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사상의 원류, 삽삼경주소十三經注疏 번역
사단법인 전통문화연구회에서는 한국학 및 동양학 연구의 초석礎石으로서, 학계를 비롯하여 사회 각계의 요구에 따라 십삼경주소十三經注疏 역주譯註 사업에 착수하였다. 동양사상의 원류原流라 할 수 있는 십삼경주소는 동양고전東洋古典 중에서도 가장 오랫동안 동아시아 사회를 이끈 학문과 문화의 보고寶庫였으며, 오늘날에도 수십억 세계인에게 삶의 지침을 제시해주는 인류의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이 사업은 십삼경十三經의 경문經文은 물론이요 주注와 소疏까지 역주譯註하는 것으로, 중국과 일본에서도 번역하지 못한 십삼경주소가 전통문화연구회에서 130여 책으로 10년 안에 완역完譯될 예정이다.
원전의 전통성傳統性 보존과 번역의 현대성現代性 추구를 기본 방침으로 하여, 한중일韓中日의 현대 연구성과까지 아우르는 십삼경주소의 역주 사업은 고전 현대화의 방향을 제시하고 한국학과 동양학 연구의 훌륭한 초석礎石이 될 것이다.
중국 역사상 가장 오래된 시집
≪시경詩經≫은 중국 역사상 가장 오래된 시집으로 311편의 시詩가 수록되어 있다. 주周나라의 민간 가요를 채집하는 관원이 민간에서 불리는 시가詩歌를 채집하여 조정에 바친 것으로 민정民情과 풍속風俗을 살필 수 있는 자료였다. 그 외에도 공경대부公卿大夫가 천자에게 헌시獻詩한 것도 있다.
시기적으로 보면 서주西周 초기에서부터 춘추시대春秋時代에 이르기까지 500여 년에 걸친 시가들이 수집되었다. 따라서 주周 왕조의 흥망성쇠興亡盛衰를 아울러 살펴볼 수 있어 역사적으로도 유의미한 자료이다.
전한前漢의 학자 모형毛亨이 ≪시경≫을 대상으로 ≪고훈전詁訓傳≫을 지었는데 민간에만 전파되다가, 후한後漢에 와서 제자 모장毛萇이 박사博士로 초빙되어 학관學官이 설립되자, 이를 모시毛詩라 하였다. ≪모시정의毛詩正義≫는 모시에 후한後漢의 정현鄭玄이 전箋을 더한 것을, 당唐의 공영달孔穎達 등이 당시까지 전래한 여러 자료를 중심으로 자세한 소疏를 덧붙여 총정리한 것이다.
방대尨大한 서적의 인용과 치밀한 고증考證
≪모시정의毛詩正義≫는 선진先秦자료부터 양한兩漢 이후 초당初唐까지의 학술 저작으로 경經․사史․자子․집集을 망라한 292종을 인용하여 모전毛傳과 정전鄭箋을 해석하였다. 광범위한 인용서를 통해서 경문經文․전傳․전箋의 용어用語, 전적典籍, 역사사실 등을 철저하게 고증하고 그를 근거로 논지를 전개하였다. 고금의 역사와 제도, 의식과 절차, 훈고, 명물, 음식, 복식, 언어, 동식물, 고사 등의 온갖 사전적 정보가 방대하게 기록된 자료의 보고라고 할 수 있다.
≪모시정의≫는 한漢·위魏 학자들의 ≪시경詩經≫에 대한 각종 해석을 포괄하고 양진兩晉·남북조南北朝 학자學者의 ≪시경詩經≫ 연구에 대한 성과成果를 포함하여, 새로운 시해석의 방법을 제시하였다. 그러나 모전毛傳과 정전鄭箋의 범위를 벗어나지는 않았으며, 모형毛亨과 정현鄭玄의 견해가 다른 경우에 대해서도 감히 판단내리지 않고 각각의 주장을 그대로 정리하고 부연하여 설명하였다.
시대를 초월한 보편적 가치
공자는 아들 백어伯魚에게 시를 배우지 않으면 말을 할 수가 없다고 하였고(≪논어論語≫ <계씨季氏>), 시詩를 외우기만 하고 정치·외교에 활용할 줄 모르면 소용이 없다고 하였다(≪논어論語≫ <자로子路>). 또 그 나라에 들어가서 그들의 풍속을 살펴보았을 때, 말이 온화하고 성품이 너그러우면 그것은 시詩의 교육 효과라고 하였다(≪예기禮記≫ <경해經解>). 이러한 공자의 말은 시詩가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고 감정을 표현하는 중요하고 효과적인 매개체이며, 올바른 심성을 함양하는 교육적 효과가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시경詩經≫에는 남녀 간의 애정을 노래한 시, 노동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시, 부역에 나가서 고향을 그리는 시, 전쟁에 나간 남편을 그리는 시, 학정에 시달려 원망하고 분노하는 시 등 다양한 주제의 민간시가들이 망라되어 있으며, 귀족들의 제사를 위한 시가와 종묘에서 연주하는 시가도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풍부한 자료를 통해 중국 고대사회古代社會의 풍속과 정서를 생생하게 접할 수 있으며, 나아가 오늘날의 상황에도 투영하여 인류 공통의 정서와 가치를 확인할 수 있다.
한국 시경학詩經學의 새로운 시야 확보
신라 중기의 것으로 알려진 ‘임신서기석壬申誓記石’에 시를 학습했다는 기록이 남아있으며,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설총薛聰이 구경九經을 가르쳤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시경이 우리나라에 전해진 것은 매우 오래 전이라 추정된다. 퇴계 이황이나 성호 이익 등의 학자들도 ≪시경≫을 깊이 연구하였고 ≪조선왕조실록≫에도 많이 인용된 것을 보면, ≪시경≫은 우리 역사에서 매우 중시되었던 전적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송대宋代 이후 주자朱子의 ≪시집전詩集傳≫이 유행하면서 우리나라의 시경학도 ≪시집전≫ 위주로 획일화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번에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번역되는 ≪모시정의≫는 모형과 정현, 그리고 공영달의 견해가 반영되어 ≪시경≫ 해석의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아울러 다양한 전적典籍과 주소注疏가 인용되어 있어 고전적古典籍 연구에 훌륭한 자료를 제공한다. 시에 대한 다각적 접근은 바로 이 책에서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