책감을 느낀다든지, 운동을 하루 빼먹었다고 호들갑을 떨고 싶지는 않다고 말한다. 가끔 재발에 대한 두려움이 들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그 생각들이 일상을 지배하게 두지는 않는다. 그저 여전히 충실하게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 하고 싶었던 일을 마음껏 하는 것, 이것이 암 투병 후 저자 강현성의 일상이다. 아, 달라진 마음가짐 두 가지는 있다. 모든 상황에서 최우선 순위를 ‘나’로 두기로 했다는 것. 앞으로 끊임없이 ‘내’가 원하는 걸 찾고, 그걸 꼭 실현해내기로 마음먹었다는 점이다. 일을 통해 꾸준히 성장하기를 원하는 저자는 마흔이라는 부록 같은 인생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더불어 더 즐겁고 행복하게 살기를 꿈꾼다.
추천사
암 환자에게 ‘환자다움’을 강요하는 세상에서, 그는 암을 마주하는 모습 또한 저마다 다를 수 있음을 보여준다. 눈물로 시작해 눈물로 끝나는 천편일률적인 투병기가 아니다. 이 책은 무지갯빛처럼 다양한 암 환자의 세계로 안내하는, 실질적인 정보와 따뜻한 위로를 건네는, 든든한 친구 같은 책이다. 우리에겐 더 다양한, 더 많은, 암 경험자의 이야기가 필요하다. _양선아(한겨레신문 문화스포츠부 텍스트팀장)
이 책은 단순한 투병기가 아니다. 암이라는 거대한 파도 앞에서 어떻게 중심을 잡고 삶을 지속해나갈 것인지에 대한 기록이다. 저자의 유쾌하고도 솔직한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삶을 포기하지 않는 힘, 그리고 진정한 회복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암을 마주한 모든 사람들에게, 그리고 삶의 예상치 못한 변화 앞에서도 의미를 찾아가길 원하는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_신윤정(세브란스병원 외래간호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