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년간의 신문 스크랩에서 만난 아버지와 아들의 대화
현대사의 무대 위에서, 보수적인 목사 아버지와
진보 성향의 기자 아들이 마주하다
저자인 아들이 아버지가 20년 전에 남기고 떠난 스크랩북을 펼친다. 처음 접하는 메모와 각종 기록을 통해 아버지의 생소한 얼굴과 만나며 깜짝 놀라기도 하고, 미처 몰랐던 한국 사회의 역사적 사건들을 공부하면서 우리 현대사의 내밀한 모습을 찾아간다.
아버지가 남긴 스크랩은 현대사를 살아낸 보통 국민의 시선이 된다. 여기에 근 20년 차 경력의 기자 아들이 덧붙인 역사적 사실과 맥락이 덧붙여져서 근사한 현대사 책으로 재편집된다.
어느 평범한 국민의 집념 어린 스크랩을 통해 당시 시대상과 분위기를 만나는 흥미로운 역사서이자, 스크랩과 메모를 매개로 아버지와 그 세대를 추억하는 뒤늦은 전상서다.
신문 스크랩을 하는 사람은 많아도, 정작 해놓은 스크랩을 잘 써먹는 사람은 많지 않다. 더구나 20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가 50여 년 전에 시작한 스크랩이 아들의 손을 거쳐 책으로 나온다는 것은 참으로 드문 일이다.《대한국민 현대사》는 아버지 고봉성 목사의 손때 묻은 스크랩북 25권의 내용을 아들 고경태 기자가 한국 최고의 편집기자로서의 탁월한 감각을 살려 만들어낸 책이다.
이 책에서 역사는 여전히 ‘가위와 풀의 역사’이고 ‘과거와 현재의 대화’이기도 하지만, 40대 중반에 접어드는 아들이 20대 중반에서 50대 후반에 이르러 돌아가실 때까지 나이 들어가는 아버지와 나눈 이야기로 되살아났다. 아들은 아버지가 가위질하여 25권에 담은 격동의 한국현대사를 다시 한 권으로 추렸다. 팔랑개비처럼 가버린 시간 속에 한국현대사의 역사적 사건은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이게 역사다. 아버지가 역사였고, 고경태가 역사였다. 역사는 남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내가 개입하고 내가 선택하고 내가 해석하고 내가 주인이고 내가 기록한 가장 생생한 한국현대사가 이 책 안에 있다.
_역사학자, 성공회대 교수 한홍구, 베스트셀러 《대한민국사》 저자
어느 역사학자도 미처 살피지 못한 보통의 시선으로 바라본 현대사
아버지가 남긴 34년간의 신문 스크랩을 재료로 아들인 저자가 뼈대를 세우고 살을 붙여 내놓은《대한국민 현대사》는 권세 잡은 이들만의 역사를 좇는 일반적인 역사서와는 전혀 다른 특별함이 깃들어 있다. 위세 등등하던 그들과 함께 그 시절을 살아낸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받아들인 일상에 관한 역사책이다. 이승만의 공과, 박정희의 18년간의 통치, 전두환과 민주화 시위 등등 현대사의 굵직한 단면들에서 당시 일상을 지배한 각종 재난과 사건사고까지 한 사람의 국민이 바라본 시선으로 역사를 담아놓았기에 피부에 와 닿는 생생함과 현장감이 발군이다.
《대한국민 현대사》는 역사를 현장에 서 있었던 국민의 시선에서 바라본다. 그 덕분에 어느 현대사 책에서도 자세히 다루지 않는 우리 역사의 촘촘한 단면들, 그 당시를 지배한 일상의 기억들을 머릿속 저편에서 데려온다. 이를테면 이 책은 5.16의 역사적 의미를 논하기 이전에 길을 가던 기자가 우연히 5.16 쿠데타 군의 공습을 직접 목격하면서 써내려간 특종 기사를 통해 긴박했던 그날을 마치 미드 <24>시를 보는 것처럼 생생하게 보여주는 식이다. 현장감이 살아 있는 신문 기사 스크랩과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적 이벤트가 연결되면서 시간여행은 시작된다.《대한국민 현대사》는 어느 역사학자의 평가가 아니라, 그 사건이 벌어진 바로 그날 신문들이 뽑고 쓰고 그린 기사와 장면을 통해 휘몰아치는 역사의 소용돌이를 살아내야 했던 사람들을 찾아가는 타임머신인 셈이다.
