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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중심이지요 상세페이지

인문/사회/역사 인문

사람이 중심이지요

감성멘토 허태수 삶과 의식의 철학적 고찰
소장종이책 정가15,000
전자책 정가50%7,500
판매가7,500

사람이 중심이지요작품 소개

<사람이 중심이지요> 종교를 너머 신앙의 시야를 넓힌다!
『사람이 중심이지요』는 감성멘토 허태수가 삶과 의식을 철학적으로 고찰하는 책이다. 춘천 성암감리교회의 목사 허태수가 젊은이들과 주기적으로 만나 나눈 이야기들을 엮어냈다. 제1장에서는 문학적 상상력을 통해 사고의 지평을 넓혀주는 글들을 담았고, 제 2장에서는 과학적 원리를 통해 신앙의 시야를 넓혀주는 내용을 만날 수 있다. 마지막 3장에서는 역사적 맥락을 더듬어 성서적 사건들을 냉철히 해석하면서, 성서를 보는 시야를 종교의 울타리 너머까지 확장시켜 고정관념을 파괴한다. 새로운 관점으로 시야를 확장할 수 있도록 도운 책이다.


출판사 서평

이 책의 저자는 춘천 외곽 동내면 학곡리에 있는 성암감리교회 목사이다. 시골교회 목사인 그는 어느 우연한 기회에 청담동에서 의류 디자인을 하는 첨단 감각의 젊은이들을 만나게 되었는데 첫 만남에서 서로의 갈급함을 금방 눈치 채고 정기적으로 만나 대화를 나누기로 약조한다. 그 대화들은 ‘청담동월요예배’라는 이름으로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이 책에 옮겨진 글들은 그 젊은이들과 주기적으로 만나 나눈 이야기들이다. 그들을 ‘혼돈’ 속에 몰아넣어 옷을 짓는 대신 ‘사랑을 짓는’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게 만든 이야기들이다. 이 글들은 “춤추는 별을 탄생시키려면, 당신의 영혼 속에 혼돈chaos을 지녀야 한다.”는 니체 언어의 증빙이라고 그는 말한다.

“춤추는 별을 탄생시키려면, 당신의 영혼 속에 혼돈chaos을 지녀야 한다.” 프리드리히 니체의 말입니다. 소위 영혼을 다룬다는 몇몇의 직능들이 하는 일이란 결국 이승의 영혼들을 ‘춤추는 별’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어디에도 ‘춤추는 별’은 눈에 띄지 않습니다.
제도화된 이성이 ‘혼돈混沌’을 두려워하여 도망하고, 지성은 관성의 물物에 빠져 눈을 감아 버렸으며, 영성은 뼈대만 남아 불감증에 걸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혼돈’을 배우고 익히는 공부를 게을리 할 수밖에 없는 까닭이요, 그 연유로 인해 누구도 스승이 아니며, 누구도 별로 태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 서문에서

그가 한 역할은 요즘 흔한 멘토 노릇이다. 하지만 그는 세속의 방식대로 맨티들을 이끌지 않는다. 그저 혼돈 속에 몰아넣는 짓이 그가 하는 일의 전부이다. 그의 글들은 기존의 가치를 모조리 파괴한다. 목사이면서도 기독교의 고정관념까지도 깨버린다. “예수를 만나려면 예수를 죽이라”고 말하고 성서를 읽는 까닭은 “기독교의 울타리를 벗어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 자리에 다시 마음을 세울 바탕을 마련해준다. 그리고 슬그머니 뒤로 물러선다. 그곳에서 ‘예수의 도道’가 읽는이의 마음속에 스며든다.
그의 글은 ‘관점의 전환’과 ‘시야의 확장’이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야, 눈 떠!”라는 일갈이다. 갈매기들아, 부둣가에서 생선 창자나 쪼아 먹지 말고 하늘 높이 날아 세상을 좀 내려다보아라.

