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3장에는 네 가지 땅에 떨어진 씨에 대한 비유가 등장합니다. 씨 뿌리는 자는 당연히 그 결실을 바라고 뿌리는 것이겠지만 안타깝게도 땅에 뿌려진 씨가 결실한 경우는 좋은 땅에 뿌려진 한 가지 경우 밖에 없습니다. 나머지 길가에 떨어진 씨와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진 씨와 가시떨기 위에 떨어진 씨는 결국 열매를 맺지 못하고 맙니다. 그런데 아무리 읽어 보아도 씨가 문제인 것 같지는 않습니다.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눅8:11) 결실에 이르지 못한 경우는 모두 씨앗을 받아들이는 사람이나 그 사람이 외적 상황을 극복하지 못해서입니다. 길가에 뿌려진 씨는 악한 자가 씨앗을 빼앗아 가서 열매를 맺지 못하는 땅이 되어버리고 돌밭에 뿌려진 씨는 뿌리가 없어 환란이나 박해에 의해 열매 맺지 못하고, 가시떨기에 떨어진 씨는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이끌려 씨앗이 결실을 맺지 못합니다.
제가 이 비유를 곱씹는 이유는 예수 믿은 이후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떠나는 것을 보면서 이 비유를 떠올리게 됩니다. 그들이 은혜를 받지 못해서 은사가 없어서 신앙의 세계를 아직 이해하지 못해서 신앙을 버린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존경 받을 만한 위치에 있던 사람도 있었고 교회의 지도자적 위치에 있었던 사람도 있었습니다. 은사도 충만했고 기도도 많이 하던 아주 신실한 성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결실기까지 무르익지 못하고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이후 다시 회복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익기 전에 낙과하는 이런 상황을 현재도 심심찮게 목격하게 됩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예수께서 하신 네 가지 땅에 떨어진 씨의 비유에 나타난 결실하지 못한 이유에서 크게 벗어나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면 무엇이 문제일까요? 우리는 네 가지 땅에 떨어진 씨의 비유처럼 성도들이 교회를 떠나는 이유에 대해 얼마든지 이외의 다른 이유를 댈 수 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원인을 한 가지로 귀결시키는 대답이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의 이면에 죄의 역사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죄가 결국 성도를 신앙에서 이탈시켜 사망으로 이끌려는 목적을 갖고 있다는 면에서 그렇습니다.(롬6:23) 동일한 비유를 설명한 누가복음 8장에는 “마귀가 가서 그들이 믿어 구원을 얻지 못하게 하려고”(눅8:12) 설명합니다. 비록 신앙을 떠나는 원인이 환란이든지 세상의 염려든지 재물의 유혹이든지에 관계없이 종국적으로는 사망을 지향하고 있다는 면에서 그렇다는 말입니다. 성경은 예수 안의 생명 아니면 예수 밖에서의 사망 두 가지 지향점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생명을 이탈하는 모든 것은 사망을 지향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이끄는 모든 원인들에는 비록 그가 성도이든 불신자 이든 간에 죄가 역사하고 있습니다. 다만 죄가 절대적으로 그를 지배하고 있느냐 아니면 상대적인 영향력만 행사하고 있느냐의 차이만 가질 뿐입니다.
바울은 법학자로서 기본적으로 죄를 다룰 때 법률적이고 문서적인 측면에서 다룹니다. 그래서 죄가 법을 어긴 것이라는 의미의 범법(갈3:19), 죄에 대한 책임의 문제로서 죄책(롬6:23), 법이 없으면 죄도 형벌도 없다는 죄형법정주의(롬7:8), 죄 사함을 뜻하는 사면(롬4:7) 의롭게 여겨주신다는 간주(롬4:5) 등의 법적 개념을 풀어서 사용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죄를 실체적인 힘을 가진 존재로 다루기도 합니다.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하여”(롬5:21), “죄가 너희 죽을 몸을 주장하지 못하게”(롬6:12), “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하리니”(롬6:14)하며 죄가 세상의 왕이며 우리에게 주인 노릇하는 강력한 힘이라 설명합니다. 다시 말해 죄는 우리를 얼마든지 좌지우지 할 수 있는 강력한 주권, 지배력, 권력과 권세, 통치권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늘 기회를 엿보고 있다가 우리에게 틈타며 우리를 속임으로(롬7:11) 비록 믿는 자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지 못하도록 이끌어 자신의 도구로 사용하고 싶어 하는 존재라(롬6:13) 설명합니다.
더구나 죄는 이렇게 인간의 외부에서 힘으로 작용할 뿐만 아니라 인간 내면에서도 강력한 힘으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내 속에 거하는 죄”(롬7:17,20)라고 반복하여 말하며 죄가 인간 내면에서 저항할 수 없는 힘으로 작용하면서 자신을 사망으로 사로잡아 끌고 가는 힘이라 말합니다. (롬7:23)
그러니 성도의 일생은 죄와의 싸움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히브리서 기자가“죄와 싸우되 피 흘리기까지”(히12:4)하라고 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11장에서 수많은 구약 신앙의 조상들의 믿음을 나열하면서 12장에서 “이러므로”하면서 11장에서 그토록 장황하게 신앙의 조상들의 믿음을 나열한 이유를 설명합니다. 구약 신앙의 조상들도 죄와 싸우며 믿음으로 신앙의 여정을 걸었으니 너희도 그들처럼 “죄와 싸우되 피 흘리기까지”(히12:4)하면서 신앙의 여정을 걸으라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