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역사학자가 들려주는 전근대시기 20명 제왕의 국가 통치 리더십
- 성공한 왕과 실패한 역대 왕의 역사가 들려주는 리더십 이야기
한국사에서 고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이어지는 전근대시기는 제왕의 나라였다. 전근대시기 최고의 권력자이자 통치자인 국왕, 왕조의 흥망을 좌우할 만큼 중요한 위치에 있던 이들은 나라를 어떻게 다스려왔을까? 또한 정국의 주요 국면에서 어떠한 리더십을 발휘했을까? 성공한 왕과 실패한 왕의 리더십에서 우리를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전근대시기를 이끌어온 역대 왕들의 역사는 곧 우리 지식사회의 주요 화두인 리더십 문제와 자연스럽게 만난다.
이 책은 전근대시기 역대 제왕 20인의 국가 통치 리더십을 다루고 있다. 김기흥(고대사 전공), 박종기(고려사 전공), 신병주(조선사 전공) 3인의 역사학자는 왕조의 운명과 이후 역사 전개에서 커다란 영향을 끼친 제왕들 가운데서도 특별히 생각과 통치행위가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삶의 지혜와 역사적 교훈을 주는 인물들을 선정했다. 고구려의 유리왕 고유리, 광개토대왕 고담덕, 백제의 무령왕 부여사마, 의자왕 부여의자, 신라의 진흥왕 김삼맥종, 선덕여왕 김만덕, 신문왕 김정명, 고려의 태조 왕건, 성종 왕치, 숙종 왕옹, 의종 왕현, 충선왕 왕장, 공민왕 왕전, 조선의 태종 이방원, 세종 이도, 광해군 이혼, 효종 이호, 숙종 이순, 영조 이금, 정조 이산이 그들이다.
옛것을 본받아 새로움을 창조하는 법고창신의 자세로 처세술을 넘어선 제왕의 리더십을 고찰한 이 책은, 우리 시대 리더십 부재의 문제를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되는 역사적 지혜를 들려줄 뿐 아니라 역대 왕의 이야기를 통해 한국사 읽기의 또 다른 즐거움을 선사한다.
이 책은 삼국 ․ 고려 ․ 조선 시대를 전공한 세 명의 역사학자가 각 시대 주요 국왕 20명(삼국 7명, 고려 6명, 조선 7명)을 선정하여 그들의 생각과 통치방식을 고찰하고 있다. 선정된 국왕은 누구나 한번쯤 여러 책과 방송매체를 통해 접해본 인물들로, 한국사의 역대 국왕 가운데 상대적으로 주목을 많이 받았다. 그러나 저자들은 단순히 지명도만으로 이들을 선택하지 않았다. 국왕은 왕조의 최고 권력자이자 통치자이다. 중요한 정책에 대한 이들의 생각과 판단은 때로는 왕조의 운명이나 이후 역사 전개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그러한 국면에서 드러난 이들의 생각과 통치행위를 통해 현재를 사는 우리는 삶의 지혜와 역사의 교훈을 얻는다. 이 책에 선정된 국왕은 대체로 이러한 유형에 속한다.
- <프롤로그 : 역사학자의 눈으로 본 제왕, 그 통치의 리더십> 중에서
2. 서로 다른 역사의 시공간에서 펼쳐지는 제왕의 리더십
‘나의 성공과 타인의 실패’를 전제로 하여 사람과 조직을 다루는 테크닉 또는 개인의 처세술로 정의되는 일반적인 경제경영 분야의 리더십과 달리, 이 책은 역사라는 구체적인 시간과 공간의 영역에서 역사학자의 시선으로 제왕의 리더십을 다루고 있다. 한국사에서 왕들은 표면적으로는 국가의 주권자이자 최고의 정치 지도자라는 동일한 위상을 지니고 있지만, 이들의 리더십은 재위 시기와 권력구도에 따라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이 책에서는 고대(삼국), 고려, 조선이라는 역사적 시공간에서 각각의 정치제도와 역사적 국면에 직면하여 서로 다른 모습의 리더십을 구현하고 있는 왕들에 주목하고 있다.
고대시기의 국왕은 하늘의 후손 또는 부처의 인척이라는 신성한 존재 또는 초인적 능력자로 여겨졌으며, 후대에 비해 자의적이고 개인적인 권한행사가 가능했다. 그로 인해 광개토대왕, 장수왕, 무령왕, 진흥왕과 같은 영웅적 리더십이 발휘될 수 있는 기회가 많았다. 따라서 왕이 뛰어난 리더십을 지니고 있으면 금방 흥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국가가 빠르게 쇠퇴했다. 또한 유교이념이 크게 작용하지 않아 선덕여왕 김덕만과 같은 여왕이 3인이나 배출될 수 있었다.
고려의 국왕은 당나라의 천자처럼, 황제국 체제의 틀을 수용하여 왕권을 신성화했다. 이는 건국 초기 국왕이 초월적 지위를 확보하지 못함으로써 하나의 지방세력(호족의 수장)에 불과했기에, 정치적 입지를 강화해 나가기 위해 천자로서 국왕의 신성한 지위를 강조한 측면이 컸다. 측근정치를 통해 정치 개입이나 정책 결정에서 조선시대보다 상대적으로 재량권이 큰 고려의 왕은 정치집단의 수장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했다. 그러나 원의 내정간섭기에 폐위와 재등극을 반복한 충선왕 왕장, 개혁을 주도하다 시해된 공민왕 등의 모습에서 볼 수 있듯이, 고려 후반기 국왕의 지위는 매우 불안정했다.