매주 월요일 오후 1시에서 1시 30분까지의 짧은 시간이지만, 나는 충분히 그들을 혼란에 빠뜨리기 시작했습니다. 2년이 되어가는 지금 하나 둘 영혼 속의 혼돈을 통과하며 별들로 태어나고 있는 중입니다. 그렇게 태어난 젊은이들은 그들 자신을 ‘사랑을 짓는 사람들’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여기 옮겨지는 글들은, 그들을 창조의 혼돈으로 몰아넣은 재료들이 어떤 것인지, 무엇으로 그들이 사랑을 짓는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 별이 되는지를 보여주는, 니체 언어의 증빙이라 할 수 있습니다. - 서문에서

각 장의 제목에서 내용을 헤아려볼 수 있다.

제1장은 문학적 상상력을 통해 사고의 지평을 넓혀주려는 글들이다. 여러 문학 작품들을 등장시켜 그 행간을 통해 세상의 이면이 드러내며 눈에 보이지 않는 새로운 세계의 문을 열어준다. 읽어볼 만한 오래된 문학 작품들이 등장한다. 가치 파괴적인 저서들이 소개된다.
제2장은 과학적 원리를 통해 신앙의 시야를 넓혀주려는 글들이다. 물리적인 과학과 정신적인 신앙의 세계가 충돌하지 않고 어우러져 사고의 지평이 우주 너머까지 폭발적으로 확대된다. 물리학과 천문학이 신의 세계를 들여다보는 창이라는 설명이 종교의 영역을 확장시켜준다.
제3장은 역사적 맥락을 더듬어 성서적 사건들을 냉철히 해석하면서 성서를 보는 시야를 종교의 울타리 너머까지 확장시켜 우리의 고정관념들을 파괴한다. 보이지 않던 부분들이 드러나면서 들리지 않던 신의 목소리가 들린다. 반대 방향에 설치된 카메라 화면을 보는 듯한 생생한 현장감이 즐거움과 감동을 준다.

해석은 파격적이고 주장은 새롭고 결론은 늘 신선하다.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모든 것들을 새로운 눈으로 새로운 방향에서 새롭게 바라보자는 그의 조언은 이 시대에 유효하다.

북칼럼니스트 김지홍은 이렇게 말한다.
“동일한 시간 속에서 비슷한 삶을 살며 유사한 경험을 하지만, 사람에 따라서 그 경험의 강도와 깊이는 천차만별이다. 또한, 동일한 사안에 관해서도 사람마다 시각이 제각각인 것처럼, 비슷한 경험을 했어도 그 경험으로부터 이끌어내는 사고의 깊이 역시 천차만별이다. 허태수 목사의 글을 읽다 새삼 깨달은 사실이다.


저자 프로필

허태수

  • 국적 대한민국
  • 출생 1959년
  • 학력 웨슬리신학대학원 목회학 박사
    감리교신학대학교 선교대학원
    협성대학교 신학과 학사
    성결대학교 신학과
  • 경력 기독교대한감리회 동부연회 개혁연대 상임대표
    웨슬리출판문화원 원장

2015.01.13. 업데이트 작가 프로필 수정 요청


저자 소개

강원도 횡성의 작은 산골 마을에서 태어난 그는 협성대학교 신학과, 감리교신학대학교 선교대학원을 졸업했다. 20년간 춘천시 동내면 학곡리의 성암감리교회 담임목사로 일하고 있다.
『영혼의 약국』, 『내 인생의 가장 소중한 오늘하루』,『이 세상 모든 것은 사랑이 만든다』, 『서른 살의 철학』등의 책을 통하여 저자가 경험하고 느꼈던 일들을 잔잔한 메시지로 독자들에게 전달해 주었다.
이 책을 통해서는 긍정과 용기가 무엇인가를 말해주고 사랑과 희망이 우리에게 왜 필요한 것인가를 깨닫게 한다.

