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사회는 과거 역사의 어느 때보다도 복잡하고 불확실하며 예측불가능하고 불투명한 사회이다. 그럼에도 필자는 이 책의 제목을 감히 ‘극명 현대사’라고 지었다. 물론 이는 독자의 눈을 사로잡으려는 첫 번째 의도 때문이다. 두 번째 의도는 그렇게 복잡하고 불확실한 사회임에도 눈여겨 보면 분명한 역사적 흐름이 있음을 모색할 수 있다는 점을 주장하려는 때문이다. 세 번째, 그 흐름의 고찰을 통해 좀더 예측가능한 미래도 점쳐볼 수 있다는 점을 주장하려는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 책이 여러 복잡한 현상을 ‘단순화 논리’로 설명하려는 의도는 추호도 없다. 만약 그런 것을 기대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이 책을 접하려 한다면 크게 실망하거나 몇장 안넘기고 덮어버리게 될 것이다. 복잡한 문제는 복잡한 과정을 거쳐 풀어 나아가는 것이 정상이다. 복잡한 과정을 거쳐 간명화될 수 있다면 다행이다.
이 작업을 위해 우선 지난 30여 년간 세계를 휩쓸었던 주요 정치적 경제적 자연환경적 변화의 흐름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공산권 붕괴, 글로벌 경기침체, 지구온난화, 그리고 서구-이슬람 갈등과 북미 갈등이 그 초점의 대상이 될 것이다.
상기의 예들은 얼핏 보기에 서로 무관하고 무질서하게 발생하여 얽히고 설키며 오늘의 세계를 설정하고 있는 듯 보인다. 그러나 이 책의 관점에 의하면, 이들 다양한 사건과 현상은 마치 느슨히 연계된 그물망처럼 일정한 공통의 경향과 방향성을 띠고 있다. 마치 깨알 같은 쇠부스러기들이 점점히 흩어져 있는 종이 밑으로 자석을 갖다 대면 어떤 보이지 않는 자기장(磁氣場)의 흐름에 의해 일정한 관계의 패턴으로 재배열되는 것과 같다.
이 책은 그 느슨히 연계된 그물망의 거대한 윤곽을 드러내고, 그 그물망의 구심점 혹은 최종의 지향점을 조명함으로써 앞서 이 책의 제목을 감히 ‘극명 현대사’라고 단언한 근거를 제시할 것이다.
20-21세기 현대사의 특징은 첫째 거대화, 둘재 복잡화, 셋째 예측불능화로 요약될 수 있을 것 같다. 여기서 거대화란 글로벌화와 거의 같은 의미이다. 혹자는 세계가 글로벌화하면 복잡화될 것이고 복잡화되면 예측불가능화되는 것 아니냐, 그게 그 소린데 뭘 복잡하게 말하느냐고 반문할지 모르겠다. 오히려 이런 식의 논의가 쓸데없이 일을 더 복잡하게 만드는 것 아니냐고 반문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세계가 글로벌화하면 복잡화되고 예측불가능화될까. 공연히 하나 마나 한 소리를 하는 것일까.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구체적으로 들어가보자. 우선 세계의 거대화, 즉 글로벌화와 복잡화 사이에는 뚜렷한 상관관계가 없다. 어쩌면 진행향방에 따라서 글로벌화는 더 통일성과 통합성을 띨 수도 있다. 복잡화와 예측불능화 사이에도 큰 상관관계는 없다. 케이아스 이론chaos theory에 따르면 복잡하다고 해서 반드시 예측불가능하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대사가 혼란스러워 보이는 이유는 정말 혼란스럽기 때문이 아니라, 그 현상을 둘러싼 여러 논쟁들 때문이다. 예컨대 글로벌 경기침체는 순전히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기인한 것이다. 그러므로 세계화에 저항해야 한다는 주장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세계화는 불가항력적인 대세이고, 신자유주의는 그 흐름에 편승한 일부분이다. 양자를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에 세계화라는 흐름 속에서 신자유주의를 어떻게 통제할 수 있는가에 대한 대안은 제시하지 못한다. 때문에 혼란만 가중시키는 불필요한 논쟁이다. 또한 지구온난화는 대기 중 탄소농도가 가장 큰 원인이라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수십만 년을 주기로 하는 지구의 일상적인 변화라는 주장도 있다. 어느쪽도 판정승을 얻지 못했다. 이처럼 현대인을 혼란스럽게 하는 것은 세계화나 지구온난화라는 실제적인 Fact가 아니라, 그 Fact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논쟁이다.
이 책은 그 논쟁들을 소홀히 다루지는 않을 것이다. 그 논쟁들의 비중을 분류하여 정리하는 작업을 할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Fact이다. 상식적이며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Fact들만을 간추려서 ‘역사학’이라는 공시적 통시적 분석기에 입력하고, 그로부터 일정한 패턴 또는 경향을 산출할 것이다. 예컨대 공산권붕괴, 신자유주의 세계화, 글로벌 경기침체, 지구온난화, 북미갈등과 서구-이슬람갈등이라는 Fact들을 산출하고, 그 Fact들 사이에 어떤 커넥션connection이 존재하는지 간명화할 것이다.
첫눈에 일괄해 보아도 그 컨넥션은 일정 부분 이성적인 상상력을 넘어서는 어떤 초자연적이고 초이성적인 측면을 일부 지니고 있다. 예컨대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지구온난화라는 전혀 별개의 분야처럼 보이는 Facts 사이의 어떤 커넥션이 존재할 것이라는 것이라고는 쉽게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 존재한다. 이에 대해 구체적인 자료들을 제시하겠지만 그래도 충분하게 이성적으로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다.
이런 의미에서 어쨌든 이 책은 내용을 전개함에 있어 표면적으로 드러난 구체적 팩트fact들만을 동원하여 객관적이고 합리적으로 이해될 수 있는 부분만을 서술하는 논법을 따를 것이다. 그 외의 이해될 수 없는 의문이나 미스터리는 이 책의 논의에서 제외될 것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 논법만을 따라서 가고 있음을 염두에 두고 읽어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 이 책의 한계이다.
E. H. Carr는 역사란 현재와 과거의 부단한 대화라 했다. 이 책은 역사, 즉 현재 이전까지의 과거사는 현재와 미래의 씨앗이라는 점을 극명하게 밝힐 것이다. 복잡하게 얽혀있는 공산권 붕괴와 글로벌 경기침체와 지구온난화를 하나의 통합된 관점으로 간단명료하게 규명할 것이다. 그 씨앗이 어떻게 뿌리가 되고 줄기가 되고 많은 가지로 관생하고 증식하는지 극명하게 밝힐 것이다. 과거사는 현재의 세계에 던져주는 시그널sigenal이 결코 가볍지 아니한 것임을 분명히 보여줄 것이다. 서술의 대부분이 이미 일부 독자에게는 주지의 사실일 수도 있겠지만 하나 하나 순서를 밟아 읽어 나아갈 필요가 있다.(본문 중에서)
Unambiguous modern history(극명현대사) : a common factor of modern history is the extreme climate, extreme ideology, extreme wealth, and extreme poverty. These are not separated from one another. A complex of political, economical, and environmental problems, resulting in the global economic slump, global strife over hegemony, and global warming. This book will explicitly present how they are involved and how they are to be sol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