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존재의 탄생-인간성은 어디서 오는가?
최재천 교수 강력 추천!
스티븐 핑커가 극찬한 현대심리학 필독서!
◎ 도서 소개
★ 예일대 심리학과 교수이자 아마존,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작가
폴 블룸의 도발적인 질문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타고나는가, 만들어지는가?”
인간을 단순히 이성적 존재로 이해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본질을 감지하고 타인을 공감하며 스스로를 성찰하는 존재임을 증명한 세계적 심리학자 폴 블룸, 그의 연구의 기원이라 할 수 있는『데카르트의 아기』가 21세기북스에서 출간되었다.
이 책은 인간 정신의 본질을 향한 가장 지적이고도 따뜻한 탐사다. 폴 블룸은 아기라는 존재를 관찰 대상으로 삼아, 언어도 도덕도 학습하지 않은 아기 안에 이미 선악과 진위, 물질과 정신을 구분하려는 직관이 자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선천적으로 갖춘 이원론적 인식은 인간이 타인의 마음을 상상하고, 예술에 감동하고, 본질과 위작을 구분하며,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타인의 고통에도 반응하게 만드는 정서적이고도 인지적인 기반이 된다.
인간은 그런 의미에서 생각하는 기계가 아니라, 본질을 감지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존재이며, 이 책은 그 인간다움의 작동 원리를 가장 근본적인 수준에서 밝혀내고 있다. 인간의 이원론적 사고가 후천적 학습이 아니라 선천적인 인지 구조라는 주장을 실험과 철학을 정교하게 결합해 완성한 이 책은, 이후 도덕심리학과 본질주의, 진화심리학 연구 전반에 걸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며 인지과학 연구의 새 지평을 연 현대심리학의 이정표로 평가받고 있다.
◎ 책 속으로
우리가 타고난 데카르트주의자라면, 즉 우리가 ‘물질과 정신’이라는 이원론적 사고방식을 타고 태어난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면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것들의 상당 부분을 더 잘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세상을, 육체가 있는 세상과 영혼이 있는 세상이라는 두 가지 방식으로 바라본다. 이 두 가지 시선은 아이가 태어나 발달과정을 거치는 동안 놀라운 방식으로 서로 상호작용하고 그 결과, 도덕성과 종교처럼 인간에게만 있는 특성들이 인류 공동체라는 사회적 맥락 안에서 탄생한다.
-11쪽, 〈머리말〉
찰스 다윈과 동시대에 살았던 사람이자, 그와 별개로 자체적으로 자연선택을 발견했던 알프레드 러셀 월리스는 이렇게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고등한’ 지적 능력은 자연선택의 결과로 발생한 게 아니다. 이런 능력은 오로지 특정 사회에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어떤 인간 집단(‘야만인’)은 그런 능력 없이도 잘만 살았다. 월리스는 다음과 같은 말로, 이러한 능력의 기원이 신성한 영역에 속한다고 결론지었다. “자연선택의 법칙 아래에서, 인간의 몸은 하등 동물의 몸에서 진화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가진 지적, 도덕적 기능은 그런 식으로 발달했을 리 없다. 틀림없이 다른 기원이 있을 것이다. 이런 기원에 맞는 적절한 원인은 오로지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의 영역에서만 발견할 수 있다.”
-62쪽, 〈1장 마음을 읽는 사람들〉
우리는 사람의 행동을 이해하기 위해서, 마음을 읽는 능력을 진화시켰다. 그래서 사람이 만든 물건을 이해할 때도, 이 능력을 자연스럽게 적용한다. 아주 어린 아이들조차 인공물에 대해 본질주의적 태도를 보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더 놀라운 사실은 이런 ‘인공물 본질주의(설계와 목적 관점에서 사물을 생각하려는 경향’)가 실제의 인공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흔히 우리는 이를 자연계로 확장시킨다. 동물과 식물을 마치 의도적 설계의 산물인 것처럼 여기는 것이다.
-97쪽, 〈2장 인공물들의 세계〉
관객에게 보여주겠다는 창작자의 의도가 무언가를 예술로 만든다. 물론 철학자들이 익히 알고 있었듯이, 이런 주장이 정확히 옳다고는 볼 수 없다. 프란츠 카프카나 에밀리 디킨슨 같은 몇몇 예술가는 독자에게 보여주지 않겠다는 분명한 의도를 가진 채 작품을 창작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예술의 정의는 다소 변경되어야 한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관중에게 보여주겠다는 의도가 있는 것이 예술작품이 될 것이다. 짐작건대, 카프카와 디킨슨이 본인의 작품을 반드시 없애버리라고 당부했던 것도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들의 작품이 다른 사람들에게 공개될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130쪽, 〈3장 불안한 대상과 예술〉
침팬지들도 자기 새끼들을 사랑하고, 다른 침팬지들의 고통을 보면 함께 고통스러워하고, 곤경에 처한 다른 침팬지들을 보면 돕고 싶은 충동이 일어나는 것처럼 행동한다. 침팬지들은 사회계약을 강요할 줄 알고, 속임수를 쓰는 개체를 벌주기도 하며, 사회적 위계를 지키고 유지하려고 조심한다. 이 같은 동물에게 강력한 사회적, 이타적 본능이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 발은 인정한다. “동물은 도덕 철학자가 아니다.” 그러면서도 이렇게 묻는다. “그렇다면 사람들 중 얼마나 많은 사 람이 도덕 철학자일까?”
-184쪽, 〈4장 선과 악〉
혐오스럽다는 말 안에는, 정상적인 관찰자라면 누구든 명백히 알 수밖에 없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누가 봐도 크게 보이는 것을, 크다고 명시하는 것과 같다. 무언가가 혐오스럽다는 말에는 ‘직접 보면 당신도 혐오감이 들 걸. 혐오감이 들지 않는다면 당신한테 무슨 문제가 있는 거야’라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그래서 혐오의 언어 앞에서는 반응할 수가 없다. 말문이 막혀 버리기 때문이다.
어떤 견해를 공격할 때 혐오를 어떻게 사용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가 다음에 나와 있다. 윤리학자 리언 카스는 최근에 인간 복제를 논하면서, “혐오감을 논거로 내세울 수는 없다”라고 인정한 다음, 말을 이어갔다.
-256쪽, 〈6장 혐오와 유머〉
나 역시 낙관적이다. 나는 진화론과 심리학의 연구 결과 중, 우리 자신의 가장 중요하고 가치 있는 면에 대해 의구심을 품게 할 만한 내용은 하나도 없다고 생각한다. 리처드 도킨스는 다윈이 등장한 이후에야 지적으로 충만한 무신론자가 가능해졌다고 말한다. 나도 마찬가지다. 철학자와 심리학자, 진화론자의 통합적인 작업이 이루어지는 지금에서야 도덕적으로 낙관적인 물질주의자로 사는 게 가능해졌다.
-328쪽, 〈신, 영혼, 그리고 과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