목차

서문_ 춤추는 별로 태어나라

제1장 문학적 상상력과 사상의 지평
“창은 부재에 가까울 때 자기를 통해 모든 것을 보여줍니다”
행복은 그대 속에
마네킹은 몸에 걸친 옷을 자랑하지만 그것은 자기 옷이 아닙니다
손을 잡으면 마음까지
‘당신’이 손을 내밀면 누워 있는 길이 일어서고 슬픔이 기쁨이 되며 죽음조차 생명으로 바뀌네
따뜻한 만남의 신비
우리 인생에서 누구를 만나 어떻게 변화된 존재로 사느냐는 일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보잘것없음’ 또는 ‘아예 없음’
참으로 내가 누구인지 정직하고 겸손하게 질문하려는 게 기도여야 합니다
‘25시’와 ‘제8요일’
누가 우리를 이런 시대의 한복판에 살고 있는 ‘25시’의 인간들을 구원할 수 있을까요
일상의 돌연한 반란
시궁창 같은 일상의 시간은 끊어지고 매우 독특하고 눈부신 ‘새로운시간’이 침투해 들어오는 경험이 바로 우리가 누릴 축복입니다
신뢰할 만한 항구
모두가 한꺼번에 움직일 때는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보이고 모두가 방탕으로 내닫고 있을 때는 아무도 방탕으로 가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평평한 세계
우리가 가지고 있는 병은 안과 밖을 구분하는 일이 불가능한 안이면서 동시에 바깥이고 안으로도 바깥으로도 열려 있는 ‘클라인의 병’입니다
그대 목소리 안의 목소리
너희가 비록 ‘신의말씀’ 운운할지라도 침묵과 명상을 배경으로 하지 않고 있는 너희의 모든 말들은 그저 소음일 뿐이다
폭포와 분수
정상을 향해 비상하고자 몸부림치던 방금 전과는 다르게 이번에는 미련 두지 않고 지면을 향해 하강합니다
거미의 진화
사람은 진화되고 문명화될수록 하늘로부터 멀어져 하늘에 대한 기억을 잃어버리고 땅 속으로 기어들어갈지도 모른다는 소리도 들립니다
축제의 정신
외출은 돌아갈 귀가 시간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에 일상으로 돌아갈 수 없는 외출은 외출이 아니라 가출이고 따라서 그것은 축제가 아닙니다
한 해를 보내고 맞는다는 것
보이지 않는 어떤 눈이 시종 내려다보면서 내 삶을 체크하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는 12월입니다
신의 일식을 통해 한 해를 설계하는 법
영혼의 창을 투명하게 닦으면 안 보이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비로소 세상이 의미의 풍요로움으로 눈부시게 빛나게 됩니다
불꽃의 미학
종일 상을 뒤로 하고 내면을 응시하며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는 이유가 결국 저 황촛불처럼 제 몸을 태워 꽃피우는 일인 줄 알았습니다
내 마음속 색깔
은연 중에 나는 ‘청담동’이라는 단어와 ‘유명하다’는 단어를 마음속으로 강조하며 ‘존재’를 버리고 ‘소유’를 택하고 있었습니다
무통분만의 허구
지금 당장의 고통 때문에 지나치게 근심하거나 낙심하지 말아야 하며 우리가 근심해야 하는 것은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무감각과 불감증입니다
우리를 인간이게 하는 그 ‘무엇’
자유를 자유라고 하고 폭력을 폭력이라고 하는 탐욕을 탐욕이라고 하고 민주주의를 민주주의라고 정당하게 말하고 인정하는 그런 세상을 살아야 합니다
참새 한 마리 값
