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탁월한 전기 작가 아놀드 델리모어가 쓴
스펄전 전기의 결정판이다!”
_이동원, 이찬수, 김서택, 화종부, 류응렬, 이상웅, 박태현 추천
교회사 최고의 설교자 찰스 스펄전,
그의 열정과 성취, 겸손과 눈물을 그리다
교회사 최고의 설교자 찰스 스펄전이 탁월한 전기 작가 아놀드 델리모어의 필치로 새롭게 태어난다. “설교의 왕자” 찰스 스펄전의 삶과 사역을 묘사하려는 시도는 그의 생전부터 계속되어 왔으나 이를 적절하게 담아내는 일은 쉽지 않았다. 초기의 전기들은 그를 흠모하는 수준을 넘지 못했고, 이후에 발간된 전기 역시 그의 내면과 본질을 깊이 파고들어 생생한 이야기로 살려 내는 데 실패했다. 그리하여 윌버 스미스가 말한 것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전한 위대한 설교자의 삶을 교회가 이제껏 명확하고 분명하게 들여다보지 못하게 되었다.”
이에 이 책의 저자 아놀드 델리모어는 스펄전의 삶을 종합적으로 연구하여 독자들 앞에 내놓는다. 당대 최고의 설교자이자 목회자인 그의 성취를 객관적으로 그려 내는 일을 시작으로, 그 성취를 가져온 거룩한 원리와 비밀, 즉 모든 사역에서 오직 그리스도만을 높이고 드러내길 원했던 갈망,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깊은 확신과 순종, 기도에 대한 비범한 열심, 고아와 가난한 자들을 향한 긍휼, 신신학과 고등 비평의 영향으로 진리가 위협받는 상황 앞에서 복음을 단호히 수호하려 했던 결심 등을 서술한다. 또한 화려한 명성과 성취 뒤에 감춰진 그의 고통과 눈물 또한 표현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이 책은 독자들 앞에 ‘스펄전’이라는 거대한 산을 오르는 안내도를 제시한다. 하지만 이 길에 들어선 이들은 특출하고 범접할 수 없는 영적 거장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성정이 같으나 하나님만을 오로지 의존했던 한 겸손한 종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또한 연약한 자를 부르셔서 당대의 영적 어두움을 향해 복음의 횃불을 환희 비추셨던 하나님의 주권과 열심을 보게 될 것이다.
이 책의 특징
- 탁월한 전기 작가 아놀드 델리모어가 집필한 스펄전 전기의 결정판.
- 스펄전의 생애와 사역을 보여주는 사진 자료 수록.
- 「하나님의 사람」 시리즈 제18권.
독자 대상
- 찰스 스펄전의 삶과 사역을 깊이 탐구하고자 하는 모든 그리스도인.
- 성경 중심적인 설교와 복음 전도의 본질을 깨닫고 이에 매진하고자 하는 기독 사역자.
- 19세기 영미권의 영적·시대적 상황과 이슈를 포괄적으로 연구하고자 하는 목회자, 신학생 및 선교단체 간사.
찰스 해돈 스펄전(Charles Haddon Spurgeon, 1834-1892) 연보
1834년 6월 19일, 에식스 카운티의 켈버돈에서 톨스베리 회중교회 목사였던 존 스펄전과 엘리자 스펄전의 아들로 태어나다.
1836년 스탬본에 있는 조부모의 집으로 보내져 5년을 살다. 당시 회중교회 목사였던 할아버지 제임스 스펄전에게서 청교도 신앙의 유산을 물려받다.
1845년 스톡웰 하우스 스쿨로 전학해 4년 동안 다니다. 이 기간에 지적 훈련을 많이 쌓다.
1850년 1월 6일, 콜체스터에 있는 원시감리교회에서 한 평신도 설교자가 전하는 설교를 듣고 회심하다. “저는 그 즉시 일어나 그리스도의 보혈을, 오직 그분만 바라보는 단순한 믿음을 더없이 뜨겁게 노래할 수 있었습니다.”
