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이제 살아도 감사, 죽어도 감사입니다!"
37년간 아프리카 8개국에 700여 교회와 병원, 대학을 짓고
구휼·교육선교를 펼쳐온 김종양·박상원 선교사의 순종과 인내
다니엘기도회 조회수 77만, 수많은 사람을 웃고 울게 한 은혜의 간증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아직도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누가 약하면 내가 약하지 아니하며 누가 실족하게 되면 내가 애타지 아니하더냐
내가 부득불 자랑할진대 내가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
고후 11:26-30
깊은 밤, 다가와 강퍅해진 심령을
녹이시는 하나님의 깊고 깊은 사랑의 고백
철없던 사모가 아프리카의 영적 어머니로 거듭나다
"하나님, 저를 살려주시든지 데려가시든지 하세요.
너무 아프고 힘들어서 이 땅에 살기 싫어요."
'사랑하는 내 딸아. 내가 너를 사랑한다.
내가 너를 아프리카로 불렀다. 내가 너를 사용할 것이다.
그러나 네가 거듭나야 하겠다.'
갑자기 눈앞에 환한 빛이 비치며
영화 필름이 돌아가듯 내 잘못된 행동들이 보였다.
아들을 더 먹이려고 밥을 떠서 감추는 모습이었다.
또 아프리카 아이들에게는 빵을 얇게 썰어주고,
아들에게는 두껍게 썰어서 먹이는 모습도 보였다.
나는 기억조차 나지 않는 모습들이었다.
'너는 네 아들을 사랑해서 밥을 감추고 빵을 두껍게 먹였지만,
나는 너를 사랑하고 네가 사랑하는 네 아들을 사랑해서
내 사랑하는 아들을 십자가에 달았다.'
_ 본문 중에서
작가 소개
박상원,김종양
산업연수생으로 독일에 간 남편이 편지로 복음을 전하더니 떠난 지 10년 만에 선교사가 되어 아프리카로 가족을 불렀다. 알프스 같다던 선교지는 벌레와 도마뱀이 득실대는 빈민촌이고, 배고파하는 아들에게 빵 한 쪽 마음껏 먹일 수 없는 선교사 아내는 자꾸만 교인들을 불러다 먹이는 남편에게 화가 났다. 기도처 대신 전쟁터가 되어버린 선교사 가정에 하나님이 찾아오셨고, 비로소 거듭난 아내 박상원 사모는 남편 김종양 선교사의 돕는 배필이자 든든한 기도 동역자가 되어 아프리카 선교에 함께하고 있다. 2019년 다니엘기도회에서 소탈하고 진솔한 간증으로 수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다.
김종양 선교사는 독일 베뢰아(Berea)신학교와 영국 웨일스(Wales)신학대학을 졸업하고 1985년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세계선교회와 한국병원선교회 독일지부의 파송선교사로 말라위에서 사역을 시작했다. 이듬해 아프리카대륙선교회(Africa Continent Mission)를 설립하고, 이후 37년간 숱한 고난과 생명의 위험 속에서도 영적 황무지 같은 아프리카대륙 8개국(콩고, 잠비아, 말라위, 모잠비크, 남아공화국, 레소토, 보츠와나, 에스와티니)에 교회, 고아원, 병원, 신학교, 기도원, 선교농장, 유치원, 초·중고등학교, 기독의대를 세우고 복음을 전하며 구휼·교육선교를 펼치고 있다. 1987년에 미국 남침례교단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으며 2009년 제9회 언더우드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