조선시대에는 왕의 영웅적이고 자의적인 측면이 많이 사라지고 성리학과 유교이념이 정착됨으로써 왕권과 신권(臣權)이 상호 견제하고 주도권을 쥐기 위해 경쟁하는 구도가 형성되었다. 조선의 모든 왕은 성리학 이념으로 무장한 신하들과 왕의 통치력을 믿고 따르는 백성과 함께 국가를 합리적으로 이끌어가야 할 임무를 부여받았다. 확고한 왕권을 세우려 한 태종 이방원을 거쳐 훈민정음 창제, 의약 ․ 농업 ․ 과학기술을 집대성하는 등 신민과 함께하는 성공적 통치의 모범을 이룬 세종 이도 이후의 왕들은 왕권과 신권, 나아가 신권과 신권 사이의 대립구도를 조절하는 데 몰두했다. 특히 숙종 이순은 환국을 통해 붕당정치의 폐해를 극복하고자 했으며, 영조 이금은 탕평책으로, 정조 이산은 개혁을 통해 신권과의 대립구도를 타개해 나가고자 했다.
3. 성공한 왕의 실패한 리더십, 실패한 왕의 성공한 리더십
역사를 바라보는 것은 곧 현재를 바로 보고자 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이 책은 제왕들의 성공과 실패를 평가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과거 최고 국가 지도자들의 리더십을 살펴 새로운 리더십을 정초하는 데 필요한 아이디어를 얻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따라서 이 책은 성공한 왕의 이야기만을 들려주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실패한 왕 이야기를 곁다리 삼아 들려주지도 않는다. 이 책의 미덕은 성공한 왕이라 평가받는 제왕의 실패한 리더십과 실패한 왕이라 평가받는 제왕의 성공한 리더십을 함께 다루고 있다는 데 있다.
삼국시대의 경우 비류와 온조가 떠나간 고구려에서 외톨이처럼 왕위에 올랐으나 국가의 기틀을 다져 나간 유리왕 고유리, 종교 중심적인 사고에다 부족한 현실 인식을 섬세하고 뛰어난 인재 등용과 여성적 리더십을 통해 극복한 선덕여왕 김만덕, 훌륭한 제왕의 자질을 지녔으나 성급한 성취욕과 자만심에 사로잡혀 백제를 망국의 길로 이끈 의자왕 부여의자를 살펴봄으로써, 부족한 점과 뛰어난 자질이 어떻게 리더십으로 승화되고 발휘되는가에 따라 역사 흐름이 바뀌게 되는지에 주목했다.
고려시대에서는 후삼국을 통일한 태조 왕건을 그의 스승이기도 한 궁예와 비교하면서 민심을 중시하고 포용력을 갖춘 왕건이 마지막 승자가 되는 과정을 세심하게 살폈다. 중국의 제도를 받아들여 고려화함으로써 화풍과 국풍의 적절한 조화를 통해 고려 왕조의 기틀을 세운 성종 왕치, 쿠데타로 오른 위태로운 왕좌에서 대각국사 의천의 도움을 받아 부국강병의 리더십 발휘한 숙종 왕옹, 왕권의 신성성을 강조했으나 문신 관료들의 외면을 받은 의종 왕현을 비롯해, 쿠빌라이의 총애를 받고 원나라와 원만한 관계를 유지했으나 폐위와 재등극을 반복하면서 내치를 소홀히 한 충선왕 왕장, 원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개혁을 추구하나 끝내 실패한 공민왕 왕전을 다루었다. 이후 공민왕의 개혁은 고려 말 신흥사대부에게 계승되어 조선의 건국으로 이어짐으로써 성공적인 개혁으로 마무리되는데, 이처럼 당대의 실패가 후대의 성공을 이끌어가는 모습을 살필 수 있다.
조선시대 왕 중에서는 권력의 일원화를 위해 냉혹한 정치를 펼친 태종 이방원과, 이와 달리 소통정치의 진정한 모습을 보인 세종 이도, 중립을 지킨 실리외교를 통해 전쟁을 막아냈으나 동생을 죽음으로 몰아 끝내 폐위된 광해군, 소현세자의 의문의 죽음으로 뜻하지 않게 왕위에 올라 재위기간 내내 실현 불가능한 북벌의 외길을 갈 수밖에 없었던 효종 이호를 비롯해, 붕당정치 국면을 타개하고자 여러 차례 환국을 일으킨 숙종 이순, 사도세자를 죽음으로 몰았으나 탕평의 정치를 펼침으로써 조선 왕조의 중흥을 이끈 영조 이금, 문예 중흥과 다양한 편찬사업, 그리고 화성 건설을 이끌어온 개혁군주이나 갑작스런 죽음으로 이후 세도정치를 출현시킨 정조 이산을 통해 성공한 왕의 실패한 리더십과 실패한 왕의 성공한 리더십을 함께 다루고 있다.
이 책이 다룬 제왕의 리더십은 역사와 더불어 시대 혹은 해당 시기의 정치·사회·경제·문화구조에 의해 규정된 면이 크다. 하지만 부자지간인 조선의 성종과 연산군의 공과(功過)가 다르듯이, 유사한 정치구조에서도 국왕의 자질과 성향, 참모의 공헌 여하에 따라 매우 다른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이 책은 중요한 역사적 ․ 정치적 국면에서 제왕들이 펼친 리더십에 따라 역사라는 거대한 물길이 바뀌어왔음을 거시적 안목으로 조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