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진정한 ‘능력자’로 살아라!
오직 예수의 영으로만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다!
나누고, 사랑하고, 승리할 수 있는 하늘의 능력을 취하는 삶.
온전한 부흥을 이루는 삶을 위한 한홍 목사의 생생한 사도행전
세상이 감당 못할
하늘의 능력자로 사는 삶
무엇보다도 진짜 능력은 많은 일을 탁월하게 해내는 데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세상적인 복음 해석입니다. 성령충만하다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충만하다는 것입니다.
또한 진정한 능력은 ‘예수님처럼 죽는 것’입니다. 초대교회의 진짜 역사는 스데반의 순교로부터 시작합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을 먹고 시작되었고, 순교자의 피를 먹고 자랐습니다.
이 시대 한국교회가 예수님 때문에 욕을 먹고 죽을 각오를 한다면 세상은 충격을 받을 것입니다.
그런 아름다운 소망을 갖고 기도하는 여러분을 ‘열리는 능력시대’ 안으로 초대합니다.
-저자의 말 중에서-
[저자의 말]
진짜 능력의 시대가 열린다
세상에서 가장 모욕적인 말 중 하나가 ‘무능력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아는 것도 많고, 좋은 말은 많이 하는데 실제 삶에서는 그것을 하나도 실천하지 못하는 사람이지요. 착하고 좋은 사람이지만 아무 능력이 없으니 일을 믿고 맡길 수도 없습니다. 무능력한 가장은 가정을 불쌍하게 만들고, 무능력한 상사는 회사를 어렵게 만들며, 무능력한 지도자는 나라 전체를 도탄에 빠뜨립니다.
이것은 영적인 세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은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없는 것’(딤후 3:5)이 얼마나 비참한지를 수없이 말합니다. 능력 없는 이스라엘 백성은 법궤를 가지고도 블레셋 민족에게 대패합니다. 제사장들이 능력이 없으니 나라가 망하고, 성전은 침략자들의 손에 처참하게 짓밟히지요.
오늘날의 한국교회도 그렇습니다. 교회의 수도 많고, 프로그램도 많고, 선포하는 비전과 목표들도 다 거창하고 화려합니다. 그러나 지금 한국교회는 정체 상태를 넘어 쇠퇴기에 접어들었다고 할 정도로 휘청대고 있습니다. 능력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성령충만하다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충만하다는 것입니다.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 시작된 초대교회는 능력이 충만했습니다. 능력이 충만한 사도들이 설교를 하니까 그 시간에 하나님의 임재가 가득했습니다. 모두가 눈을 반짝이며 말씀을 들었고, 그들의 온몸은 거룩한 전류에 휩싸인 듯 떨렸습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통곡하고 회개하고 세례 받는 사람들이 순식간에 수천, 수만으로 늘어났지요. 능력이 넘치니까 부흥과 성장이 봇물 터지듯 터져 나왔습니다. 영적인 능력은 그런 것입니다. 쥐어짜는 것이 아니라 넘쳐흐르는 것입니다. 저는 이 땅의 교회들이 능력 충만한 설교와 부흥으로 매일 흥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교회에 주신 능력은 ‘사랑’입니다. 초대교회의 은혜 받은 성도들은 스스로 자신의 재정과 물건을 교회로 가져와 즐겁고 신나게 나눴습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하는 나눔이었기에, 주고받는 과정에서 자존심이 상할 일도 없었습니다. 어떻게든 다 자기 손에 거머쥐려고 하는 욕심 많은 세상에서 오직 성령의 능력만이 이런 파격적인 나눔을 가능케 합니다. 정치적인 쇼나 강제된 사회주의적 복지가 아닌, 자발적인 나눔의 실천은 교회가 거룩한 능력으로 충만할 때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교회에 주신 능력의 또 다른 모습은 ‘거룩’입니다. 초대교회의 중진이었던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가 거짓 헌금으로 성령을 기만하다가 순식간에 죽임을 당했습니다. 이로 인해 날로 부흥하던 초대교회 전체가 충격에 빠집니다. 그러나 이 사건은 초대교회에 저주가 아니라 축복이 되었습니다. 정결함이 없는 성장은 교회를 죽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적인 것과 영적인 것이 심하게 혼재되어 있는 지금의 교회 안에도 이 같은 하나님의 능력이 불같이 임해야 합니다. 세상의 어설픈 도덕적 잣대를 압도해버릴 엄청난 경건이 교회 안에 충만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교회를 부흥시키기 전에 반드시 정결하게 하십니다. 우리 안에 죽어 나가야 할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아직도 많은 것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습니다. “주님, 제가 죽을 죄인입니다!” 하며 가슴 치는 목사들과 장로들이 한국교회 곳곳에서 나와야 하겠습니다.
교회의 지도자들은 거룩한 능력으로 충만한 사람들입니다. 열 두 사도도 거룩한 능력으로 충만했고, 그들이 안수하여 세운 일곱 집사들도 그랬습니다. 일곱 집사들은 행정의 은사도 탁월했지만, 무엇보다도 성령과 은혜가 충만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단 일곱 명이 몇 만 명이 모이는 교회의 행정과 살림을 너끈히 끌고 나갈 수 있었습니다. 교회는 일꾼을 많이 세우는 것보다 제대로 세우는 데 주력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진짜 능력은 많은 일을 탁월하게 해내는 데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세상적인 복음 해석입니다. 진정한 능력은 ‘예수님처럼 죽는 것’입니다. 초대교회의 진짜 역사는 스데반의 순교로부터 시작합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을 먹고 시작되었고, 순교자의 피를 먹고 자랐습니다. 한국교회의 부흥은 무수히 많은 신앙 선배들의 순교의 피를 기반으로 얻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영리하고 세련되게만 예수님을 믿으려고 합니다. 그로 인해 교회는 화려하지만 무기력해졌습니다.
스데반의 죽음으로 그때까지 예루살렘에만 머물러 있던 복음이 비로소 사마리아와 유대와 땅끝으로 흘러갔습니다. 복음을 이방인에게로 가지고 갈 사도 바울의 역사도 스데반의 순교의 자리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진짜 능력의 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이 시대 한국교회가 예수님 때문에 욕을 먹고 죽을 각오를 한다면 세상은 충격을 받을 것입니다. 그런 아름다운 소망을 갖고 기도하는 여러분을 ‘열리는 능력시대’ 안으로 초대합니다.
- 2012년 12월 한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