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은 내 아픔을, 내 마음을 다 아신다!
억지로 버티고 서 있지 말고 주님 앞에 마음을 풀어놓으라
눈물로 씻겨나간 자리에 새 마음이 부어지는 은혜를 경험하라
인생의 아픔을 온몸으로 겪은 상처 입은 치유자가 전하는 주님의 위로
삶이 두려운 당신에게
광풍이 치는 날
살면서 맞는 크고 작은 파도들
그때마다 두려웠습니다.
사는 것이 그런 거라 믿으면서도
바람이 불어 파도가 삶을 흔들면
마음이 출렁여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미친 듯 바람이 불어닥치면
저항할 수 없는 무기력에,
어쩔 수 없는 연약함 앞에
인간임을 울어야 했습니다.
배 안에 있음에도
왜 이토록 두려운지 알 수가 없습니다.
내 허름한 믿음의 배로 물이 차오릅니다.
믿음이 곤두박질을 칩니다.
두려움에 눈이 가려
그분이 보이지 않습니다.
파도와 싸우느라 인간의 힘을 다 빼어
기진맥진한 후에야
원망스럽게 그분을 깨웁니다.
죽게 된 나를 돌아보아달라고
삶의 소용돌이 속에서 건져달라고
광풍 앞에 무능력한 인간을 보아달라고
부서질 것 같은 믿음을 부여잡고 울부짖습니다.
_본문 중에서
“내가 너를 안단다.”
내 마음을 가득 채우는 주님의 위로에
깊은 아픔이 쏟아져 내린다.
가슴속에 눈물이 흐르고 있지 않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이 세상을 살며 울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럼에도 우리는 울지 못하고 산다. 집에서는 부모로, 자식으로 꿋꿋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야 하고, 직장에서는 감정을 드러낼 틈조차 없다. 교회에서조차 믿음으로 이겨내야 한다고 해서 울 수가 없다.
아프면 울어야 한다. 울지 않으면 그 눈물이 내 안에서 마음을 오염시켜 상처로 곪게 된다. 울지 못하면 분노가 생긴다. 삶의 의욕을 상실하게 된다. 울지 못하는 사람은 남에게 상처를 입힌다. 그러다 울고 나면 눈이 맑아진다. 어깨가 가벼워진다.‘그래, 다시 한 번 살아보자’ 하는 마음이 생긴다.
상처로 너무 아팠던 때, 눈물을 흘릴 수조차 없이 마음이 황폐해져 있던 때, “내가 너를 안다” 하시는 주님의 음성에 내 눈물이 폭포처럼 흘러내렸다. 눈물은 독가시같이 나를 죽이는 상처를 뽑아내는가. 눈물로 맑아진 눈으로 세상을 보니 나에게 상처를 준 그도 실상은 울고 싶은 자임이 보인다. 그리고 성경 속에 주님이 찾아가셨던 사람들도 울고 싶었던 이들이었음을 보게 되었다. 삶의 노정에서 만난 힘겹고 어려운 일들로 온통 상처투성이가 된 이들. 그들이 내게 손을 내밀었다. 그래서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쓰기로 했다. 그것은 곧 나와 너, 우리의 이야기이기도 했다.
_여는 글 중에서
[닫는 글]
상처투성이 인생에도 소망이 있다
글을 마치고 나는 무척 지쳐 있었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상처의 무게가 나를 짓누르는 듯했다. 인간의 상처에 집중하다 보니 상처투성이인 인간의 모습이 너무 크게 느껴져 마음이 무거웠다.
며칠을 우울하게 보낸 어느 날, 갑자기 내 마음을 치는 음성이 있었다.
“왜 너희들만 아프다고 하니? 나도 아프다.”
그날 나는 상처투성이인 예수님을 보았다. 인간의 거리를 상처투성이가 되어 비척거리며 걸으시는 예수님을, 교회 안에 서 계시는 상처투성이의 예수님을, 그리고 내 안에서 상처투성이가 되어 계시는 예수님을….
그분은 우리의 상처를 위해 친히 상처투성이가 되어 골고다 언덕을 오르셨다. 그리고 우리의 죄성을 위해, 당신이 그리고 내가 받았다고 아파하는 그 상처들을 몸에 짊어지신 채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
그럼에도 우리는 나를 위해 피 흘리신 그분의 상처는 보려 하지 않고 늘 나만 아프다고 한다. 그분은 날마다 우리로 인해 상처받으신다. 상처투성이가 되셔서, 빌라도의 뜰에서 닭 울음소리가 나던 때에 베드로를 보시던 그 슬픈 눈으로 우리를 보고 계신다.
그분 앞에서 우리가 무엇을 더 원할 수 있겠는가? 어떻게 더 삶을 투정할 수 있겠는가? 그분은 한 방울의 물과 피까지 나의 상처를 위해 모두 쏟으셨는데! 이제 나를 묶어 자유를 박탈한 상처의 무덤에서 걸어 나와야 하지 않겠는가?
나사로의 무덤에서 “나오라”고 명령하셨던 그 예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죽음처럼 괴롭다는 너의 그 어두움에서 벗어나라고! 너를 칭칭 감고 있는 상처로부터 자유하라고! 이미 너를 위해 그 값을 다 치렀다고!
부활하신 예수님은 스스로 자기에게 입힌 상처로, 또 예수님에게 드린 상처로 괴로워하던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물으셨다. 그리고 “내 양을 먹이라”고 하셨다. 여기에 치유된 자의 삶의 모습이 있다. 자신에 대한 몰입에서 벗어나 주님에 대한 사랑에 몰입해야 한다. 그분의 피 흘리신 사랑을 바라보아야 하고,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는 슬픈 질문을 반복하지 않으시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에게 부탁하신 그분의 양을 먹여야 한다. 상처 입은 이웃을 양을 먹이듯 구체적으로 돌보아야 한다. 그것이 다시는 나의 상처를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는 삶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할 때, 우리는 다른 차원의 삶을 살아가게 된다.
이제 ‘상처’라는 말은 디베랴의 바다에 던져버리고 ‘새로 거듭난 삶’에 소망을 두어야 한다. ‘사랑’, 그곳에 우리의 소망이 있다.
우리를 대신하여 찔리시고 상하시고 징계를 받으시고 채찍을 맞으신 예수님의 그 사랑이 헛되지 않도록, 우리는 허물과 죄악을 벗은 자로, 평화와 나음을 입은 자로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
빛 가운데서 당신의 영과 혼과 육이 아름답게 빛나기를 기도한다. 그리고 이 책을 읽은 모든 분들에게 사랑과 평안이 넘치기를 바라며 고백한다.
“사랑합니다!”
2013년 어느 날 ‘당신’과 같은 ‘나’,
그리고 함께 천국을 향해 손잡고 가는 ‘우리’인 저자
오인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