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정의 혼란을 제국의 질서로 바꾼
로마 최초 황제의 정치적 통찰
◎ 도서 소개
공화정의 혼란을 제국의 질서로 바꾼
로마 최초 황제의 정치적 통찰
현 시점 최고의 로마사 작가가 집필한
아우구스투스 전기의 정전正典
“그의 삶을 관통한 원동력은 야망이었다.”
로마 최초의 황제라 불리는 아우구스투스는 로마 공화정을 사실상의 군주정으로 대체하고 이후 천 년의 역사를 뽐낼 로마제국의 기틀을 다졌다고 평가받는, 역사상 가장 중요한 인물이다. ‘가이우스 옥타비우스’라는 이름을 지니고 태어나 ‘임페라토르’ ‘디비 필리우스’ 등 명예로운 칭호를 얻어 중국에는 ‘아우구스투스’로 역사에 남았다. 로마제국의 건설자라는 역사적인 맥락에서도, 혼란에 빠진 로마에 질서를 가져온 리더라는 맥락에서도, 동시대의 율리우스 카이사르만큼이나 혹은 훨씬 더 매력적인 인물임에도 그간 국내 대중의 큰 관심을 끌지는 못했던 인물이다.
이 책은 그런 아우구스투스의 전기 중에서도 ‘정전正典’이라 평가받는, 현 시점 최고의 아우구스투스 전기라 불러도 모자라지 않을 명저다. 저자 에이드리언 골즈워디는 서구권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고대로마사 베스트셀러 작가이며, 이 책에서 그의 학술적 저변과 스토리텔러로서의 재능을 가감없이 드러내고 있다. 아우구스투스에 관한 거의 모든 자료를 아우르는 학술적 정확성과, 2000년 전 인물의 일생을 흥미진진하게 풀어놓는 솜씨 덕에 독자는 알차고 즐거운 독서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당대 로마의 혼란을 종식하고 제국을 반석 위에 올려놓았다는 역사적 인물로서의 면모도 있지만, 한 사람의 ‘리더’로서 아우구스투스가 어떤 자질과 면모를 가지고 있었는지를 살펴보는 것도 중요한 묘미다. 젊은 아우구스투스, 가이우스 옥타비우스는 군사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남들처럼 실패를 겪어가며 성장한 보통 사람이었다. 단지 그 속에 있었던 야망과 결단력 그리고 관용과 절제 등 말년의 품성이 그를 ‘아우구스투스’의 자리에까지 끌어올리고 역사적 리더로 남도록 해주었다. 독자는 아우구스투스의 일생을 따라가며 좋은 지도자란 어떤 사람인지를 고민할 기회 또한 얻을 수 있을 것이다.
◎ 본문 중에서
아우구스투스는 거의 500년간 지속되었던 로마의 공화정을, 공화정으로 가장한 사실상의 군주정으로 대체한 로마의 첫 황제였다._12쪽
내전 기간 아우구스투스가 복잡하게 얽힌 동맹 관계를 헤쳐 나가며 능숙하게 때로는 무자비하게 했던 일을 설명하다 보면, 그가 열아홉 살도 안 된 청년이었다는 사실을 잊기 십상이기 때문이다._12쪽
청문할 때는 예의를 갖추어야 하고, 판결할 때는 관용이 있어야 하며, 분쟁을 만족스럽게 조정하려면 신중한 고려가 필요하다._63~64쪽
그들의 구체적인 조언이 무엇이었든 관계없이 결정은 옥타비우스가 했으며, 그 결정 이후 일어난 모든 일은 그의 야망과 자신감, 자존심이 주된 동기가 아니었다면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었다._118쪽
안토니우스의 광기가 절정에 달했을 때, 잔혹하고 무시무시한, 그의 브룬디시움에서의 귀환이 우리를 두려움에 떨게 했을 때, 소년이라 해도 무방한, 그러나 믿기지 않는, 말하자면 신적인, 지성과 용기를 지닌 가이우스 카이사르라는 한 젊은이가, 불가능해 보였으므로 우리가 도움을 요청할 생각은커녕 심지어 희망조차 품지 못했을 때, 공화국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유산을 아낌없이 써 무적의 노련한 병사들을 모아 매우 강건한 군대를 만들어 (...) 그가 공화국에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안토니우스의 죄악으로 인해 더 이상 공화국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_146쪽