우리가 믿고 사랑하고 기도하고 희망하는 것은 사고 팔 수 있는 것들이 아니기 때문에 그 무엇보다 가치 있는 것입니다
시인 천상병을 회상함
느끼며 사는 사람은 그 느낌이 증폭되어 더 큰 행복감을 느끼지만 가지려고만 하는 사람은 가질수록 갈증이 커져 마침내 불행에 빠지게 됩니다
금년 겨울엔
무능이 유능을 이긴 사건, 약함이 강함을 이긴 사건,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긴 사건이 바로 ‘예수사건’이 아닙니까
향수, 향기 그리고‘냄새’
향기는 자연 발생적으로 스며 나오는 고귀한 사리舍利와 같아서 우리가 향기라면 누구에게나 어디서나 향기여야 합니다
노승老僧의 죽음
노승의 ‘청빈’이 극도로 환대를 받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고 일상적인 가치가 그동안 외설로 전락해 있기 때문이 아닙니까
‘샬롬‘의 정의
그 평화는 마치 추석 보름달처럼 이지러짐이 없어야 하기 때문에 만인이 행복해도 한 사람이 불행하면 참평화가 아닙니다
우리 속에서 탄생하는 행복
누구에게 나의 무엇을 ‘나눈다’는 것은 그것이 물질이건 마음이건 그것 또한 ‘우리의 행복’을 도모하기 위해서 하는 실천인 것입니다
그 예수를 찾아내라
영혼이 순수한 동심만이 우리들 삶의 뒤안길에 버려진 배고픈 예수를 발견하고 빵과 포도주를 가져다줄 수 있습니다
서울의 바다
사막의 내장 그 어딘가에는 우물이 숨어 있는 그 때문에 사막은 아름다운 땅이고 살 만한 땅입니다
산에서 피고 지는 꽃
이항대립의 흑백으로만 설정되어 있는 세상을 ‘갈봄여름 없는’ 꽃핀 세상으로 만들라는 또는 그런 꽃이 되라는 것입니다
침묵 속의 교감
말을 통해 전달되는 진리는 왜곡되기 쉽지만 침묵을 통해 전달되는 진리는 왜곡의 염려를 하지 않아도 됩니다
죄의 짐과 고난의 짐
내가 남의 짐을 져줄 때 상대방의 짐이 훨씬 가벼워질 뿐만 아니라 내 짐까지도 가벼워진다는 역설의 진리를 맛보아야 합니다
돌연변이 사랑
서로 마음을 같이 하는 것, 자신과 다른 사람의 동질성을 인정하는 것, 함께 즐거워하고 함께 우는 감정의 교류, 이것이 사랑입니다
마이너스의 전능全能 ‘어둠’
하늘을 보는 일, 체온을 느끼며 하늘을 보는 일, 우리의 사랑도 하늘을 바라보는 일이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귀 기울임
잘 듣는 것이 잘 말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까닭은 가장 잘 듣는 사람이 가장 잘 말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참다운 삶과 만남
인간은 ‘만나는존재’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만남’을 통해서만 더욱 빛나는 존재가 되기 때문에 우리는 만납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삽니다
이 시대의 성공적인 인생살이
미쳐 돌아가는 물질만능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지킬 수 있는 길은 ‘팍톨로스’강으로 나가 거기에 겸손하게 자신을 담그는 일입니다
시선의 방향과 삶의 방향
우리가 무엇을 보며 사느냐는 질문은 결국 우리가 인생을 어떻게 이끌어가느냐는 문제와 직접 선이 닿는 물음인 것입니다
자기 인식과 ‘성벽의 붕괴’
오늘 나는 무엇에 중독되고 몰입되어 있는 존재인지 읽어내는 것이 곧 나의 세계 인식이며 자기 성찰입니다