1850년 5월 3일, 아일햄의 라크 강에서 캔트로우 목사에게 침례를 받다.
1850년 테버샴에 있는 한 오두막에서 “몇몇 농사꾼 부부에게” 생애 처음으로 설교하다.
1851년 17세에 워터비치 침례교회의 목사로 청빙받다. “소년 설교자”가 목회를 시작한 이후 워터비치 전체가 변화되다.
1853년 12월 18일, 런던의 뉴 파크 스트리트 침례교회에서 첫 설교를 하다.
1854년 4월 28일, 19세에 뉴 파크 스트리트 침례교회의 목사직을 수락하다.
1856년 1월 8일, 뉴 파크 스트리트 침례교회에서 알렉산더 플레처 박사의 주례로 수재나 톰슨과 결혼하다. 9월 20일, 쌍둥이 아들 토머스와 찰스가 태어나다.
1856년 10월 19일, 서리 가든의 뮤직홀에서 설교할 때 계단 난간이 무너져 7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다. 이 사고를 통해 신경계에 심각한 후유증을 얻다.
1856년 2년 과정의 목회자 대학을 설립해 이미 설교 사역을 하는 설교자들을 “더 나은 설교자가 되도록” 훈련하다.
1857년 10월 7일, 크리스털 팰리스에서 23,654명에게 설교하다. 이 집회는 그때까지 육성을 사용한 가장 큰 규모의 실내 집회로 기록되다.
1857년 첫 책 『성도와 구세주』가 출간되다. 이후 140여 권의 책이 출간되다.
1861년 3월 31일, 2년 만에 완공된 메트로폴리탄 타버나클에서 첫 예배를 드리다.
1864년 ‘침례 중생 논쟁’에 참여하다. 이 논쟁에서 영국 국교회가 시행하는 유아세례는 행위 구원을 가르치고 이신칭의 교리와 상충한다고 주장하다.
1865년 월간 잡지 「검과 삽」이 창간되다.
1866년 권서인회를 설립하여 잉글랜드 각지에 성경을 비롯한 기독교 문서를 보급하다.
1867년 10월, 34세에 과로와 신경 쇠약으로 한동안 몸져눕다. 이후 평생에 계속될 류머티즘과 통풍 그리고 우울증으로 고통받기 시작하다.
1867년 D. L. 무디가 런던을 방문하여 스펄전의 설교를 처음으로 듣고 큰 영향을 받다.
1869년 스톡웰 고아원을 설립하여 아이들에게 기독교적인 가르침을 제공하다.
1879년 목회 25주년을 맞아 기념행사가 열리다.
1880년 건강 악화로 인해 런던 남부 교외에 자리한 웨스트우드로 이사하다.
1885년 20년에 걸쳐 집필된 대표작 『다윗의 보고』가 완간되다.
1887년 8월, 「검과 삽」 8월호에 ‘내리막길’이라는 글을 실으며 신신학과 고등비평에 물든 침례교 연맹을 비판하다. 10월, 스펄전과 타버나클이 침례교 연맹을 탈퇴하다. 이후 심각한 비난과 공격에 직면하다.
1888년 계단에서 넘어져 심각한 부상을 입다.
1891년 6월 7일, ‘전리품을 나누는 다윗의 규례’라는 제목으로 타버나클에서 마지막 설교를 하다. 10월 26일, 요양을 위해 아내와 함께 프랑스 망통으로 떠나다.
1892년 1월 31일, 프랑스 망통에서 5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다. “더럽고 불쌍하고 무력한 벌레인 제가 주의 친절하신 팔에 안깁니다.”
1892년 2월 9일, 관이 런던에 도착한 후 노우드 묘지에 묻히다. “여기, 주님이시며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리며 찰스 해돈 스펄전이 잠들다.