명단에 오른 사람들은 모든 법적 보호를 상실해 삼두의 부하들뿐만 아니라 원하는 사람은 누구라도 그들을 살해하고 그에 대한 보상으로 그들의 재산 일부를 받을 수 있었다. 보상금은 희생자의 머리를 잘라 가져다주면 지급되었고, 잘린 머리들은 이후 로스트라(공공연설대)에 매달렸다._169쪽
카이사르는 관측탑에서 서둘러 내려와 병사들에게 소리치며 전진하라고 독려했다. 이것도 여의치 않자, 그는 자신이 직접 모범을 보이기로 결심하고 한 병사로부터 방패를 빼앗았다.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위기의 순간에 했던 행동으로 유명하다. 그리고 아그리파와 참모진 몇 명만을 데리고 마지막 남은 다리 위로 돌진했다. 그의 행동에 고무되었거나 부끄러움을 느낀 군단병들이 물밀듯이 그들을 따랐다._226~227쪽
카이사르는 과거 공권 박탈 시절과 필리피 및 페루시아 전투에서 승리한 후, 즐기듯 사형 선고를 내려 분명히 다른 종류의 열정도 있음을 보여주었다. 카이사르는 자신이 분노 조절이 안 되는 성격인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카이사르의 수사학 선생이던 그리스인 아테노도루스Athenodorus는 그에게 이렇게 조언했다. “화가 날 때는 말을 하기 전에 알파벳을 읊어라.”_259쪽
그는 유능한 지휘관에게 가장 어울리지 않는 태도는 성급함과 무모함이라고 생각해 다음과 같은 구호를 애용했다. '천천히 서둘러라.’ ‘담대한 지휘관보다 안전을 택하는 지휘관이 낫다.’ ‘잘된 만큼 충분히 빠르게 된 것이다.’_317쪽
내겐 목숨보다 나의 동정이 더 소중하니 전쟁을 시작할 수밖에!_452쪽
카이사르가 아닌 안토니우스가 승리했더라도 틀림없이 비슷한 규모의 군중이 안토니우스를 열렬히 환영했을 것이다. 그들이 기쁨에 들뜰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내전이 끝났고, 이로써 평화가 지속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기 때문이었다._495쪽
로마인이여, 그대의 기예技藝를 기억하라. 그대의 힘으로 타민족들을 다스리고, 평화에 더해 좋은 관습을 심어주며, 항복한 자를 용서하고 전쟁에서 교만한 자를 물리쳐야 함을._302쪽
그리스 시인이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나타났고, 마침내 아우구스투스는 그에게 장난을 쳐 보기로 했다. 다음 날에도 시인은 평소처럼 아우구스투스의 저택 현관 밖에 있었는데, 이번에는 아우구스투스가 그에게 다가가 자신이 직접 지은 몇 줄의 시가 적힌 파피루스를 건넸다. 시인은 전혀 당황하지 않고 그 시를 소리 내어 읊은 뒤, 훌륭한 시라고 칭찬하고, 노고를 치하한다며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에게 동전 몇 닢을 건네고, 너무 적은 금액이라 미안하다고 사과하며 그리스어로 말했다. '아우구스투스의 행운을 두고 맹세하건대, 제게 돈이 더 있으면 더 드렸을 겁니다.' 그 말을 들은 아우구스투스는 기뻐하며 시인에게 10만 세스테르시우스를 하사하라고 시종에게 명했다._404쪽
내가 살날이 얼마나 남아 있든, 번영하는 이 나라에서 너와 함께 안전하고 건강하게 보낼 수 있기를, 그리고 너와 네 동생 모두 남자의 몫을 해내며 내가 맡아온 보초 자리를 이어받을 준비를 할 수 있기를._521쪽
제 역할을 잘 연기한 제게 박수를 쳐 주시고, 무대에서 내려오는 저를 갈채로 보내 주시길._58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