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첫 책을 본격적으로 손보기 시작한 후 두 달도 안돼서 세 번째 책의 원고를 쓰고 있을지는 나도 정말 몰랐다.
한번 직접 해보니 용기가 생긴다. 앞으로는 좀 더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을 쓰기 시작하는 지금 난 처음으로 사업자등록이라는 걸 한 후 서점과 계약을 하기 위한 절차 중 하나를 진행하고 오는 길이다.
원래 관공서 가서 뭘 하는 것과 친하지가 않고, 복잡한 계약사항이 적힌 서류를 만지는 것과는 거리가 먼 인생을 살아온 터라, 처음 하는 계약서 작성과 인감 간인, 그리고 기타 서류를 챙기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정말 별것도 아닌 데 몇 번을 들여다봤는지 모른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명함이라는 것도 만들어봤다.
내가 만든 출판사에서 나가는 첫 번째 책은 에세이고, 두 번째는 인문, 사회 관련 서적이라고 하면 될 것 같다.
사실 그전 까지는 소설만 썼었다. 말 그대로 ‘글’ 써온 셈이다. 거의 십여 년 그랬던 내가 앞으로는 책을 직접 내겠다고 마음먹으면서, 그야말로 ‘책의 형식’을 갖추기 위해 고군분투를 했다.
앞의 경험이 쌓여서인지 조금 요령이 생긴 것 같다. 분량이라든지 컨셉이라든지..
아직 본문 글을 쓰기 전이라 어떤 글이 나올지는 모르겠다. 애초 명색은 자기계발 서적이었지만 결과물은 나와 봐야 아는 법.
내가 써낸 책의 권수가 늘어나는 만큼 조금씩 더 글만 쓰는 삶에 가까워지기를 바래본다.
난 스물아홉 살 초여름에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지금은 서른여덟이다. 자그마치 십년이 지났다. 말 그대로 운명처럼 다가온 글쓰기였는데 이렇게 삼십대를 후다닥 흘려보낼 줄은 몰랐다. 남들 보기에 그럴싸한 성과도 내지 못한 채. 그 정도면 뭔가 돼있을 줄 알았다. 정말이다. 난 내가 천잰 줄 알았으니까.
이 글을 읽는 사람은 어이없어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책을 그렇게 닥치는 대로 읽어대던 문학청소년 시절을 보낸 것도 아니었고, ‘작가’를 꿈꾸고 그쪽 전공을 택한 것도 아니었으며, ‘글 쓰는 일’에 대해서는 정말 눈꼽 만치도 생각을 하지도 않던 내가 갑자기 글을 쓰겠다는 생각을 했고, 막상 써보니 꽤 잘 써지고, 인사치례인지는 모르겠지만 꽤 감각이 있다거나 하는 칭찬을 누군가에게서 몇 번 듣다 보면 그렇게 생각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처음과는 다르게 이젠 집에서도 그 전처럼 “민석아, 이제 공장 같은 데라도 좀 들어가야 되지 않겠니?” 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그저 말이 없을 뿐. 내가 만만한 친 동생은 “영어공부해라, 영어만 잘해도 일자리 선택이 폭이 넓어진다.”는 말을 아직도 하기는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난 맞받아친다. 내가 영어를 너만큼 하는 것과, 니가 운전면허를 따는 것중 어느 쪽이 빠르겠냐고.
난 글을 쓰겠다고 생각을 한 후로 단 한 번도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단 한번도. 중간에 연기도 해보겠다고 덤볐다가 나가떨어지고 끝내 포기를 하기는 했지만, 글쓰기에 대해서는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한 번도 없다. 정말 단 한번도.
어떻게 보면 나는 운이 좋은 편이다. 자신이 정말 좋아하고 하고 싶어 하는 일을 찾는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되겠으며, 그 일에 재능이 있는 사람은 또 얼마나 되겠으며, 그것을 직업화 할 수 있는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 그래서 난 운이 정말 상당히 좋은 편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아직까지도 글만 쓰며 사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남들보다 늦게 시작했고, 빛도 꽤 늦게 볼 것 같으니까, 오래는 갈수 있지 않을까.
난 사실 스스로 ‘작가’라고 말하는 게 쑥스럽다. 남들이 알아서 그렇게 소개를 해주면 몸 둘 바를 몰라 하는 지경이다. 자격지심이라고 생각한다. 글을 써서 먹고 살수 없다는 핑계로. 밥까지 굶어가면서 연극무대에서 혼을 불사르는 배우들도 있고, 글을 써서 돈을 벌긴 하지만 ‘돈벌이’라고는 할 수 없는 지경인 작가들이 그래도 ‘배우’, ‘작가’라고 불리는 것을 떳떳하게 여기는 것에 비하면 더더욱 분명하게 그런 것 같다.
하지만 분명한건..
나는 작가다. 이것 하나만은 놓을 수 없다. 이것마저 놓아버린다면 난 아마 내 존재의 이유를 찾지 못할 것이다. 하늘 아래 숨 쉬며 사는 수많은 예술가들이 그렇듯이. 우리 같은 사람은 밥만 먹여준다고 살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다. 이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그런 사람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