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머 그리 살벌한 책 읽노. 아 키우기 힘드나?”
《엄마 아빠, 나 정말 상처받았어!》는 제목 그대로 ‘엄마 아빠에게 상처받은’ 아이들 목소리를 담고 있다. 글쓴이 이호철 선생님이 가르친 초등학교 아이들이 솔직하게 써 내려간 글들을 고스란히 실었다. 글마다 선생님이 간략하게 설명을 덧붙였지만, 중심은 역시 아이들 글이다.
이 책은 10년 전, ‘학대받는 아이들’이라는 제목으로 처음 출간되었다. 많은 매체에서 크게 다루었고 충격을 주었다. 하지만 글쓴이는 “그것으로 그만이었다”고 말한다. 몇몇 부모들 말고는 대체로 시큰둥한 반응이었다는 것이다. 그 까닭은 뚜렷하다. 대다수 부모들이 ‘나는 아이를 학대한 적이 없다’고 굳게 믿기 때문이다. 2002년에 초판을 읽은 한 독자는 이렇게 말했다.
“머 그리 살벌한 책 읽노. 와, 요즘 아 키우기 힘드나.”
이 책을 읽기 시작한 내게 주위 사람들은 모두 입을 모아 이렇게 말했다. 제목이 주는 느낌 때문인지 진작 구입하고도 내내 외면했던 책이었다. 그 속에 무슨 내용이 있을지 두려워서.
나 자신이 아이를 학대하는 엄마일까 봐, 그것이 무서웠다.(알라딘 서평에서)
‘아동 학대’라고 하면 방송 프로그램에 나올 법한 엽기 행각, 정신이 이상한 극소수 부모나 친부모가 아닌 사람들만의 문제로 여기기 쉽다. 하지만 실상은 아주 평범한 가정에서 멀쩡한 친부모들이 저지르는 아동 학대가 대부분이다.
아동복지법 제2조에 따르면 아동 학대란 “보호자를 포함한 성인에 의하여 아동의 건강, 복지를 해치거나 정상적인 발달을 저해할 수 있는 신체적, 정신적, 성적 폭력 또는 가혹 행위 및 아동의 보호자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유기와 방임”이다. 이 복잡하고 관념적인 정의를, 이 책은 아주 쉽고 뚜렷하게, 그리고 충격적으로 보여준다. 아이의 감정 표현 막아 버리기, 아이 앞에서 하는 부부 싸움, 돈이나 건강 들에 얽힌 가정 문제, 외모 비하, 종교 억압, 일관성 없거나 비도덕적인 어른들 행동처럼, 일상에서 아이를 상처 입히는 구체 상황들과, 그에 따른 아이의 절망감을 아주 가까이 들여다볼 수 있다.
❙ “내 얘기는 내가 가장 잘할 수 있어요”
‘학대’라는 말이 주는 거리감을 넘어서 독자들에게 다시금 손 내밀기 위해 개정판을 펴낸다. 제목을 아이 입말로 부드럽게 바꾸었을 뿐 아니라, 아이들 글 60여 편을 추가해서 총 160여 편에 이르는 글들을 한데 모았다. 시대가 달라진 만큼, 요즘 부모들이 공감할 수 있는 최근 사례들로 골랐다. 또한 학교와 관련된 학대 사례를 따로 모아 장 하나를 추가했다. 아이들이 전국 단위 시험 성적으로 줄 세워지고 자나 깨나 공부를 강요받으면서 느끼는 고통, 또 일상에서 선생님이나 친구들과 계속 부딪히면서 받는 스트레스 들이 뼈아프게 드러나 있다.
이 책이 다른 자녀교육서들과 방향을 달리하는 점은 수많은 아이들 목소리를 그대로 들려주고 있다는 것이다. 보통 부모들은 아이 교육 문제에 부딪혀 책의 도움을 받고자 할 때, 전문가가 제시하는 손쉬운 해결 방법을 찾는다. 그러나 그 어떤 전문가, 이를테면 소아정신과 의사도 아이들 자신보다 아이들 문제를 잘 짚어낼 수는 없다. 또한 모든 해결책은 아이들 목소리에 이미 들어 있다. 아이도 자신도 행복하기를 바라는 부모들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하나, ‘들을 준비’뿐이다.
이 책은 아이들 심리를 다루고 있지만, 아이들을 연구 대상으로 여겨 분석한다거나 고장난 물건처럼 여겨 고치려 들지는 않는다. 아이들은 어른들과 마찬가지로 저마다 하나의 온전한 인격체다. 당연히 아이가 주체가 되어 ‘자기 얘기’를 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 이 책의 밑바탕이다. 글쓴이는 그 이야기를 아이들 마음에서 끌어내는 몫을 맡았을 뿐으로, 섣불리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은 경계하고 있다.
❙ “나는 우리 선생님은 좀 믿는 편이다”
어떻게 아이들이 자기가 입은 상처를 이토록 솔직하게 글로 풀어낼 수 있었을까? 써 보라고 억지로 시킨다고 해서 절실한 글이 나올 리 없는데 말이다. 이 궁금증은 아이들 글을 읽어 가다 보면 곳곳에서 실마리가 풀린다.
“5학년 땐 일기를 안 썼는데 6학년 땐 우리 선생님께 글쓰기를 옳게 배워서 용감해졌고 또 ‘학급 문집’이라는 것을 내시기 때문에 다시 썼다. 우리 선생님은 진실하게 살아야 하고 언제나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그래서 늘 그렇게 살려고 난 애를 쓰는 편이다.”
“나는 우리 선생님은 좀 믿는 편이다. 비밀을 꼭 지켜 주고 일기장 내용 가지고 말 안 하기 때문이다.”
“왠지 선생님만 자꾸 보고 싶다. 다 싫다. 엄마도, 할머니도 아무도 보고 싶지 않지만 선생님을 만나서 얘기하고 싶다.”(본문 아이들 글 가운데서)
아이들이 힘들 때마다 떠올리는 이 ‘선생님’이라는 사람이 바로 글쓴이다. 아이들이 선생님을 세상 누구보다 믿고 마음 깊숙한 곳까지 내보이게 된 것은, 그이가 30년 넘게 아이들을 으뜸 자리에 두고 살아온 참교사이기 때문이다. 오랜 세월 한결같이 아이들과 든든한 관계를 만드는 데 힘썼다. 늘 아이들 생활 방식에 맞추려 노력하고, 함께 뒹굴며 놀았다. 선생님에 대한 불만이든 뭐든 하고 싶은 말은 마음대로 하도록 북돋아주었다. 특히 자기 어린 시절 일이나 부끄러운 얘기도 해주면서, 아이들 역시 상처를 털어놓을 수 있도록 했다.
또한 글쓴이는 ‘살아 있는 글 쓰기’ ‘살아 있는 그림 그리기’ 교육으로 이미 이름나 있는 교사이기도 하다. 아이들은 그이의 지도 아래 자기 마음을 꾸밈없는 글과 그림으로 풀어내는 방법을 자연스레 익힐 수 있었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예민한 부분인 ‘부모에게 받은 상처’를 담아낸 이 책은, 그 어떤 학문적 연구로도 얻어내기 힘든 귀한 성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