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869호
지난해 7월19일 경북 예천군 보문교 일대는 위태로웠습니다. “깊은 곳이 아니어도 자주 휘청거렸다” “강 수심이 오락가락해서 계속 긴장하며 수색했다”. 당시 보문교 부근 내성천에서 수해 실종자 수색 작전에 나섰던 해병대원들의 진술입니다.
해병대 제1사단 포7대대 소속 채 아무개 일병도 이날 수색 작전에 투입되었습니다. 2003년생 채 일병은 지난해 3월 해병대에 입대했습니다. 지난해 7월19일은 그가 입대한 지 4개월이 채 되지 않은 때였습니다.
이날 오전 8시경 작전 투입 명령을 받은 해병대 소속 130여 명이 보문교 인근에 모였습니다. 한 조에 병사 4~5명과 간부 1명이 배치되었습니다. 조별로 나뉘어 삽이나 갈퀴로 땅을 찍으면서 전진하는 방식으로 수색을 시작했습니다. 채 일병 부근에서 함께 실종자 수색 작전을 했던 간부와 병사는 10여 명이었습니다.
이날 작전 중 채 일병이 사망했습니다. 순직한 채 일병을 군은 채 상병으로 추서 진급했습니다. 〈시사IN〉은 채 상병과 함께 작전에 나섰던 생존 해병들이 당일 해병대 수사단에 진술한 내용을 바탕으로 지난해 7월19일 상황을 재구성해 보았습니다.
생존 해병들의 생생한 당시 증언은 ‘채 상병 사건’의 본질을 선명하게 가리킵니다. 〈시사IN〉이 당시 생존 해병들의 진술에 주목한 이유입니다.
제869호에서 이은기 기자가 채 상병 사망이 막을 수 있는 ‘인재’였다는 점, 그래서 해병대 수사단이 채 상병의 사망 원인을 더 철저하게 조사해야 했다는 점 등을 탐사보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