제2장 과학적 논리로 신앙 톺아보기
“과학적 통찰을 통해 우리 생각의 시야는 끝없이 확장됩니다”
빛의 근원
어린아이 마음으로 만유와 더불어 춤출 때만 인간은 해로운 장난감을 스스로 버릴 수 있을 것입니다
원소와 그 조합의 신비
우린 여태 눈에 보이는 물상을 움켜쥐는 일에 몰두하고 있으니 어느 억겁의 세월에 이르러야 우리 눈망울로 신의 눈망울을 보게 될까요
지구와 태양의 신비한 배치
‘암탉이 날개 아래 그 새끼들을 보호하듯 우리를 감싸주시고 있다’는 말씀을 지구과학적인 통찰 하나만으로도 떠올리게 됩니다
원자의 세계와 창조의 순간
누구나 동일한 양성자 중성자 전자로만 구성되었기 때문에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말씀은 원자론적 근거를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자아의 중력권
거리가 아무리 멀다 해도 자아의 중력권을 탈출하면 은총에 이끌려 순식간에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는 진리가 숨겨져 있는 것일까요
달의 공전 주기와 음양의 조화
음양이 조화로운 세상에 살게 하는 것은 그 무엇에도 기울어지지 말라는 영적 메타포 아닌가 생각하게 됩니다
입자가 된 예수와 파동이신 야훼
드브로이와 아인슈타인에 따르면 입자로 나타난 것이 ‘예수’이며 우리 시각으로 볼 수 없는 파동일 때가 ‘야훼’이나, 이 둘은 ‘하나’입니다
전자와 불확정성의 세계
무한 속성의 하나님이 보는 인간 세계의 특성은 ‘불확정성’이며 인간들은 이 오차 범위 안에서 ‘자유 의지’를 실행하고 있는 것이지요
무無와 무한無限의 세계
까마득한 저 미시세계에서 이 거시세계를 보는 이가 있다면 구멍이 뻥 뚫린 것처럼 보이게 될 것입니다
하나로 통하는길
‘8’의 마법을 체득한 존재는 남녀의 결합, 사회적 결속, 재물의 필요 없이 홀로 살 수 있다는 것이니 애초에 우주가 하나로 통하는 길을 닦아놓으셨던 듯싶습니다
빛의 신비와 전자의 변신
‘빛으로 산다’는 말은 자신의 일체를 덜어내거나 낮춤으로 발생하는 여분의 에너지가 일으키는 ‘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함께 있음’과 ‘하나임’의 원리
궁극적 실재는 신과 인간에 해당하는 두 양태를 끊임없이 오가는 중성자와 양성자 같은 존재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12궁성과 ‘때’의 프로그래밍
때를 따라 12궁성을 이끌어내시는 창조주의 프로그래밍은 우주의 리듬을 조절하는 하늘의 시계라 할 수 있습니다
성좌의 비밀
억수로 고통을 당할 때, 말로 할 수 없는 극악한 삶의 경우를 만났을 때, 하나님은 왜 답도 없는 우주에 대한 질문을 던지시는 것일까요
은하계의 실상
은하계 변방 어디선가 일어나고 있을 일들을 생각하면 예수의 말씀은 인간의 인식 안에 있는지 인식 밖인지 깊이를 알기가 쉽지 않습니다
인과의 지평 너머
과학을 통해 무지와 마주쳐 보는 것은 기독교의 관성으로 자리잡은 인과의 법칙 밖으로 나가 하나님을 뵙자는 것입니다
문명의 확률과 초문명의 세계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졌다’는 말씀도 창조주의 뜻이 물 흐르듯 막힘이 없이 통용되고 있는 별들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닐까요
우주 시대의 개막
날개 없이 창조된 인류가 하늘의 왕자 독수리보다 더 높이 날아가 푸른 행성 지구에서 첫 외계 성경 봉독을 듣게 하였던 것입니다
스타트랙Star Trek, 우주를 향한 순례길
우리가 땅에서 창조주 하나님을 부르듯이 그들은 지구 밖으로 나가 인류를 발현시킨 자신의 창조주를 더듬어가고 있다는 말입니다
은하계 너머의 공간
지구별에 잠시 머무는 인생들에게 권유하는 ‘사색과 묵상, 기도와 사랑’은 물질보다 높은 차원의 질적 변화를 위한 우주적 장치일 것입니다