<본문 참조>
“좋은 분인가요, 나쁜 놈인가요” - 이승만의 최후 (본문 18p)
우리는 돼지가 되었는가 - 보릿고개 (본문 43p)
두꺼비와 고바우의 개판 5분 전 이야기 – 1967년 부정선거 (본문 108p)
각하 죄송합니다… 꼴 보기 싫어요 – 3선개헌과 유신 (본문 125p)
담배 끄고 자백하라, 범인은 너다! - 김대중 납치와 육영수 피살 사건 (본문 152p)
탈춤과 지랄춤, 칼춤의 시대 – 1980년 전두환의 봄 (본문340p)
이순자여 바가지를 생각하라 – 1987년, 그 후 (본문388p)
어느 역사교과서에도 다루지 않는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
정치적인 거대 서사와 굵직한 사건 위주의 역사 평가가 아닌 일반인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눈높이와 관심사는《대한국민 현대사》만 의 차별 지점을 만든다. 5.16 이후 벌어진 숙청을 다루면서 정치적 사건만이 아니라 단지 댄스홀에서 춤을 췄다고 쇠고랑을 찬 민초들의 고난과 같이 기존의 역사책에서는 중요하게 다루지 않는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에 주목한다. 이 책에서 다루는 역사의 주인은 유력 정치인이나 권력가가 아니라 역사학자들의 취사선택에서 버림받았던 보통 사람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각종 다방 인질극과 대연각 화재를 비롯한 끔찍한 사건 사고들이 정치적 이슈에 관한 비중만큼이나 크게 다뤄지는 것도 같은 이유다. 이 책에는 보통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와 함께 사회면에 오르내렸던 이름들이 대거 등장한다. 탈주범으로 ‘유전무죄 무전 유죄’라는 명언을 남겼던 지강헌과, 최근 또 한 차례 사회면 뉴스에 오르내린 ‘대도’이길 바랬던 조세형 등이 김영삼, 김대중이나 전두환 전 대통령의 동생 전경환보다 더 자세히 조명된다.
영화보다도 비극적인 범죄자의 스토리도 소상하다. 최인호의 장편 소설《지구인》의 실제 주인공이기도 한 ‘카빈 2인조 강도’ 이종대, 문도석이 저지른 범죄의 재구성에서부터 그의 가족사와 범죄에 이르게 된 사연, 그리고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는 마지막 장면까지 잘 정리되어 있다. 스크랩을 통해 그 당시 사람들에게 이 사건이 가져다준 파장과 충격을 짐작할 수 있다. 역사학자가 아닌 평범한 국민이 편집한 역사(기사)이기에 당시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와 정서 그리고 사회상을 풍부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본문 참조>
바지사장의 최후, 올 것이 왔다 – 5·16과 숙청 (본문 55p)
변을 당하다 – 미군 린치, 연서 린치, 화폐 린치, 똥물 린치 (본문 83p)
돌쇠는 이렇게 피투성이가 되었다 – 대연각 화재 등 육해공 참사 (본문 293p)
파리 한 마리가 56명을 죽이다 – 호외의 비명 (본문 463p)
‘비참한 말로’에도 등급이 있나 – 조세형, 지강헌, 신광재 (본문 496p)
어느 역사서도 이어주지 못한 세대 간의 화합을 돕는 가교
보고 듣고 만졌던 가까운 역사
차가운 머리로, 더운 가슴으로, 끓는 피로 겪었던 우리의 이야기
아버지가 남긴 유산에서 현대사의 쟁점을 찾는 것은 ‘당신’의 일이기도 하다.《대한국민 현대사》는 한 개인의 스크랩북을 바탕으로 하지만 개인의 유산을 넘어선 세대와 세대 간의 이해를 돕는 가교로써도 훌륭한 역할을 한다. 사진 기사와 4컷 만화, 그리고 만평과 아버지의 코멘트가 담긴 시는 그 당시 사회상과 국민 정서를 생생하게 전달해준다. 지금은 ‘역사책의 한 페이지’가 된 장면을 일상으로 받아들여야 했던 사람들의 온기가 느껴진다. 살아 있는 역사가 우리의 눈앞에 펼쳐지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대한국민 현대사》는 지난 대선을 전후로 불었던 현대사에 대한 관심을 가장 잘 해소해줄 수 있는 책이라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30여 년간 신문 스크랩을 꾸준히 해온 아버지의 집념과 끈기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각기 다른 지점에서 영향력을 미친다. 스크랩 속의 시절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땐 그랬지’라는 추억과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그 시절을 직접 겪지는 않았지만 근현대사에 관심이 많은 젊은 독자들에게는 당시 사람들의 생각, 즉 기성세대가 갖는 향수와 정치적 성향을 파악할 수 있는 힌트를 준다.
《대한국민 현대사》는 바로 이런 책이다. 한 국민이 마주한 일상의 한 장면, 한 장면을 마치 사진을 찍듯 포착해 시간을 붙잡아둔 사진집과 같다. 그 시대를 살아낸 한 국민(아버지)이 1차적으로 편집한 역사적 사료를 다시 기자(아들)의 시각에서 ‘오늘에 닿게’ 재편집해 내놓은 현대사 주석이자, 그 시절을 살아낸 세대를 알아가고 이해하도록 돕는 생생한 역사체험이다.
