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올해의 청소년교양도서 선정>
정치우화로 읽는,
자본주의의 탄생과정과 그 변천사
정치는 자신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분배를 둘러싸고 벌이는 권력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이 책 『이매진 빌리지에서 생긴 일』은 이러한 정치의 관점에서 자본주의의 탄생이라고 할 수 있는 ‘인클로저운동’이야기부터 시작하여 자본, 자본가, 정치가, 노동자들이 대립하고 타협하면서 이룩해온 자본주의의 변천과정을 그리고 있다. 다시 말해서 동물들이 자신의 권리를 자각하고 이 권리를 관철하기 위해 권력을 갖게 되는 정치과정을 우화 형식으로 그린다. 역사를 권리와 권력의 관점에서 풀어낸 것이다.
자본의 증식을 추구하는 자본가를 여우로, 노동의 합당한 대가와 시민으로서의 정당한 권리를 얻으려는 시민은 닭·양·돼지·두더지·쥐·소 등으로, 이 두 계층 사이를 조정하는 정치가를 호랑이·사자 등으로, 그리고 이 모두의 최상위에서 마치 신처럼 군림하는 ‘자본’을 신사로 상징화하여 초등학생도 읽을 만한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풀어내고 있다.
그리고 책 말미에 우화가 상징하는 역사적 사건과 의미를 간명하게 설명하여 세계사나 자본주의 역사에 기초지식이 없는 독자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배려하였다. 책 제목은 저자 유범상 교수가 입버릇처럼 말하는, “이상이 일상이 되도록 상상하라”(상상상)를 상징화한 것이다. 이상이 일상이 되는 상상의 마을이 ‘이매진 빌리지’이다. 여기에서 ‘이매진’은 반전 운동의 아이콘 존 레넌이 불러 히트했던 「이매진」(Imagine)의 가사를 담은 상상의 마을이기도 하다.
“소유함이 없다고 상상해 보세요. 당신이 그럴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탐욕스럽거나 굶주릴 필요는 없어요. 인류의 형제애만 있다면요. 상상해 봐요, 모든 사람들이 온 세상을 함께하는 걸요. 당신은 아마도 절더러 몽상가라고 하겠지만 저는 그런 단 한 사람이 아니에요. 당신도 언젠간 저희와 함께 하길 바랍니다. 그리고 세상은 하나가 되어 살 거예요”(「이매진」 가사 일부).
어떻게 더불어 살 것인가?
저자는 이 책의 서문에서 ‘휴먼 커뮤니티’의 전설을 통해 사자와 쥐가 ‘포악한 사자’를 물리치고 서로 타협을 하면서 행복하게 살았다는, 이상적인 공동체의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끌어간다.
제1부 ‘현실’ 편에서는, 인클로저운동으로 농민들이 경작지에서 쫒겨나는 상황으로 시작하여 프랑스 대혁명, 산업혁명기, 러다이트운동, 차티즘운동, 공장법운동, 구빈법 및 자선조직의 등장을 다루면서 공장으로 간 노동자들이 생존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묘사한다.
제2부 ‘타협’ 편에서는, 웹 부부의 페이비언 소사이어티와 영국 진보 세력의 등장, 대공황과 비버리지 보고서, 보수파 하이에크의 등장과 대처의 장기집권, 신자유주의와 사회민주주의 사이의 제3의 길을 주장한 기든스와 토니 블레어, 데이비드 캐머런의 빅 소사이어티와 마을 만들기까지를 훑어본다.
제3부 ‘상상’ 편에서는, 고양이 정부의 사례를 들어 복지국가 건설이 얼마나 힘든지를 이야기하며, 지그문트 바우만이 ‘거대한 후퇴’라고 명명한 트럼프의 등장 등 민주주의의 후퇴를 경계한다. 그리고 4차 산업혁명기에 우리가 어떻게 공동체를 꾸려가야 할지에 대해, 기본소득 등 경제적 배분, 사회권 보장 등 권력 배분, 학습권 등에 대해 ‘동물 만민 공동회’의 토론 형식을 빌려서 여러 대안들을 제시한다.
이상이 일상이 되도록 상상하라
동물들은 열심히 일한다. 일을 하느라 생각할 시간을 갖지 못한다. 아무 생각 없이 일만 열심히 해서는 삶이 더 나아지지 않는다. 생산성이 높아져도 소수가 그것을 독점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문제의 원인이 기계인 줄 알고 애꿎은 기계를 부순다. 하지만 곧 말할 자유와 정치 참여 권리를 갖지 못한 것이 원인임을 깨닫는다. 그래서 지배자들에게 ‘말할 권리’를 달라고 요구하면서 투쟁한 결과 ‘자유권’, 즉 언론·출판·집회·결사·사상·표현 등의 자유를 얻는다. 그리고 공직에 나갈 수 있는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얻는다. 하지만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이 자유를 누릴 시간이 없다. 이 자유권에 따라 이야기를 했다가는 해고될 수도 있다. ‘정치권’도 마찬가지다. 정치에 참여하려면 뭘 알아야 하는데 공부할 여유가 없다. 결국 선거에서 거수기 역할을 한다. 투표를 하지만 대변자가 아닌 지배자를 뽑는다.
동물들은 새로운 자각을 하게 된다. 자유권과 정치권만으로는 동물들이 동물답게 살 수 없다는 것을! 더 나아가 보다 근본적인 문제, 즉 생존권이 해결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것은 공장에서 일한 만큼 가질 수 있어야 가능하다. 그래서 생산물에 대한 재분배를 주장한다. 최소한의 삶이 가능하도록 공장 내에서의 노동조건 개선과 임금 인상을 요구한다. 이것이 노동권이다. 그리고 시민사회에서 소득·의료·교육·주택·고용 등을 기본적으로 보장받고자 한다. 이것은 ‘사회권’을 의미한다.
사회권은 지배계급이 자신의 몫을 양보해야 가능하다. 하지만 자신의 것을 순순히 내어 놓을 리가 만무하다. 재분배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 재분배의 정당성이다. 둘째,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힘, 즉 시민의 권력이 있어야 한다. 즉 권리와 권력이 생산물 재분배의 필수요건이다.
정당성과 관련해서, 동물들은 새로운 생각을 한다. 한 명의 아이를 키우는 데 한 마을이 필요하듯 한 명의 부자가 만들어지려면 한 사회가 필요하다. 생산물은 한 사회가 생산한 것이므로 지배계급이 부당하게 많은 것을 가져서는 안 된다. 동물들은 이러한 재분배에 대해 배우고 스스로 학습하게 된다. 이런 자각은 동물들의 단결과 단체교섭으로 이어진다. 뜻대로 되지 않을 때 파업도 불사한다. 더 나아가 국가 수준의 소득분배를 주장하면서 시민운동은 물론 제도정치에 깊이 개입한다. 시민권력을 통해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한다. 이처럼 권리를 관철하는 권력을 시민들이 획득할 때 동물다운 삶이 보장될 수 있다.
저자인 유범상 교수는 그의 전작 『필링의 인문학』, 『고독한 나에서 함께 하는 우리로』(공저), 『이기적인 착한 사람의 탄생』에 이어 이번 책에서도 일관된 주장을 펼치고 있다. 시민의식의 고양이다. 학습을 통해 연대를 통해 끊임없이 토론하고 정의로운 대안을 찾아가는 길만이 우리의 미래를 밝게 해줄 수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