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2월 19일 한국은 제18대 대통령을 뽑는 선거를 치렀다. 1987년 민주화 이후 5년마다, 여섯 번째로 실시된 대선이었다. 한국의 대선이 끝나면서 지구촌의 여러 국가에서 국정리더십 창출을 위한 선거가 줄지어 있던 한 해가 마무리되었다.
선거일 직전 박근혜, 문재인 두 후보의 지지율 차이는 박빙이었고,
누가 이길지 모르는 불확실성이 팽배했다
2012년의 대선과정은 선거일이 다가오면서 점차 정치적 역동성을 더해갔다. 4월 전초전 성격의 총선 전후로 대선주자 간의 경쟁은 1강(박근혜) 2중(문재인, 안철수) 다약(그 외 인물들)의 구도를 형성하면서 펼쳐졌다.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이 후보를 공식적으로 선출하고 안철수 교수가 대선 출마를 선언한 9월 하순경, 경쟁구도는 군소주자들의 존재가 약화된 1강 2중 양상이 되었다. 11월 하순 야권후보 단일화 협상이 교착된 가운데 안 후보가 일방적으로 사퇴 성명을 내면서 대선국면은 요동치기 시작했고 점점 양강구도로 변해갔다. 선거 막바지에 이르러 새누리당의 박근혜 후보와 민주통합당의 문재인 후보의 대결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이 투표용지에 의한 권력경쟁에 각자의 역량을 집결하는 모양새를 연출했다. 선거일 직전 두 후보의 지지율 차이는 박빙이었고 누가 이길지 모르는 불확실성이 팽배했다. 선거결과, 박근혜 후보가 전체 유효투표수의 51.6%를 득표하여 48.0%를 얻은 문재인 후보에 승리했다. 나머지 군소후보의 득표율 합계가 0.4%에 지나지 않을 정도로 극명한 양자대결이었다. 한국 최초로 여성 대통령이 탄생했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맏딸이 선거를 통해 대통령에 당선됐다.
젊은 세대의 투표율이 신장됐지만 나이 든 세대의 투표율을 능가하지는 못했다
박 후보는 과반수를 득표했지만 압승은 아니었다. 권력교체의 꿈을 이루고자 문 후보에게 표를 준 유권자들의 상실감이 자못 컸다. 선거경쟁의 주체인 정당이나 정치인, 또한 선거분석가들 상당수는 이번 대선의 투표율이 70%를 상회하고 2030세대의 투표율이 55% 이상 된다면 야권이 승리할 가능성이 크다고 예측했다. 하지만 이러한 예상은 걷잡을 수 없이 빗나갔다. 실제로 투표율은 놀랍게도 75.8%에 달하고 2030세대의 투표율이 70% 내외였지만 문재인 후보는 패배했다. 한국 사회의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선거인수 비율에서 5060세대가 2030세대보다 높게 됐다. 젊은 세대의 투표율이 신장됐지만 나이 든 세대의 투표율을 능가하지는 못했다. 특히 50대 유권자들은 쌀쌀한 날씨를 무릅쓰고 이른 아침부터 서둘러 가장 적극적으로 투표장에 나왔다. 결국, 보수성향이 강하고 문 후보의 국정운영 리더십에 대한 불안감이 상대적으로 컸던 5060세대의 표심은 박 후보에게로 기울어졌다. 5060세대가 문후보 쪽에 지지가 쏠렸던 2030세대를 제압한 것이다.
정당과 정치인 수준의 이념대결은 진보-보수 성향 유권자들 간의 뚜렷한 이념균열로 연결되었다
2012년 대선에서는 세대균열의 존재만 현저한 것이 아니었다. 정당과 정치인 수준의 이념대결은 진보-보수 성향 유권자들 간의 뚜렷한 이념균열로 연결되었다. 대구와 경북 지역에서 박근혜 후보가 얻은 매우 높은 득표율과 문재인 후보가 광주와 전라 지역에서 획득한 압도적인 득표율의 선명한 대조는 영•호남 지역균열이 온존함을 말해주었다.
공공기관과 민간조직을 망라하여 기성 정당들은 일반시민들로부터 가장 저조한 수준의 신뢰를 받고 있다. 하지만 정당을 제치고 조직과 홍보역량을 발휘하여 후보의 선거운동을 보다 더 효과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대안적 기구는 없었다. 이번 대선에서 적어도 70% 가량의 유권자들은 새누리당이나 민주통합당에 대한 일체감을 갖고 자신이 선호하는 정당의 후보를 선택했다. 나머지 무당파들도 종국에는 두 후보로 지지가 갈렸다. 새정치를 내세우며 유권자들의 기대를 안고 탈정당정치를 선보이려고 했던 안철수 후보는 불신의 대상이지만 선거에는 강한 정당이라는 엄연한 역설에 부딪혀 대선경쟁을 중도에서 포기했다.
야권의 후보 단일화 노력은 선거연합 전략으로서 그 자체가 비난 받을 것은 아니다. 문제는 막연한 가치와 철학의 연대라는 추상적 담론을 넘어 차기 행정부의 국정운영과 중요정책의 기조에 대한 합의가 부재했다는 것이다. 졸속한 선거공학 측면만 부각시키고 야권승리를 가져오지 못했다. 경제민주화, 복지, 일자리 창출, 정치쇄신, 사회통합 등의 정치구호가 난무했지만 본격적인 정책토론과 경쟁이 실종된 선거였다. 선거이슈로서는 전직 대통령의 공과에 대한 과거 회귀적 논란과 이따금 불거진 네거티브 공방으로 말미암아 국가 비전의 공론화와 그것에 힘입은 지지호소는 뒷전에 밀렸다. 특히 야권의 패인으로서 이 점을 배제하기 어려울 것이다.
아산정책연구원이 2012년에 추진한 총선과 대선에 대한 조사연구도 이제 종료되었다. 연구팀은 여론조사기관인 리서치앤리서치와 공동보조를 취하면서 총선 전부터 대선 직후까지 동일한 유권자를 대상으로 정치의식과 투표 의사결정을 연속적으로 추적하는 7차에 걸친 패널조사를 실행했다. 연구팀은 조사연구 수행을 위해 회의록이 제대로 작성된 구수응의(鳩首凝議)만도 13차례 가졌다. 전화와 이메일에 의한 팀원 간의 의사소통까지 생각하면 공동연구로서 손색이 없었다. 1차와 2차 조사의 결과는 『한국유권자의 선택1: 2012 총선』 제하의 단행본에 수록되어 발표되었다. 이제 1차부터 7차까지의 패널조사 연구를 결산하는 후속 성과물을 또다시 단행본의 형태로 발간한다. 이 책에는 10개의 장이 수록되는데, 그 주제는 패널조사 방법론, 총론, 이념성향, 대선후보 지지결정 시기, 무당파층, 세대요인, 안철수 현상, 선거이슈, 정치적 태도의 극화, 성별요인과 후보선택이다.
- 서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