제3장 역사 속의 현실, 현실 속의 역사
“과거의인물이나사건이아니라현재의내마음을들춰보는거울이역사입니다”
세상의 가치를 넘어선 몸종 ‘하갈’
사회의 지배적인 가치를 뛰어넘어 절망의 광야에서 세상을 새롭게 창조하는 것이 새로운 존재 양식의 돌파구입니다
박정희와 김대중 ‘에서’와‘야곱’
동생의 속임수를 개의치 않는 형의 삶은 화해의 소리이며 평화의 울림이자 기나긴 적대의 역사를 청산하자는 호소입니다
성性을 넘어선 여인들 ‘레아’와‘라헬’
‘가부장적 권위’라는 사회적 이데올로기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자기들의 소소한 행복을 유보시킬 줄 아는 혁명가들이었습니다
모세의 지도력의 한계와 소통의 문제
저항에 직면하자 자신을 성찰하지 않고 분노하며 비판자들을 추방한 모세는 자신이 추구하던 진정한 해방의 정치를 스스로 저버린 것입니다
현재의 나를 넘어서기 위한 성서 읽기
가문을 위해 딸들도 상속을 받아야 하지 않겠느냐는 주장은 가부장적 사회 구조 속에서 인습의 철문을 여는 흔적을 읽을 수 있습니다
일탈한 영웅 ‘삼손’
이 흥미진진한 이야기는 ‘야훼주의 이데올로기’를 담고서 타종족에 대한 배타주의를 정당화하는 일종의 대중매체 구실을 했습니다
십볼렛의 비극
우리가 ‘양’이라고 부르는 수많은 그리스도 십자군들은 세계 각처에서 ‘십볼렛 비극’의 주역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다말 강간사건과 ‘양들의 침묵’
그녀를 기구한 운명에서 건져줄 수 있어야 ‘죄 많은 나를 질병과 두려움과 죽음의 고통으로부터 구원하셨다’는 교리의 논증이 가능합니다
‘밧세바’는 팜므파탈인가
별로 이룬 것도 없는데 그 이름이 성서 안에 기록되어 있는 까닭은 생사의 기로에 서자 쿠데타도 마다하지 않은 적극적인 삶 때문입니다
엘리야는 영웅인가
엘리야는 실패한 혁명가로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졌지만 온전한 성공을 희망하고 꿈꾸고 싶었던 힘없는 민중은 그를 우상으로 만들었습니다
에스더 성性의 거미줄에 걸린 잠자리
여자란 남자들에 의해 다스려져야 하고 민족을 위해 봉사해야 하며 여자는 모름지기 민족을 위해 헌신하는 일에 ‘성性’을 쓰라는 것입니다
내 안의 가룟 유다
유다를 배신자로 기록한 것은 ‘나쁜놈 유다’를 통해 우리 안에 살아남기 위해 숨어 있는 추잡한 협력에 대한 고발입니다
남편 일곱인 여인의 정체
여인의 이야기는 예배에 중독이 되어 있는 것은 아니냐고 예배당에 뭔가가 있을 거라고 믿는 것은 아니냐고 묻는 것입니다
‘성모’ 마리아 이데올로기
모든 것을 포용하는 여인도 갈등 없는 어머니도 약한 남성을 감싸주는 어머니도 아니고 ‘성모’ 또는 ‘동정녀’는 교회가 그녀에게 씌운 굴레입니다
부재의 성찰 거라사 광인 이야기
광인의 처지를 통해 대중들의 문화적 정치적 고통과 아픔을 말하면서 그들이 해야 할 일을 제시하는 광인의 역할은 예수 자신입니다
예수를 만나려면 ‘예수’를죽 이라
예수를 죽이지 않으면 우리는 예수의 복음을 알 수 없고 다른 사람들에게 전할 수 없는 것은 신이 자신을 죽임으로써 구원자가 되었던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잃어버린 언어
제도에 순응하는 영만을 허용하고 자유로움을 신앙 외부로 밀어내 교회 안에는 대화 대신 독백과 일방적 요구나 강요만 남게 된 것입니다
복음은 탈주다
복음은 사람들의 관계 속에서 영향을 미쳐야 하고 인간 그 자체를 탈바꿈시켜야 한다는 선언과도 같은 것입니다
스티븐 호킹과〈요한계시록〉
계시록에서 증오와 배제를 읽어야 하는 것은 ‘천국’을 사모한다는 것이 ‘세상’과 ‘우리’가 아닌 것들에 대한 증오와 공격성에서 기인하기 때문입니다
성서를 읽는다는 것
지나간 과거의 누구 또는 어떤 사건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현재의 내마음을 들춰보는 거울과 같은 게 역사라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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