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854호
1월10일 “30년 넘는 아파트, 안전진단 없이도 재건축”이라는 헤드라인이 포털 사이트를 뒤덮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직접 경기도 고양시 일산신도시를 찾아 노후 아파트 현장을 둘러본 뒤 주택정책 관련 ‘민생 토론회’를 주재했습니다.
토론회에 맞춰 정부는 이른바 ‘1·10 대책’으로 불리는 ‘주택공급 확대 및 건설경기 보완 방안’을 발표했습니다. 가장 주목받은 내용은 재건축·재개발 규제 완화였습니다. 이날 민생 토론회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안전진단 없이 바로 재건축에 착수할 수 있도록 하겠다”라고 말했습니다. 언론과 정치권은 대통령의 말에서 ‘안전진단 없이’ ‘가능’이라는 표현에 주목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대통령이 한 말에는 한 가지 단어가 더 붙습니다. 바로 ‘착수’입니다. ‘재건축 가능’이 아니라 ‘재건축 착수 가능’입니다. 조삼모사입니다. 안전진단 폐지가 아니라, 안전진단을 '병행' 또는 '나중에 하도록 허용'한다는 의미입니다.
과거에는 재건축을 할 때 안전진단을 먼저 시행해 ‘이 아파트가 정말 다시 지어져야 하는가’에 대한 판단을 마친 후 재건축 입안 제안, 정비구역 지정 등을 진행했습니다. 반면 앞으로는 ‘일단 사업을 추진하고, 실제로 다시 지어져야 하는지는 천천히 평가받는’ 방식으로 바꾼다는 게 이번 정책의 골자입니다. 전체 사업이 빨라질 수도 있지만, 반대로 안전진단 결과에 따라 벌여놓은 재건축 사업이 중단될 가능성이 생기는 방식입니다.
조삼모사는 그러나 정치적 효과를 발휘합니다. 이른바 ‘1·10 대책’으로 불리는 이번 정책은 총선을 겨냥한 정치적 이벤트라는 해석에 힘이 실립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연이어 주재하고 있는 ‘민생 토론회’는 정부 부처의 신년 업무보고를 비틀어 만든 이벤트입니다.
물가안정, 소상공인 지원 정책을 주제로 한 1월4일 1차 민생 토론회 이후, 1월10일 주택정책(국토교통부), 1월15일 반도체산업 지원(산업통상자원부), 1월17일 금융정책(금융위, 기획재정부)으로 민생 토론회 일정이 이어졌습니다. 이 자리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정부는 마치 총선 공약을 내놓듯 각종 정책을 발표했습니다.
제854호에서 김동인 기자가 선거를 의식한 ‘윤석열식 정책 이벤트’의 실상과 그 맹점을 심층 취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