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장 신앙위인 북스]
청소년들에게 믿고 따를 수 있는 대상을 소개하는 것은 아주 소중한 일이다. 꿈과 비전이 꿈틀대는 시기인 만큼 인생이 통째로 바뀔 수도 있기 때문이다. 훌륭한 믿음의 거장들의 일생이 생생하게 담겨 있는 이 시리즈를 통해 많은 청소년들이 바른 신앙과 인격을 배우고, 하나님나라의 주인공으로 자라나게 되기를 소망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일하기 원하세요!!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뜨거운 사랑과 탁월한 능력으로 민족의 발전과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민족의 위대한 지도자.
하나님은 우리를 어두운 세상에 빛을 비추는 자로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 나아가 많은 사람을 하나님의 진리 안으로 인도하길 원하십니다. 우리가 거하는 곳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고 그리스도의 사랑이 넘쳐나길 원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이 거룩한 사명을 품고 이웃과 나라와 세계를 향하여 나아가 그리스도의 사랑과 정신을 실천하길 바랍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마태복음 5장 14절) 나는 이 자리에서 감히 말합니다! 오늘 우리 민족도 이스라엘 백성처럼 하나님을 섬기며 그분을 굳게 신뢰하고 나아간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도 놀라운 기적을 베풀어 구원해주실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현재의 상황 앞에 절대로 실망하지 말고 한마음 한뜻이 되어 힘차게 나아가도록 합시다. - 본문 중에서
[저자의 말] 민족의 위대한 지도자이며, 하나님만을 굳게 믿는 참 신앙인
도산공원에 세워진 도산 안창호의 기념비에는 안병욱 교수가 짓고 김기승 선생이 쓴 다음과 같은 글이 새겨져 있다.
도산 안창호는 일제의 침략에서 민족의 자주와 독립을 쟁취하기 위하여 60 평생을 구국운동에 바친 위대한 애국자, 한국 민족을 인류의 모범이 되는 최고의 민족으로 완성하기 위하여 부단한 자아 혁신과 국민의 품격 향상을 힘쓴 민중 교화의 교육자, 무실역행과 인격 혁명과 대공주의의 사상으로 민족의 지표와 역사의 진로를 밝힌 탁월한 사상가, 이상촌 건립과 사회 개혁과 산업 진흥과 교육 건설로 백년대계의 경륜을 보여준 훌륭한 선각자, 진실과 사랑의 실천으로 위대한 인격을 갈고 닦아 국민의 사표가 된 뛰어난 지도자, 그는 겨레의 등불이요 이 나라의 자랑이다.
도산 안창호라고 하면 누구나 독립운동에 몸을 바친 훌륭한 애국자 중의 한 사람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한걸음 더 나아가 그가 한 사람의 훌륭한 신앙인이었다는 것도 살펴보고 배워야 한다. 그가 평생 한 사람의 훌륭한 애국자요 인격자요 지도자로 존경받을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 한 분만을 굳게 믿는 신앙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도산의 신앙생활은 17세 때 서울로 올라가 언더우드 선교사가 세운 구세학당에 들어가 공부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그후 그는 평생을 철저하고 일관된 신앙인으로 살아갔다.
사람들은 대개 뿌리는 보지 않고 나무와 열매만 본다. 하지만 우리는 도산의 일생을 살피면서 그 삶의 원동력과 뿌리가 어디에 근거하는지를 분명히 알아야 한다. 그 근간에는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있었다.
그의 사상과 삶과 인생을 살펴보는 과정을 통해 우리에게도 뿌리 깊은 애국심과 신앙의 재정립이 있기를 바란다. - 오병학
안창호 (安昌浩, 1878~1938)
'민족의 지도자'라 불리는 도산 안창호는 가난한 농부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어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엄한 할아버지 밑에서 서당에 다니며 유학과 한문을 공부했다. 당시 급박하게 돌아가던 나라 안팎의 상황은 시골에 사는 안창호에게도 영향을 주어, 그는 신학문을 공부하기 위해 서울로 떠났다. 언더우드 선교사가 세운 구세학당에 입학하여 신학문을 배움과 동시에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으며, 이를 통해 그리스도의 사랑과 정신이 그의 사상과 삶의 근간이 되었다.
평생 그의 목표는 대한민국을 힘 있는 독립국으로 만들기 위해 대동단결하는 한민족을 길러내는 것이었다. 그가 세운 점진학교와 대성학교, 또 그가 설립한 공립협회와 신민회, 대한인 국민회, 청년학우회, 무실역행(務實力行)을 중심으로 하는 흥사단 등도 같은 노선 아래 있다. 상하이 임시정부에서는 실질적인 수반 역할을 하며 흩어져 있는 세력을 하나로 모으려고 노력했고, 이토 히로부미와 만나 자신의 뜻을 굳게 주장하기도 했다. 평생 한 사람의 훌륭한 신앙인이자 민족의 참 지도자로서의 삶을 산 안창호는 결국 대한민국의 독립을 보지 못한 채 1938년에 하나님의 품에 안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