<본문 참조>
너의 손가락을 깨물지 말지어다 – 4·19와 데모대 (본문 33p)
그대, 알프스에 갔어야 하리 – 비운의 이수근 (본문 142p)
1968년 남북한·미·월의 상호 따귀 때리기 – 1·21/2·12/3·16 사건 (본문 231p)
“후하하 죽였다” vs “지문 채취 열심히 해보슈”
3인의 ‘독제자’ 서리가 내리다 – 방북, 공안몰이, 분신 (본문 407p)
아버지의 시선을 아들의 눈으로 좇다
“이것은 부자간의 뒤늦은 대화다.
동시에 한판 게임이다.
나는 끊임없이 아버지에게 시비를 걸겠다.”
40대 중반의 아들이 돌아가신 아버지가 남긴 스크랩북을 펼친다. 저자인 아들은 어느 날 아버지가 1959년부터 돌아가신 1992년까지 손수 만들어온 신문 스크랩북을 마주하기로 결심한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어느덧 20년이 지난 지금. 그동안 아버지의 책장 속에 마치 시간이 봉인된 듯 꽂혀 있던 이미 끝나버린 연재물을 20년 만에 다시 펼친 것이다. 먼지를 털어내고 빛바랜 책장을 넘긴다. 그리고, 빠져들었다. 34년간 오려 붙인 스크랩북 속의 신문 기사들은 마치 시간여행을 하는 타임머신처럼 아들을 아버지가 살아냈던 그 시대로 데려다 놓았다. 절대로 볼 수 없었던 20대의 아버지에서부터 아들의 머릿속의 아버지와는 전혀 다른 아버지의 또 다른 면면을 마주한다. 이 기이한 시간 여행 속에서 아들은 낯설고도 그리운 아버지와의 대화를 시도한다.
저자는 아버지가 모아놓은 신문기사를 하나하나 뜯어보고, 그 기사를 두고 남긴 코멘트와 이를 표현한 시를 보면서 생전 아버지와 나누지 않았던, 혹은 못했던 말을 건다. ‘아버지, 그게 사실은 말이죠……’
아버지는 1971년 4월 28일 4.27 대통령 선거 다음날, “제 7대 대통령 박정희 후보 당선”이라는 제목 밑으로 박정희 대통령이 감사 인사하는 사진의 얼굴 자리에 <조선일보> 만평을 붙여놓고, “죄송합니다 꼴 보기 싫어요”라는 제목을 붙이는 도발적인 스크랩을 남긴다. 이승만의 공과를 놓고 정치적 올바름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한 흔적이 빼곡하다. 그러던 아버지가 세월이 지나감에 따라 사회를 어지럽히는 민주화 운동, 노동자들의 데모 등에 대해 노골적인 반감을 드러낸다.
인생 막장으로 내몰린 광부들이 결국 폭발한 사북 사태에 관련된 스크랩에서 아버지는 “개들이 옷을 벗고 냇가에서 물싸움을 한다”며 광부들이 개같이 나쁜 짓을 했다는 확신에 찬 비난을 퍼붓는다. 그러면 아들은 사북 사태의 발발 원인과 광부들이 폭발할 수밖에 없었던 억울하고도 부조리한 현실 등의 ‘팩트’들을 찾아서 아버지에게 딴지를 건다.
《대한국민 현대사》는 이처럼 기억을 일깨우고, 왜곡된 정보를 교정해준다. 스크랩 속 신문 기사는 주류 언론의 시선이 취사선택한 역사다. 생생하긴 하지만 있는 그대로의 사실만을 전하거나 왜곡과 누락의 편집이 때때로 의도적으로 가미되어 있다. 배경을 모르면 가십에 불과하다. 시대상황에 대한 종합적 감각이 없으면 전혀 별개의 사건들이 나열되어 있을 뿐이다. 저자가 서문에 밝혔듯 1970년 8월 이판이 일병의 애인 인질 대치와 같은 해 3월 일본 적군파의 요도호 공중납치의 공통분모(본문 271P, ‘너의 무대는 공항이냐 다방이냐’ –적군파의 하이재킹과 다방 인질극), 1981년 3월 뇌성마비 중학생 장애인의 자살과 1983년 1월 게이바를 성토하는 기사(본문 427P, ‘놀리지 마라’ –장애인에서 카섹스까지)를 관통하는 흐름은 이런 준비 과정이 없으면 놓칠 수밖에 없는 것들이다.
그래서 저자는 ‘저승의 아버지가 이승의 아들을 공부시켰다’고 한다. 아들은 기사에서 밝히지 않은 진실을 찾기 위해 자료를 뒤져야 했다. 그 과정에서 잘 안다고 믿었던 역사적 사건들을 새롭게 정리했다. 아버지가 남긴 숙제를 아들인 저자가 해결하는 과정은 독자들도 어렴풋이 갖고 있던 역사적 지식을 쉽고 빠르게 정리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 과정에서 바로 오늘을 이해하기 위해서 왜 어제의 역사를 공부해야 하는지를 깨닫게 된다.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으로 스크랩북을 펼쳤으나 아버지에 대한 딴지를 걸면서 대화는 역사 바로 잡기 교육으로 이어진다. 이런 딴지의 대화를 엮어 정리한 것이 바로《대한국민 현대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